§ 나는 될놈이다 1226화
“하지만 교단에서 지내다가 태어났는데 그 교단 믿는다고 하면 어떡하죠?”
이다비의 말에 태현은 충격을 받았다.
태어난 레드 드래곤이 ‘저는 파이토스 교단 믿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상상을 하니….
생각 외로 충격이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보다 아키서스 교단을 아끼고 있었군.’
물론 아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파이토스 교단 믿는 꼴은 못 봤을 것 같았지만….
“그보다 노래 배운다고 했었잖아? 언니한테 말해놨어. 언제 갈 거야?”
“아.”
이세연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은 지금 고급 노래 스킬을 최고급으로 올리기 위해 스승을 찾고 있었다.
아무 NPC한테서 도움받지 않고 혼자 고급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사실 기적 같은 일!
태현이 쌓은 온갖 업적들과, 주변에 있는 사기적인 NPC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 한계가 있긴 했다.
‘노래 스킬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뛰어난 음유시인 랭커나, 혹은 비전 노래 스킬을 갖고 있는 NPC거나.
그런 사람한테서 몇 개 스킬을 배울 필요가 있는 것!
“누구예요?”
“이세연 사촌언니인데, 음유시인 랭커래.”
“와… 둘 다 랭커라니 대단하네요.”
이다비는 감탄했다.
이세연은 손꼽히는 랭커였고, 이세연의 사촌언니도 음유시인 랭커라니.
정말 게임 잘 하는 집안!
“같이 배우자. 이다비.”
“네? 저도요? 아니….”
이다비는 당황했다.
보아하니 이세연은 김태현만 말해놨을 것이다. 괜히 끼어서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았다.
“이다비 씨도 말해놨어요. 괜찮으시면 같이 배우세요. 스킬 많아서 나쁠 거 없죠.”
“감, 감사합니다!”
이다비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세연은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로 뽑히는 사람답게 정말 마음이 넓었다.
태현만 보면 보여주는 행동과는 정반대!
사실, 태현 일행이 가진 이세연의 이미지는 좀 왜곡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보통 이세연을 만나면 싸울 때거나 이세연이 빡쳐 있을 때였으니….
원래 이세연은 겉으로는 쿨하고 지적인 이미지였다.
외모, 성격, 실력 등 모든 것을 가진 완벽한 사람!
…인데 김태현만 만나면 사람이 좀 푼수가 되었던 것이다.
* * *
[<에랑스 왕국 왕실 음유시인의 탑>에 입장하셨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노래 스킬에 추가 보너스…]
[……]
[……]
왕실 음유시인 탑!
에랑스 왕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이야기한다면 꼭 나오는 곳 중 하나였다.
조용한 호숫가 가운데에 솟은 탑 근처에는 시끄러운 몬스터 하나 없이 평화로웠고, 그 탑에서는 온갖 아름다운 화음이 울려 퍼지곤 했다.
그러면 연인들은 이 호수 근처에 와서 서로 사랑을 속삭이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조용히 마실 걸 팔고, 음유시인들은 노래를 부르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있잖아?’
태현은 날아가다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을 보고 움찔했다.
정말 가는 곳마다 보이는 이들!
성실하다면 참 성실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음유시인 여러분. 목에 참 좋은 꿀생강차가 여기 왔습니다. 이 꿀생강차는 무려 김태현 선수와 세 번 만나 본 적 있는 요리사가 만든 꿀생각차로서….”
“오오오…!”
“근데 세 번 만나본 거면 별로 대단한 게 아니지 않…?”
“저도 꿀생강차 주세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때와 장소에 맞춰 장사 전략을 바꿨다.
열심히 노래하는 음유시인들한테는 꿀생강차를.
“연인 여러분! 이 초콜렛 케이크를 보십시오! 같이 드시기만 해도 사랑이 싹트고 깊어지는 초콜렛 케이크! 사랑의 신 베레타르바 신전에서 검증받은 제품!”
“저 주십시오!”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에게는 초콜렛 케이크를.
“큭큭큭… 멍청한 연인 놈들. 우리 장사 수완에 그냥 넘어가는군.”
“초콜렛 케이크 먹는다고 사랑이 오래 가겠냐? 어리석기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행복한 연인들을 보며 비웃었다.
이런 근거 없는 말에 속다니!
참으로 어리석다!
“그런데 그냥 저렇게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승자 아닙니까? 믿든 안 믿든 그걸 갖고 행복하게….”
“조용히 하지 못해?”
“어허. 어디서 막말을…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연인은 돈밖에 없어! 연인은 헤어질 수 있지만 돈은 못 헤어진다고!”
파워 워리어 길드 신입은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온갖 구박을 받아야 했다.
그 모습을 본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는 척하지 말아야지.’
원래 하던 변장이지만 오늘은 더더욱 강하게 변장!
이다비도 바로 변장했다.
그걸 모르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호다닥 달려왔다.
“연인분들! 이 초콜렛 케이크를 보십시오! 사랑의 신 베레타르바 신전에서 검증받은 제품입니다!”
“…….”
너희 길마야!
태현은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옆에 있던 이세연이 별생각 없이 물었다.
“근데 누구하고 누구 말하는 거죠?”
“…….”
“…….”
그러자 갑자기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이다비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고, 별생각 없이 질문 던졌다가 분위기가 미묘해진 이세연도 당황했다.
질문받은 파워 워리어 길드원도 당황했다.
어?
아니….
‘나는 그냥 영업 멘트를 말한 것뿐인데…!’
태현은 간단하게 결론을 내려줬다.
“너희 둘이 좀 더 앞에 있었으니까 너희 둘이겠지.”
“그럴듯한데요?”
“확실히 논리적이야.”
“…????”
파워 워리어 길드원은 귀를 의심했다.
아니….
논리적인가?
그, 그런가?
확실히 앞에 있는 사람 둘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는 거 같고….
내가 너무 편견에 차 있었던 건가?
길드원은 이다비와 이세연에게 다시 말했다.
“두… 두 분의 행복한 사랑을 위한 초콜렛 케이크 사실래요?”
“아뇨. 괜찮아요.”
이다비는 그렇게 말하고 이세연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저거 성능 별로니까 사지 마세요.
-앗. 감사합니다.
물론 말 안 해줬어도 살 생각은 딱히 없었지만….
이세연은 이다비에게 감사하며 거절했다.
“저도 괜찮아요.”
둘이 다 거절하자 파워 워리어 길드원은 시무룩해졌다.
그는 태현을 노려보았다.
남은 한 사람!
파워 워리어 길드의 자존심을 걸고 반드시 팔고야 말겠다!
“이걸 사면… 음… 연인이 생길지도… 모르는… 아니, 이건 너무하고… 아, 좋아하는 사람한테 주시면… 아니! 돌아오세요! 손님!”
태현은 무시하고 떠나버렸다.
저런 건 케인이나 속지!
* * *
[<성스러운 신을 위한 합창>을 들었습니다!]
[노래 스킬에 추가 버프를…]
[명성이 오릅니다.]
[일시적으로 스탯이…]
[영구적으로 지혜 스탯이…]
“와. 여기 되게 괜찮은데?”
“그렇지? 그렇지?”
이세연은 태현이 만족하자 매우 기뻐했다.
이곳을 추천했던 이유는, 김태현이 오지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의외로 상위권 랭커들은 이런 곳을 온 경험이 별로 없었다.
맨날 경험치에 목숨 걸고 난이도 높은 던전만 찾아가니, 이런 곳은 올 여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예술 관련 장소는 의외로 쏠쏠했다.
처음 들었을 때 들어오는 각종 영구 버프부터 시작해서 보너스까지!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아름다운 풍경과 노래까지.
“여기 입장하려면 왕국 공적치 포인트 1만 이상 얻거나 특별 퀘스트를 깨야 하는데….”
자랑하던 이세연은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태현은 아탈리 왕국 국왕이었다.
중앙 대륙 왕국들은 서로 친했으니, 태현은 그냥 왔어도 프리패스였을 것이다.
“…아니. 내가 쓸데없는 잘난 척을 했네. 미안. 잊어줘.”
“응? 아니야. 너 덕분에 들어와서 고마운데.”
태현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지금 태현은 에랑스 왕국에서 신분을 대놓고 드러낼 수 없는 상태였다.
에랑스 왕국 왕자들이 ‘야! 아탈리 왕국 국왕 오면 푸대접해서 쫓아내!’라고 명령을 내린 상태였던 것이다.
“…?!?”
이세연은 태현의 너무 다른 태도에 당황했다.
얘 진짜 진짜 왜 이래?!
‘이다비 씨 앞이라 그런 건가?’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말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다비 앞에서는 사람이 유난히 예의 바르고 친절했던 것 같다!
[아름다운 노래를 연속해서 들었습니다. <레드 드래곤의 알>이 변화를 받습니다.]
“오… 다행이다.”
태현은 메시지창에 안도했다.
이 노래는 분명 좋은 영향이겠지?
-주인이여. 저 드래곤에게만 너무 신경 써주는 것 아닌가?
-맞습니다. 혹시 레드 드래곤이라고 차별하시는 겁니까?
“아니….”
태현은 두 드래곤의 항의에 당황했다.
나이도 태현보다 많이 먹은 놈들이 지금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질투하고 있네?
“너희 종족 사이에서도 어린 애들은 잘 돌봐주지 않냐?”
-…보통 같은 색의 드래곤을 돌봐준다. 주인이여.
-맞습니다. 다른 색은 다른 색이 알아서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두 드래곤은 냉정했다.
레드 드래곤은 우리 동족 아니야!
“얘네 좀 너무한 것 같지 않아?”
“좀 실망이긴 하네요. 착한 드래곤인 줄 알았는데.”
이다비의 말에 두 드래곤은 당황했다.
이제까지 매번 그들을 편들어주던 아키서스 사제가 갑자기 이러다니!
-아… 아니. 사제여. 잘 생각해 봐라. 원래 이게 관습이….
“관습이고 뭐고 태어나지도 않은 알한테 그러면 안 되죠.”
쿵!
이다비의 쌀쌀맞은 태도에 두 드래곤은 크게 충격받았다.
-안… 안 그러겠다. 사제여. 우리 편을 들어줬으면 한다.
-맞, 맞습니다. 저희 편 들어주십시오.
‘쟤네 맨날 저러고 노나?’
* * *
[<목소리의 홀>에 입장하셨습니다.]
[……]
[……]
“언니. 저 왔어요.”
이세연의 말에 잘 차려입은 단아한 음유시인이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잘 왔구나. 오는 길에 불편하지는 않았고?”
“네. 제 레벨이 있는데 당연히 안 불편하죠. 이쪽이 저번에 말한 ‘그’ 김태현이에요.”
“아. 이분이 ‘그’ 김태현이구나.”
‘그라고 말할 때 좀 강조가 실린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기분 탓 아니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이세연이 무슨 말을 했을지 괜히 신경 쓰였다.
“안녕하십니까. 김태현입니다. 안 그래도 바쁘실 텐데, 이렇게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요. 바쁜 건 김태현 선수가 더 바쁘겠죠. 세연이가 언제나 신세를 지고 있는 것 같은데 항상 고마워요.”
“아… 아닙니다.”
태현은 부정했다.
그리고 진짜 아니긴 했다.
이세연이 딱히 신세 진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싸우기만 했던 것 같은데?’
그러나 남설연은 태현이 그냥 겸손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판온 경기나 화제를 다 일일이 챙겨보지 않아서 소식에 어두웠던 것이다.
그냥 태현이나 이세연이 엄청나게 대단한 플레이어라는 것 정도만 알았다.
그런 플레이어가 이렇게 겸손하다니.
‘역시 성공하는 사람은 성격도 제대로 된 걸까?’
물론 이세연은 옆에서 기막혀하고 있었다.
태현이 보여주는 태도가 너무 공손하고 정중했던 것이다.
그녀를 상대할 때 이 태도의 1/10만 좀 닮아봐라!
“지금 노래 스킬이 몇이죠?”
“고급 노래 6까지 찍은 상태입니다.”
“고급 노래 6까지?! 그게 정말인가요?!”
남설연은 깜짝 놀랐다.
“김태현 선수가 음유시인이었니 원래?”
“…쟤가 원래 좀 이것저것 다 찍으니까 너무 놀라지 마세요. 언니.”
“쟤라니. 예의 바르게 대해야지.”
남설연은 자상하게 타일렀다.
이세연은 억울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사촌언니 앞에서는 대꾸하기 힘들었다.
“네….”
“아니, 원래 친해서 그런 거니 괜찮습니다. 편하게 부르거든요.”
“어머, 그게 정말인가요?”
“네. 가끔은 새ㄲ….”
이세연은 다급하게 태현의 입을 막았다.
“너 뭐라고 하는 거야!”
“아니. 친하다는 거 말하려고….”
“그냥 편하게 말한다는 부분에서 끝내! 내가 새끼라고 언제 했어!”
“너희 길드원들이 그러던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