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24화
한 번 놀렸다가 뼈 때리는 조언을 받게 된 케인은 조용해졌다.
내가 미쳤지!
‘그냥 가만히 있을걸….’
태현은 멈추지 않고 추가타를 넣었다.
“케인이 요즘 그렇게 연애가 잘 안 풀리나?”
“상대도 바쁘고 케인도 바쁘니까 영 힘든가 봐.”
하연도 <파이브 걸즈>의 활동으로 바쁘고, 케인도 리그다 퀘스트다 뭐다 하면서 한창 바빴던 것이다.
모처럼 태현이 다른 선수들에게 자유를 준 덕분에 케인은 신이 나서 ‘판온에서 만나자!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프로즈란드 구경시켜줄까? 응? 어떤 곳이냐고? 90%의 플레이어들이 얼어 죽는 곳인데 나는 거기서 버틸 수 있어! 너는 어떡하냐고? 어… 그게….’라고 했지만, 상대도 스케줄이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흑흑… 흑흑흑.”
케인은 슬픈 표정으로 먼 곳을 쳐다보았다. 태현은 목소리를 낮추고 수군거렸다.
“쟤 혹시 차였는데 차인 거 눈치 못 챈 건 아니지?”
“아닐 거야. …아마도.”
“아닐 겁니다. …아마도 말입니다.”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는 가능성!
케인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맞아. 김태현. 혹시 방송 나가도 괜찮아?”
“너 혼자서? 케인.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니? 너 혼자 나가면 넌 인마 사회적으로 매장이야!”
옆에서 최상윤이 케인을 구박했다.
케인은 방송계에서는 맛 좋은 호구에 불과했다.
유명하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인 태현과 친하지….
태현이 대부분의 방송 활동을 하지 않는 한 케인만 한 창구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케인은 생각하기 전에 말하는 케이스였다.
케인만 나오면 방송이든 인터뷰든 기사든 빵빵 터진다!
태현이 출연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시청률과 관심이 폭발하는 것이다.
…물론 이 대가로 케인이 미친 듯이 욕을 먹어야 했다.
-아니, 케인 저 새끼는 저 나이 먹고 집안일을 안 하냐? 김태현이 전승우승해서 망정이지 김태현이 1패라도 했으면 다 네 탓이다.
-케인 때문에 김태현이 1R 18 연속킬 달성 못 한 게 사실인가요?
-혹시 케인이 김태현 약점 잡았냐? 케인이 김태현 친동생임?
이런 결과 때문에 태현은 케인 단독 출연을 금지시켰다.
방송 인터뷰 기사 등등 전부 다 금지!
최소한 옆에 한 명은 붙여서 나가!
“나도 알거든? 당연히 같이 나가자는 소리지.”
“누구하고?”
“어… 누구든 좋긴 한데 가장 유명하고 인기 좋은 사람이 좋긴 하겠지.”
“…….”
“…….”
최상윤과 정수혁이 정색했다.
이 자식아!
그러면 한 사람밖에 없잖아!
“왜?”
“여자친구가 프로그램 MC 맡고 있는데 거기에 너 같은 특급 스타 데리고 가면 엄청 도움 될 것 같아서.”
그냥 도움이 아니었다.
태현을 데리고 나오는 순간 그 사람은 몇 달 정도는 어깨에 힘주고 다녀도 됐다.
다른 방송 프로그램들은 뭔 짓을 해도 섭외할 수 없는 특급 스타를 데리고 온 것이었으니까!
새로 MC를 맡은 하연에게는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리라.
“하연이었나? 그 사람이 부탁한 건가?”
“아니. 내가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몰래 준비하고 있지.”
“…….”
태현은 멈칫했다. 뭔가 느낌이 쌔했던 것이다.
“케인… 그냥 먼저 말해라.”
“왜? 서프라이즈를….”
“서프라이즈고 뭐고 간에 자기 방송인데 네가 멋대로 준비했다가 싫어하면 어쩔 건데?”
“…….”
케인은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네!
‘이걸 말로 해줘야 아나?’
“그보다 뭔 프로그램인데?”
“<판온 식당>이라고 판온에서 직접 출연자들이 식당 운영하는 프로그램인데… 잠깐, 너 이거 안 보냐?”
“역으로 물어보자. 내가 TV 볼 시간이 있어 보이냐?”
“…죄송합니다.”
옆에 있던 최상윤과 정수혁도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단장님!
“판온 안에서 하는 프로그램이면… 알겠어. 고민 좀 해볼게.”
“진… 진짜?!”
“그래. 그러니까 게임에 집중해라. 월드컵 선발도 있는데 여기서 한두 명 정도는 뽑혔으면 한다고.”
태현의 말에 모두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월드컵 출전은 (태현 빼고) 모두의 명예였다.
나갈 수 있다면 나가고 싶다!
‘근데 김태현은 권한 있을 텐데 사바사바해서 뽑아줄 수는 없나?’
‘그 소리 했다가는 네 머리가 사바사바해서 바닥에 꽂힐걸.’
‘…….’
* * *
“…내 생각에, 여기는 드래곤 알에 너무 안 좋은 곳이야.”
태현의 말에 이다비와 이세연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들은 교단 NPC들과 함께 요새로 돌아온 상태였다.
굶주린 혼돈의 대전사도 쓰러뜨렸겠다, 사막의 위협은 일시적으로 사라진 상황!
여기 모여 있던 대륙의 영웅들도 이제 서로 화해하고 흩어지면 되는데….
[요새의 불만도가 크게 올라갑니다!]
‘아니 이 새끼들이.’
태현은 분노했다.
어떻게 가꾼 요새인데 불만도를 올려??
-힘으로 시험을 보자! 누가 가장 위대한 영웅인지! 영웅이라면 무릇 힘이지!
[검은갈기부족의 대전사, 와르드펭이 힘의 시험을 제안합니다!]
[힘 스탯으로…]
-헛소리! 검사라면 무릇 검술 스킬로 승부를 봐야지. 야만인 같은 놈.
[핏빛 군도의 뱀파이어 비전 검술 달인 드레칼이 검술의 시험을…]
-당연히 마법이….
-많이 먹기 시합이 좋다.
[대륙의 영웅들이 다투기 시작합니다!]
[이들의 불만은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곧 싸움이 일어납니다!]
[퀘스트…]
“와… 진짜 개짜증 나는 새끼들….”
이세연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태현과 이다비는 똑똑히 들었다.
‘이세연이 요즘 스트레스가 많나 보다.’
‘태현 님이랑 같이 있으니까 좀 낫지 않을까요?’
‘글쎄….’
“이세연. 진정하고 하나씩 처리하자.”
“…맞는 말이야. 일단 교단부터.”
이세연은 교단 주교들을 불렀다.
“이제까지 수고했고 다시는 안 봤으면 좋겠네!”
-알겠네, 더러운 흑마법사 황제!
-우리도 동감이야!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스비안 제국에 파이토스 교단이 포교 가능…]
[아스비안 제국에…]
[……]
서로 그런 퀘스트를 깼지만 사이는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경멸하는 사이!
교단들은 어쨌든 원하던 권한을 얻어냈기에 별 불만이 없었다.
“파이토스 교단 대주교님! 언제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태현은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파이토스 교단 NPC들에게 외쳤다.
파이토스 교단 주교는 움찔하며 분노했다.
저 자식은 왜 친한 척이야?
-역시 파이토스 교단이 아키서스 교단과 손을 잡은 것인가….
-아스비안 제국에서 공격적인 확장을 하기 위해 잡은 거겠지. 실로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이다.
-저희 헤넨 교단이 도둑놈들이란 소리 많이 듣지만 사실 파이토스 교단이 진짜 도둑놈 아닐까요?
교단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머뭇거리다가 태현한테 잡혀서 아키서스 당할라!
그런 뒷모습을 태현은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카르바노그가 무슨 생각하고 있냐고 묻습니다.]
‘이제 쟤네가 교단 차리면 찾아가서 뺏어 먹을 생각.’
아스비안 제국에 각 교단들이 나오면 태현도 가서 얻어먹을 게 많아졌다.
제국에서 새로 얻은 보물부터 시작해서 각종 NPC들 동원까지!
교단의 신전들은 온갖 혜택이 있는 자판기나 마찬가지였다.
“자. 이제 저놈들을 어떻게 잠재우냐가 문제인데.”
태현은 솔선수범해서 나섰다. 이세연은 그 모습에 살짝 감동했다.
얘가 왜 이렇게 잘해주지?
‘이러다가 내 요새 부서지면 큰일이다.’
저번에는 교단 NPC들 갈취해서 지었지, 이번에는 갈취할 놈들도 주변에 없었다.
요새를 지켜야 해!
“대륙에서 온 놈들아, 내 말을 들어라!”
[검은갈기부족의 대전사, 와르드펭을 상대하기에는 당신의 레벨이 너무 낮…]
[……]
[……]
[……]
태현이 나서자 이세연의 길드원들은 조마조마해했다.
이세연이 데리고 온 대륙의 영웅들은 싸가지 없기로는 판온 제일의 영웅들이었다.
일단 말 거는 순간 ‘당신 레벨 낮습니다’, ‘당신 명성 낮습니다’, ‘당신 힘도 낮고 검술 스킬도 낮고 하여튼 너무 약함’ 같은 메시지창으로 멘탈을 깨버리는 것이다.
말 자체를 걸 자격이 없다!
…그러나 태현은 달랐다.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와르드펭이 당신을 인정합니다!]
[악명이…]
[칭호…]
[칭호…]
[업적…]
[……]
[……]
레벨과 힘 스탯에서 깎아 먹더라도 태현에게는 어마어마한 명성, 악명, 칭호, 업적들이 있었다.
대전사 와르드펭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업적들!
-악마 공작에 드래곤까지! 인정할 수밖에 없군!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우르크 원시 인간 부족의 대마법사, 바어마는 태현과 각별한 관계가 있었다.
예전 우르크 지역에서 퀘스트를 깰 때 우르크 원시 부족을 도와주고 친해졌던 것이다.
“아. 그 부족장 바마어의 후계자인가?”
-저희 삼촌 되십니다! 역시 아탈리 국왕답게 기억력이 좋으시군요!
[친밀도가 높…]
[우르크 원시 인간 부족 내 공적치 포인트가 높…]
순식간에 친해진 둘!
핏빛 군도의 뱀파이어 비전 검술 달인 드레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업적이나 칭호, 명성이나 악명에 휘둘리지 않는다. 네 검술 스킬은 너무 턱없이 부족….
“너 핏빛 군도 뱀파이어지? 스카비오 백작이나 안달토 백작, 블라디 백작이 누군지 아냐? 핏빛 군도 뱀파이어라면 상관이 없을 수가 없을 텐데?”
움찔!
드레칼은 태현이 백작들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자 당황했다.
스카비오 백작은 먼 친척의 어르신 되는 분이었고 안달토 백작은 부모님과 친한 귀족 어르신이었다.
블라디 백작은 새로 핏빛 군도를 다스리는 사악하고 무시무시한 백작이었고….
“걔네들이 다 내 봉신인 건 알고 있냐? 걔네들 불러볼까? 이 검술밖에 없는 뱀파이어 놈이 어디서 지금….”
[최고급 화술 스킬을…]
[협박에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드레칼이 굴복합니다!]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교황 성하. 그러니 제발 백작님들에게 말하지 말아주십시오!
드레칼도 제법 나이 많은 뱀파이어였지만 다른 뱀파이어 백작들에 비하면 젊은 편이었다.
이 나이 먹고 불려가서 훈계를 듣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드레칼 제압을 끝낸 태현은 이과두를 쳐다보았다.
흉폭한 장님 거인, 자이언 산맥의 파괴자!
이과두를 보니 고대 거인이 생각나서 움찔하게 됐다.
‘얘는 어떻게 설득하다?’
-나 너 안다! 너는 기적의 요리사다! 예언이 너 말해줬다! 너 먹을 거 많이 준다!
[요리 스킬…]
[칭호 거인들의…]
[……]
[이과두가 당신을 <거인의 요리사>로 임명합니다!]
[요새에 모인 대륙의 영웅들을 전부 설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세, 세상에….”
“아니 뭐 인맥이 저렇게 좋아??”
보고 있던 이세연의 길드원들은 경악했다.
그냥 가서 말 걸더니 한 명씩 제압해 버리는 태현!
아무리 봐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말 다 설득한 게 맞았다.
저게 사람이 가능한 혓바닥인가??
<참으로 쓸데없는 영웅들-아키서스 교단 퀘스트>
굶주린 혼돈과 싸우라고 모아 놓은 영웅들은 하라는 싸움은 안 하고 자기들끼리 누가 강한지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승부를 정해라!
이 어려운 일을 해낸다면 그들은 아키서스 교단에 대해 신뢰와 호의를 가지게 될 것이다.
보상: ?, ???, ????
퀘스트 등급: 전설
‘뭔 놈의 전설 등급 퀘스트가 이렇게 쌓이냐.’
난이도 보면 전설이 맞긴 했다. 한 놈 한 놈 다 말이 안 통했으니까.
퀘스트 내용이 좀 어이가 없긴 하지만….
‘어떻게 승부를 낸다?’
이 네 놈이 모두 만족할 만한 승부 방법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