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21화
“아니 알렉세오스, 잠깐…!”
태현은 알렉세오스를 말리려고 했다.
대화와 고민을 통해 좀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알렉세오스는 이미 결심을 굳힌 모양이었다.
바로 태현의 손에서 부활석을 뺏은 다음 사용한 것이다.
-아키서스의 화신. 널 만나서 즐겁… 아니, 음… 즐겁진 않았고… 뭐 여러모로….
“…….”
알렉세오스는 레드 드래곤답게 솔직했다.
-나쁘지 않았다 정도?
“…나쁘지 않으면 좋은 거지.”
콰드득! 콰드드드득!
쩌저저적!
주변의 레어가 무너지면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유령 용 상태였던 알렉세오스가 육체를 되찾느라 주변이 박살 나고 있는 것이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이곳으로 깃듭니다!]
[내 힘을 사용했느냐, 하찮은 도마뱀아? 너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굶주린 혼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활석을 사용한 덕분에 굶주린 혼돈이 찾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굶주린 혼돈은 태현을 발견하고 눈을 찌푸렸다.
[카르바노그의 하수인 놈. 여기저기 다 끼어드는구나. 곧 대륙에 있는 모든 카르바그의 신전이 파괴될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신전이 뭐 얼마나 된다고 저렇게 말하냐고 투덜거립니다.]
저렇게 말할 정도로 신전이 많기나 하면 억울하지나 않지!
[너는 내 힘을 받아들였다… 도마뱀아. 내 손아귀로 들어오거라.]
-어리석은 놈 같으니. 나 알렉세오스는 굴복하지 않는다!
[레드 드래곤 알렉세오스가 <영원불멸의 화염>을 사용합니다!]
[알렉세오스의 드래곤 하트가 타오릅니다!]
[레드 드래곤 알렉세오스가 <숭고한 헌신>을 사용합니다!]
[레드 드래곤 알렉세오스가…]
화르르륵!
온몸을 되찾자마자 자기 목숨을 태워버려서 강화 버프를 거는 알렉세오스!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힘을 아낄 이유가 없었다.
-화신이여, 내 위에 타라!
알렉세오스는 태현을 불렀다. 생전에는 한 번도 누구를 태우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혼돈의 대전사, 파그로악을 죽여야 할 때!
[레드 드래곤 알렉세오스의 인정을 받습니다!]
[칭호, <레드 드래곤 나이트>을 얻습니다!]
[이는 어마어마한 명예…]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드 드래곤 나이트>로 전직 가능…]
[아키서스의 화신입니다! 불가능합니다!]
알렉세오스의 인정을 받고 그 위에 타서 용기사로서 싸우는 건 어마어마한 업적이었다.
앉는 것만으로도 레벨 업!
그러나 태현은 기뻐할 여유가 없었다. 그만큼 상황이 촉박했던 것이다.
<혼돈의 대전사 사냥-레드 드래곤 알렉세오스 퀘스트>
굶주린 혼돈에게 저주 받은 알렉세오스는 자신의 영혼을 모욕한 자들에게 최대의 보복을 하려고 한다.
레드 드래곤의 자존심은 아키서스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법.
알렉세오스가 생애 마지막 복수를 할 수 있게 도와라!
보상: ?, ???
콰르르르르르!
막대한 양의 모래를 헤치고 알렉세오스는 날아올랐다.
땅 속에서 튀어나오는 레드 드래곤의 모습에, 파그로악을 레이드하던 사람들은 대경실색했다.
저게 대체 뭐야?!
* * *
김태현은 난이도 높은 퀘스트를 어떻게든 깨는 것으로 유명한 플레이어였다.
‘이 퀘스트는 현재 플레이어들 수준으로는 못 깨는 퀘스트다’라고 나온 퀘스트를 몇 번이고 깨온 것이 바로 김태현!
본인의 레벨이나 컨트롤도 컨트롤이었지만, 무엇보다 김태현은 판을 잘 짰다.
무작정 들이밀지 않고 영리하게 남의 힘도 빌리면서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태현이 힘을 빌린 NPC들만 정리해도 수십 가지가 넘으리라.
‘이번에는 대체 뭘 동원할까?’가 김태현의 퀘스트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긴 했지만….
이걸 이렇게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저게 뭐야?!”
이세연의 길드원들은 경악했다.
레드 드래곤이다!
아무리 봐도 레드 드래곤이었다. 와이번이나 드레이크 같은 짝퉁이 아니라 진짜 드래곤!
-크롸롸롸롸롸롸롸!
[알렉세오스가 <레드 드래곤 로어>를 사용합니다!]
[……]
[……]
-크으으윽!
파그로악은 드래곤 로어에 귀를 막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방어구도 없는 상황에서 알렉세오스의 공격은 실로 매서웠던 것이다.
-후우우우웁!
[알렉세오스가 <레드 드래곤 브레스>를 준비합니다!]
-사디크의 화염!
[<태초의 불> 속성이 레드 드래곤 브레스에 추가됩니다!]
[<사디크의 화염> 속성이…]
[아키서스의 행운이…]
[……]
[……]
태현은 알렉세오스의 위에서 바로 버프를 걸어주었다.
마법은 직접 못 쏘더라도, 태현의 화염은 보통 화염이 아니었다.
<태초의 불>부터 시작해서 사디크의 신성력도 들어간 강력한 화염!
그 화염이 브레스에 추가되자 위력은 몇 배로 늘어났다.
-아키서스의 축복!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
-훌륭하다, 화신!
알렉세오스는 감탄했다.
파그로악이 상대인 탓에 태현을 머리 위에 올려놨는데, 정말 올려놓은 값을 해주고 있었다.
태현이 드래곤 나이트 역할을 잘 해줄까 걱정했는데….
‘확실히 아키서스는 남의 힘을 이용하는 데 도가 튼 신! 괜한 걱정을 했군!’
남의 힘을 빌려서 날로 먹는 신이 이런 협조를 못할 리 없었다.
실제로 태현은 적절한 지시에, 각종 스킬로 버프해 주고 유도까지 해내고 있었다.
화르르르르륵!
[<레드 드래곤 브레스>이 파그로악을 직격합니다!]
“모두 피해!!!!”
“브레스!! 피해요!!!”
알렉세오스가 뭘 하려는지 깨달은 일행은 빠르게 대피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레벨이 높은 성기사라 하더라도 직격당하면 그대로 녹아내릴 수준의 화력!
그게 바로 드래곤 브레스였다.
-크윽… 크으윽… 크아아아악!
파그로악은 새하얗게 타오르는 브레스 속에서 울부짖었다.
[굶주린 혼돈이 파그로악에게 힘을…]
[굶주린 혼돈이…]
-이 드래곤 놈! 나는 절대 죽지 않는다! 나는 불사신이다!
-아키서스의 화신! 잘 봐라.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이라고 해서 불사신은 아니다!
알렉세오스는 파그로악을 가리키며 외쳤다.
[막대한 데미지를 받은 탓에 굶주린 혼돈의 힘이 약해집니다!]
[……]
-굶주린 혼돈도 무한정 여기에 머물 수는 없다!
“놈의 하수인을 계속 패다 보면 결국 굶주린 혼돈도 떠나게 된다 이건가?”
무한정 살아날 줄 알았던 파그로악도 끝은 있었다.
계속 패다 보면 굶주린 혼돈과의 연결이 약해지는 것!
-바로 그거다! 그리고 두 번째 약점이 있다. 주문 해제!
[알렉세오스가 언령으로 주문 해제를 시전합니다!]
[매우 높은 마법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
[……]
[위대한 언령의 활용을 보았습니다. 언령 스킬의 레벨이 오릅니다!]
태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마법 스킬을 가진 알렉세오스였다.
알렉세오스는 언령 마법으로 파그로악에게 걸린 주문들을 날려 버렸다.
주문이 날아간 파그로악은 괴로운 듯 비틀거렸다.
쉬이이익-
알렉세오스는 끝장을 내려는 듯이 날아들어 발톱을 휘둘렀다.
드래곤은 그 거대한 덩치도 무기였다. 드래곤의 발톱쯤 되면 어지간한 명검보다 더 날카로운 것이다.
콱!
“!”
그러나 파그로악은 알렉세오스의 앞발을 붙잡았다. 무시무시한 체력이었다.
드래곤 로어에 브레스까지 맨몸으로 맞은 다음 주문 해제 마법까지 들어갔는데…!
[알렉세오스와 파그로악이 힘 대결을 벌입니다!]
[……]
꽈아아악!
드래곤의 앞발을 붙잡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 파그로악!
이 무식한 힘에는 아무리 알렉세오스라도 당황했다.
“알렉세오스. 내가 돕겠다!”
태현은 바로 뛰어내렸다.
원래라면 파그로악 근처에는 접근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지금처럼 알렉세오스가 탱킹을 해줄 때면 이야기가 달랐다.
마음껏 딜이 가능하다!
-같잖은 카르바노그의 하수인 놈이! 네놈의 하찮은 저주가 통할 거 같으냐? 네놈은 날 잡을 수 없다!
파그로악은 손이 묶인 상태에서도 자신만만했다.
태현을 얕보고 있었던 것이다.
쓸 수 있는 건 기껏해 봤자 카르바노그의 권능 정도!
이런 것들은 맞아봤자 무섭지 않았다.
토끼로 변하는 권능은 성가셨지만 굶주린 혼돈의 힘이라면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스르릉-
그러나 태현의 손에 들린 것은 카르바노그의 창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황제 살해자>였다.
[마검 <황제 살해자>를 착용했습니다.]
[마검 <황제 살해자>가 착용자의 생명을 빼앗습니다.]
[……]
[……]
-잠… 잠깐, 그건 뭐냐? 그 흉악한 검은 무엇이냐?
<황제 살해자>에서 뿜어내는 음침하고 불길한 기운을 느꼈는지 파그로악도 당황했다.
그리고 알렉세오스도 당황했다.
-잠깐, 화신! 그 검은 뭐냐? 처음 보는 검인데?
“걱정 마십시오. 알렉세오스 님. 파그로악의 숨통을 끊어 놓겠습니다!”
-잠깐, 그 흉악한 검은 나한테까지 영향을 끼칠 것 같은데…!
<황제 살해자>는 들고 있는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한테도 영향을 끼치는 살벌한 검이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죽지 않았습니까!”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파그로악은 기겁해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알렉세오스는 놓아주지 않았다.
확실히 태현의 말이 맞긴 했다.
어차피 죽었으니까!
푸우우욱!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황제 살해자의 불완전 변이>로 인해 파그로악의 육체가 변이합니다!]
[파그로악의 피부가 약해집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파그로악은 섬뜩한 느낌에 울부짖었다. 이 검은 어떤 방어력도 어떤 HP도 소용이 없었다.
퍽, 퍽, 퍼퍼퍽!
태현은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태현도 이 검을 오래 들 수는 없었다.
파그로악의 숨통을 끊어 놓겠다!
[HP가 20%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파그로악의 HP가 0에 도달합니다!]
[굶주린 혼돈이 파그로악의 힘을 회복시켜줍니다.]
[HP가 10% 밑으로…]
[파그로악의 HP가 0에…]
[굶주린 혼돈이 더 이상 파그로악에게 힘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컥!
다행히 먼저 쓰러진 것은 파그로악이었다. 끝없이 많이 누적된 데미지 때문이었다.
-그거다, 화신! 끝내라!
그러나 태현도 더 이상 <황제 살해자>를 쓰지는 못했다. 태현은 집어넣고 대만불강검을 꺼내 찔러 넣었다.
-치명타 폭발, 아키서스의 세 번째 공격, 칼날 폭파!
드드드드득!
파그로악은 그대로 무너졌다. 알렉세오스는 파그로악을 발톱으로 짓밟은 뒤 무게로 찍어 눌렀다.
-혼돈… 혼돈의 반격!
[파그로악이 <혼돈의 반격>을 사용합니다!]
[스킬들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파그로악 주변으로 혼돈이 번쩍하더니 바로 스킬이 시전됐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스킬 봉인 거는 사기적인 권능에 태현은 혀를 내둘렀다.
다 죽어가는 데도 이 정도 사기 스킬을 쓴다니. 멀쩡했을 때는 정말….
-네크로노미콘의 수호!
[<네크로노미콘의 수호>로 인해 <혼돈의 반격>이 옮겨갑니다!]
[……]
이세연이 바로 카운터를 쳤다. 주변에 있는 언데드를 희생시켜 저주를 대신 받아낸 것이다.
그걸 본 태현은 깜짝 놀랐다.
아니, 이런 스킬이?
“이 스킬 어디서 배웠어?!”
“앞에 봐! 앞에!!”
그러나 태현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파그로악이 발을 걷어차자 바로 <반격의 원>으로 카운터를 한 방 더 먹인 다음 검을 찍어 박았다.
[치명타가 터집니다!!]
-내가… 이 내가! 카르바노그의 하수인 따위한테 질 수는! 없다!
파그로악은 울부짖었지만 이미 HP는 바닥이 난 상태였다.
“잘 가라! 느카넷살의 몫이다!”
[굶주린 혼돈의 대전사, 파그로악을 쓰러뜨렸습니다!]
[사막 위에 쓰러진 파그로악은 다시는 부활하지 못할 것입니다!]
[굶주린 혼돈 세력 안에서 카르바노그 교단에 대한 적대도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레벨 업…]
[레벨 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