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20화
믿어주는 것 같아서 기분 좋긴 한데 약간 좀 미묘한….
“이세연! 고개 숙여!”
“으풉풉!”
태현은 이세연의 머리를 잡고 용용이 위로 찍어 눌렀다.
사납게 날아오는 파그로악의 맹공!
-혼돈의 격돌!
전사는 원거리 스킬이 적거나 약하다는 편견을 깨기라도 하듯이, 파그로악은 미친 듯이 쏘아댔다.
-날 막으러 왔나! 카르바노그의 하수인 놈아!
“?”
이세연은 의아하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너 카르바노그의 하수인이었어?
[카르바노그가 기쁘다며 눈물을 흘립니다!]
카르바노그는 매우 기뻐했다.
와!
아키서스의 화신이 내 하수인이래!
‘지금 좋아할 때냐?’
-주인이여! 놈의 공격이 위험하다!
“알겠다. <아키서스의 축복>!”
태현은 바로 아키서스의 축복을 켠 다음 용용이와 함께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에서 날아오는 공격들을 전부 다 미끄러지듯이 빗겨내고 돌격하는 용용이!
-골드 드래곤의 분노!
용용이가 마법을 사용하자 공기가 떨리더니 강력한 충격파가 쏘아져 나갔다.
파그로악은 맨몸으로 마법을 받아냈다.
‘장비는 다 어디 갔지?’
태현은 의아해했다.
파그로악은 갑옷이나 무기도 없이 맨주먹이었던 것이다.
“무기는 어디다 팔아먹었나?”
-이 카르바노그의 하수인 놈이 감히 날 조롱해!
“아니 그냥 물어본 것….”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칭호…]
[……]
[……]
[파그로악을 격노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너 화술 스킬이 얼마나 높길래 쟤가 바로 저러는 거야?!”
이세연은 깜짝 놀랐다.
화술 스킬 쓰는 걸 몇 번 본 적 있었지만 태현처럼 한 번에 성공시키는 건 처음 본 것이다.
무엇보다 상대는 굶주린 혼돈의 대전사!
드래곤이랑 맞먹는 상대한테 화술 스킬을 한 번에 성공시킨 것이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파그로악을 격노시킨다고 해서 크게 유리해지진 않았다.
격노 상태가 되면 판단력이 내려가고 우왕좌왕하게 되지만….
파그로악은 원래 판단력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이다.
판단력이 약한 대신 레벨과 맷집으로 때우는 괴물!
“이세연. 거리 벌린다!”
“알겠어. 소환 들어갈게.”
태현과 이세연은 바로 반대쪽으로 흩어졌다.
노련한 랭커답게 보스 몬스터 레이드하는 정석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일단 흩어져서 상대의 공격을 분산시켜라!
-7번 골렘 군단 소환, 6번 골렘 군단 소환!
[신성한 슬라임 골렘 군단이 소환됩니다!]
[신성한 슬라임 골렘 군단이 소환됩니다!]
이세연은 바로 골렘을 소환했다.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진 강력한 골렘 군단이었다.
물리 방어에 특화된 탱커 골렘 군단!
수십 마리 골렘이 우르르 쌓이며 파그로악을 둘러쌌다.
[슬라임 신, 시이바의 골렘을 발견합니다!]
[신성이 오릅니다.]
[……]
<시이바의 골렘-시이바 교단 퀘스트>
슬라임 신 시이바는 믿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지금 볼 시간 없어!’
태현은 퀘스트창을 옆으로 치웠다. 지금 시이바 퀘스트가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세연이 시이바 골렘을 찾아서 만들었다는 게 신기하긴 했지만….
‘시이바의 골렘인 걸 알긴 하나?’
-군단 소환, 검은 그림자의 영역, 영속적인 사령술의 힘, 흑마법의 구름….
이세연은 연달아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 번 작정한 흑마법사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수백 마리가 넘는 언데드 몬스터들이 일어나더니 골렘 사이에서 파그로악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깟 공격이 먹힐 것 같으냐!!
파그로악은 맨손으로 슬라임 골렘을 박살 내고 언데드들을 발로 차서 쓸어버렸다.
주르륵-
[신성한 슬라임 골렘이 팔과 다리에 달라붙습니다!]
[이동 속도가 느려집니다.]
[신성한 슬라임 골렘이…]
[……]
[오염된 맹독 구울이 폭발하면서 중독시킵니다!]
[……]
그러나 이세연은 애초에 이 언데드로 잡을 생각이 없었다.
파그로악 같은 보스 몬스터를 잡으려면 아무리 정예라도 언데드 군단으로는 안 됐다.
한 방 한 방 묵직하게 딜을 넣을 수 있어야 하는 것!
그리고 지금 이세연 옆에는 세계 최고의 딜러가 있었다.
‘난 시간만 끌면 되니까.’
“잘했어, 이세연! 역시 이세연이군. 사람을 어떻게 해야 빡치게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어!”
“…너만큼은 아니지!”
태현은 슬라임 골렘의 어깨 위를 밟고 올라간 다음 허공에서 스킬을 준비했다.
-공포의 화신, 화술의 근원!
지금 파그로악 상대로 근접전을 시도하는 건 아무리 태현이라도 위험했다.
아키서스의 능력도 굶주린 혼돈 앞에서는 막힐 수 있다는 걸 몇 번 겪은 것이다.
그리고 태현과 파그로악의 레벨 차이를 생각해 봤을 때, 태현은 몇 대 제대로 맞으면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로그아웃 행이었다.
그렇다면….
원거리 공격!
[<공포의 화신>으로…]
[<화술의 근원>으로 인해 모든 화술 스킬들의 MP 소모가…]
<공포의 화신> 버프를 켜고, <화술의 근원>까지 켜자, 태현의 언령 스킬은 쿨타임 제로에 MP 소모 제로인 사기 스킬로 변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언령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마법 스킬이 낮습니다. 언령에 페널티가…]
[……]
[……]
태현은 목을 가다듬었다.
드래곤들이 하는 것처럼 거대한 대마법을 언령으로 하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태현은 태현 나름의 언령 활용법이 있는 법.
“신성신성신성신성신성….”
태현은 미친 듯이 빠르게 신성을 외치며 파그로악 주변을 향해 마법을 날리기 시작했다.
한마디 할 때마다 섬광과 함께 파그로악한테 빛이 튀었다.
신성력을 모아서 쏘아 보내는 단순한 공격이지만 그 공격이 수백 번 넘게 중첩되면….
게다가 태현의 신성 스탯은 살벌할 수준으로 높았다.
퍽! 퍽! 퍼퍼퍽! 퍼퍼퍼퍽!
“신성신성신성….”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굶주린 혼돈의 대전사에게 추가적으로 데미지가…]
[……]
[……]
파아아앗!
순간 이세연은 태현이 파그로악을 정말 잡아버리나 생각했다.
그만큼 기세가 강렬했던 것이다.
두 가지 버프를 켜고서 미친 듯이 맹공을 퍼붓는 태현은 파그로악을 압도하는 듯했다.
[<공포의 화신>이 끝났…]
[<화술의 근원>이 끝났…]
[칭호, <언령의 탐구자>를 얻었습니다!]
슈우욱-
파그로악 몸에서 연기가 솟아 나왔다. 신성력으로 두들겨 맞은 탓이었다.
[굶주린 혼돈이 파그로악에게 힘을 내려줍니다!]
[파그로악이 빠르게 회복합니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카르바노그의 하수인 놈아!!!!
“역시 안 되는군. 이세연. 드래곤 데리고 올 테니까 시간 좀 끌어줘!”
“어? 어?”
“믿는다!”
“아니… 야!”
이세연은 황당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믿는다고 하고 가버리면 다야!?
물론 하긴 하겠지만…!
“둠 나이트들 총집합!”
이세연은 언데드들을 동원해 파그로악을 둘러쌌다. 태현을 쫓아가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마침 길드원들도 교단 NPC들도 차례대로 도착하고 있었다.
파그로악 레이드!
수많은 영웅들이 한자리에 모여 굶주린 혼돈의 대전사를 상대하게 된 것이다.
-감히! 비켜라! 카르바노그의 하수인 놈을 붙잡아 박살 내겠다!
“??”
“저놈 왜 저러지?”
-카르바노그의 하수인이 누굴 말하는 거야?
-이번 원정에 참가한 교단 중에 카르바노그 교단도 있었나? 본 적 없는데?
주교들도 당황!
-성기사들 앞으로!
-신성한 빛의 힘으로….
“잠깐! 언데드 뺀 다음 쓰도록!”
-이래서 흑마법사는 귀찮….
‘저것들이 진짜.’
파그로악은 어떻게든 다 박살 내고 가려고 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이세연의 언데드 군단을 부수고 뛰어나오면, 대주교들한테 버프 받은 각 교단의 최상급 성기사들이 덤벼들었다.
더럽게 끈질긴 성기사들을 반쯤 죽여 놓고 다시 거리를 벌리려고 하면 힘을 회복한 이세연이 언데드 군단을 다시 보내서 시간을 끌었다.
차륜전!
아무리 패고 박살 내도 끝이 없었다. 파그로악은 이빨만 빠득빠득 갈 뿐이었다.
* * *
“알렉세오스! 알렉세오스!”
-무슨 일인 거냐! 화신이여! 밖에 대체 무슨 일이냐!
알렉세오스는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밖에서 파그로악이 그 난리를 쳤는데 알렉세오스가 모를 리 없었다.
유령 용 상태인 알렉세오스에게는 매우 두려운 일!
태현은 알렉세오스에게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거울부터 시작해서 굶주린 혼돈이 뭘 노리고 있는지까지!
설명을 들은 알렉세오스는 분노와 동시에 두려워했다.
-감히 이 알렉세오스를! 하찮은 놈들이 감히!
“그래그래. 분노는 나중에 해도 되니까! 자.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지? 이 거울을 어떻게 사용하면 풀 수 있나?”
원래라면 알렉세오스한테 뜯어낼 만큼 뜯어낼 태현이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바깥 상황이 워낙 급했던 것이다.
일단 살려내고 그 다음에 화술로 얻어내자!
-…무리다.
“??”
-저주를 받은 탓에 성물함이 너무 약해졌다. 그 거울을 부수든 말든 회복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잠깐. 영혼 부활석은?”
<굶주린 혼돈의 영혼 부활석>이 있었다. 알렉세오스에게 육신을 되찾아줄 수 있는 강력한 아이템이었다.
-그건 굶주린 혼돈 놈이 만들어 준 육신! 그 육신을 오래 쓰면 놈에게 결국 넘어가게 될 것이다.
알렉세오스는 눈을 감더니 오만하게 말했다.
-내 영혼이 약해진 게 굶주린 혼돈의 저주였다면 어쩔 수 없군.
“앗. 숨겨놓은 방법이 있나?”
-아니. 이게 내 끝이다. 화신. 우이포아틀 같은 폭군이 이 사막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지켜보려고 했지만, 그 역할을 이제 넘겨줘야 할 때가 온 것 같군.
[죽은 용, 알렉세오스가 당신에게 <사막의 파수꾼> 직위를 넘깁니다!]
[<사막의 파수꾼>은 드래곤을 섬기는 각종 부족들을 다스리며 사막의 위기를 막아내는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아니 거절….”
[알렉세오스가 강제로 넘깁니다!]
“…….”
태현은 정색했다.
지금 아키서스 교단 화신으로도 충분히 바쁜데 왜 사막까지…!
하지만 알렉세오스도 알렉세오스 나름대로 바빴다.
마지막을 준비하는데 화신 설득할 시간은 없었던 것이다.
-화신이여. 나는 <굶주린 혼돈의 영혼 부활석>을 써서 부활할 것이다. 저 밖의 적을 쓰러뜨려야 하니까. 그러고 나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영원히 떠날 것이다.
“알렉세오스….”
태현은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사이였다.
게다가 드래곤한테 직접 버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알렉세오스가 간다면 누가 태현을 저렇게 도와주겠는가.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줘야겠다.
“뭔지 들어보고….”
[알렉세오스가 강제로 퀘스트를 부여합니다!]
‘아니 이 자식이.’
곧 죽을 각오를 했다고 막 나가나?
<알렉세오스의 후손-레드 드래곤 테이밍 퀘스트>
알렉세오스는 자신의 후손이 곧 태어날 거대한 알을 당신에게 맡기려 한다.
골드 드래곤의 예시를 생각해 봤을 때 아키서스는 드래곤을 맡기기 좋은 상대가 아니지만, 그만큼 알렉세오스도 급박한 것이리라.
“…….”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정색했다.
아니 아키서스가 뭐가 어때서!
…이 레드 드래곤의 알을 맡아, 훌륭하게 드래곤을 길러내어라.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레드 드래곤의 영원한 친구로서 대접받으리라!
보상: ?, ???
퀘스트 등급: 전설
-자. 받아라.
강제로 알까지 건네버리는 알렉세오스!
시간 없다고 확실히 막 나가고 있었다.
-<굶주린 혼돈의 영혼 부활석>을 다오!
[죽은 용 알렉세오스가 <굶주린 혼돈의 영혼 부활석>을 사용합니다!]
[알렉세오스가 부활합니다!]
[사막이 포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