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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219화 (1,218/1,826)

§ 나는 될놈이다 1219화

‘뭐 같이 뒤지란 소린가?’

굶주린 혼돈 불러와서 할 수 있는 건 동반자살밖에 없어 보였다.

어지간한 상대면 불러온 다음 도망칠 고민이라도 하지, 이건 뭐….

‘나중에 미운 놈들만 주변에 유난히 많이 있을 때 써야겠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담긴 저주의 청동 거울:

굶주린 혼돈이 직접 저주를 담은 청동 거울이다. 이 거울 안에 담은 대상에게는 굶주린 혼돈이 내린 저주가 찾아간다.

(현재 거울에 알렉세오스가 담겨 있음)

“!!”

태현은 크게 놀랐다.

느카넷살이 준 아이템 중, 알렉세오스의 성물함에 저주를 건 아이템이 있었다니!

느카넷살이 설마 이런 아이템까지 줬을 줄은 몰랐다.

갑자기 감동이 몰려왔다.

[카르바노그가 자신의 신도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냐며 으쓱합니다.]

정으로 끈끈하게 뭉친 카르바노그 교단!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챙겨주다니….

태현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느카넷살이 아키서스 교단이었다면 희생이고 뭐고 자기 먼저 튀었을 테니까.

‘느카넷살이 이걸 준 건 저주를 풀라는 뜻이었나?’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느카넷살은 마지막에 굶주린 혼돈과 계약한 스스로를 후회했다.

이 아이템들을 태현에게 준 건, 자신이 했던 일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카르바노그가 그런 뜻이 아니라, 그거 갖고 알렉세오스 협박하라고 준 게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

단호하게 주장하는 카르바노그!

카르바노그 신도답게, 다른 신도에게 ‘내가 저주 걸었으니까 네가 알아서 잘 활용해 봐!’라고 준 게 분명했다.

풀기는 무슨….

‘아니. 진짜?’

[진짜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하긴 태현도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그게 더 말이 됐다.

느카넷살이 카르바노그를 믿긴 했지만 그렇다고 막 상냥한 사람도 아니었고….

갑자기 후회된다고 ‘알렉세오스를 풀어줘야지!’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야! 나는 이렇게 가지만 카르바노그 님을 위해 이 멍청한 드래곤을 잘 써먹어다오!’가 더 그럴듯했다.

‘앞으로는 감동하지 말아야지.’

굶주린 혼돈의 영혼 부활석:

강력한 힘이 담겨 있는 부활석이다. 육신을 잃어버린 리치도 다시 육신을 되찾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담겨져 있다.

마지막 아이템은 <굶주린 혼돈의 영혼 부활석>.

이걸 확인한 순간 태현은 느카넷살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군. 거울로 저주 걸어서 성물함과 연결을 끊어버리고, 그걸로 알렉세오스를 협박해서 굴복시킨 다음, 놈이 넘어오면 이제 이 부활석으로 부활시키는 건가.’

훌륭한 계획이었다.

잘 굴러가면 생생하게 살아난 드래곤 한 마리를 그냥 통째로 얻는 셈 아닌가.

‘하지만 이제 내 손에 들어왔지.’

[카르바노그가 어떻게 협박해야 잘 협박했다고 소문이 날지 같이 고민해 보자고 말합니다!]

‘그러게 말야. 알렉세오스는 재산도 별로 없고 가진 힘도 없어서 고민이군. 후불로 약속하게 해야겠지?’

<알렉세오스의 축복>, <알렉세오스의 권능>, <알렉세오스의 영혼 일부분 양도> 같은….

[마지막은 대체 뭔 미친 대가냐고 카르바노그가 놀랍니다!]

그런 달콤한 상상을 하던 태현의 귀에 갑작스러운 소식이 들이닥쳤다.

“김태현! 큰일 났다! 요새가 공격받고 있어!”

“!!!”

당황한 이세연의 목소리였다.

* * *

[굶주린 혼돈의 대전사, 파그로악이 나타납니다!]

-크아아아악! 느카넷살! 카르바노그! 이 찢어 죽일 놈! 내 군단을! 내 무기를! 내 갑옷을! 내 힘을! 용서하지 않겠다!

차원 폭발 이후 파그로악은 살아남았다.

부하들은 날아가고 무기와 갑주도 날아갔지만 분노는 더욱더 올라갔다.

그보다 느카넷살에게 당한 상처라는 게 더 뼈아팠다.

방심만 하지 않았어도, 아니, 흑마법사 놈들이 배신만 하지 않았어도 절대 지지 않았을 유리한 싸움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카르바노그 때문이었다.

-카르바노그! 이 하찮은 잡신이 감히! 용서하지 않겠다! 대륙의 신전이란 신전은 모조리 다 불태워버리고 짓밟아버리겠다!

파그로악은 몰랐다.

아스비안 제국에는 딱히 카르바노그의 신전이 없다는 것을!

아니, 아스비안 제국 말고도 다른 곳에도 카르바노그의 신전은 거의 없었다.

카르바노그 신전은 정말 유니크한 신전이었던 것이다.

-굶주린 혼돈의 이름에 걸고 맹세한다! 카르바노그 신전 스물 여덟개를 파괴하기 전에는 나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굶주린 혼돈의 대전사, 파그로악이 맹세합니다!]

[이 맹세에 대지가 떨고 하늘이 두려워합니다!]

[필멸자들이여, 두려워하십시오!]

<파그로악의 맹세-굶주린 혼돈 퀘스트>

굶주린 혼돈의 대전사, 파그로악은 카르바노그에 대한 원한으로 미쳐 카르바노그의 신전을 파괴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이 맹세를 지키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파괴하며 움직일 파그로악을 주의하라!

보상: ?, ???, ????

다른 곳에 있던 수많은 플레이어들한테도 공유되는 퀘스트!

갑자기 뜨는 전설 등급 퀘스트에 사람들은 당황하고 두려워하고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

“???”

“어… 카르바노그 신전이 있나?”

“아키서스 교단 본거지에 하나 있을걸.”

“그거 말고는?”

“없을걸?”

“그보다 신전이 스물여덟 개나 돼? 몰랐네.”

“근데 뭐 딱히 막을 필요가 있나? 아키서스 교단 본거지는 철통성이고.”

플레이어들은 담담했다.

일단 카르바노그 신전이 뭔지도 잘 몰랐던 데다가….

유일하게 알려진 골짜기는 너무 안전했던 것이다.

* * *

-판온에서 가장 철통 같은 요새는 어디일까?

-에랑스 왕궁 아닐까?

-아니지. 에스파 왕국이나 잘츠 왕국, 덩글랜드 왕국도 있잖아.

-하긴 역시 왕궁이 답인가?

-아냐. 난 마계 요새를 뽑을래.

-그건 반칙이지. 갈 수 있는 곳을 뽑아야 하는 거 아냐?

-프로즈란드에 이상한 요새가 하나 있었는데….

-심해는 어떠냐?

-모두들 다 멍청한 소리만 하고 있네. 당연히 답은 골짜기지.

-!

-확실히….

-거긴 진짜 지옥이더라.

-길드 동맹이 거기 못 뚫어서 망했다는 건 학계의 정설이지.

└진짜?

└└그렇다니까. 쑤닝이 중국 길드원 다 모아서 끌고 갔는데 요새 공략 못해서 길드가 망한 거잖아.

└└└미친놈아 아니야! 뭔 헛소문을 퍼뜨리는 거야!

└└└└님들 속지 마셈. 길드 동맹 길드원들이 부끄러워서 거짓말하는 거임.

실시간으로 조작되는 과거!

길드 동맹은 분노했다.

그들이 한 번 망한 데에는 길고 긴 사연과 어마어마한 불운이 있었는데….

그걸 그냥 꼬라박다 망했다고 하면 너무 멍청해 보이잖아!

-그만큼 골짜기가 대단하지.

-어떻게 대단한데?

-일단 삼중 성벽이 대단해. 앞에 해자에는 온갖 함정이 깔려 있고 접근만 하면 폭탄이 비처럼 쏟아지는데….

-근처에 요새부터 뚫어야 함. 거기도 장난 아니더라.

-요새 밑에 폭탄 매장되어 있다던데?

-성벽 위에도….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면 더 가관이다. 온갖 괴수들 기르는 거 봤냐? 나 그거 보고 눈 의심했잖아.

-솔직히 김태현 생각해 보면 골짜기에서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영지 지하에 악마 공작 가둬놨을지도 모름.

└에이 그건 오바다.

└└아니야. 김태현이 악마들 끌고 다니잖아.

* * *

덕분에 파그로악의 난리에도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러나 파그로악은 남들이 무시한다고 해서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이 모든 불운에도 한 가지 행운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차원 폭발 덕분에 사막을 건널 수 있었던 것!

운 좋게 사막에 설치된 만신전 요새 너머로 떨어진 것이다.

-날 막을 수 있는 놈은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단 말이다!

파그로악은 근처 부족에 쳐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전사들을 때려눕히고 부하로 만들었다.

일단 숫자를 늘리자!

부족 전사들은 졸지에 웬 미친놈이 쳐들어오자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파그로악이 아무리 많이 약해져 있어도 그들보다는 훨씬 강했으니까.

-가라! 이 쓰레기들아! 저 신성한 요새부터 먼저 없애버려라! 나는 뒤진 용을 찾아 굶주린 혼돈께 선물해야겠다!

[<아키서스의 철벽 요새>가 공격받습니다!]

-크으윽. 공격하기 싫다! 우리가 어째서!

-하지만 저 전사는 너무나도 두렵다.

파그로악은 공포치를 최대로 올려서 지휘를 하는 능력이 있었다.

태현과 비슷한 지휘 스타일!

덕분에 부족 전사들은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도 도망치지 못하고 요새를 공격했다.

* * *

“의외로 괜찮은데?”

서둘러 돌아온 태현은 멀쩡한 요새 상황에 놀랐다.

“…아니. 별로 안 괜찮아.”

이세연은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나 검은갈기부족 대전사 와르드펭의 말을 따라라! 이 약한 것들아!

-감히 어디서? 네놈이 밤에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핏빛 군도의 검술 달인이 바로 이 드레칼이다.

-마법의 마자도 모르는 원시인 놈들은 제발 좀 입 다물어라. 우르크에서 고대부터 내려오던 부족의 전통을 이은 대마법사인 이 바어마가….

-이과두 짜증 난다. 이과두 너희 시끄럽다.

퀘스트를 위해 불러 모은 네임드 NPC들!

각 곳에서 모은 놈들인 데다가 성질도 제각각 더러우니 당연히 사이가 안 좋았다.

요새 방어는 안 하고 지들끼리 싸우고 있는 것!

그런데도 요새는 멀쩡했다.

상대도 생각보다 약했던 것이다.

부족 전사들이 요새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깔짝대고 있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의욕이 없어 보인다!

“!”

태현은 그 순간 깨달았다.

굶주린 혼돈의 부하가 신성 요새를 넘어서 나타났다면 가장 먼저 갈 곳은?

바로 알렉세오스의 거처였다!

“이세연! 따라와!”

“어? 어? 어딜?”

태현은 대답하지 않고 용용이를 불러냈다. 설명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흑흑이는 재빨리 이다비를 태우고 날아갈 준비를 했다.

아키서스 밑에서 일하다 보면 사디크의 신수도 눈치가 생기는 법.

태현이 손을 잡고 끌어당기자 이세연은 당황하면서도 따라왔다.

“야, 잠깐, 설명은 해줘야지…!”

“타기나 해! 나머지는 탈 것 찾아서 따라와라!”

“길, 길마님 납치당하는 거 아니죠?”

“넌 저 표정이 납치당하는 거 같냐? 납치면 벌써 반쯤 죽여놨지. 따라가자!”

태현은 빠르게 날아오르며 기도했다.

제발 좀 약한 놈이었으면 좋겠다!

파그로악 같이 무시무시한 우두머리 말고….

[<파그로악의 맹세-굶주린 혼돈 퀘스트>가 추가됩…]

[……]

[필멸자들이여, 두려워하십시오!]

“…….”

하필 파그로악이었냐!

‘왜 꼭 그런 폭발에서 살아나오는 놈들은 나쁜 놈들인 걸까?’

[카르바노그가 화신도 거기서 살아나왔다고 지적…]

* * *

“저기다! 전투 준비!”

“대체 무슨 상황인데?!”

“…내가 아는 드래곤 리치가 하나 있는데 지금 굶주린 혼돈의 타겟이 된 상황이야. 재수 없으면 걔가 굶주린 혼돈의 수하가 될 수도 있어.”

빠르게 요약했지만 이세연은 바로 알아들었다.

“막기만 하면 돼? 잡을 필요는 없고?”

“아직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잠깐. 너 드래곤 리치는 어떻게 알게 된 꺄아아앗!”

용용이가 갑자기 방향을 확 꺾었다. 아래에서 날아온 공격 때문이었다.

‘파그로악!’

“흑흑이! 더 높이 날아올라! 이다비를 사정거리 밖으로 빼!”

“…야! 그러면 난!”

이세연은 울컥했다.

쟤만 원거리 직업이야??

나도 원거리 직업이야!

네크로맨서는 마법사답게 방어력도 낮고 HP도 낮은데….

“넌 레벨 300 넘잖아?”

“…….”

이세연은 할 말을 잃었다.

그건 그렇지!

“너 정도면 공격 맞아도 괜찮을 테니까 신경 안 쓴 거야.”

“그… 그래. 참 고맙네.”

이세연은 화를 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모르겠는 오묘한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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