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12화
“…악마 공작이라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태현의 반응을 흑마법사들은 다른 뜻으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당연히 감탄할 수밖에 없겠지.
-이해한다. 그 어떤 흑마법사가 악마 공작을 포획할 수 있었겠는가? 느부캇네살도 하지 못한 위업 아니겠는가?
-느카넷살 님께서는 정말 전설 그 자체이시다.
물론 흑마법사 눈앞에는 악마 공작 아들 가둬서 에너지 뽑아먹고 악마 공작 성은 훔쳐서 갖고 튀고 악마 공작 본인은 레이드까지 한 사람이 있었지만, 원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
태현은 자랑하지 않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니 근데 구시렉 저놈은 바본가? 왜 잡혔지?’
악마 공작이 대륙으로 나왔을 때 기습을 당하고 쓰러지는 건 이해가 갔다.
마계의 힘 대부분을 잃고 나오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치열하게 싸우다 보면 악마 공작도 쓰러질 수는 있었다.
하지만 붙잡히는 건 별개였다.
붙잡힐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마계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도 붙잡혔다는 건….
[어지간히 호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그렇지.’
대체 어떻게 잡힌 건지 상상도 안 갔다.
설마 뭐 식사 대접이라도 받다가 잡혔나?
“대체 어떻게 잡으신 겁니까?”
-말하지 않았나. 느캇네살… 아니, 느카넷살 님.
-느카넷살 님께서는 솔직히 이름이 너무 어렵다. 그냥 원래 이름을 쓰시지 왜 굳이 느부캇네살 님의 이름을 따라서….
-쉿. 저번에도 그 소리를 했다가 처벌을 받은 흑마법사가 있다는 걸 잊었나?
[느카넷살이 가진 이름의 유래를 알았습니다!]
[지식이…]
[……]
쓸데없는 지식만 늘고 있어!
태현은 다시 한번 재촉했다.
-느카넷살 님께서 영리하게 머리를 쓰셨지. 악마 공작은 교활하고 사악한 존재지만, 약점이 없지는 않는 법.
“오오….”
태현은 그 말에 느카넷살에 대한 호감이 생겼다.
악마 좀 다룰 줄 아는 놈인가?
‘이번에 스킬 좀 배우면 좋겠군. 악마 상대로 쓸 수 있는 스킬이면 더더욱 좋고.’
<느부캇네살의 악마 지배>나 <느부캇네살의 악마 현혹> 같은….
-구시렉이 가진 개인적인 원한. 바로 그걸 노리셨지.
“어. 스킬이 아니라요?”
-뭔 스킬?
-사람은 머리를 써야지. 마법만 잘 쓴다고 좋은 흑마법사가 되는 게 아니야. 젊은 친구.
[카르바노그가 저것들이 지금 어디서 훈수냐고 짜증 냅니다.]
“그래서 구시렉이 뭔 개인적인 원한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들어보니 아키서스의 화신한테 아들을 붙잡혔다는데, 그 소문을 이용했지.
-마계에서도 소문이 돌고 있다더군. 악마 공작 체면에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
-아키서스를 찾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니 덥석 물더군.
“…….”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할 말을 잃었다.
설마 태현 때문이었다니!
아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걸 속냐!
둘이 황당해하는 사이 흑마법사들은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키서스도 참 제법이야. 굶주린 혼돈께서도 탐을 내시더군.
-제국 시절부터 싹수가 보였지.
고대 제국 시절부터 아키서스 교단의 행적을 경험했던 흑마법사들이었기에, 그 능력 하나는 인정해 줬다.
좀 미친놈들 같아도 일 하나는 화끈하게 잘 해!
-크아아아아아아악!
“잡혔다면 왜 저렇게 비명을 지르는 겁니까?”
-아직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빨리 굴복해야 편해질 텐데!
태현과 친해진 흑마법사들은 직접 데리고 구경까지 시켜줬다.
요새 앞에 거대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고, 그 위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결계가 있었다.
악마 공작은 거기에 갇혀 있었다.
구시렉의 크기가 워낙 거대했기에 그 결계 또한 거대했던 것이다.
‘저런. 저렇게 커서는 우리에 못 넣을 텐데.’
[카르바노그가 만나자마자 견적부터 계산하는 아키서스에 대해 감탄합니다!]
수십 마리 넘는 악마를 키워낸, 숙련된 양악(養惡)업자다운 모습!
-굴복하라! 굴복하라, 악마 공작이여! 위대한 흑마법의 힘에! 위대한 굶주린 혼돈의 힘에!
-닥쳐라… 크아아악! 크아아아악!
구시렉은 봉인의 주문으로 칭칭 묶인 채 괴로워했다.
악마 공작의 힘은 실로 대단해서, 속여서 결계 안에 가뒀는데도 본인이 굴복하기 전에는 부릴 수가 없었다.
결국 흑마법사들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굴복할 때까지 괴롭히기!
‘흠. 구시온은 되게 빨리 항복했던 거 같은데.’
아키서스식 방법이 효과적이었던 건지 구시온이 약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자. 느카넷살 님을 뵈러 가도록 하지.
“예!”
과연 어떤 놈일까?
* * *
느카넷살은 요새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악한 흑마법의 요새 최상층>에 도착했습니다!]
[가장 강력한 마력이 흘러넘치는 곳입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한층 더 강해집니다!]
[……]
[……]
‘와. 절대 여기서 싸우면 안 되겠군.’
태현은 빠르게 견적을 냈다. 아무리 적에게 유리한 곳이라고 해도 정도가 있지….
굶주린 혼돈의 힘이 너무 가득해서, 상대방은 손가락 하나 흔들면 이 힘을 전부 다 쓸 수 있는데, 태현은 아무것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고작해야 아키서스나 사디크나 데메르나 파이토스나 살라비안 등의 권능을 쓸 수 있을 뿐.
[그게 고작은 아닌 것 같…]
-누구냐?
-느카넷살 님! 사막에서 저희가 뛰어난 인재를 데리고 왔습니다.
-뛰어난 인재라니.
느카넷살은 코웃음을 쳤다. 흑마법사들이 꽤나 허풍을 떤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흑마법사들은 진지했다.
태현과 쌓은 친밀도로 인한 효과!
그들은 진지하게 태현이 얼마나 대단한 인재인지, 요즘 젊은이들과는 어떻게 다른 젊은이인지 열심히 떠들어댔다.
제국 시절 정신을 그대로 갖고 있고, 마법도 느부캇네살 님의 마법을 익히고 있고, 젊은 놈이 얼마나 깍듯한지….
누가 보면 이 시대의 젊은이 상을 받아야 할 정도로 과한 칭찬에, 느카넷살은 의아해했다.
아니 그런 인재가 있다고?
-그런데… 너는 어떻게 느부캇네살 님의 흑마법을 익히게 된 것이냐? 제국 이후 그 맥이 끊겼을 텐데?
태현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태현은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거짓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사실 우연한 기회로 얻은 게 아닌, 집에 대대로 내려오던 마법 비전이었습니다.”
-?!
-뭐라?!
“가문에서는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해서 그랬습니다만, 이렇게 존경스러운 느카넷살 님을 보니 차마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흑마법사 중에 가장 위대하신 분 앞에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카르바노그가 아키서스의 화신은 악마 공작도 칭찬할 수 있을 거라고 감탄합니다.]
살벌한 아부 솜씨!
만나자마자 상대의 가장 약한 약점을 노리고 찌르는 아부의 일격에, 카르바노그는 감탄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느카넷살의 심금을 울립니다! 느카넷살이 감동합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느카넷살에게 강한 감동을 주는데 성공한 태현!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느부캇네살 님의 마법이 가문 대대로 내려왔으면… 저 젊은이, 혹시 느부캇네살 님의 먼 후손 아닌가?
-그럴 수 있다. 게다가 저 훌륭한 인성과 성품을 보라고. 느부캇네살 님의 후손이라는 증거야.
‘느부캇네살이 인성과 성품이 훌륭했나?’
미쳐가지고 다 죽이겠다고 날뛰던 걸 보면 딱히….
태현이 느부캇네살의 마법이 가문 대대로 내려왔다고 거짓말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더 좋은 대접을 받기 위해서!
아무래도 느부캇네살과 관련이 깊어 보이는 곳이니, 관련 있다고 거짓말을 하면 더 좋은 대접을 받지 않겠는가.
그러나 상황은 태현이 예상했던 것과 좀 다르게 흘러갔다.
원래는 ‘오 훌륭한 핏줄이군’ 하고 좀 대접 받고 끝날 줄 알았는데….
-사실 느카넷살 님은 핏줄로 따지면 느부캇네살 님과 별로 상관이 없지?
-그렇지. 이름만 비슷하시지.
-이름도 바꾼 거잖아?
고대 제국 시절부터 살아온 흑마법사들은 브레이크가 안 달려 있었다.
느카넷살 면전에서 대놓고 수군거리기!
느카넷살은 부들부들 떨었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여기 있는 놈들을 다 죽였다가는 밖에 체면이 안 설 터고….
-좋다! 젊은이! 너는 이제부터 내 부관이다!
[굶주린 혼돈의 흑마법사 세력에서 부관 자리를 차지합니다!]
[악명이 크게 오릅니다!]
[……]
[……]
[……]
입사하자마자 사장 오른팔!
파격적인 대우였지만, 자리에 있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태현을 데리고 온 흑마법사들은 눈물이 나오지도 않는 해골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흐뭇해했다.
-저 모습을 보게. 감동적이야.
-저 젊은 친구가 해낼 줄 알았지.
-느카넷살 님께서 보는 눈이 있으시단 말이야.
흑마법사들도 만족하고, 느카넷살도 만족했다.
느부캇네살의 후손이 자신의 일을 돕는다면 얼마나 체면이 서겠는가.
다른 흑마법사들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역시 느카넷살 님이시다! 느부캇네살의 후계자셔!’라며 감탄할 것이다.
[어?]
‘왜 그래?’
[저거… 어디서 본 얼굴이라고 카르바노그가 의아해합니다.]
느카넷살은 여러 가지를 놓치고 있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카르바노그의 존재였다.
고대 제국 시절부터 있어왔던 신!
남들은 다 기억도 못하는 옛날 일도 기억하고 있는 게 바로 카르바노그였다.
[신전을 다니던 흑마법사의 하인이었다고 말합니다!]
<느카넷살의 비밀-굶주린 혼돈 흑마법사 퀘스트>
굶주린 혼돈을 따르는 오만한 흑마법사들은 대부분 고대 제국 시절부터 내려오는 핏줄을 갖고 있는 고귀한 자들이다.
이들은 자기 자신이 고귀한 만큼 세상을 지배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들을 이끄는 느카넷살은 그 능력도 능력이지만, 느부캇네살을 잇는 위대한 신분으로 존경 받고 있다.
하지만 카르바노그의 말에 따르면, 느카넷살은 흑마법사의 하인 출신!
그것도 카르바노그 신전을 다니던 흑마법사의 하인 출신인 것이다.
이 사실을 널리 퍼뜨릴 경우 굶주린 혼돈 내에서 느카넷살의 명성은 크게 추락할 터!
흑마법사들을 위해 느카넷살의 진실을 밝혀라!
보상: ?, ??, ????.
‘쓰레기 퀘스트군.’
흑마법사들이 좀 기뻐하는 모습 보자고 느카넷살의 역린을 건드려야 하는 퀘스트잖아!
말하는 순간 느카넷살이 ‘너 죽고 너 죽자’ 하면서 덤벼올 게 분명했다.
‘그보다 카르바노그 신전 다니던 게 뭐 흠이라도 되나?’
[고대 제국 시절에는, 크흠, 카르바노그 신전 다니던 사람들은, 좀,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었다고 카르바노그가…]
카르바노그는 겸연쩍어했다.
고대 제국 시절에 카르바노그 교단은 가난하고 신분 낮은 사람들이 주로 모여들었다.
토끼 신인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뭘 그런 걸로 부끄러워하고 그래? 오히려 좋은데. 분명 그때도 파이토스 교단 같은 놈들은 사람 가려가면서 받았겠지. 잘한 거야. 카르바노그.’
[카르바노그가 감동해서 웁니다!]
‘근데 아키서스 교단도 사람 가려가면서 받았나?’
[아키서스 교단은 일단 누구든지 받은 다음에 평등하게 착취했…]
‘오케이. 거기까지.’
태현은 못 들은 척했다.
교단의 어두운 비밀은 너무 많이 알아서 좋을 게 없지!
‘으음. 이 사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겠군.’
원래 이 요새의 약점, 느카넷살의 약점 정도를 알아내고 슬쩍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악마 공작에다가 느카넷살이 가진 의외의 정보를 알아내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악마 공작을 풀어줄 수 있을까? 저놈이 굴복하기라도 하면 위험할 것 같은데….’
지금이야 버티고 있지만 원래 악마들은 멍청하고 근성 없는 놈들이지 않은가. 언제 항복할지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