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11화
이다비는 이성적으로 확인해 보려고 했다.
일단 귓속말을 보내보자!
[현재 귓속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앗.’
굶주린 혼돈 쪽에 합류해 버린 탓에 귓속말도 안 가진다!
그러는 사이 이세연의 길드원들은 움직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파워 워리어 탐험가들은 당황해서 물었다.
“길마님. 어떻게 합니까?”
“아니, 그보다 김태현 님이 납치당할 수 있는 사람이긴 해요?”
“김태현 님이 납치한 거 아닌가…?”
파워 워리어 탐험가 중 한 명이 설득력 있는 가설을 내놓았다.
김태현이 납치한 거 아닐까?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듯해!
“무슨… 당신들 지금 농담할 때야?”
“어떻게 저렇게 냉정할 수가 있지? 그래도 파워 워리어면 김태현 씨하고 가장 친한 길드일 텐데!”
이세연 길드원들한테서 쏟아지는 비난!
파워 워리어 탐험가들은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런데 진짜 납치당한 거 맞습니까? 그러실 사람이 아닌데.”
“조용히 하시고 빨리 추적이나 준비해요! 놓치면 안 되니까!”
“넵….”
파워 워리어 탐험가들은 입을 다물고 추적을 준비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
이세연 쪽 길드원들은 한 명이서 파워 워리어 탐험가들을 전멸시킬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었다.
하라면 해야지!
“그런데 김태현 님 없는데 음식이나 물은 괜찮습니까?”
“그건 제가 꺼낼 테니까 다들 걱정 안 해도 괜찮아요.”
이다비는 토왕이를 흔들며 말했다.
태현이 즉석에서 만들어주면 편하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토왕이 안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아이템이 있었다.
-앗. 여기 먹을 수 있는 풀이 있네요. 이것도 넣어놓죠.
-이 열매는 독이 좀 있긴 한데 참고 먹으면 그럭저럭 먹을 만해요.
-이 나무껍질은 오랫동안 씹으면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변하는데….
-이다비. 이제 굳이 그런 것까지 챙길 필요는 없지 않아?
-태현 님. 무슨 소리세요. 이런 것도 나중에 언젠가 쓸 일이 생긴다고요.
-흠. 하긴 케인한테 줄 음식으로 쓸 수 있긴 하겠군. 독 같은 건 저항력 올릴 때 좋겠고, 저런 것도 괴식 요리할 때는 쓸모가 있으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쌓인 수많은 식재료들!
물론 길드원들은 잘 만들어진 음식들만 먹어왔기에 저 토왕이 안에 얼마나 흉악한 식재료들이 있는지 몰랐다.
“그런데 여기 언데드들 어떡합니까?”
“지휘해야 할 김태현 씨가 사라졌는데….”
태현의 명령을 듣고 있던 언데드 군대들!
언데드들은 태현이 사라지자 눈치를 보더니 슬슬 건방져지기 시작했다.
[언데드들이…]
[……]
그 모습에 이세연의 길드원들은 냉정하게 반응했다.
“공격 준비.”
“길마님이 소환해 준 놈들이 건방지게 어디서….”
“김태현 씨 지휘받았다고 지들이 똑같은 줄 아네.”
태현이 무서운 거지 태현 지휘받는 언데드들이 무섭지는 않았던 것!
그것도 모르고 언데드 전사들은 건방을 떨고 있었다.
-흥! 그 무시무시하던 놈이 사라졌으니 우리는 다시 사막으로 돌아가 자유롭게 군림… 으어어….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의 힘이 사라집니다!]
[언데드들이 약화됩니다!]
태현이 떠나자 언데드들은 다시 이성을 잃고 원래대로 돌아왔다.
-상급 언데드 지배! 죽은 자를 조르는 올가미!
이세연 길드원들 중에 마법사가 나와 빠르게 통제에 들어갔다.
그들은 놀라서 수군거렸다.
“아니, 김태현 씨가 진짜 강화한 거였어?”
“난 길마님이 아닌 척 해준 줄 알았는데….”
솔직히 길드원들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이성을 가진 언데드들의 모습이 너무 의아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세연이 뭐 특별한 스킬이라도 걸어줬나 싶었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이세연은 판온 1 때부터 태현을 섭외하고 싶어 했고, 그런 부분에서는 꽤나….
“구질구질하시니까….”
“뭐 인마? 너 뭐라고 했냐?”
“아, 아니. 마땅한 표현이 생각 안 났어!”
“너 이 자식… 길마님한테 이를 거야!”
“아니야! 아니야! 오해라고! 그냥 어… 미련이 많으시다? 질척거리신다? 질린다?”
말 한 마디 할 때마다 쌓여가는 고발 스택!
길드원들은 말을 꺼낸 동료를 구박했다.
감히 길마님을 모욕하다니!
물론 김태현 관해서는 사람이 좀 맹해지고 판단력이 약해지지만 그걸 그렇게 말할 수가 있나!
* * *
“그런데 느카넷살 님이 성물함에 저주를 걸었으면 일이 다 된 거 아닙니까? 왜 그 드래곤 놈을 내버려 두시는 겁니까?”
-맞는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지.
-저 사막 끝에는 만신전의 요새가 있단 말이야.
흑마법사들은 증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지옥 같은 사막이 끔찍하기는 해도, 굶주린 혼돈의 힘을 빌리는 그들이 돌파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사막 끝에 있는 요새가 문제였다.
온갖 신들의 힘이 느껴지는 사악한 요새!
부정한 그들의 침입을 튕겨내는 요새 때문에 감히 접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 굶주린 혼돈 님의 이름에 맹세코 이 요새를 지은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말겠다!
-크윽.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고대 제국 시절에도 저렇게 역겨운 요새는 흔치 않았는데!
“…어떤 놈이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저주받아 마땅한 놈입니다!”
태현은 재빨리 장단을 맞췄다.
설마 아키서스 요새 때문에 흑마법사들이 못 오고 있었다니!
“그런데 그 요새를 공략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태현은 슬쩍 캐물었다.
상대방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 미리 알아내야 했던 것이다.
-그래. 그래서 이렇게 공략할 방법을 찾고 있었지.
-몇 가지 생각해 놓은 게 있다.
“꼭 듣고 싶습니다!”
태현은 메모할 준비를 하고 말했다.
자!
어떤 약점을 공략할 생각이지?
-일단 그 근처에 있는 모험가 놈들을 타락시킬 생각이다. 우리는 요새 근처로도 접근하기 힘들지만, 아직 생생하게 살아 있는 놈들이라면 다르겠지. 살아 있는 모험가 놈들이 굶주린 혼돈 님의 수하가 되면 그 요새를 파괴할 수도 있지 않겠나?
“오호. 그렇군요.”
[모험가… 놈들을… 주의하자… 라고 카르바노그가 메모합니다.]
“그거 말고는 또 없습니까?”
-아주 강력한 힘으로 요새를 공격하는 거지.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정공법!
하지만 요새를 공격할 정도라니. 대체 뭔 힘으로?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 게 있습니까?”
-물론. 그게 바로 느카넷살 님께서 준비하시는 일이다. 너도 보면 알게 될 거다.
“…?”
태현은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적들이 자신감 넘칠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
‘뭐야? 뭐라도 소환했나? 왜 무섭게 이러지?’
“그거 말고는요?”
-음. 느카넷살 님께서 더 찾아오라고 하셨는데 영 떠오르지 않는군.
-네놈은 뭐 좋은 생각 같은 거 없느냐?
갑자기 돌아오는 화살!
태현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먼저 공격하기 전에 요란하게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왜? 은밀하게 공격해야 효과가 좋지 않나?
“아닙니다. 제가 알아봤는데 저기 요새 놈들은 다 겁쟁이입니다. 게다가 새로 황제 자리에 오른 사람은 성질이 난폭하고 괴팍해서 주변 모두가 두려워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때 굶주린 혼돈 님의 힘을 팍팍 보여주면서 등장하면 저들이 어떻겠습니까?”
-오오…!
-과연 그렇군!
[최고급 화술 스킬이…]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굶주린 혼돈 흑마법사들 사이에서 평가가…]
[……]
태현의 신묘한 계책에, 흑마법사들은 감탄했다.
과연 젊은 친구는 뭔가 달라도 달라!
-제국 시절에는 보지도 못한 전술이군.
“요즘은 이게 유행입니다. 여러분.”
-하긴….
-우리도 시대의 흐름에 적응할 때가 되긴 했지.
“바로 그렇습니다. 공격하기 전에 언제 어디서 공격할지 적힌 문서를 써서 보내주면 상대방은 더욱더 공포에 떨 겁니다. 겁쟁이들은 도망갈 것이고 머리가 돌아가는 놈들은 냉큼 항복하겠죠.”
-그렇게 들어보니 우리가 너무 어렵게 생각한 것 같기도 해.
흑마법사들은 태현의 말을 깊이 받아들였다.
앞으로는 다 예고를 하고 공격을 해야겠군!
-또 뭐가 있나?
“제가 소싯적에 폭탄을 자주 만들었는데….”
-기계공학을? 자네는 음유시인치고 정말 재주도 많군. 고블린이나 하는 짓 아닌가.
-용케 안 뒤졌군. 기계공학 하는 놈들은 일찍 뒤지던데.
고대 제국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는 평판!
폭탄 만들다가 폭발로 죽는 게 기계공학 대장장이의 숙명인 것이다.
“여러분들께서 힘을 빌려주신다면 더욱더 강력한 폭탄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요새를 공격할 때 도움이 되겠습니다.”
-나쁘지 않겠군.
-아니! 잠깐.
“!”
태현은 멈칫했다.
혹시 이 흑마법사들이 눈치를 챈 것일까?
-저놈이 폭탄을 멀쩡하게 만든다는 보장이 어디 있어? 잘못 만들면 우리까지 다친다고!
-아차. 그렇군.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 *
[굶주린 혼돈의 힘이 공간을 찢고 문을 엽니다!]
[<사악한 흑마법의 요새>로 향하는 길이 열립니다!]
“!”
사막을 한참 걷다가 멈춰선 흑마법사들은 마법을 사용해 차원의 문을 열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없다면 찾을 수도 없는 위치!
‘그렇군. 이래서 안 들킨 거였나.’
이세연이 열심히 수색해도 상대의 흔적을 찾지 못한 게 당연했다.
아예 상대 쪽 진영으로 갈아타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태현처럼 심심하면 남의 세력으로 잠입하는 플레이어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헤맸을 수도 있었다.
[<사악한 흑마법의 요새>에 입장합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가득한 이 요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모든 스탯이 저하됩니다!]
[모든 신성 관련 스킬이 약화됩니다!]
[……]
[……]
[……]
[카르바노그가 여기 정말 공기 더럽다고 비명을 지릅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잔뜩 풀려 있는 요새답게, 온갖 스탯 스킬에 디버프가 걸렸다.
‘그나마 믿을 건 행운 스탯이군.’
태현의 행운 스탯은 디버프 몇 번 좀 맞는다고 깎일 수준이 아니었다.
신성 권능 스킬들이 약화된 건 아쉬웠지만 못 쓸 정도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여기서는 싸우면 안 돼.’
지금 태현은 힘으로 싸우려고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상대방의 정체를 확인하고 약점을 알아낸 다음 빠져나오기만 해도 충분했다.
[카르바노그가 맨날 그래놓고 미친놈처럼 날뛰었다고 투덜댑니다.]
‘…….’
태현은 반박하지 못했다.
쿠오오오오-
<사악한 흑마법의 요새>는 요새라기보다는 차라리 성에 가까웠다.
주변 깊숙이 파인 해자에서는 사악한 혼돈의 기운이 일렁거렸고, 드높이 솟은 석탑 근처에서는 혼돈의 힘에 오염된 언데드 괴수들이 날아다녔다.
성문과 성벽 위에는 경비병을 맡고 있는 언데드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 언데드들은 다….
데스 나이트였다!
‘미친. 최소가 데스 나이트야?’
상급 구울 전사나 최상급 구울 전사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지만 최소 단위가 데스 나이트라니!
레벨 400, 500이 넘는 놈들이 잡놈으로 나오니 숨이 턱턱 막혔다. 안 그래도 까다로운 스킬을 쓸 텐데….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멀리서 소름 끼치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고문당하고 있는 소리였다.
그런데 어딘가 익숙했다.
‘뭐지? 저런 목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데 왜….’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지금 이게 누구의 소리입니까?”
-후후. 역시 흑마법사답게 바로 알아듣는군.
-흑마법의 미래가 밝습니다.
[흑마법사들의 친밀도가…]
“아니 그래서 누구냐고요.”
-악마 공작, 구시렉! 느카넷살 님께서 직접 포획하신 거물 중의 거물이지!
“…….”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태현이 아키서스 포병대에 붙잡아 놓은 구시온의 아버지, 구시렉!
…네가 왜 여기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