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04화
태현이 카르바노그와 그런 흉흉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길드원들은 뒤늦게 나와서 경악하고 있었다.
아니, 혼자서 잡았다고??
“혼자서 잡은 겁니까??”
“그럼 혼자서 잡지 여럿이서 잡았겠냐?”
태현의 말에 길드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들도 사막을 돌며 몇 번 싸운 적이 있었다.
이것보다 훨씬 더 처절하고 힘든 싸움이긴 했지만….
굶주린 혼돈의 수하들은 랭커들도 혼자서 잡기는 힘든 적들이었다. 레벨도 레벨이지만 갖고 있는 스킬들이 너무 까다로웠던 것이다.
갖고 있는 스킬 봉인하기, 적의 체력 흡수해서 회복하기, 디버프 걸어서 스킬 방해하기 등등!
이세연도 정예 언데드들을 희생시켜서 잡을 정도로 귀찮은 놈들이었다.
그런데 김태현은 혼자서 잡았다고?
‘말이 안 되는데?’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그렇지….’
‘이건 레벨이 높아도 혼자 잡을 수 있는 놈들이 아닌데.’
길드원들은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저 스킬들에 당하면 손발이 묶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태현의 특성이 적들과 완전히 상성이었다는 것을!
몇 개 봉인되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권능 스킬 개수에, 권능 포식까지.
당황한 적들이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것도 당연했다.
* * *
태현과 길드원들이 사막 지하를 헤매며 착실히 몬스터들을 잡아나가고 있는 동안, 요새에도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각 교단의 세력들은 물론이고, 대륙에서 유명한 NPC들도 찾아왔다.
퀘스트를 깨려면 교단 NPC들뿐만 아니라 다른 NPC들도 모아야 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아. 그냥 김태현 따라갈걸….”
이세연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요새 꼬라지가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디서 야만족 놈들이!”
“그 야만족의 힘을 보여주겠다! 밖으로 나와라,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단장! 네놈의 골통을 따서 술잔으로 써주겠다!”
“모두들 좀 참으십시오!”
[프로즈란드 검은갈기부족의 대전사가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단장에게 결투를…]
[불만도가 올라갑…]
[……]
[……]
교단 NPC들끼리만 모여 있을 때는 그나마 나았다.
서로 견제하는 사이긴 해도, 중앙 대륙에서 이것저것 같이 하면서 어느 정도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서로 체면 세우면서 이성적인 대화는 가능!
-어이쿠. 파이토스 교단 아닙니까? 그렇게 잘나셔서 우리 교단을 무시하고 다니셨다고?
-무슨… 그쪽이야말로 우리가 두들겨 맞는 것밖에 못한다고 모욕하지 않았나! 어디서 제대로 된 스킬도 못 쓰는 무식한 놈들 모임 주제에!
-하하. 여러분. 모두 진정하십시오.
-미, 미안하게 됐소.
-위대한 마법과 비교하면 성기사나 전사나 똑같이 구리지 않습니까?
-이 자식이!
…물론 태현이 몇 마디 던져놓고 간 탓에 서로 사이가 안 좋아지긴 했지만 이 정도면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한 수준!
그러나 교단 NPC 말고 다른 NPC들까지 오자 그 수준도 완전히 박살이 났다.
프로즈란드 검은갈기부족의 대전사, 와르드펭!
핏빛 군도의 뱀파이어 비전 검술 달인, 드레칼!
우르크 원시 인간 부족의 대마법사, 바어마!
자이언 산맥의 파괴자로 알려진 흉폭한 장님 거인, 이과두!
어디서 이상한 놈들만 골라 모아도 이 정도 라인업은 구성하기 힘들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너희들 알아서 싸워라!’ 한 다음 이세연도 따로 놀고 싶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퀘스트는 그녀의 퀘스트였고, 사람들을 모은 것도 그녀였으니까.
어떻게든 달래야 한다!
“교단은 따로 빼놓고, 전사들도 따로 빼놓고… 뱀파이어는 언데드들 옆에 놔도 괜찮겠지. 그쪽으로 놓고.”
“거인들이 자꾸 먹을 걸 달라고….”
“오래된 빵들 재고 남은 거 있으니까 그거 줘.”
-맛 없다, 맛 없다. 이과두는 이런 거 안 먹는다.
“…안 먹는다는데요?”
“거인족들은 뭘 줘도 맛있게 먹잖아?”
“그런데 안 먹는다고….”
“…아 진짜!”
[굶주린 혼돈이 보낸 암살자가 요새에 도착했습니다!]
[<아키서스의 철벽 요새>가 사악한 적의 침입을 감지합니다!]
[암살자를 빛으로 비춥니다!]
“!”
고민하던 사이 나온 메시지창!
적이 보낸 암살자가 요새로 들어왔다는 말에 한 번 놀라고, 요새 능력으로 잡아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적이다! 적!”
“모두 빨리 나와! 도망치지 못하게 잡아야 해!”
요새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재빠르게 내달렸다.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암살자 왔다니 잡자!
-크윽! 함정을 파놓다니! 이런 같잖은 수작을…!
굶주린 혼돈의 암살자는 이를 갈았다.
감히 이런 함정을 파다니!
딱히 함정은 아니었고 그냥 요새에 달린 기본 옵션이었지만….
암살자를 발견한 교단 NPC들은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그렇군! 저놈이 우리 사이에서 이간질을 한 게 분명해!”
“맞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서로 다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난 지금 왔….
암살자는 어이없어했다.
여기 모인 필멸자 놈들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저 사악한 수하를 붙잡아서 박살 내자!”
“밟아버려!”
-흥. 어디 한번 해봐라! 굶주린 혼돈이시여! 제 영혼을 받으시고 힘을 내려주소서!
[굶주린 혼돈의 암살자가 <하수인 소환>의 힘을 불러옵니다!]
[강력한 혼돈의 하수인이 소환됩니다!]
“!”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암살자가 저런 대형 소환 스킬을 쓸 줄이야?
[<아키서스의 철벽 요새>가 침입한 적에게 페널티를 부여합니다!]
[<아키서스의 불운>이…]
[소환이 실패합니다!]
[암살자가 굶주린 혼돈에게 잡아먹힙니다!]
-크아아아악!
와드드득 콰득!
혼자 알아서 쌩쇼하다가 죽어버리는 암살자의 모습에, 모인 사람들은 당황했다.
…쟤 대체 뭐하는 거냐?
* * *
“흠.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하나씩 잡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얘네 본대는 언제 오냐?”
“그건 저희도 잘….”
[굶주린 혼돈이 사라집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태현과 길드원들은 어느새 지하 통로로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굶주린 혼돈이 보낸 선발대들이 오면 나와서 잡고, 다시 비 그치기 전에 지하로 내려가고….
[굶주린 혼돈의 수하들이 당황합니다!]
[사막에 나타나는 숫자가 줄어듭…]
이제까지 했던 것과는 달리 훨씬 더 빠른 사냥!
덕분에 선발대로 오는 놈들의 숫자가 점점 줄고 있었다.
확실히 효과는 있었지만….
지금 노리는 건 적들의 본대!
“본대를 찾아서 우두머리를 노리고 싶은데.”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계십니다.”
“맞아요. 이제까지 이 정도로 싸우지도 못했다고요.”
여기서 이렇게 싸울 수 있는 건 순전히 태현 덕분이었다.
지하에 통로를 파고, 계속해서 무한히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꺼내는 능력!
이 사막에서는 그게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다.
게다가 태현은 계속해서 이동하면서 지하 통로를 늘려나가고 있었다.
잠깐 쉬는 시간에도 ‘우리 쉬는 시간에 삽질하면서 쉬자’고 통로를 늘려가는 태현!
[건축 스킬이 오릅…]
[……]
돌아다니다가 통로 필요하면 또 파고, 그러다 배고파지면 먹고 마시고….
길드원들은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어라?
내가 지금 판온을 하는 거 맞지?
이상하다? 이건 공사장 시뮬레이터 같은데?
접속해서 사냥은 안 하고 계속 곡괭이랑 삽만 휘두르는 것 같….
‘어느새 건축 스킬이 고급이 넘었군.’
채광, 건축 스킬이 모두 고급이 넘다니!
이럴 줄 알았다면 마법이나 노래 스킬 말고 건축을 받는 게 나았을지도 몰랐다.
‘건축이 뭐 높아서 나쁠 건 없긴 하지….’
태현은 이것저것 짓는 건물들도 많았다.
요새부터 시작해서 성벽까지!
건축 스킬이 낮아서 나쁠 게 없었다.
‘대규모 건축 할 때 전술에 건축까지 보너스 들어가면 훨씬 나을 테니까.’
문제는 지금 태현이 마법, 노래를 올려야 한다는 것!
언데드들을 열심히 노동시키는 것도 마법 스킬에 들어가긴 했지만 역시 너무 적었다.
“이세연은 너무 약한 애들을 빌려준 것 같아.”
-!!
듣고 있는 언데드들 울컥하게 만드는 소리!
우리가 약하다고라?
-우리가 얼마나 강한 전ㅅ….
“앞에 보고 삽질이나 해라.”
-옙.
태현은 고민했다.
마법 스킬을 올리려면 결국 느부캇네살 흑마법을 파고들던가 아니면 냉기의 저주인데….
‘언데드 소환이라도 해야 하나? MP 아까운데.’
태현이 가진 느부캇네살 흑마법에 있는 스킬은 <고대 제국의 언데드(랜덤) 소환>과 <고대 제국의 저주(랜덤)>.
나쁜 스킬은 아니었지만, 지금 태현 수준에서는 계륵 같긴 했다.
랜덤으로 언데드 소환해서 언제 쓸 만한 수준으로 만든단 말인가.
물량으로 밀어붙이기에는 태현이 MP가 너무 적었다.
<고대 제국의 저주> 같은 걸 쓰기보다는 차라리 아키서스 저주가 더 나았고….
노래도 문제였다.
[카르바노그가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부르면 되지 않냐고 묻습니다.]
‘얘네들한테는 불러봤자 이제 효과가 적어서.’
공사하면서 태현은 당연히 노래도 같이 불러줬다.
<사막 지하의 즐거운 노동>은 길드원들도 입을 다물 정도로 중독성 있는 명곡이었다.
하지만 스킬 경험치가 오르는 데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고급 노래 4… 느리군.’
남들이 보면 ‘미친놈아 그게 뭐가 느려!’ 하며 화를 냈을 것이다.
남들과 비교하면 무지막지하게 빠른 속도였던 것이다.
알렉세오스 같은 어마어마한 상대를 붙잡고 노래 스킬을 올린 데다가, 화술 스킬까지 보너스를 주니 어찌 보면 당연하긴 했지만….
그래도 태현은 더 빠른 성장을 원했다.
아!
어디 노래 들려주기 좋은 상대 없나?
‘그러고 보니 이세연이 노래 스킬 도와줄 상대 찾아준다고 했는데….’
* * *
“한국판온협회?”
“이번에 판온 월드컵 나가는 거 관해서 부른 거겠지.”
“우리 둘만?”
“내가 이런 말하기는 좀 부끄럽지만… 음….”
이세연은 망설였다.
“기본적으로 가장 출전 확률이 높은 선수가 우리 둘이니까?”
“저런. 그런 부끄러운 소리를….”
“네가 물어본 거잖아!”
태현의 경악에 이세연은 분노했다. 자기가 물어봐놓고!
한국 판온 게임단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판온협회는 생긴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사실 태현은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 게 있었나?
하지만 대형 게임단인 유성 게임단 소속 이세연은 어딘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별로 소문이 안 좋던데.’
태현이나 이세연처럼 전 세계에서 노는 선수들은 협회와 엮일 일이 별로 없었다.
판온 1부 리그에서 뛰는데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 이하 리그, 2부 미만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엮일 일이 종종 있었다.
국내에서 열리는 여러 이벤트성 대회나 연습생 리그 같은 곳에서는 여러모로 발을 들이미는 것이다.
게임단들이 로비하는 걸 넙죽넙죽 받으면서, 돈 많이 내는 게임단들 편의 봐주는 협회라고 소문이 자자했….
‘이걸 말해줘도 되나?’
이세연은 고민했다.
태현의 성격은 꽤나 또ㄹ… 아니, 과감하고 직접적인 부분이 있었다.
괜히 말해줬다가 싸움을 만들지 않을까 걱정됐다.
‘에이. 그래도 이야기해 주자.’
태현도 예전과는 달랐다. 팀 하나를 이끌면서 책임감이 생기고 분위기가 묵직해진 것이다.
어른처럼 행동하겠지!
“흠. 그렇군.”
태현은 빙글 돌았다. 이세연은 당황했다.
“어디 가?”
“아버지께서 소문 안 좋은 사람들이랑 놀지 말랬어.”
“야…!”
“농담이고… 어쨌든 말해줘서 고마워.”
태현은 다시 빙글 돌았다. 나름 사장인데 안 들어갈 수는 없었다.
무슨 이야기 하나 들어는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