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03화
“됐다… 됐어!”
길드원들은 감격해서 외쳤다.
우리가 해냈어!
원래 건축 하나 했다고 이렇게 레벨 업을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번 공사는 달랐다.
움직이기만 해도 HP 깎이고 지구력 깎이는 지옥 같은 곳에서 해낸 것이다.
지하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또 태현이 각종 요리를 만들어내면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위업이었다.
지하를 가로지르는 길고 긴 통로를 보니 괜히 눈물이 난다!
“흑흑… 우리가 해냈어….”
“진짜 그 사막에 지은 게 맞냐? 내가 다 감격스럽다….”
“그런데 김태현 씨. 이렇게 통로로 오가면 되긴 하는데 싸울 때는 밖에 나가야 하잖아요.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세연의 길드원들은 어느새 태현을 따르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무섭고 미친놈 같긴 했지만, 이런 최고 난이도 퀘스트를 할 때는 이상하게 든든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대응할 수 있을 거 같다!
“흠. 그때는….”
“그때는?”
“위에서 싸울 수 있는 스킬이 있지 않을까? 요리 중에 그런 버프가 있을지도 몰라.”
“언데드들을 내보내서 태양을 막나?”
길드원들은 기대에 차서 수군거렸다.
김태현이라면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HP 깎이기 전에 상대를 잡아야지 뭐.”
“…….”
“…….”
무식한 방법에 길드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그게 무슨 ‘물 위를 걸으려면 왼발 내딛고 빠지기 전에 오른발 내딛어라’ 같은 방법이지?
“아니, 김태현 님…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김태현 씨야 레벨이 300 넘어가는 최상위권 랭커니까 HP도 많겠지만, 우리는 HP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요.”
길드원들은 그 말도 안 되는 방법에 항의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무식하다!
까딱 실수 한 번 하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는 방법 아닌가.
태현은 그 항의에 당황스러워했다.
“어째서지? 좋은 방법 아닌가?”
케인이나 다른 일행은 바로 납득했을 텐데?
옆에 있던 이다비가 태현에게 속삭였다.
“태현 님. 그 방법은 솔직히 저희 일행들만 받아들일 방법 아닐까 싶은데요. 목숨 내놓은 방법이잖아요.”
“이게 그렇게 위험해보이나? 아니, 그냥 싸우다가 HP 깎이는 속도 계산해서 알아서 빠지면 되잖아. 내가 무슨 후퇴 금지시킨 것도 아니고.”
“…보통 사람은 그렇게 못하니까요!”
* * *
쿠릉, 쿠릉, 쿠르릉-
[위에서 거대한 소리가 들립니다!]
[굶주린 혼돈의 수하들이 몰려오는 소리입니다!]
그렇게 건축을 끝내고 기다리는 사이, 사막 위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
“가자!”
“잠, 잠깐. 지금 밖에 나가면….”
“그러면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태현은 과감하게 위로 나갈 준비를 했다.
HP가 깎이면 회복을 하면 되고, 배가 고파지고 목이 말라지면 먹고 마시면 되는 것이다.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겠다!
[굶주린 혼돈의 주술사가 거대한 비를 불러옵니다!]
[혼돈의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이 사막은 혼돈의 군대에게도 가혹했던 것이다.
지나가기 전에 날씨 바꾸고 태양 가리는 건 기본!
촤아아악-
-어. 주인이여. 이렇게 되면 통로를 판 건 헛짓거리가 되는 거 아닌가?
-미쳤냐 너? 조용히 해!
흑흑이는 용용이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했다.
얘가 미쳤나 봐!
[<사막의 열기>가 약해집니다.]
[……]
[……]
[혼돈의 비를 주의하십시오! 맞을 때마다 혼돈에 오염될 수 있습니다.]
[<신성 권능> 스킬로 저항에 성공…]
[……]
혼돈의 군대가 내리는 비는 그냥 비가 아니었다.
닿을 때마다 디버프를 주는, 강력한 광역기!
다행히 이건 태현의 갑옷과 스킬, 스탯으로 저항이 가능했다.
‘저기인가?’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시커멓고 불길한 오오라를 풍기며 걸어오고 있는 놈들!
마치 ‘나 악당이요’라고 달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고민이군.’
처음 만나보는 적의 모습에, 태현은 고민에 잠겼다.
어떻게 싸워야 잘 싸웠다고 소문이 날까?
‘보니까 장비는 평범한 거 같은데….’
중갑 입은 전사들에, 가운데에는 커다란 지팡이를 든 주술사.
온몸에서 혼돈의 기운을 줄줄 뿌려대는 거 말고는 특별한 구석이 없었다.
‘폭탄 던져서 흔든 다음 치고 들어가서 주술사만 잡고 나와 볼까?’
태현은 정석적인 방법으로 가볼까 고민했다. 폭탄을 광역기로 써서 전체 공격을 주고 혼란 상태에 빠뜨린 뒤 약한 놈부터 조지는 것이다.
리그 때도 수없이 많이 했던 짓!
[카르바노그가 주의하라고 말합니다. 저들은 이제까지 상대했던 것들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태현은 카르바노그의 경고를 받아들였다.
확실히 저 굶주린 혼돈의 수하들은 불길한 무언가가 있었다.
게다가 메시지창들도 알려주지 않았던가.
전설 난이도 퀘스트에, 온갖 수상쩍은 힘을 써도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부딪히지 않으면 알아낼 방법이 없다.’
태현은 품속에서 폭탄들을 꺼냈다.
이번에 쓸 폭탄은 바로 <아키서스의 성스러운 섬광 폭탄>!
데미지나 위력보다는 디버프에 중점을 둔 사악한 폭탄이었다.
퉁-
-?
파아아아앗!
[<아키서스의 성스러운 섬광 폭탄>이 터져나갑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
[……]
[<아키서스의 광휘>가 적들의 눈을 뺏습니다!]
[적들의…]
탓!
태현은 주륵주륵 비가 내리는 땅을 박차고 날아들었다.
-아키서스의 돌격!
거리를 순식간에 줄이는 이동 스킬!
태현은 가운데에 있는 주술사를 노리고 들어갔다. 태현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주술사 뒤에서 나타났다.
퍼퍼퍽!
-아키서스의 세 번째 공격!
아키서스 검법이 펼쳐지고, 빛과 함께 주술사의 몸통이 흔들렸다.
-으어어억…! 이놈! 어디서 나타난 거냐?! 살아 있는 자가 있을 곳이 아닌데!
[굶주린 혼돈의 주술사가 매우 놀라워합니다!]
[……]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암살자의 모습에, 혼돈의 군대들도 당황했다.
대체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굶주린 혼돈의 권능이여! 내게 힘을!!
주술사는 두들겨 맞았는데도 거침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비가 내리는 하늘에서 벼락이 치며 주술사의 몸을 휘감았다.
[굶주린 혼돈의 주술사가 <권능 봉인>의 힘을 불러옵니다!]
[권능 스킬 중 하나가 일시적으로 봉인됩니다!]
“!!!”
‘미친!’
태현은 경악했다.
카르바노그가 느꼈던 불안감이 뭐였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다짜고짜 권능 스킬을 묶어버린다니!
[<슬라임 분신 소환> 스킬이 일시적으로 봉인됩니다!]
‘…음!’
[카르바노그가 정말 타격이 크다고 애석해합니다!]
다행히도 <슬라임 분신 소환>은 태현이 별로 쓰지 않는 권능 스킬이었다.
태현은 안도했다. 아키서스나 사디크 권능 스킬들 중 자주 쓰는 스킬이 묶였다면 상당히 골치 아팠을 것이다.
-보아라! 이것이 내 주인의 힘이다. 네 권능은 묶였으니, 무릎을 꿇어라, 습격자여! 어느 교단에서 나온 자냐!
“…사디크의 화염!”
-크아아악! 크악!
태현이 화염을 사방에 날리자 주술사는 고통스러워하며 당황스러워했다.
-어, 어떻게? 권능을 묶었는데?
혼돈의 주술사는 설마 태현의 권능 스킬이 수십 개에 가까운 수준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보통 신의 힘이 담긴 권능 스킬은 두세개 갖고 있으면 많이 갖고 있는 편 아니었던가!
그러나 태현은 직업 특성상, 캐릭터 특성상 성장하면서 권능 스킬을 모은 플레이어.
권능 스킬 서너 개 정도는 막혀도 별 상관없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치명타가…]
‘이 자식 왜 안 죽지? 레벨이 높나?’
상대의 당황은 태현의 기회.
태현은 기회를 잡고 미친듯이 딜을 집어넣었다.
[카르바노그가 옆을 보라고 말합니다!]
“!”
태현은 뒤늦게 깨달았다. 주술사를 팰 때마다 옆에서 스턴 걸린 전사들이 대신 죽어 나가고 있었다.
프렌드 쉴드!
‘아니…! 이런 권능이! 부럽다!’
태현도 저런 게 있었다면 케인한테 썼을 텐데!
<아키서스의 노예 착취> 같은 스킬로…!
[카르바노그가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혼돈의 주술사는 자신이 받는 데미지를 전부 다 부하들에게 돌리고 있었다.
-끄으으… 혼돈의 권능이여! 혼돈의 권능이여!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네놈의 권능을 먹어 삼키겠다!
[굶주린 혼돈의 주술사가 자신을 스스로 바칩니다!]
[혼돈의 힘이 강림합니다!]
“아, 아니.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저런 선택에는 태현도 당황했다.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저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다니!
[그러게 적당히 당해주는 척을 했어야 했다고 카르바노그가…]
-권능 포식!
[굶주린 혼돈의 주술사가 <권능 포식>의 힘을 불러옵니다!]
[이미 <권능 포식>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통하지 않습니다!]
-…????
혼돈의 주술사는 얼이 빠졌다.
왜 안 통하지?
-굶주린 혼돈이시여! 저자에게 벌을! 왜?! 어째서!?
“…….”
태현도 당황했다.
<권능 포식>은 예전에 <신 잡아먹는 괴물>을 쓰러뜨리고 얻은 권능이었다.
이게 여기서 이렇게 만나나?
‘일단 잡고 보자!’
태현은 혼돈의 주술사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옆에 있는 전사들이 차례대로 쓰러졌다.
이미 힘을 닥치는 대로 불러낸 주술사는 다음 스킬을 쓰지도 못하고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굶주린 혼돈의 주술사를 쓰러뜨렸습니다!]
[굶주린 혼돈의 선봉대를 공격했습니다. 굶주린 혼돈이 당신을 주목합니다.]
[건방지구나… 필멸자여…]
“!”
카르바노그가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굶주린 혼돈의 목소리가 직접 태현에게 와닿았다.
[네놈이 어느 신을 믿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것들은 내게 삼켜질 것이니…]
[카르바노그가 저리 꺼지라고 앞발을 흔듭니다.]
[아니… 카르바노그의 신도였나… 그런 것 치고는 제법 강한데…]
[무슨 뜻이냐며 카르바노그가 발끈해합니다!]
파아앗!
그 순간 태현이 갖고 있던 아이템이 자동으로 반응했다.
[이데르고의 조각이 강하게 반응하며 굶주린 혼돈을 밀어냅니다!]
[역시… 이데르고의 신도였나… 그건 그나마 말이 되는…]
[너 죽고 싶냐고 카르바노그가 화냅니다!]
‘카르바노그. 저딴 놈이랑 싸우지 마라.’
부하들이 전부 쓰러진 상태에서는 굶주린 혼돈도 오래 말을 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나를… 두려워해라…]
[굶주린 혼돈이 사라집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굶주린 혼돈의 기운:
굶주린 혼돈의 수하들이 갖고 있는 기운의 조각이다. 기운을 많이 모을수록 더 강한 힘을 불러올 수 있다.
(굶주린 혼돈의 힘을 불러낼 경우 저주받을 수 있음)
“…!”
태현은 깜짝 놀랐다.
아니?
뭐 이런 친절한 신이 있지?
[굶주린 혼돈은 신이 아니라고 카르바노그가 투덜거립니다.]
‘그래. 신은 아니라고 치고, 뭐 이리 친절한 놈이 있지?’
부하들을 많이 잡아서 기운을 많이 모으면 더 강한 힘을 불러낼 수 있다니!
심지어 굶주린 혼돈의 수하가 아니라도!
[카르바노그가 제정신 차리라고 외칩니다! 그게 굶주린 혼돈이 노리는 거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굶주린 혼돈이 왜 이렇게 널널하게 기회를 주겠는가.
힘을 불러낼 때마다 굶주린 혼돈에게 오염될 수 있으니까 이러는 것이었다.
공짜에 혹해서 가입했다가는 평생 발목 묶일 수도 있다!
‘흠. 한두 번 정도는 써도 되지 않을까?’
[그건 그렇지만…]
‘서너 번은?’
[거기까진 괜찮을 것 같다고…]
‘대여섯 번은? 7은 행운의 숫자니 7번까지는….’
[작작하라고 카르바노그가 화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