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00화
태현이 여러 연계 퀘스트를 남의 준비로 편하게 깨겠다는 흑심을 품고 있는 동안, 이세연은 당황해했다.
얘 왜 이렇게 협조적이지?
‘혹시 들은 다음 날 놀리고서 빠져나갈 생각인가?’
지나친 의심 같았지만 할 수밖에 없는 의심!
“뭐해? 설명 안 하고. 너 지금 거짓말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지?”
“아, 아니거든.”
하지만 설명을 안 해줄 수는 없었다.
애초에 퀘스트 조건 중 하나가 ‘아키서스 교단 교황 참가’였으니까!
이세연의 설명을 들은 태현은 질색했다.
[퀘스트 정보가 추가되었습니다!]
[<굶주린 혼돈>에 대한…]
[……]
[……]
<멸망에 대비하라-굶주린 혼돈 퀘스트>
게걸스러운 짐승이나 마찬가지인 굶주린 혼돈은 끊임없이 대륙을 노리며 그 촉수를 뻗어왔다.
많은 교단들이 이 존재를 부정해 왔지만 아키서스 교단만은 달랐다. 아키서스 교단은 꾸준히 활동해 오며 이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아 온 것이다.
‘진짜?’
[카르바노그가 수상쩍다고 의심합니다. 그냥 아무나 잡히는 대로 패던 와중에 굶주린 혼돈의 수하들이 잡힌 거 아니냐고 묻습니다.]
카르바노그의 말은 설득력 있었다.
솔직히 그냥 다 패다 보면 그중에는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놈들도 있지 않겠는가.
‘아키서스 교단 역사서 다 날아갔다고 은근슬쩍 새로 만들려는 거 같을 때가 있어.’
그러나 태현과 카르바노그의 의심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퀘스트창은 계속 이어져 나갔다.
…굶주린 혼돈이 위협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이미 충분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아키서스 교단만큼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교단이 또 어디 있겠는가.
솔직히 악마도 아키서스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더 가릴 거 같….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력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
-살아 있는 드래곤 중 하나. (0/1)
-중앙 대륙의 교단 중 하나. (0/1)
-중앙 대륙의 국왕 중 하나. (0/1)
-마계의 악마 공작 중 하나. (0/1)
이들의 지지를 얻어내라!
보상: ?, ??, 칭호 <혼돈의 수호자>.
퀘스트 등급: 전설.
‘!’
이세연에게 정보를 공유받자, <아키서스의 화신>인 태현에게도 새로운 퀘스트가 떴다.
퀘스트 등급이 전설인 건 이세연이 난리 쳤을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었고….
칭호 <혼돈의 수호자>가 보상으로 따로 뜨는 걸 보면 그만큼 대단한 보상이리라.
교단 관련 퀘스트답게 퀘스트 조건은 다른 이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음….’
태현은 신음했다.
살아 있는 드래곤 중 하나의 지지를 얻어내는 건 어떻게 보면 가장 어려운 난이도의 조건이었다.
태현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드래곤과 대화를 했다고 알려진 플레이어도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운이 좋게도 태현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드래곤이 하나 있었다.
레드 드래곤 니팅거스!
‘안 잡길 잘했군.’
[못 잡은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쉿.’
중앙 대륙의 교단 중 하나는 가장 쉬운 조건이었다.
물론 아키서스 교단이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교단이긴 했지만, 지지 정도는 솔직히 협박이든 부탁이든 얻어낼 수 있으리라.
‘문제는 그 다음 두 개인데….’
중앙 대륙의 국왕….
아스비안 제국인 이세연은 안 될 거고.
에스파 왕국은 친하지도 않고.
‘아버지는 안 쳐주겠지?’
김태산이 대족장이긴 한데 그건 국왕 자리가 아니고….
‘하여간 왕이나 하시지 왜 대족장 하신다고….’
김태산이 들으면 노발대발할 생각을 하며 태현은 넘어갔다.
‘에랑스 왕국, 오스턴 왕국… 흠.’
놀랍게도 가장 가능성 높은 선택지는 쑤닝 같았다.
에랑스 왕국이야 지금 국왕 만나려고 해도 만나기 힘들뿐더러 뭘 해줘야 지지를 얻어낼 수 있겠지만….
쑤닝은 플레이어였으니까!
‘게다가 꽤나 아쉬울 테고.’
스미스한테 얻어맞고 에랑스 왕국에게 얻어맞고 있으니 더더욱 협상하기 좋으리라.
그러면 이제 마지막 하나가 남았다.
제일 어려워 보이는 조건!
-마계의 악마 공작 중 하나. (0/1)
‘…이건 진짜 너무한 거 아닌가?’
[카르바노그도 동감합니다.]
깨라고 만들어 놓은 퀘스트가 아닌 거 같다!
* * *
사실, 아키서스 교단이 그나마 마계에 이런저런 인연이 많은 교단이긴 했다.
그게 다 악연이라서 그렇지!
‘일단 이건 나중에 고민해야겠군.’
악마 공작은 지금 고민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다 확인했어?”
“대충.”
태현은 새 퀘스트에서 뜬 조건들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분위기 보니 이세연도 이런 퀘스트가 뜬 거 같은데.’
이세연도 대륙의 굵직굵직한 세력들 지지를 얻어내거나 영웅 지지를 얻어내는 퀘스트가 뜬 게 분명했다.
보아하니 교단 대주교들 정도는 거기에 들어간 거 같은데….
물론 태현은 거기에 본인도 들어간다는 건 몰랐다.
“그래서 얘네들이 곧 쳐들어온다는 거 맞지?”
“맞아. 그래서 주변에 플레이어들 모으고 지원군 부르고 요새 짓고 하는 식으로 방어 올려야 해.”
<아키서스의 철벽 요새>가 너무 사기적인 요새긴 했지만, 주변에도 몇몇 요새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모든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게다가 <아키서스의 철벽 요새>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언데드가 거기 있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언데드 대군을 이끌고 싸워야 하는 이세연은 그냥 다른 곳에 요새 하나 만들어서 버텨야 했다. <아키서스의 철벽 요새>에서 싸우면 싸우기도 전에 언데드 절반이 녹아내렸다.
“남쪽 사막에 뭐라도 해놔야 하지 않아? 거기 너무 텅 비었던데.”
그냥 계속 기다리기만 하면 상대에게 휘둘리는 셈이었다.
그쪽으로 하다못해 정찰대라도 보내서 상황 확인하고, 적들이 오는 동안 공격하고, 발목 잡고, 함정 파고….
‘앗. 말하고 보니 아키서스 교단 전문 같군.’
“그렇긴 한데… 지금 거기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 나도 거기 갈 때는 리치로 변해서 가는데.”
여기서 더 남쪽으로 가면 이제 정말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사막이 나오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름이 <살아 있는 자들은 오지 못하는 사막>일까!
이세연도 언데드 변신하고 언데드들만 이끌고 다녔다. 이런 게 불가능한 사람들은 거의 오지도 못했다.
“후후. 걱정하지 마라.”
“…?”
“내가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가줄 테니까.”
“그런 힘든 일을 네게만 맡길 수는 없… 잠깐만. 이상한데.”
이세연은 감동하려다가 멈칫했다.
“왜 그렇게까지…?”
“허 참. 퀘스트 같이 깨려고 열심히 하는데 이러기야?”
“아, 아니야. 물론 믿지! 믿어!”
안절부절못하는 이세연의 모습에 이다비는 짠한 마음을 느꼈다.
저 사람도 평소에 보면 정말 대단한 플레이어긴 한데 김태현만 만나면 왜 저렇게 되는 걸까!
“정말이겠지?”
“물, 물론이야.”
“너희 길드원들도 빌려줄 수 있지?”
“그거야 가능한데… 잠깐만. 너 현아랑 사귀어???”
길드원들의 채팅을 듣던 이세연이 깜짝 놀라 물었다. 옆에 있던 이다비는 사레가 들려 콜록댔다.
“걔가 누군데?”
“…나하고 같이 다니는 동생 있잖아.”
“아. 걔? 안 사귀는데.”
태현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100% 떳떳함!
‘저렇게 바로 반응이 나오는 게 오히려 더 수상쩍은데.’
그러나 이세연 입장에서는 미리 준비한 것처럼 느껴졌다.
진짜 몰래 사귀는 거 아냐?
그러고 보니 현아가 김태현 이야기만 나오면 맨날 화를 냈었던 것 같은데….
“됐고, 길드원들이나 빌려줘.”
“됐고로 넘어갈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알겠어.”
이세연도 태현의 말에는 동의했다.
사막에 뭔가 하기는 해야 했다!
“맞다. 언데드도 좀 빌려줄 수 있나?”
“언데드들이야 많긴 한데 네가 조종할 수가 없잖아?”
이세연은 마음만 먹으면 수천 마리 언데드를 순식간에 소환할 수 있긴 했지만, 그걸 다스릴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였다.
실력 없는 네크로맨서가 붙잡으면 순식간에 언데드들이 폭주하거나 도망치거나 할 것이다.
“조종할 방법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
얘는 진짜 뭔 놈의 스킬이 이렇게 다양한 거지!?
* * *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을 이어받았습니다.]
[느부캇네살의 이름으로 교섭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사막의 방랑자> 언데드 군단이 이성을 되찾습니다!]
-살아 있는 자들에게 죽음을… 어엇.
-모래 속으로 가라앉을… 어억?
언데드들은 갑자기 정신을 되찾은 것에 당황했다.
이성을 잃고 방황하던 이들이었기에 더더욱 당황!
태현이 가진 <느부캇네살의 흑마법> 스킬 때문이었다.
주변 언데드들을 정신 차리게 만들고 강화시키는 쓸데없이 강력한 스킬!
덕분에 태현은 자기가 직접 소환해서 MP 써가면서 부릴 필요가 없었다. 지나가는 언데드 붙잡고 설득해서 부하로 부리면 됐으니까.
물론 직접 소환한 게 훨씬 더 버프 주기도 좋고 컨트롤하기도 좋긴 했지만….
‘MP 거덜 나는 건 둘째 치고 그러려면 너무 오래 걸리지.’
태현이 이제 와서 흑마법 스킬 소환 부분 다 찾아가면서 익히려면 다른 건 다 버려두고 그것부터 해야 했다.
차라리 이렇게라도 언데드들을 거느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물론 반강제적으로 언데드들이 다 정신 차리게 되는 건 좀 페널티긴 했지만….
-우리가 왜 여기 있지?
-그러게. 빨리 돌아가야겠다.
언데드들은 정신을 되찾자 떠나려고 했다. 물론 태현이 그걸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았다.
“어허. 잠시만 이야기는 듣고 가야지.”
-??
-너는 누구냐? 우리를 소환한 것 같지는 않은데….
-눈빛이 흉흉하고 살벌한 거 보니 영웅의 기상이 있군. 꽤나 강한 전사인 것 같은데.
사막의 언데드들에게 태현은 호평을 받았다.
명성 스탯은 물론이고 악명 스탯도 높은 영웅!
원래 사막 쪽 전사들은 악명 스탯도 좀 높게 쳐주는 경향이 있었다.
전사라면 사납고 독해야지!
-하지만 네가 아무리 강한 전사라고 해도 우리는 남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맞다. 우리는 거친 사막의 전사. 흑마법사의 비열한 수작에 불려나왔지만 이렇게 풀려나서 이성을 되찾은 지금 우리는 우리의 길을 떠나겠….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
-크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악!
가끔은 말보다는 한 대 때리고 시작하는 게 설득하기 좋을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
흑마법사 지원도 없이 그냥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언데드들이었다.
신성력으로 무장한 태현 앞에서는 녹아내리는 수준!
-크악! 으아악!
“내 명령을 따르겠나? 아니면 아키서스의 지옥으로 가겠나?”
“그런데 아키서스의 지옥이란 게 있어요?”
“나도 잘 모르겠는데 대충 끔찍한 곳 아닐까?”
끔찍한 곳 두 개를 합쳐놨으니 더 끔찍하겠지!
언데드들은 신성 영역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
[악명 스탯이 높…]
[협박에 성공합니다!]
-항… 항복! 항복!
-따르겠습니다!
“그래그래. 기특하기도 해라.”
[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아무리 봐도 화술 관련이었지만, 어쨌든 언데드들을 끌어 모으자 마법 스킬이 조금 올랐다.
갖고 있던 마법이 다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으로 바뀌었으니 이렇게라도 올려야 한다!
[<사막의 방랑자> 언데드 군단을 지휘하는 데 성공합니다!]
[언데드들의 사기가 매우 낮습니다. 도망칠 수 있습니다.]
[지휘에 페널티를…]
[언데드들의 공포가 매우 높습니다. 지휘에 보너스를…]
[……]
사기는 매우 낮지만 공포는 매우 높은, 전형적인 막장 군대가 완성되었다.
아키서스식 언데드 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