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99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신지… 헛소리하지 마십시오.”
[파이토스 교단이 당신을 매우 의심하고 있습니다!]
[페널티…]
[……]
[……]
‘앗.’
파이토스 교단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단단히 쌓인 불신!
이런 불신은 아무리 최고급 화술 스킬이 있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흠. 무리였나?’
“…그런데 정확히 어떤 특별 대우를 받고 있는 것입니까?”
“…….”
-…….
[…….]
태현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파이토스 교단이야!
“들어보니 타이란 교단은 퀘스트를 깨고 나면 파이토스 교단보다 2배 더 많은 신전 건설을 약속 받고, 플레이어들 끌어들일 때도 특혜를 받는다던데?”
[최고급 화술…]
[……]
[파이토스 교단이 흔들립니다!]
종잇장보다 얄팍한 신뢰 관계!
교단들은 위기 앞에서는 힘을 합쳤지만 원래는 경쟁 관계였다.
한쪽이 성장하면 다른 쪽들은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
파이토스 교단한테 의심의 씨앗을 던진 태현은 다른 교단한테도 가서 비슷한 짓을 했다.
“타이란 교단. 파이토스 교단이 너희 교단은 무식한 전사들만 있어서 상종하기 힘들다고 하던데.”
“그게 말이 되는 소리… 같긴 하군! 이런 빌어먹을 놈들!”
전사들의 신, 타이란을 모시는 교단은 파이토스 교단보다 훨씬 더 단순무식했다.
그 말은 더 잘 넘어간다는 뜻!
“걔네가 전사는 성기사 하위호환 아니냐고 하더라고. 성기사 못한 패배자들이 하는 게 전사 아니냐고 하는데 듣는 내가 민망해서….”
“!!!”
태현은 타이란 교단 전사들이 갖고 있는 콤플렉스를 정확하게 자극했다.
흔히들 많이 하는 말!
-전사는 스스로 힐도 못하고, 스킬 폭도 성기사보다 좁고, 멋도 없고, 맨날 하는 건 단순하게 칼질 스킬 밖에 없나요?
└너 죽을래?
└└너 성기사지?
└└└너 마법사지??
전사는 분명 강력한 직업이었지만, 성기사에 비하면 위에서 말한 단점이 확실했던 것이다.
“평소부터 우릴 깔보던 놈들이 역시…!”
“거 참. 난 전사를 무시한 적 없는데 말이야. 파이토스 교단 참 너무하지 않나?”
[최고급 화술 스킬을…]
[타이란 교단의 친밀도가 조금 오릅니다!]
완전히 바닥을 친 친밀도와, 바닥을 뚫고 내려간 신뢰도.
그런 극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친밀도를 올리는 태현!
역시 사람은 누군가를 같이 욕할 때 친해지기 마련이었다.
“파이토스 교단에 비하면 우리 교단은 전사를 엄청 우대하는 편이지. 그 유명한 <아키서스의 노예>도 사실 전사 출신이라고.”
“오호….”
“게다가 <고대 제국 이탈자>나 <가루다 부족>들도 다 전사들이지.”
“잠깐. 이름이 뭔가 이상한…?”
하나같이 이름이 흉흉한데?
태현은 타이란 교단 NPC들이 의문을 묻기 전에 치고 빠졌다.
할 말은 다 했다!
“데메르 교단. 사실 아흐줄락 교단이 그쪽을 욕했는데 알고 있었나?”
“뭐 그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파이토스 교단도 욕했….”
“아. 그건 알고 있습니다.”
“…….”
태현은 슬쩍 뒷걸음질 쳤다.
데메르 교단은 안 되겠다!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워낙 순한 이들만 있다 보니 이간질을 하려고 해도 잘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지?”
“네. 충분해 보이는데요.”
태현이 오기 전에는 나름 자기들끼리 뭉쳐서 아키서스 교단을 싫어하던 놈들이, 이제는 서로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오자마자 몇 마디 말로 이들을 갈가리 찢어 놓은 것이다.
실로 불화의 신!
“그러면 나 이제 들어가도 되냐?”
태현은 당당하게 말했다. 원래라면 서로 뭉쳐서 ‘안 된다! 아키서스 교단은 뒤로 가라!’ 해야 할 교단들은 서로 쳐다만 보고 있었다.
[교단 연합군에 참가합니다!]
[교단 연합군에 <아키서스 교단 부대>를 이끕니다.]
[……]
[……]
“후. 허가받았으니 이제….”
태현이 입을 열자 교단 NPC들은 긴장했다.
뭘 하려는 거지?
이 주변을 돌면서 몬스터를 잡으려는 걸까?
아니면 뭔가 추가 건설을?
그것도 아니면 좀 더 과감하게 선공을? 하지만 적들의 위치도 모르는데….
“이 주변 돌면서 요리나 할까?”
“그러죠!”
* * *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굶주린 혼돈>에 관한 비서를 얻어냈습니다!]
[정보가 추가됩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굶주린 혼돈의 수하들이 몰려옵니다!]
[차원 너머에서 넘어온 굶주린 혼돈은 수많은 위대한 존재들을 집어삼키고 소화시켜 부하로 끌어들였습니다. 신과 악마, 영웅과 용들도 이 운명에서 피할 수 없었습니다.]
“으악.”
이세연은 퀘스트를 깨고 나오는 메시지창에 경악했다.
이게 무슨 끔찍한….
차라리 악신 교단이 나았다. 악신 교단은 대화가 가능하고 어떻게든 타협은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굶주린 혼돈은 전혀 경우가 다른 종자였다.
그냥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대화 안 통하는 짐승 무리!
거기에 삼켜지면 이제 맛이 가서 혼돈의 부하가 되는 것이다.
저 사막 너머에서 그런 놈들의 부하가 찾아온다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스비안 제국은 좀 쉬울 줄 알았는데….’
“일단 요새로 돌아간다! 요새로 가서 교단 연합군들한테 정보 전해줘야겠어.”
“예!”
이세연은 길드원들을 이끌고 사막을 달렸다. 다행히 요새에 교단 연합이 꽤 모여 있었다.
사제부터 시작해서 성기사들까지 숫자가 많았으니,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으리라.
“…?? 잠깐만. 요새 분위기 왜 이래?”
뭔가 이상한데?
* * *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 스킬이 고급에서 최고급으로 변합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칭호, <최고급 요리에 도달한 자>를…]
[……]
[……]
‘됐다!’
세 가지 스킬 중 가장 먼저 최고급을 찍은 건 역시 요리였다.
노래나 마법에 비해 이제까지 쏟은 시간이 달랐던 것!
게다가 태현이 가장 쉽게 올릴 수 있기도 했다.
[갖고 있는 요리 스킬들이 새로이 권능으로 바뀝니다.]
‘안 돼!’
메시지창에 태현은 움찔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와! 스킬 더 좋아지나 봐!’ 했겠지만 태현은 아니었다.
아키서스 권능으로 바꿔지면 스킬이 쓰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냥 내버려 둬 제발!
[<요리에 시한폭탄 독 넣기> 스킬이 <사악한 아키서스의 독>으로 바뀝니다.]
<사악한 아키서스의 독>
요리에 아키서스의 독을 넣습니다.
[<비장의 몬스터 정수 만들기> 스킬이 <아키서스의 몬스터 정수 만들기>로 바뀝니다.]
<아키서스의 몬스터 정수 만들기>
몬스터의 재료에서 정수를 추출합니다! 이 정수에는 아키서스의 힘이 깃듭니다.
[<완벽한 미식> 스킬이 <아키서스의 미식>으로 바뀝니다.]
<아키서스의 미식>
요리에서 레시피를 추출해냅니다. 일정 확률로 더 좋은 레시피를 얻어냅니다.
줄줄이 나오는 스킬들.
태현은 그나마 안심했다. 아직까지 최악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더 좋아졌다고 볼 수 있었다.
[<아키서스의 요리:행운>이 추가됩니다.]
[<아키서스의 요리:신성>이 추가됩니다.]
[<아키서스의 요리:악마>가…]
[……]
<아키서스의 요리:행운>
행운을 위한 요리를 시도합니다.
<아키서스의 요리:신성>
신성을 위한….
‘특화 스킬인가?’
요리도 수십, 수백 가지가 넘는데 당연히 특화가 있었다.
마법사도 화염 마법, 냉기 마법 등 골라서 키우듯이 요리사도 그러는 것이다.
행운이나 신성 쪽에 버프 크게 들어가는 특화 요리는 이해가 갔다.
태현만큼 행운과 신성 스탯이 높은 플레이어는 없었다. 또 칭호는 어떤가.
행운과 신성 특화 요리가 나와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그런데….
‘악마는 뭐냐?’
<아키서스의 요리:악마>
악마를 위한 요리를 시도합니다.
‘미친!’
진짜 악마를 위한 요리였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왜 악마를 위한 요리 스킬이 뜨지?
-주인이여… 드래곤을 위한 요리는 안 뜨고….
-주인님….
-차라리 언데드를 위한 요리가 뜨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키서스의 요리:언데드>가 추가됩니다.]
골골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키서스의 요리:언데드>가 추가되었다.
그렇게 되자 용용이와 흑흑이는 더욱더 서운해졌다.
아니 왜 드래곤만 빼놓냐!?
“미, 미안하게 됐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태현은 오랜만에 미안해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스킬이 안 뜨는데 어떡하란 말인가!
‘언데드랑 악마는 스킬 뜰 정도로 많이 상대하고 칭호 받았지만, 드래곤은 그렇게 상대 안 했다 이거군….’
드래곤을 많이 상대했어야 뜨지!
“김태현 님! 요리 더 해주세요!”
“아니. 지금 스킬 찍어서 이제 그만할 생각….”
“김태현 님! 제발! 저희까지만!”
“이런 이기적인 자식! 너희까지라니! 우리까지라고 해줘야지!”
모인 사람들은 태현이 장사를 그만할 것 같자 초조해져서 외쳤다.
이 사막에서 또 언제 이런 요리를 먹겠는가!
“…여기서 뭐하세요??”
이세연은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요새가 왜 이러나 했더니, 광장에서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명한 요리사 랭커라도 왔나? 했는데….
김태현이잖아!?!
태현은 이세연을 보고 매우 반가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이세연은 순간 두근거렸다.
쟤가 왜 저러지?
“앗. 이세연! 미안하다! 아스비안 제국은 너의 영토인데, 허락도 받지 않고 영업을 하다니!”
“아니 여기 요새는 네가 지은 네 땅….”
“어쩔 수 없군. 여기까지만 할까.”
태현은 빠르게 신호를 보냈다. 이다비는 솥의 뚜껑을 닫고 차곡차곡 마차 안으로 집어넣었다.
기계공학 포장마차 아니랄까 봐 순식간에 차르륵 정리가 끝났다.
“???”
이세연은 아직 상황 파악을 못했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모두들 미안하게 됐다!”
“…이세연 님!! 왜 이러시는 겁니까!”
“너무한 거 아닙니까!”
“…야!”
이세연은 울컥했다.
지금 장사 접는 핑계로 날 써먹은 거야?!
* * *
그러나 이세연은 그리 오래 화를 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태현과 같이해야 할 퀘스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우 매우 아쉬운 입장!
“너 근데 무슨 퀘스트 있냐?”
“!”
말하기도 전에 속마음을 알아맞히는 태현!
“내 도움이 필요한 퀘스트인가?”
“…!?”
우, 우리 길드에 스파이가 있나?
“너하고 친한 동생이 묘하게 친절하게 굴길래 뭐 아쉬운 일이라도 있나 했지. 그렇게 놀라지 말래?”
“아. 그런 거였구나….”
이세연은 안심했다. 말하려던 이세연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런데 넌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데?”
“아… 이야기하자면 긴데. 지금 요리 스킬을 올리려고 고생 중이었지.”
“…….”
대체 어떤 사연이 있길래 태현 같은 랭커가 요리 스킬을 올리고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직업 퀘스트는 아닐 테고….
‘얘 뭐하는 거야…?’
남들 지금 300 넘기고 치열하게 달려가는데 혼자 유유자적하게 요리 스킬 올리고 있어!
“물론 요리 스킬만 올리려고 온 건 아니야.”
“역시 그렇겠지.”
“노래 스킬도 올리려고 왔어.”
“…….”
이세연의 표정이 점점 기묘하게 변했다. 이다비가 쿡쿡 찔렀다.
“태현 님. 그 설명은 별로 이해에 도움이 안 될 거 같은데요.”
“앗. 그래? 마법 스킬도 올리려고 왔지.”
“…….”
이다비는 할 말을 잃었다.
그것도 별로…!
“어쨌든 이 근처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뭔 퀘스트야? 빨리 말해봐.”
태현은 이세연을 재촉했다.
교단들을 이렇게 불러 모은 걸 보니 이세연에게는 태현에게 없는 정보가 많은 게 분명했다.
퀘스트 정보 좀 뜯어낸 다음 쓸만하면 같이 해야지!
‘알렉세오스 퀘스트도 연결된 것 같은데, 잘하면 날로 먹겠군.’
이세연이 판을 다 깔아주고 준비까지 해줬으니 태현은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퀘스트를 날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이런 퀘스트도 있어야지!
맨날 태현이 밑바닥에서 도와줄 놈 구해오고 사람들 불러 모아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