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97화
‘말려야 하지 않을까!’
이다비는 뒤에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다비도 나름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사이에서는 미친 플레이어로 뽑혔다.
남들이 ‘길마님 그러다가 망해요!’ 할 때 과감하게 행동했기에, 파워 워리어를 여기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태현과 같이 할 때는 이다비가 이성적인 플레이어가 됐다.
이래도 될까?
이래도 될까!?
‘태현 님이 회피율이 엄청나게 높다지만 마법하고 노래만으로 고레벨 몬스터를 잡아도 괜찮을까? 레벨 200대까지는 괜찮다 하더라도 300, 400 넘어가는 몬스터면….’
태현이 MP가 적다는 건 이다비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안 그래도 태현은 레벨에 비해 높은 수준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사람.
물론 회피율과 컨트롤이 있다지만 판온에 절대란 건 없지 않은가.
‘내가 말려야 하나?’
“이다비! 힐 좀 해줄래?”
“네!”
하지만 이다비는 말릴 수가 없었다.
저렇게 신이 나서 좋아하는데 어떻게 말려!
[노래 스킬이…]
[……]
[요리 스킬이…]
[……]
[마법 스킬이…]
태현은 노래하고 요리하고 마법을 쓰고 데미지를 입고 힐을 받았다.
남들이 보면 ‘와 미친 뭐 저리 정신 없냐’ 하며 당황했을 것이다.
정말 근본 따위는 조금도 없는 플레이!
“잠깐 쉬자. MP 괜찮아?”
“저는 아직 넉넉해요.”
“응?”
같이 싸웠는데 이다비 MP만 넉넉하다니.
태현은 의아해했다.
물론 이다비야 태현보다 레벨이 훨씬 높긴 하지만 강한 스킬을 더 많이 썼을 텐데…?
“저 골드 소모해서 괜찮잖아요.”
“아.”
이다비는 직업 특성상 MP 대신 골드를 소모해서 버틸 수 있었다.
물론 이다비는 어지간해서 그러지 않았다.
지금도 잡템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챙기고 돌아가서 알뜰하게 팔아치우는데 무슨!
“…응?”
그렇기에 태현은 다시 한번 당황했다.
골드를 썼다고?
“??”
태현이 당황하자 이다비가 의아해했다.
왜 저러시지?
다그닥, 다그닥-
그러는 사이 뒤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한 무리의 NPC들이 다가왔다.
태현과 이다비는 벌떡 일어섰다. 둘 다 적인 줄 안 것이다.
만나는 사람은 일단 적으로 놓고 보는 치밀한 경계심!
판온을 어떻게 했는지 태도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누군지 나왔어?”
“잠깐만요… 네. 떴어요.”
이다비는 상인이 가진 스킬들을 사용해 다가오는 NPC들이 누군지 확인했다.
[헤넨 교단의 성기사들입니다!]
[도둑질과 의적들의 신, 헤넨 교단의 성기사들을 주의하십시오. 그들의 손버릇은 막을 수 없습니다.]
헤넨 교단!
선신 교단임에도 불구하고 도둑질과 의적을 강조하는 특이한 교단이었다.
덕분에 대륙에서 위치는 좀 미묘했다.
도시나 마을에서 대놓고 신전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산이나 숲 속 으슥한 곳을 가보면 헤넨 교단 신전을 볼 수 있었다.
‘쟤네도 아키서스 교단만큼 마이너한 교단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아키서스 교단만큼 마이너는 아니라고 카르바노그가 단호하게 말합니다.]
‘…….’
태현은 살짝 상처받았다.
그러니?
확실히 헤넨 교단은 마이너했다. 그냥 악신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도둑질 관련이면서 선신 교단이라는 게 페널티!
도둑질할 때 약한 사람한테 하면 안 되고, 일정 액수는 기부해야 하고….
이러다 보니 강도짓 하려는 플레이어들은 굳이 헤넨 교단을 믿지 않았다.
차라리 아키서스 교단을 믿으면 믿었지!
‘강도들이 헤넨 교단보다 아키서스 교단을 믿는 게 좀 찜찜하긴 하지만… 뭐 인기 있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태현은 빠르게 정신승리를 마쳤다.
인기 있으면 좋은 거지!
“저기 사람이 있다!”
“보아라! 앗. 악명이 매우 높군! 훔쳐야 한다!”
“아니다! 잘 봐라! 명성이 더 높지 않나! 훔치면 안 된다!”
명성/악명 스탯 비교해서 악명 스탯 높으면 일단 도적질하고 보는 헤넨 교단!
남 앞에서 대놓고 훔칠까 말까 떠드는 양심에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너희는 뭘 믿고 이렇게 뻔뻔하냐?
태현은 가면을 풀고, 몸 위에 둘렀던 망토도 치웠다. 플레이어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썼던 변장이었다.
그러자 헤넨 교단 성기사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혹시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님이십니까?”
“맞다.”
“감사합니다!”
“?”
태현은 의아해했다.
대륙 선신 교단들은 보통 아키서스 교단 보면 ‘으 아키서스 교단 놈들’ 하면서 싫어했고 악신 교단들도 ‘아오 아키서스 교단 놈들’ 하면서 싫어했던 것이다.
태현이 사이좋은 교단이 거의 없었던 것!
그런데 만나자마자 감사라니.
설마 헤넨 교단은 양심이 있는 걸까?
‘하긴 내가 대륙 몇 번을 구했는데….’
“덕분에 저희 교단이 눈총을 덜 받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태현은 정색했다.
그런 의미로 감사하단 거였냐?!
아키서스 교단이 하도 어그로를 끌어대니, 선신 교단이고 악신 교단이고 아키서스 교단부터 우선적으로 싫어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원래 비호감이던 헤넨 교단은 어부지리!
“원래라면 다른 교단 놈들이 저희는 불러주지도 않는데 불러줘서….”
“흑흑. 감동이었습니다.”
“…….”
태현은 이다비에게 물었다.
“아키서스 교단으로 뭐 안 날아왔지?”
“안 날아왔죠.”
다른 교단들 사이에서 따돌림당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들으니까 마음이 아프다!
“어차피 교단 애들 모여봤자 쓸데없는 것만 시키잖아요. 괜찮아요. 괜찮아.”
이다비는 태현을 위로했다. 하긴 맞는 말이었다.
저번에도 교단 NPC들은 찾아와서 태현한테 몬스터 웨이브 막아달라고 퀘스트를 떠넘기려고 했었다.
물론 태현은 단칼에 거절했다.
아키서스 교단도 먹고 살기 힘든데 뭔 헛소리냐!
‘그거 받았으면 지금도 대륙 돌면서 몬스터 잡고 있었겠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교황님께서도 같이 가시겠습니까?”
[헤넨 교단의 성기사들이 퀘스트 참가를 권유합니다!]
[받아들일 경우 퀘스트에 참가하게 됩니다.]
<헤넨 교단의 여정-헤넨 교단 퀘스트>
대륙의 의로움을 위해 언제나 싸우는 헤넨 교단!
그들은 대륙을 위협하는 적들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또다시 일어났다.
‘…내가 악마들부터 시작해서 드래곤까지 상대하는 동안 너희는 고개도 안 내밀지 않았냐?’
태현은 떨떠름했다.
물론 헤넨 교단이 다른 메이저 교단에 비교하면 좀 많이 부족한 놈들이긴 한데….
그래도 저렇게 말하니 뭔가 묘하게 얄미웠다.
…헤넨 교단의 여정에 참가해서 그들을 도우라!
보상: ?, ???
[<아키서스의 철벽 요새>에서 헤넨 교단의 여정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아키서스의 철벽 요새>에서 사냥할 경우 퀘스트 공적치 포인트가…]
[……]
“?”
태현은 의외의 이름에 놀랐다.
<아키서스의 철벽 요새>라니.
여기는….
‘느부캇네살 상대하려고 만들었던 요새 아닌가?’
각 교단들의 힘도 겸사겸사 빌려서 만들었던 신성한 요새!
다른 건 몰라도 요새의 신성력만 따지고 보면 판온에서도 손꼽히는 곳이었다.
덕분에 느부캇네살이 쓰러지고 나서 언데드들이 들끓어도 요새 근처에는 오지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제국에서 사냥하는 플레이어들이라면 꼭 들러야 할 명소였다.
그리고 그 수입은 태현의 든든한 돈줄 중 하나였고….
“<아키서스의 철벽 요새>에 무슨 일 있나?”
“몬스터들 많아진 것 말고는 딱히 없는데요… 일단 여기가 제국 영토 끝에 있어서 무슨 일이 생기려면 뭐든지 생길 수 있어요.”
아스비안 제국의 영토는 대부분 황무지에 사막이었지만 그래도 견딜 만한 수준이었다.
플레이어들이 마을과 마을 사이를 돌아다닐 정도는 되는 곳!
‘진짜’ 사막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좀만 걸으면 [매우 덥습니다!] [체력이 떨어집니다!] [지구력도!] [HP 깎이기 시작합니다!] 같은 메시지창들이 우르르 뜨는 곳을 진짜 사막이라고 했다.
그리고 보통 그런 곳은 아스비안 제국 바깥에 있었다.
그 정도로 견디기 가혹한 곳은 제국의 부족들도 굳이 가서 살지 않는 것!
<아키서스의 철벽 요새>도 제국 영토 끄트머리에 있어서, 여기서 이제 조금만 더 남쪽으로 가면 가혹한 사막이 모험자를 맞이했다.
“아스비안 제국 동쪽 사막이 <돌아오지 못하는 사막>이고, 남쪽 사막이 <살아 있는 자들은 오지 못하는 사막>이었지?”
“네. 탐험가 플레이어들 몇 명 계속 도전하고 있을걸요.”
“오. 어떻게 알아?”
“저희 길드원들도 도전 중이라….”
“…….”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곳에는 꼭 보이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일단은 별일 없다고는 하는데, 주의해서 보게 할게요.”
“고마워.”
-길마님! 길마님! 혹시 근처 오신 겁니까!? 근처 오셨으면 저희 지원 좀…!
-물 좀 갖다 주세요! 싱싱한 생수로! 상한 물 말고!
-여기 너무 힘듭니다!
이다비는 길드원들의 아우성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파워 워리어의 원칙은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자!’
자기들이 알아서 일 만들고 해결하는 게 길드 방칙이었던 것이다.
사막에서 길 만들면서 고생한다 하더라도 그건 자기들 책임!
“흠… 그거랑 별개로 요새 근처에 플레이어들도 많을 테니까 스킬 올리기는 좋겠다.”
요리 마법 노래 세 가지를 돌려가면서 쓰기 좋은 곳!
‘가는 길에 몬스터한테 쓰고 헤넨 교단 놈들한테 쓰고 도착하면 요새에 있는 애들한테 쓰면 되겠군.’
퀘스트 수락하는 대신 확실하게 빨아먹겠다!
태현은 헤넨 교단 성기사들을 쳐다보았다.
묵직한 중갑 대신, 가벼운 가죽 갑옷을 걸치고 활 하나씩 든 모습이 영락없는 산적… 아니, 레인저 같았다.
“혹시 노래 좋아하나?”
“앗. 노래 불러주시려는 겁니까?”
헤넨 교단 성기사들은 태현의 말에 반색했다.
산과 숲속에서 지내는 이들이다 보니 이런 노래를 매우 좋아했다.
[헤넨 교단 성기사들이 당신의 노래를 기대합니다!]
[노래가 형편없을 경우 친밀도에 페널티가…]
[……]
[……]
‘앗.’
태현은 멈칫했다.
맞다!
알렉세오스랑 달리 얘네는 노래 이상하게 부르면 화내지!
[알렉세오스도 화는 냈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어쩔 수가 없어서 참았을 뿐이라고…]
“무슨 노래를 원하지?”
“흠. 저희는 아무래도 유쾌하고 상쾌한 도둑질에 관한 노래를 좋아합니다.”
“왕국에 들어가서 보물을 훔쳐서 나온 다음 주변에 뿌린다던가.”
“그 부분은 의견이 좀 갈리네요.”
이다비는 정색했다.
보물을 훔쳤는데 왜 주변에 뿌린단 말인가!
“도둑질… 도둑질… 아. 그러고 보니 하늘성이 있었군.”
생각해 보니 참 많이도 훔쳤다!
태현이 이제까지 한 도둑질을 생각해 보면 헤넨 교단이 무릎 꿇고 들어야 할 수준이었다.
헤넨 교단이 기껏해야 금은보화 훔치는 동안 태현은 악마 공작의 성을 통째로 훔치지 않았는가.
“오. 듣고 싶습니다!”
[악마 공작의 하늘성을 훔친 대담무쌍한 이야기를…]
[노래 스킬이…]
[……]
[……]
[……]
[친밀도가 크게 오릅니다!]
[헤넨 교단이 매우 만족해합니다!]
심심하면 불려 나와서 안줏거리가 되어주는 푸르네우스!
처음 보는 이들과도 ‘푸르네우스란 악마 공작이 있는데 하늘성을 뺏겼다더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헤넨 교단은 아주 대만족했다.
“아주 좋은 노래입니다!”
“저희 교단 신자들에게도 퍼뜨리도록 해야겠습니다!”
[노래가 퍼질 경우 빙결공 푸르네우스가 극노할…]
‘뭐 더 화나봤자지.’
그렇게 태현이 스킬을 올려가며 헤넨 교단과 친해지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알렉세오스 퀘스트 지도도 이 근처잖아?’
정말 이 근처에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단 말인가?
‘…아키서스 화가 놈들이 그렸던 지도가 갑자기 생각나는데, 설마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