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96화
<알렉세오스의 성물함-드래곤 리치 알렉세오스 퀘스트>
드래곤 리치 알렉세오스는 생전에도, 죽은 뒤에도 강력한 용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곤란한 상황에 처했으니, 바로 그의 성물함과 영혼의 연결이 약해진 것이다.
알렉세오스를 도와 그의 성물함과 영혼의 연결이 약해진 이유를 찾아내고 해결하라!
보상: ?, ???
[지도가 추가되었습니다.]
[……]
알렉세오스는 설명을 다 했다고 생각했는지 퀘스트창까지 띄웠다.
태현이 당연히 도와주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흠. 보상 좀 받으려는 가벼운 마음으로 왔었는데….’
그러나 태현은 생각이 달랐다.
지금 깨야 하는 아키서스 화신 직업 퀘스트지 알렉세오스의 목숨이 아닌 것이다.
딱 봐도 알렉세오스 관련 퀘스트는 더럽게 어려울 텐데….
‘요리하고 마법 마저 깨고 노래 스킬도 올려야 하는데.’
-…설마 거절하려는 건 아니겠지?
“뭐 거절하면 공격하시기라도 할 겁니까?”
상대가 약해졌다는 걸 알자 태현의 태도는 매우 건방져졌다.
[카르바노그가 훌륭하다고 감탄합니다!]
물론 유령 상태가 되었어도 알렉세오스는 여전히 강한 적이었지만, 태현도 만만치 않았다.
각종 권능 스킬로 이 레어를 난장판 만들고 빠져나갈 자신 정도는 있는 것!
그러나 알렉세오스는 다른 방법으로 대응했다.
-크흑… 정말 너무하는군. 나는 아키서스의 화신과 우정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
“지금 태현 님한테 화술 시도하는 거 아니죠?”
“그, 그런 것 같은데?”
태현과 이다비는 당황했다.
너 지금 뭐하는 거니?
그러나 알렉세오스는 유령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우리 사이에 있던 우정과 존중은 어디로 갔는가, 화신이여?
“그런 건 처음부터 없….”
-나는 그대가 대륙의 위기를 막고 평화를 가져올 영웅이라고 예전부터 확신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거짓말하는 것 같은데요.”
이다비는 냉정했다.
“태현 님. 드래곤들은 궁지에 몰리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대요. 꼭 블랙 드래곤만 교활한 게 아니라 다른 드래곤들도….”
-…….
-…….
용용이와 흑흑이가 동시에 상처를 받았다.
스플래시 데미지!
“아, 아니. 너희들한테 한 소리가 아니라…!”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주인이여.
-블랙 드래곤뿐만 아니라 다른 드래곤들도 다 궁지에 몰리면 치졸해집니다. 니팅거스 보십쇼. 주인님.
용용이와 흑흑이는 부정하지 않았다.
드래곤은 품위 있고 강력한 보스 몬스터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동시에 교활하게 속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몬스터이기도 했다.
평소에는 워낙 유리하니 굳이 속임수까지 쓰지 않는 것이지, 불리해지면 얼마든지 속임수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알렉세오스도 잘나갈 때는 거만했지만 불리할 때는 얼마든지 눈물에 호소할 수 있다!
-엉엉엉. 화신이여.
[유령 용 알렉세오스가 <레드 드래곤의 강력한 언령> 스킬을 사용합니다.]
[알렉세오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강한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화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화술 스킬이 알렉세오스보다 높…]
[<레드 드래곤의 강력한 언령>을 저항하는 데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
알렉세오스는 경악했다.
아니 인간 주제에 내 화술을 견뎌냈다고?!
그러고 보니 저 아키서스의 화신 놈은 무슨 수를 썼는지 드래곤이나 쓰는 언령 스킬도 갖고 있었지!
-힘만 제대로 돌아오면 가호부터 시작해서 단단히 보상해 준다니까!
“아. 알겠어. 알겠어. 하면 되잖아. 하면.”
태현의 태도에서는 진심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알렉세오스도 알 수 있을 수준의 진심!
‘길 가다가 생각나면 한 번 찾아보기나 해볼게’ 수준의 진심이었던 것이다.
“…잠깐.”
-오. 진지하게 할 생각이 든 건가?
“마침 잘 됐다. 노래 좀 들어줘라.”
-???
노래 같은 스킬을 올리기 위해서는 들어줄 상대가 필요했다.
수준 높은 NPC 여럿한테 노래를 할수록 스킬이 빠르게 오르는 것!
문제는 수준 높은 NPC한테는 어설픈 스킬을 썼다가는 바로 역효과가 돌아온다는 점이었다.
귀족 NPC한테 맛없는 요리나 어설픈 노래를 했다가는 최악의 경우 ‘당장 이놈의 목을 쳐라!’ 같은 일이 생길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알렉세오스는 딱 좋은 상대였다.
아쉬운 게 많아서 노래 좀 못한다고 화를 내지도 못할 것이고, 저번에 언령 스킬 올리느라 이미 해본 적도 있었고….
‘한 명이라는 게 아쉽군. 여러 명한테 돌아가면서 해야 스킬이 빠르게 오르는데.’
아무리 상대가 레벨 높은 NPC라고 해도 한 명한테만 계속 하면 한계가 있었다.
태현은 드래곤 친구 없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다른 드래곤들은 알렉세오스처럼 아쉬운 상황이 아닐 테니까!
-웬 노래?
“네 상황을 보니 위로해 줘야 할 것 같아서….”
-아니 위로는 됐고 빨리 나가서….
“자. 노래 들어간다.”
태현은 알렉세오스의 말은 무시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노래 스킬이 매우 낮습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행운이 매우 높…]
[알렉세오스가 노래에 불만스러워합니다!]
[알렉세오스가 매우 불만스러워합니다!]
온갖 음유시인들의 걸작을 들어온 알렉세오스에게, 노래 스킬이 낮은 태현의 노래는 하찮게 느껴질 뿐이었다.
“흠. 노래 제목은 뭘로 하지? <불쌍한 용 알렉세오스>?”
-하찮은 레드 드래곤 알렉세오스 어떻습니까?
-레드 드래곤은 가장 불쌍한 드래곤은 어떤가?
“내 제목이 괜찮겠군.”
[<불쌍한 용 알렉세오스>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육신을 잃어버린 레드 드래곤에 대한 일화를 대담하게 다룬 노래로서, 어지간한 배짱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노래입니다.]
[……]
[……]
[명성이 오릅니다!]
[이 곡을 부를 경우 레드 드래곤에게 공격 받을 수 있…]
[레드 드래곤과 관련된 몬스터들에게 공격 받을 수 있…]
[음유시인들이 감탄합니다!]
노래는 그 가사도 중요했다.
들판에서 노는 토끼를 묘사하는 노래라면 별 위험이 없었지만, ‘오스턴 왕국 국왕은 대머리다!’라고 묘사하는 노래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레드 드래곤을 조롱하는 노래는 정말 간덩이가 배밖으로 나와야 만들 수 있는 노래였다.
부르다 보면 레드 드래곤이 날아와서 잡아갈 수 있는 노래!
[노래 스킬이 매우 크게 오릅니다!]
“다 같이 부르자. 자. 불쌍한 용 알렉세오스….”
태현은 아예 용용이, 흑흑이, 골골이와 합창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이다비도 화음을 넣으며 도왔다.
-…….
그리고 알렉세오스는 세상에서 제일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그 노래를 들어줘야 했다.
[알렉세오스가 매우 불만스러워합니다!]
[현재 퀘스트 때문에 친밀도가 내려가지 않습니다.]
[……]
[……]
-다 불렀으면 이제 슬슬 출발….
“다음 곡은 뭘로 하지?”
“<느부캇네살 토벌> 다루는 건 어떠세요?”
“그거 괜찮겠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태현이 유리한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어마어마한 업적!
이제까지 했던 업적들 중 하나씩만 골라서 노래로 만들어도 추가 버프를 받는 것이다.
다른 음유시인이 소문을 듣고 노래를 만들 때 태현은 직접 겪고 노래를 만든다!
[<느부캇네살 토벌>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이 노래를 부를 경우 주변 언데드에게 추가 데미지가…]
[언데드들에게 디버프가…]
[흑마법에 페널티가…]
[……]
-그만 불러라! 상태가 안 좋아지지 않나!
알렉세오스는 소리쳤다.
지금 그도 언데드 상태였던 것이다.
하필 노래를 지어도 저딴 노래를 짓다니!
[노래 스킬이 매우 크게…]
“아차. 미안하게 됐군.”
태현은 사과했다.
생각해 보니 알렉세오스는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
-그러면 이제 떠ㄴ….
“다음 곡은 우이포아틀로 갈까?”
“<흉폭한 황제 우이포아틀>?”
“<용의 파멸 우이포아틀>로 해볼까… 좋아. 노래 만드는 것도 은근히 재밌군.”
“그런데 태현 님. 아까부터 멜로디 계속 똑같은 거 쓰고 계시는데….”
“뭐 어때. 가사만 바꾸자.”
새로운 멜로디를 창의적으로 만들기보다는, 가사로 승부하려는 태현!
이제까지 해왔던 업적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 *
[중급 노래 스킬이 고급 노래 스킬로 변합니다!]
[칭호, <유령 음유시인>을 얻었습니다!]
[……]
[……]
태현은 기어코 고급을 찍고 나왔다.
하루아침에 고급을 찍는다는 건 어떤 스킬도 힘든 일이었다. 태현에게도 업적과 알렉세오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유령 음유시인> 칭호는 유령 상대로 노래를 부를 경우 추가 효과를 얻는 칭호.
‘좀 미묘하지 않나?’
유령 상대로 노래 부를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노래 스킬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노래 스킬은 전형적인 버프 계열 스킬이었다.
다양한 노래를 사용해 적재적소에 맞는 버프를 제공하는 것!
태현처럼 다양한 스킬을 테크니컬하게 바꿔가며 사용하는 사람한테는 잘 맞았다.
“태현 님 노래가 좀… 대단하긴 하죠.”
가사부터가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
“흠… 사실 노래도 요리처럼 광장에 자리 잡고 부르는 걸 생각했었는데, 생각이 좀 바뀌었어.”
“?”
“몬스터한테 불러줘도 오르는 건 오르는 거잖아?”
플레이어와 몬스터를 비교해 봤을 때 후자가 더 레벨이 높은 놈들이 많았다.
그런 놈들 찾아가서 노래로 공격하면?
“어차피 마법도 올려야 하니까, 노래+마법으로 한 번 상대해 보려고.”
“괜찮은 생각이네요.”
“요리도 만들어서 몬스터한테 먹여보고.”
“그건 안 좋은 생각 같아요.”
이다비는 단호했다.
아닌 건 아닌 것!
“요리도 공격이 될 수 있지… 않나?”
“…태현 님. 제가 양보해서 노래랑 마법까지는 사냥이 된다 치더라도 요리로 몬스터 잡는 건 진짜 아닌 것 같거든요….”
광기의 발상!
아무리 요리 스킬 올리려고 해도 몬스터를 요리로 잡으려고 한다니.
“게다가 요리로 데미지 주면 악명이 올라가지 요리 스킬이 올라가진 않잖아요.”
“나는 요리 스킬이 아니라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 스킬이라, 좀 다르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리 아키서스가 붙었어도 요리로 데미지 주는 게 스킬 경험치가 올라가진….”
말하던 이다비는 멈칫했다.
아니, 설마 올라가나?
“…몬스터 찾아서 확인해 보실래요?”
“후후. 그러려고 했지.”
[<모래의 길>에 도착했습니다.]
[열기로 인해 지구력이 빠르게 소모됩…]
[허기가 빠르게…]
[……]
태현은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를 사용해서 정체불명의 요리를 만들었다.
아스비안 제국의 플레이어들도 먹지 않을 것 같은, 수상쩍게 생긴 요리!
‘하나. 둘. 셋.’
파아앗!
모래 속에서 거대한 전갈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태현은 바로 요리를 집어 던졌다.
폭탄 좀 많이 던져 본 솜씨!
[<강철껍질전갈>이 <원한 서린 떡>을 먹습니다!]
[<강철껍질전갈>이 중독 상태에 빠집니다!]
[……]
[……]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
“…….”
오른다!
세상에 뭐 이런 황당한…!
물론 요리사들이 요리를 사용해서 덫을 만들 때도 있긴 했지만….
“잘 됐군. 간다.”
“태현 님. 아무리 가능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
태현은 못 들은 척 움직였다. 요리 스킬뿐만 아니라 다른 스킬들도 올려야 했기에 움직임이 바빴다.
“노래, <빙결공의 얼음성>!”
[노래 스킬이 낮습…]
[행운 스킬이 높…]
[……]
[<빙결공의 얼음성>을 불렀습니다! 성을 빼앗긴 악마 공작의 어리석음을 조롱하는 노래는 악마들을 분노하게 만들 것입니다!]
[일정 확률로 악마가 소환될 수 있…]
[얼음 관련 스킬 데미지가 올라갑…]
-냉기의 저주!
태현이 갖고 있는 마법은 전부 다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으로 교체당했지만, 냉기의 저주는 별개였다.
냉기의 핵에 들어갔다가 강제로 받게 된 스킬!
쩌저적, 쩌적-
[냉기의 저주가 사용자에게 데미지를…]
‘정말 쓰레기 스킬이군.’
태현은 투덜거리며 뒤로 뛰었다. 한 번 스킬을 쓸 때마다 범위 밖으로 도망쳐야 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