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94화
아스비안 제국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게임 플레이에 지장 가는 수준은 아니었다.
플레이어들한테 필요한 건 다 지원해 줬으니까.
무기를 만들고 수리해 줄 대장장이들이나, 장사하는 상인들 등 이런 부분은 꽤 괜찮았다.
그러나 사람은 맛없는 것만 꾹 참고 먹으면서 살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하물며 즐기려고 온 게임에서야!
아무리 게임에 별 지장 없다지만 그걸 누가 즐기겠는가. 태현처럼 스탯 1 올릴 수 있으면 어떤 고난도 참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즐기면서 레벨업하길 원했다. 아니, 사실 즐기기 위해 레벨업하는 것이었다.
기껏 레벨 올렸는데 먹는 건 딱딱하게 굳은 검은 빵이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아스비안 제국의 요리는 대부분 다 그랬다.
[상인이 도착했습니다!]
[새로운 아이템이 가게에 공급됩…]
-와! 상인 왔다! 아이템 사러 가자!
-이번에 음식 좀 넉넉히 사야겠어. 달달한 게 땡기는데. 케이크 종류로 사야지.
-난 팥 들어간 거. 단팥죽 있으면 좋겠다.
-야, 사냥은 무조건 고기지. 고기 요리 위주로 살 거야.
-고기는 빨리 상하지 않아?
-아냐. 잘 처리된 거면 꽤 오래 가.
우르르 몰려간 플레이어들을 맞이해 준 건 한 품목으로 통일된 요리였다.
모래와 톱밥이 섞인 고대의 검은 빵 (100/100)
모래와 톱밥이 섞인 고대의 검은 빵 (100/100)
……
한 품목으로 통일된 미친 가게!
빵에 ‘고대’가 뭔 의미가 있겠는가. 더 딱딱하고 맛없을 뿐이었다.
-아니 이게 뭐에요! 요리가 왜 이것밖에 없어요!
-당신 상인 맞아?
-클클클… 우리는 어차피 죽은 존재라 요리에 별 관심이 없어… 창고에 있는 걸 꺼내온 거니 먹든가 말든가….
NPC들이 대부분 언데드인 이상에야, 아무리 따져도 달라지지 않았다.
상인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중앙 대륙에서 열심히 식재료를 들고 왔다갔다 움직였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일단 거리도 거리고, 오가면서 유통 기한 짧은 건 상하고, 가는 길에 바다 괴수한테 습격이라도 당하면 피해 크고….
그렇게 갖고 온 식재료들도 사람 숫자가 많다 보니 순식간에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달리는 상황!
꼭 요리에만 한정된 건 아니었다.
각종 제작, 예술 직업도 부족해서 난리였다.
퀘스트 깨야 하는데 악기 연주해 줄 사람이 없어서 곤란해하는 모습도 여기서는 흔했다.
* * *
‘생각해 보니 토왕이가 대단하긴 해.’
평소에는 레벨 1이라고 무시했지만, 토왕이의 효과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식재료 무한에 가까이 수납한 다음 유통기한 무시하고 유지!
이다비가 가끔 토왕이를 쓰다듬으며 ‘너는 내가 가진 가장 비싼 아이템이야’라고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이 토왕이의 가치를 안다면 놀라 뒤집어질 것이다.
“어? 저거 아탈리 왕국 깃발 아냐?”
“아탈리 왕국 함대가 왔다고?”
“설마….”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배에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
내리는 사람들의 복장.
눈썰미 좋은 사람들은 알아볼 수 있었다.
저건….
“요, 요….”
“요리사다!”
“뭐?! 비켜! 우리 길드에 데리고 갈 거야!”
“저리 꺼져! 우리 파티에 들어갈 테니까!”
“요리 파세요! 달달한 거 무조건 삽니다!”
“식재료 다른 놈한테 주지 말고 나한테!”
‘아수라장이군.’
태현은 난리가 난 선착장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무슨 오지에 박혀서 생활한 것처럼 자극에 굶주려 있었던 것이다.
“일단 여기서 장사 좀 하고 들어가야겠다. 이다비! 준비하라고 말해!”
“네!”
“가루다 전사들, 고대 제국 이탈자들. 공간 만들어라! 쟤네 밀어내!”
“예!”
명령이 떨어지자 배에서 플레이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우르르 내려서 공간을 잡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에, 모인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뭘 하려고 저러지?
철커덩, 철커덩-
“마차 갖고 내려와!”
“솥에 불 올려! 요리 준비 들어간다!”
[많은 요리사들을 지휘해 대량의 요리를 시도합니다!]
[현재 요리 스킬이 낮습니다. 페널티를…]
[최고급 전술 스킬을…]
[행운…]
[칭호…]
“고기는 왼쪽, 수프나 탕류는 그 옆, 야채는 오른쪽, 디저트는 가장 끝으로! 각자 자신 있는 분야로 가서 맡아라!”
태현의 말이 쩌렁쩌렁 울리자 모인 요리사들에게 버프가 들어갔다.
[추가 버프…]
[……]
[……]
최고급 전술 스킬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버프!
요리사들이 각자 자기가 자신 있는 쪽에 붙어서 준비를 마치자, 식재료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토왕아! 힘내!”
토왕이는 대꾸할 여력도 없이 식재료들을 뽑아내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괴수 뒷고기, 감자, 괴수 고기, 당근, 괴수 고기, 무, 괴수 고기, 대파….
“아니 왜 이렇게 고기가 많아요?”
“그러게? 보통 고기가 더 적어야 하지 않나?”
설탕이나 밀가루보다 고기가 더 많이 나오는 기현상에 요리사들은 당황했다.
대체 저 고기는 어디서 다 나온 거야?
치이익-
“오오… 오오오…!”
“요리다! 진짜 요리야!”
“모래빵이 아니라 육즙 흘러 넘치는 스테이크야! 밥도 있어!”
“줄 서!”
“저긴 국수도 있어! 국물 냄새 장난 아냐!”
맛대가리 없는 음식만 먹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한계에 달해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먹음직스러운 요리의 냄새는 고문이나 마찬가지!
파티나 길드에 요리사 영입하러 온 사람들도 정신을 잃고 우르르 줄을 섰다.
[요리를 성공적으로…]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
[……]
“와… 와 이건 진짜….”
“이렇게 많이 오는 건 처음 아니냐?!”
태현을 따라온 요리사들도 당황했다.
이렇게 많이 몰려드는 손님들을 상대하는 건 또 처음이었던 것이다.
“손 멈추지 마!”
“속도가 못 따라가는데?? 뭔 먹어도 먹어도 사람들이 계속 와!”
“아니, 배 부르면 그만 와요! 왜 계속 먹는 거야!”
요리사들이 이런 소리를 하는 것도 웃겼지만, 정말 진심이었다.
먹었으면 그만 와 좀!
“걱정 마. 지금 쌓인 재료도 거의 거덜 났으니까.”
“어. 진짜네?! 언제 이렇게 줄어들었어??”
“우리 진짜 열심히 했다!”
요리사들은 갑자기 스스로 뿌듯해졌다.
우리 좀 대단한 거 아니냐?
김태현이랑 같이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빡센 대량 요리도 막힘없이 해내고….
‘엄청나게 성장한 기분인걸?’
스킬 경험치는 물론이고 인간적으로도 성장한 기분!
힘들고 힘들었지만, 이제 곧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요리사들은 힘을 냈다.
그리고 재료가 1차 소진됐다.
“다 됐다!”
“후. 휴식이다! 휴식!”
앞에 줄 서있던 플레이어들은 그릇을 들고 항의했다.
“우우! 아직 못 먹었는데!”
“재료가 없어요! 다음 기회에 오….”
촤르르르륵-
“…….”
“…….”
요리사들은 할 말을 잃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식재료를 꽉꽉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토왕이 안에 있었던 식재료 2차 개방!
“아, 아니. 김태현… 씨?”
“왜?”
태현은 시선 하나 주지 않고 손을 놀리면서 말했다.
이다비도 이번 기회에 같이 요리 스킬을 올리려는 듯이 옆에서 동시에 요리하고 있었다.
“저희… 안 쉽니까?”
“뭐? 벌써?”
“…!!”
태현의 말에 몰려 있던 사람들은 환호했다.
“역시 김태현이다!”
“우리를 위해 이렇게…!”
“요리사들 불평하지 말고 빨리빨리 일해! 돈 낼 테니까!”
“야 이 미친놈들아!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일했는데…!”
“우우우! 시끄럽다!”
“빨리 일해라!”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입을 모아 빨리 요리해달라고 외치자, 확실하게 압박으로 다가왔다.
요리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다시 재료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요리 스킬이 오릅…]
“흑흑흑. 쉬고 싶어….”
“김태현이 만들어 준 포장마차 쓸데없이 성능 좋아서 요리가 더 많이 된다고….”
“식칼 내구도에는 왜 보너스를 주는 거야… 쉬지도 못하게….”
* * *
아스비안 제국 항구에 요리사들이 왔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근처에 있던 플레이어들이란 플레이어들은 전부 다 모여들었다.
이들이 만족할 때까지 요리를 만든 요리사들은 완전히 뻗어버렸다.
“차라리 우리의 목을 쳐라! 김태현! 더 이상은 못 하겠다!”
“헤헤헤… 내가 지금… 감자를 깎고 있는 거지? 맞지? 이거 감자 맞지?”
“멍청아! 그건 내 머리야!”
슬슬 맛이 가는 요리사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고급 9에 79%군.’
이렇게 물량으로 밀어붙였는데도 21%가 남다니!
“걱정 마라. 이제 쉬라고 할 테니까.”
“…!!”
“정, 정말이지? 정말이지???”
“그래. 내가 언제 거짓말 하는 거 봤냐?”
“많이 봤던 것 같….”
“쉿, 닥쳐. 멍청아. 김태현이 마음 바꿔서 다시 요리 시키면 어쩔 건데?”
요리사들은 눈물로 감사하고 호다닥 도망쳤다.
아무 곳이든 가서 일단 눈 좀 붙이고 올 생각!
이다비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금화 주머니를 늘어놓고 있었다.
요리를 판매하면서 얻은 막대한 상인 경험치!
거기에 골드까지!
이번 요리 대란의 승자는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태현 님! 저 포장마차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별로 생각 안 해봤는데.”
“혹시 저희가 가져가서 써도 되겠습니까!?”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욕망으로)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물었다.
태현이 만든 이동식 강철포장마차는 요리사에게 아주 좋은 물건이었다.
실력 없는 요리사도 각종 버프를 주는 사기적인 아이템!
게다가 솥, 화덕, 각종 도구 등 요리사한테 필요한 건 전부 안에 들어 있으니, 요리사 시작하는 사람은 저 포장마차 하나 갖고 시작하면 OK였다.
“쓰고 싶으면 써도 되겠지?”
“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플레이어들의 만족도가 매우 올라갑니다!]
[도시에 일시적으로 버프가…]
[포만의 행복…]
[……]
태현이 이 주변을 요리로 싹 쓸어버린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오랜만에 맺힌 한을 풀 수 있었다.
덕분에 받는 추가 버프!
“남은 요리 경험치는 다른 사람들을 노려야 할 것 같은데.”
“어떤 사람들이요?”
“부족들이나 귀족….”
말하던 태현은 멈칫했다.
어라?
“…여기 귀족들 다 언데드였지?”
“그렇죠….”
하필이면 요리를 가장 안 먹을 법한 사람들!
* * *
김현아는 이세연한테 항구 도시를 받아 열심히 관리하고 있었다.
물론 본인도 레벨 업을 해야 했기에, 도시 관리에만 전념할 수는 없었다.
퀘스트 깨다가 가끔 와서 확인하고, 퀘스트 깨다가 가끔 와서 확인하고 이러는 식!
-김현아 님. 플레이어들이 요리사하고 맛있는 음식 좀 늘려달라고 성화입니다.
-어쩌라고! 대장장이 없으면 당장 수리 못 한다고 징징댈 거면서! 포만감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요리만 있으면 감사해야지!
이런저런 불평들이 많았지만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부터 챙길 수밖에 없는 것!
맛있는 요리는 솔직히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없다고 당장 사냥이 멈추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도시에 <포만의 행복> 버프가…]
[사람들이 모두…]
“???”
김현아는 메시지창에 당황했다.
다른 스탯이 오르는 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왜 요리 관련으로 사람들이 만족한다고 나오지?
김현아는 허겁지겁 항구로 달려갔다.
이게 무슨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