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92화
‘상대는 보스 몬스터다. 상대는 보스 몬스터다.’
태현이 그런 각오를 다지고 있는 동안, 스미스도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눈앞의 상대를 같은 플레이어라고 생각하지 마라.
-상대는 1:1을 해야 하는 플레이어가 아니다.
-상대는 기본적으로 파티 플레이로 잡아야 하는 보스 몬스터다!
태현이 예상했던 것보다 <뉴욕 라이온즈>의 준비는 더 살벌했다.
최고 선수를 잡기 위해서 이 정도 준비는 양반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스미스는 숨이 막혀오는 기분을 느꼈다.
압박감!
마치 닥쳐오는 폭풍을 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것 같은 압박감이었다.
지금은 스킬이 켜져 있는 상태라 데미지도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HP도 아직 넉넉했다. 주변에 동료들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무서웠다!
스미스는 새삼스럽게 느꼈다.
김태현이란 선수의 존재감을.
맞서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겁먹게 만드는 존재!
‘위에서 베듯이 내려오다가 페이크 걸고 찌르기, 찌른 다음에 한 번 더 옆으로 페이크 걸고 다시 후려치고… 큭. 크윽.’
수많은 데이터를 만들어서 그렇게 연습했는데도 실전의 태현은 움직임이 달랐다.
변화무쌍 그 자체!
“스미스 님! 제가 갑니다! <데메르의 고귀하고 헌신적인 희생>!”
[<데메르의 고귀하고 헌신적인 희생>으로 인해 <아키서스의 저주>가 제란에게 옮겨갑니다!]
“!”
태현은 입을 떡 벌렸다.
저주 받아내기!
‘아키서스의 저주까지 대응책을… 아니, 생각해 보니 안 했을 리가 없겠군.’
컨트롤도 연습했는데 저주 대비책을 안 세웠을 리가 없었다.
하필이면 데메르 교단이 이런 곳에서 발목을 잡다니.
‘지금 스미스한테 가장 효과적인 디버프가 <아키서스의 저주>였는데 막혔다. 그렇다면 다음 수단은….’
태현의 머릿속은 1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도 빠르게 회전했다.
아키서스의 권능? 사디크? 차라리 카르바노그의 창으로 흔들어 봐야 하나?
수십 개가 넘는 버프를 받은 상태로 빛나는 스미스는 상대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강철 벽 같았지만, 태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적 하나에 흔들리기에는 너무 강해져 버린 멘탈!
‘변수 만들기에는 스미스가 너무 탄탄하고… 카르바노그의 창도 대응 방법을 생각해놨을 가능성이 컸다.’
스미스 뒤에서 긴장된 눈빛으로 대기하고 있는 놈들이 몇 명 보였다.
<아키서스의 저주>를 대신 받아낸 것처럼 다른 방법을 카운터치기 위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아니 그런데 이세연이면 모를까, 스미스 같은 놈이 저런 방식 쓰는 건 반칙 아냐?’
프렌드 실드는 태현이나 이세연 같은 사람이 쓰는 거였지 스미스가 쓰는 게 아니었다.
[카르바노그가 원래 사람이 아키서스 상대하다 보면 좀 과격해지기 마련이라고 말합니다!]
‘역시 황제 살해자인가.’
태현의 손이 꿈틀거렸다.
지금 태현은 폭풍처럼 공격을 퍼부으면서 스미스가 방어에만 전념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찌나 매서웠는지 스킬 키고서도 스미스는 방어와 회피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태현의 MP 소비와 스킬 쿨타임으로 곧 한 번은 멈추게 되었다.
태현은 그때 <황제 살해자>를 꺼내야 하나 고민했다.
스미스가 각종 사기적인 스킬들로 데미지를 급감시키고 있다지만 <황제 살해자>는 그런 걸 무시하고 HP의 퍼센트로 데미지를 입히는 무시무시한 사기 무기!
게다가 얻은 지 별로 지나지 않아 스미스도 대책이 없을 가능성이 컸다.
‘이세연한테 쓸 줄 알았는데….’
만들 때는 이세연 생각만 했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사실 이건 이세연한테 그렇게 효과적인 무기가 아니었다.
이세연은 애초에 네크로맨서라 HP가 그렇게 높지가 않은 것이다.
이건 무식하게 HP 높은 놈들한테 효과적인 무기!
하지만….
‘쓰는 순간 나도 HP가 엄청나게 깎인다. 이런 준비 안 된 상황에서 굳이 거기까지 가야 하나?’
주변은 혼란스럽고, 김태현 vs 스미스라는 어마어마한 대결을 목격한 덕분에 미친 듯이 뜨거웠다.
스미스마저도 흥분한 게 보였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태현 혼자 냉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도박을?
지금 목표는 시간 끌기였지 스미스 잡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태현은 스미스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한동안 정보를 숨기고 수련만 한 탓에 못 보던 스킬들에 이상한 추종자들까지 덕지덕지….
리그부터 시작해서 온갖 정보가 다 공개된 태현과는 정반대였다.
‘어차피 스미스도 길드 동맹하고 싸우게 된 이상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숨길 수는 없을 터. 정보가 슬슬 새어 나올 거다. 이다비한테 부탁해서 챙기면 되고….’
“보스몹! 감히 우리 길드의 최고존엄이시자 킹갓제너럴엠페러이신 스미스 님에게…!”
분노한 외침이 들려왔다.
태현의 소환수들이 퍼붓는 공격을 뚫고 간신히 도착한 스미스 친위대들!
그들은 태현이 스미스를 공격하는 것을 분노하고 자책했다.
감히!
“너 부하들한테 저런 거 시키고 노냐? 쑤닝도 저러지는 않을 텐데….”
“아, 아닙니다! 제가 시킨 게 아닙니다!”
귀 딱 닫고 묵묵히 싸우고 있던 스미스가 처음으로 반응했다.
솔직히 저건 좀 부끄러웠다!
“스미스. 넌 아직 멀었다.”
태현이나 이세연처럼 뻔뻔한 사람들은 저런 소리 들어도 ‘뭐 그런 소리 좀 들을 수도 있지’ 했을 것이다.
스미스의 얼굴 두께는 아직 얇았던 것!
“!”
당황한 순간 빈틈을 타고서 태현이 파고들었다.
-치명타 폭발! 아키서스의 네 번째 공격!
스미스의 방패에는 어마어마한 스킬들이 중첩되어 있어 태현의 폭딜도 받아내고 있었지만, 그것도 제대로 받아낼 때의 이야기.
정확하게 갑옷 빈틈을 찌르고 치명타를 넣자 스미스에게 처음으로 제대로 된 데미지가 들어갔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검술 스킬이…]
[……]
[적에게 추가 효과가…]
[둔화 상태에…]
[적의 움직임이 느려집…]
-데메르의 완전회복!
-파이토스의 위대한 신성….
뒤에서 바로 힐 넣고 스미스 본인도 회복 들어가자 순식간에 HP가 차올랐다.
그러나 태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슬슬 튀려고 딜 넣은 거였다.
태현이 넣은 모든 공격을 다 씹어 먹고 버티는 게 황당하긴 했지만, 상대도 태현을 공격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
시간도 끌었으니 이제 물러설 때였다.
“잘 있….”
“보스몹! 치사하게 속임수를!”
“지금 너희 몇 명이서 싸우고 있는 건 알고 있는 소리냐?”
한 명 대 수백 명으로 싸우고 있는 놈들이 뭐 저리 당당해?
그러나 스미스 친위대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보스몹을 상대하는 데 그 정도는 당연한 거지!”
“…잠깐. 이 자식들 아까부터…?”
태현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놈들….
날 보스몹이라고 부르고 있잖아?!
‘아니 은근히 기분 나쁘네.’
뭔 뜻인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나쁜 기분이 돌아오진 않았다.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스미스 님! 가겠습니다!”
“잠깐, 아직….”
“<파이토스의 신성한 투기장>!”
파이토스 교단 쪽으로 직업을 찍은 친위대 몇 명이 비장하게 외쳤다.
태현은 그 모습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희생 각오하고 쓰는 스킬들 중에 약한 스킬은 없는 법!
[파이토스의 신성한 투기장이 사용되었습니다! 영역이 펼쳐집니다!]
[이 영역에서는 모든 아이템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
파이토스 교단의 신성 영역은 장비 다 무효화시키고 맨몸으로 싸우게 하는 살벌한 효과였다.
메시지창이 끝나기도 전에 태현은 깨달았다.
‘이 자식들 저주 치려고 이러고 있었구나!’
아다만티움 갑옷 때문에 저주 효과가 너무 약하니 나온 방법!
솔직히 등골이 오싹했다.
이 다음에 들어올 저주도 분명 강력하리라.
그러나 이번에는 태현이 유리했다. 왜냐하면….
“잘 있어라. 스미스!”
태현은 애초부터 발을 빼려고 했었으니까!
태현은 갖고 있던 도주기들을 닥치는 대로 사용하면서 달려 나갔다.
신성 영역 친 다음 저주 걸려고 준비하고 있던 친위대들이 당황했다.
“보스몹! 어디 가는 거냐!”
“보스몹! 다시 싸우자!”
“보스몹! 보스몹!”
태현을 적으로 생각하고 훈련한 부작용!
그렇게 무시무시하고 괴물 같은 놈이 도망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는 쿨한 사람이었다.
‘아, 쟤네 되게 재수 없네 진짜.’
물론 보스몹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감정은 별개였다.
* * *
-김태현 vs 스미스! 스미스, 처음으로 김태현을 꺾다!
-오늘 김태현이….
-….
-….
숨만 쉬어도 기사로 오르는 태현이었는데, 스미스와 싸웠으니 안 올라오는 게 이상했다.
수천 개가 넘는 기사들이 이번 사건을 알려댔다.
태현에게 한 맺힌 몇몇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지만 대부분은 심드렁했다.
-수백 명이 다굴쳐놓고 꺾었다고 자화자찬이냐? 양심이….
-심지어 잡지도 못했어!
-김태현 다치지도 않고 빠져나갔는데 뭘 꺾어요 꺾긴.
-자존심을 꺾은 듯.
-스미스는 비열하고 더러운 놈이다! 아무 잘못 없는 오스턴 왕국을 이렇게 침략하다니!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 분명하다!
-그렇다! 김태현을 응원한다! 김태현! 스미스를 잡아다오!
└얘 길드 동맹 같은데…?
└└길드 동맹이 김태현을 응원한다고? 진짜? 에이, 설마 자존심이 있으면 그러질….
└└└너 이 자식 판온에서 마주치면 조심해라.
* * *
-김태현!! 괜찮냐!?
-태현아!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지금 달려가야 하나!?
-스미스 놈하고 왜 싸운 겁니까 선배님?!
-선배, 스미스 유성 게임단에 영입한 다음 괴롭힐까요? 언플도 가능….
-다들 진정해. 괜찮으니까.
-넌 지금 뭐하고 있는데?
-다시 요리 준비하고 있는데.
-…….
-…….
일행은 할 말을 잃었다.
스미스도 난 놈이지만 정말 김태현 저놈은 정말…!
-아니… 뭐… 보복… 그런 거 안 해…?
-내 스킬, 내 퀘스트가 우선이지.
맞는 말이었다.
지금 태현은 스미스와 싸울 이유가 없었다.
시간과 노력, 자원은 어마어마하게 들어가지만 길드 동맹만 싱글벙글하게 되는 일!
그보다는 직업 퀘스트를 우선시해야 했다.
냉정한 판단이었지만 사람은 원래 매번 냉정할 수는 없었다.
판온에서 최고로 꼽히면 자존심이 있어서 ‘내가 복수한다!’ 하면서 씩씩대야 하는데….
태현은 별다른 감정이 없어 보였다.
‘뭐 패는 건 나중에 패도 되고….’
그리고 사실 생각해 보면 태현이 더 많이 팼다. 스미스는 거의 한 대도 못 때렸지.
“그래서 요리사들.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지?”
“…….”
“…….”
정신없이 빠져나온 플레이어들은 깨달았다.
아, 이제 갚을 시간이구나!
“김태현이 그래도 좀 랭커니까 사정 봐주지 않을까?”
“야.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예전에 노드란체 끌려간 놈들 들어봤는데 아주 칼같이 시킨다더라.”
“길드 동맹 길드원들 중에 붙잡힌 놈들 이야기 들어본 적 있는데, 시킨 거 다 하고 나니까 건설 스킬 레벨이 중급 후반을 찍었다고….”
“…그건 좋은 거 아닌가?”
“…그, 그런가?”
그 정도로 올려주면 잡퀘도 할 만한데?
“너무 걱정할 거 없다. 이제까지 했던 것처럼 비슷하게 할 테니까. 포장마차 만들어 줄 테니까 거기서 요리해라.”
“…!”
“정, 정말?!”
태현이 갖고 있는 강철포장마차 비슷한 걸 만들어준다는 말에 플레이어들은 혹했다.
아니 그런 귀한 걸?
‘요리사들 대량으로 지휘하면서 추가 보너스 받아야겠군.’
혼자서 대량요리 하면서 스킬 경험치 만들고+거기에 다른 요리사들까지 같이 지휘하면서 추가 보너스!
극한의 물량으로 스킬 레벨을 그냥 밀어버리려는 속셈이었다.
“진짜 마차를 만들어… 줍니까?”
태현은 인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우리가 남도 아닌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뭉클!
원래 이런 상황에서 툭 던져주는 저런 말이 사람 가슴에 와닿는 법.
요리사들은 고개를 돌리며 붉어진 눈시울을 숨겼다.
“흥. 딱히 감동받지는 않았다고.”
“맞아. 저런 말 한 마디에 속아 넘어갈 놈이 어디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