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87화
이세연은 급히 부정했다.
“나는 순수하게 널 돕기 위해서….”
“알겠어. 알겠어. 불러볼게.”
이세연은 녹음하지 못하는 걸 매우 아쉽게 생각했다.
아….
이걸 녹음했어야 하는데…!
이세연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김태현은 노래를 잘 부를까? 못 부를까?
‘아마 못 부르지 않을까? 그렇게 많이 불러본 것 같지 않으니까. 음치면 재밌겠다…!’
태현은 목을 몇 번 가다듬은 다음 가볍게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놀랍게도….
잘 불렀다.
‘잘 부르잖아?!’
어쩐지 속은 기분!
교과서적인 발성법으로 깔끔하게 소리를 뽑아내서, 음정을 유지하는 게 오랫동안 노래를 연습한 사람 같았다.
“…노래 많이 안 불러봤다며?”
“이번에 스킬 올려야 하니까 이것저것 보면서 연습했지.”
남들이 들으면 매우 재수없어 할 소리!
그러나 이세연은 태현의 말에 왠지 모르게 납득했다.
‘하긴 얘라면 이 정도는….’
갑자기 무슨 능력을 갖고 와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선수분들. 나와 주십시오!”
대기하고 있던 선수들이 일어났다.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건 각 팀의 주장들이었다.
-리그도 끝났겠다, 선수들을 모아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방송을 한 번 찍어봅시다!
-좋은 생각이십니다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들지 않겠습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위에서 무제한으로 써도 된다고 허락이 나왔으니까.
-?!?!
판온 리그의 인기는 방송사도, 광고주도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지금 판온 리그를 막 마친 상황에, 리그에서 활약한 한국인 선수들만 모아서 방송을 한다?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제작비고 섭외비고 뭐고 상관 없었다. 무조건 이 화제는 먼저 잡아야 했다.
안 그러면 다른 방송국이 할 테니까!
“꽤나 오래 기다렸는데.”
“먼저 할 이야기가 많았나 봐.”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선수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떠드는 방송이었지만, 순서가 따로 있었다.
탱커들끼리 따로 내보내서 떠들게 하고, 그 다음에는 딜러들이 나와서 또 떠들고, 그 다음에는 힐러들이….
이런 식으로 차례대로 선수들이 나와서 대화를 해나가는 순서!
주장 맡은 선수들은 가장 마지막에 나오니, 보고 있는 사람들을 기대하게 만들 수 있었다.
‘케인 놈 괜히 불안하군.’
밖에서 들리는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태현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케인이 헛소리하고 있진 않겠지?
‘새 감독님도 만났겠다 괜찮겠지.’
태현은 믿기로 했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기도 했고….
걸어 나가면서 이세연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맞다. 새로 감독을 받았다면서?”
“아. 어. 혼자서 하니까 힘들더라고.”
“…….”
당연하지!
세상에 어떤 무식한 사람이 그걸 혼자 다 해!
태현만큼은 아니었지만, 이세연도 유성 게임단에서 상당한 비중을 갖고 있었다.
유회장은 완전히 개박살 난 유성 게임단을 부활시켜서 최상위권 팀으로 만든 이세연에 대해 굳은 신뢰와 존중을 보내고 있었고, 회장이 존중하는데 감히 깝치는 직원들은 없었다.
덕분에 이세연은 게임단 운영 상태나 앞으로의 계획도 어느 정도 들을 수 있었다.
‘…그 감독 때문에 유성 게임단은 난리가 났는데 그건 모르나 보네.’
태현은 잘 모르는 것 같았지만, 유성 게임단은 한바탕 뒤집어졌었다.
유회장이 극대노한 것이다.
-왜? 왜??
-아, 아니. 진정하십시오. 회장님!
-내가 진정시켜달라고 했나? 왜냐고 물었다! 왜?? 왜지?
-아니… 그것이….
-늦게 제안했나?
-빨, 빨리 제안했습니다.
-조건이 부족했나?
-조건은 좋았고 그쪽도 만족했….
-그런데 왜 이런 기사가 나와서 내 뒤통수를 때린단 말이야! 설명해 봐!
-그게… 결제 과정에서 위에서 확인해야 한다고… 가져가시는 바람에 시간이 좀….
-…….
감독 놓친 걸로 인해 피바람이 불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세연은 그게 소문이 아닐 거라고 믿었다.
그러고도 남아!
이쯤이면 슬슬 유성 그룹 사람들도 유성 게임단을 누가 밀어주는지 알아차릴 것도 같은데….
* * *
“팀 KL의 주장이자, 이번 리그의….”
태현이 나오자 사회자는 아주 길고 길게 설명을 줄줄 늘어놓았다.
짧게 간추리려고 해도 너무 붙일 게 많은 선수!
“…김태현 선수입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자리에 이미 앉아 있던 선수들은 존경과 질투가 섞인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태현한테 많이 당한 선수라 하더라도, 태현의 실력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 시즌으로 인해 태현은 그야말로 선수들의 선수가 된 것이다.
선수들이 롤모델로 삼고 싶어 하는 선수!
태현은 자리에 앉았다. 옆에 이미 팀 KL 선수들이 앉아 있었다.
“이다비. 케인이 쓸데없는 소리 안 했지?”
“태현 님. 마이크 끼셔서 소리 다 들리는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케인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안 했어…!”
“하하하! 케인 선수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는지부터 체크하시는군요. 과연 주장이자 구단주다우십니다!”
처음 보는 선수 한 명이 손을 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김태현 선수한테 질문해도 됩니까?”
태현은 몰랐지만 2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신인 선수였다.
“아. 물론 하셔도 됩니다! 오늘 김태현 선수 질문 좀 많이 받을 거 같네요!”
신인 선수들에게 태현은 물어볼 게 너무 많은 상대였다.
과연 어떤 걸 물어볼까?
딜 방법? 스킬 연계 방법? 캐릭 성장 방법? 리그 전략 메타? 아니면 다른 멘탈적 조언?
“진짜 집안일을 혼자 다 하십니까?”
“…….”
“…….”
“…….”
“다 합니다.”
‘헉’ 하며 놀라워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세상에!
케인의 얼굴은 더욱더 붉어졌지만, 첫 질문이 쓸데없는 질문이었기에 나온 사람들은 긴장을 풀었다.
야, 첫 질문이 저 정도면 나도 물어봐도 되겠는데?
* * *
온갖 질문이 쏟아져 들어오자 사회자가 슬슬 제지했다.
“자. 자. 여러분! 질문은 좋습니다만 이대로면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넘어가죠!”
선수들은 매우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더 물어보고 싶었는데!
“국내 팀 선수에게만 물어본 것 같은데, 이번에는 해외 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에게 질문을 던져볼까요? 자. 정재형 선수!”
‘누구지?’
태현이 의아해하자 이다비가 손가락으로 태현의 손바닥 위에 글씨를 써줬다.
-새로 들어온 뉴욕 라이온즈 2군 후보 선수에요. 약간 불안정하지만 괜찮은 원거리 딜러래요.
-아. 그래? 고마워.
“…….”
이세연은 옆에서 앉아 있다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 사귀니?
왜 신성한 방송 중에 서로 손을 잡고 뭔….
“그 명문인 뉴욕 라이온즈에 들어가셨는데, 뉴욕 라이온즈는 어떠신가요?”
중국 쪽 대형 게임단도 자본은 어마어마했지만, 사실 해외 선수들은 중국 쪽의 폐쇄적인 분위기를 꺼리는 경우도 많았다.
이것저것 간섭도 많고 게임 외적인 것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미국 쪽 대형 게임단은 그런 부분에서 괜찮은 편!
때문에 같은 대형 게임단이어도 선수들한테는 미국 쪽이 더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그런 면에서 뉴욕 라이온즈는 최고 인기 팀 중 하나였다.
규모에, 인기에, 성적에, 실력에….
“감, 감사합니다. 이번에 들어갔는데 다들 대단하신 분이고 해서 정말 긴장됐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주전으로 올라올 것 같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신인다운 풋풋함!
다른 선수들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스미스 선수는 1부 경기에서 한동안 안 보이던데, 어떻게 된 건가요?”
“스미스 선배님은 지금 전술을 최종적으로 점검하고 맞추시느라 그러실 겁니다. 다음 시즌부터는 나오실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이세연이 태현에게 작게 속삭였다.
“치사하지 않아?”
“좀 그렇긴 하지. 근데 뭐 어쩌겠어. 자기가 안 나가겠다는데.”
이세연이나 태현은 지든 이기든 나가서 최선을 다해 이것저것 쓰고 있는데 지기 싫어서 쏙 빠지다니!
치사하다, 스미스!
“근데 요즘 스미스 기세가 좀 무섭더라.”
레벨 300 넘긴 건 물론이고 길드 동맹 군대를 갈아버리는 것까지.
그걸로 또 레벨 업을 꽤 했을 것이다.
태현은 스미스가 영 껄끄러웠다. 그 순수하고 성실한 성격 때문은 아니고… 아니, 물론 조금은 있긴 했지만….
‘성기사는 판온 1 때부터 싫었어.’
무식하게 HP만 많아서 때리는 사람을 먼저 지치게 만드는 악몽!
각종 버프 키고 웅크린 성기사는 정말 끔찍했다.
태현이 몇십 방을 때려도 회복하고 버티고 스킬로 방어한다면….
‘그나마 아다만티움 갑옷이 있어서 망정이지….’
HP 낮은 태현은 회피력과 컨트롤만 믿어야 했다. 한 번 회피가 뚫렸을 때 들어오는 데미지가 치명적인 것이다.
그때의 안전장치가 바로 아다만티움 갑옷이었다.
‘황제 살해자가 있어서 해볼 만할 것 같긴 한데 이것도 사실 불안정하단 말이지.’
황제 살해자는 정말 사기적인 아이템이었다.
상대 HP의 총 %로 깎아버리는 미친 무기!
문제는 이걸 쓰면 안 그래도 불안정한 태현의 체력이 더 깎여 버린다는 점이었다.
몇 번 쓰다 보면 바람 불면 날아갈 체력이 된다!
“네가 스미스보다 강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
태현은 너무 뜬금없는 이세연 말에 당황했다.
태현이 당황하자 이세연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아니… 네가 칭찬을 할 줄은 몰랐는데.”
“난 원래 칭찬할 건 칭찬하거든. 그리고 저번에 고마웠어.”
“뭐가?”
“모르면 됐어. 고마웠다는 것만 알아두면 돼.”
“설마 내가 널 이겨서 고맙다고?”
“태현 님. 제가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이세연은 눈빛으로 이다비에게 감사를 보냈다. 이다비는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태현 님. 저번에 태현 님이 이세연 도와준 거 말하는 거 아닌가요?
-뭐?! 내가 이세연을 도와줬어!?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 인터뷰 있잖아요. 이세연 졸렬한 전략 뭐라고 할 때 반박한 거요.
-아. 그거. 그건 딱히 도와준 게 아니라 사실이라 그런 건데.
셋이 떠드는 사이 정재형 선수는 열심히 질문에 답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사회자가 질문 하나를 던졌다.
“참. 뉴욕 라이온즈는 장비가 어떤가요?”
판온에서는 게임단이 구해 오는 장비도 능력이었다.
물론 플레이어가 오래 쓰고 있던 장비를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았지만, 의외로 리그 전용 장비를 따로 쓰는 선수도 많았다.
PVP 전용 옵션을 단 아이템을 쓰면 더 유리해지니까!
그런 면에서 대형 게임단들은 정말 돈으로 밀어붙였다.
이것저것 희귀한 재료에 장비를 싹쓸이하는 건 물론이고 랭커 대장장이를 고용하고….
“뉴욕 라이온즈 장비 정말 좋습니다! 저도 꼭 주전이 되어서 아다만티움 갑옷을 입고 싶습니다.”
“그렇군요! 응원하겠습니다!”
“…???”
“?!?!?”
떠들던 태현과 이세연은 멈칫했다.
방금 쟤가 뭐라고 그랬냐?
아다만티움 갑옷?!
“…네가 제공한 거야?!”
“뭔 헛소리야? 우리 입을 양도 부족한데!”
“안 그러면 대체 어떻게 벌써? 우리도 아직 못 만들었는데….”
“뭐야. 너희도 시도 중이었나?”
“그러면 안 하고 있었겠어?”
대형 게임단들은 다 어떻게든 아다만티움 갑옷을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다음 시즌에서 태현한테 싹 쓸려 나가기 싫으면 무조건 필요하다는 절박함!
‘뉴욕 라이온즈 얘네는 어떻게 만든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