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184화 (1,183/1,826)

§ 나는 될놈이다 1184화

신전을 되찾는 것과 신전을 뺏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사실 그 두 개를 구분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애초에 땅에는 주인이 없지 않은가.

그 땅의 주인을 정하는 건 사람의 제멋대로인 욕심….

[카르바노그가 그건 땅이고 이건 누군가가 분명히 지은 신전이라고…]

[이데르고 사제들이 자신을 희생해서 역병 기사를 불러냅니다!]

[이데르고 사제들이 신의 이름을 외칩니다!]

-절대 아키서스 놈에게 이 신전을 내줄 수 없다!

-우리의 믿음을 이데르고 님에게 바치자!

“하하! 어디 한번 이데르고한테 기도해 봐라!”

[카르바노그가 악당 같으니까 그만 하라고 외칩니다!]

‘화술 스킬 발동시키려면 어쩔 수 없어.’

눈물 흘리면서 막아서는 사제들을 쓸어 넘기는 태현.

매우 악당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래야지 화술 스킬이 써졌으니까!

[최고급 화술 스킬을…]

[상대의 사기가…]

[혼란 상태에…]

[……]

흑마법사나 주술사 같은 직업이 각종 저주 마법과 디버프 마법으로 적들에게 페널티를 준다면, 태현은 화술 스킬로 페널티를 줬다.

명성+악명+공포 등 스탯에 화술 스킬까지 겹쳐지면 어지간한 적들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쾅!

[이데르고 사제들의 기도실을 발견…]

“사디크의 화염!”

쾅!

[이데르고 성기사들의 검술대련실을 발견…]

“사디크의 화염!”

-불 좀 그만 지르지 못해 이 미친놈아!

-저 미친 방화마 놈을 막아!

이데르고 교단 NPC들은 비명을 질렀다.

지하 공간에서 태현은 닥치는 대로 사디크의 화염을 지르면서 돌진해 오고 있었다.

자기는 불에 데미지 안 입는다고 막 나가는 것!

물론 역병 다루는 이데르고 교단에게 이런 사디크의 화염은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하필 교단의 뛰어난 기사들이나 전사들도 밖에 나가 있는 상황.

누가 아키서스 아니랄까 봐 정말 절묘한 타이밍에 들어온 것이다.

* * *

-저기 에랑스 왕국 군대가 간다!

-이데르고 님의 신성한 영역이 사라졌지만 우리는 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이데르고 님의 이름을 알리고야 말겠다!

-가자! 적들을 죽여서 우리의 노예로 삼자! 더 강한 신수를 불러내야 한다!

<이데르고 역병의 노예>라는 영광스러운 직업을 가진 NPC, 아콰타르타는 미리반 시에서 나온 에랑스 왕국 군대를 노리고 있었다.

에랑스 왕국이 오스턴 왕국을 노리는 그 틈을 타 뒤를 공격할 생각!

-들어라. 오스턴 왕국 남부에는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역병지대가 있다고 한다. 그 역병지대를 누가 만들었겠느냐?

-바로 이데르고 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렇다!

사실은 아키서스가 한 것에 가깝긴 했지만….

이데르고 교단 NPC들은 알아서 좋을 대로 해석하며 신나했다.

물론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황당한 소리였다.

“야. 저런 헛소리를 하는데 믿어도 되냐?”

“안 믿으면 어떡하려고? 놈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말고 놈들에게서 뭘 뜯어낼 수 있을지나 고민해라.”

제카스와 도동수는 이데르고 교단 가입에 무사히 성공했다.

원래라면 ‘이데르고 교단 실시간 방송’ 같은 식으로 중계를 했겠지만 그들은 꾹 참았다.

지금 홍보했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크윽. 이데르고 교단에 들어간 플레이어들 몇 없을 텐데.’

사디크 교단도 그랬고 다른 교단도 그랬듯이, 한 번 대륙에서 사악한 세력이 터져 나오면 꼭 거기에 가입하려는 플레이어들도 우르르 나왔다.

사람은 꼭 정의로운 길만을 가지 않는 것!

그러나 이데르고 교단은 가입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곳이었다. 어지간한 플레이어는 말을 듣지도 않고 공격했으니까.

제카스의 정보가 아니었다면 둘도 들어오지 못했으리라.

“이데르고 교단은 안 망하겠지?”

“이데르고 교단은 안 망한다. 지금 쌓아 놓은 게 워낙 많아서, 잠깐 주춤하는 것처럼 보여도 다시 올라올 거다. 그리고 봐라. 에랑스 왕국이랑 오스턴 왕국 전쟁하는데 더 유리해지겠지.”

제카스의 말에 도동수는 그럴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 …잠깐만. 너 저번에도 김태현 잡을 수 있다고 해놓고 몇 번이고 깨졌잖아.”

“…….”

“너 말만 너무 번드르르한 거 아니냐? 이번에도 틀리면….”

“성기사님! 이놈이 자꾸 이데르고 님에 대한 불경스러운 소리를 합니다.”

-뭐라?!

“이… 이 자식…?!”

도동수는 경악했다.

제카스는 싸늘하게 도동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자꾸 주제넘게 선 넘지 마라. 도동수.”

“아. 알겠다고! 알겠어!”

“저 아콰타르타라는 NPC와 접근해서 친해져야 해. 최소한 역병 기사나 역병 부관 정도의 자리는 얻어야 한다. 퀘스트나 가서 받아.”

“…….”

도동수는 구시렁대며 발걸음을 옮겼다.

‘저 자식하고 손을 잡은 게 실수는 아니겠지?’

‘저놈하고 손을 잡은 게 실수 같군.’

<인질을 보호해라-이데르고 교단 퀘스트>

미리반 시 지하에는 아콰타르타가 잡아 놓은 강력한 인질이 있다.

별다른 문제는 없겠지만 아콰타르타는 불길한 꿈을 꾸었다.

아콰타르타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리반 시 지하 신전으로 가 인질을 확인하고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라.

보상: ?, ???

“아니. 또 잡퀘스트네.”

도동수는 투덜거리며 퀘스트를 확인했다.

좀 난이도 있고 보상 좋은 퀘스트가 나와야 할 맛이 나지, 아무리 교단에게 잘 보여야 하는 상황이라도 이런 잡퀘스트라니.

가서 인질 있나 확인하고 돌아가는 심부름 퀘스트 아닌가!

* * *

새로 생긴 연합 길드, <화이트 나이트>.

그 유명한 랭커 스미스를 필두로 한 길드들의 연합이었다.

그런 길드가 하늘섬에서 오스턴 왕국을 공격하겠다고 내려왔으니, 길드 동맹이나 미다스 입장에서는 긴장할 법도 했다.

그러나 길드 동맹은 의외로 자신감에 넘쳤다.

“에랑스 왕국이 무서운 상대지, 저놈들은 별거 아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짓밟아 온 놈들을 떠올려봐라!”

길드 동맹은 사실 태현만 빼면 거의 무패에 가까운 전적을 갖고 있었다.

판온 초반에 수많은 연합 길드와 그렇게 많이 싸워서 다 이긴 것이다.

어마어마한 길드원 숫자와 자금의 힘!

“우리가 어떤 시련을 겪으면서 강해졌는지 생각해 봐라!”

“…….”

“…….”

몇몇 길드원들은 김태현이 생각났는지 눈을 감고 부르르 떨었다.

어라?

김태현하고 비교하면 화이트 나이트 정도는 의외로 만만하게 느껴진다?

“오스턴 왕국은 예전과 다르다. 김태현에 대비해서 온갖 곳에 요새가 설치되어 있고 이 요새들은 김태현에 대비해서 쉽게 함락할 수 없을 정도로 방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화이트 나이트 놈들은 별 거 아니다! 그놈들은 오합지졸이다. 생각해 봐라. 우리 길드 동맹이 왜 강했는지! 우리는 하나로 뭉쳤기에 강했다!”

정확히는 쑤닝이 자기 말 안 듣는 놈들 다 조지고 쫓아내서 하나로 뭉친 것에 가까웠지만 지금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연합 길드의 가장 큰 문제!

서로 ‘내가 리더다’, ‘아냐 내가 리더를…’ 하느라 다투니 내분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그러니 깨질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길드 동맹은 이제 거의 통일된 체제에 가까웠다.

계속 같이 굴러가고 깨지고 하다 보니 예전 길드끼리 놀던 흔적은 거의 없어진 것이다.

“<화이트 나이트>의 스미스 놈은 그냥 길드 홍보용으로 달아 놓은 놈이다! 걱정할 거 없다. 그놈들은 자기들끼리 힘을 합치지도 못할 테니까!”

그때 비슷한 연설이 미다스 길드에서도 오고 갔다.

상대를 욕하고 우리 길드가 최고라는 걸 알려주는 연설!

…그리고 두 길드는 <화이트 나이트>에게 정신없이 털렸다.

-<화이트 나이트>, 우툴 평원 전투에서 <길드 동맹> 연합군 박살! 대승리!

-<길드 동맹> 랭커 일곱 명 전사. <길드 동맹> 대타격.

-<미다스> 성 세 개 함락! <화이트 나이트>의 기동전이 성공!

-<미다스> 길드 비상… 후방을 급습당했나.

-<화이트 나이트>, 신생 길드로서 저력 증명! 판온 입지를 뒤흔드나?

-<화이트 나이트>는 어떻게 강한 길드가 되었나?

-스미스의 리더십….

제대로 합쳐지지도 않은 <화이트 나이트>가 <길드 동맹>과 <미다스>를 박살 낸 것이다!

“충성충성충성! 스미스 님. 오늘도 대단하셨습니다!”

“역시 판온 최고 플레이어십니다! 스미스 님이야말로 판온을 통일하고 우리를 이끌어주실 위대한 지도자….”

“…….”

듣고 있던 <화이트 나이트> 소속 길마들은 매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야, 길드 동맹도 쑤닝 찬양은 이렇게 안 하겠다!

그러나 스미스 친위대 플레이어들은 스미스에게 흠뻑 빠진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얼굴 되고 실력 되고 성격 되는데 길마로서 성과까지 내니 안 모이는 게 이상한 일!

그러나 스미스를 간판으로 세워놓고 자기들끼리 해먹으려던 길마들 입장에서는 매우 배가 아픈 일이었다.

게다가….

뭔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제게 길마 자리를 맡겨주셨으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앞에서 열심히 싸우고 운영은 우리가 다 할게!

-아닙니다. 운영도 하겠습니다. 각자 길드에서 랭커 뽑아서 가장 앞에 배치하십시오.

-아니… 그게 뽑는다고 바로 배치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랭커들도 다 스케줄이 있는 데다가 위험할 수도 있는데….

쾅!

-제게 길마 자리를 맡겨주셨잖습니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 알겠어. 배치하면 되잖아.

-저 자식 은근히 성깔 있네. 샌님인 줄 알았는데.

처음에는 이렇게 강하게 말로만 하던 스미스가….

-이번 전투 좋았습니다. 하지만 길드 동맹이 숫자가 늘어났으니 랭커들도 더 많아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배로 숫자 늘리고 한 곳에 섞어서 배치하겠습니다. 마법사는 뒤에 전사는 앞에.

-아니 그게… 랭커는 보통 자기가 원하는 곳에 가도록 배려해 준다고. 그렇게 희생을 강요하면 안 돼.

-맞아. 그게 국룰인데….

-싫다는 겁니까?

-어렵다는 거지.

-제게 길마 자리를 맡겨주셨잖습니까. 이런 지시를 안 따라주시면 어떡합니까?

-아니~ 내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고 랭커들이 불만이라는데 어떡해?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정말 안 따르실 겁니까?

-와. 스미스. 너 좀 웃긴다? 지금 협박하는 거냐? 넌 쑤닝도 아니고 김태현도 아냐, 인마. 우리가 같이 널 뽑아준 거라고. 너… 컥!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감히 길마의 명령을 거역하다니. 처벌하겠습니다!

-이, 이런 미친놈이! 야! 너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냐!

퍽퍽퍽퍽퍽!

다들 보는 앞에서 스미스는 길마 한 명을 PK해 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 놀라서 반응도 못 했다.

-또 반대하시는 분?

-나… 나는 처음부터 찬성했지!

-맞아!

불만이 많던 길마들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협상 전술!

‘저놈이 미쳤나??’

‘불만이 나오면 어쩌려고??’

그러나 놀랍게도 불만은 크게 나오지 않았다.

스미스의 인기. 스미스를 따르는 친위대들. 그리고 스미스의 협박.

길마가 박살 났는데도 길드원들은 불만 없이 스미스의 명령을 따랐다.

그 뒤로는 그런 미친 일이 없긴 했는데….

“야, 스미스 놈은 순둥이라서 바지사장으로 세워놔도 된다며? 어떤 새끼가 그랬어?”

“착… 착하잖아. 존댓말도 꼬박꼬박하고.”

“저게 착한 놈으로 보이냐? 저건 살인마의 눈깔이야! 언제 터질지 몰라서 무서워 죽겠다고! 이대로면 우리는 기껏 만들었는데 그냥 묻히는 거야!”

“저러던 놈이 아니었는데 대체 뭘 보고 변한 거지?”

“꼭 하는 짓이 김태현 같….”

“…????!”

* * *

[이데르고의 인질 성소에 도착했습니다.]

“사디크의 화….”

“구해주려 오셨군요!”

“어?”

태현은 불을 지르려다가 멈칫했다.

함정인가?

인질로 위장한 이데르고 교단 NPC인가?

일단 태워보면 되지 않을까?

…여기까지 0.1초!

[카르바노그가 정신 차리라고 말합니다!]

‘아차. 내가 사디크에게 홀렸었군.’

[전부 다 사디크 잘못이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그렇지. 사디크가 사람을 좀 폭력적으로 만드는 그런 게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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