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82화
“역시 아키서스 신도들….”
케인이 중얼거렸다.
[화술 스킬이 낮습니다!]
[화가들이 분노합니다!]
“지금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겁니까?”
“아, 아니. 나는 좋은 뜻으로….”
“그게 어떻게 좋은 뜻입니까!”
“그러면 아키서스 신도인데 안 좋냐!”
“…!”
[화가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
케인은 깜짝 놀랐다.
아니, 내가 화술로 이겼다고?
“쓸데없이 그만 싸우고. 가서 돈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뭐든 간에 스킬을 갈고닦아라. 플레이어들도 꼬셔보고.”
“모험가들에게 이 강력한 미술의 힘을 알려주겠습니다!”
‘잠깐. 내가 말을 잘못 했나?’
쓸데없이 의욕을 불태우는 화가들을 보며 태현은 움찔했다.
왠지 잘못 건드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일단 <지하 신전의 경계>부터 찾아가야겠군.”
* * *
“새로운 기회가 왔다!”
“젊은 화가들이여, 이쪽을 보라!”
길드 화가 NPC들이 나와서 큰소리를 탕탕 치자,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관심을 가졌다.
“???”
“뭐야? 무슨 퀘스트인가?”
“잠깐. 쟤네 <무작위 미술> 길드 화가잖아.”
“힉. 큰일 날 뻔했네. 눈 마주치지 마.”
“쟤네가 누군데요?”
“뉴비들은 절대 엮이면 안 되는 NPC야! 잘못 들어갔다가는 쓰레기 스킬 배운다!”
그러나 이미 자자한 악명!
좋은 스킬 배워서 레벨 올리기도 바쁜데 쓰레기 스킬을 굳이 나서서 배울 사람은 없었다.
<무작위 미술> 스킬에 비교하면 기계공학의 폭탄 제작도 훌륭한 수준!
폭탄이야 실패 확률과 페널티가 위험했던 거지 잘 터지면 성능이 확실했다.
그에 비해 무작위 미술은?
대체 뭔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스킬!
뭘 그리려는 건지, 뭘 노리는 건지….
그나마 덜 고민하고 대충 그려도 된다는 장점 하나 말고는 없는 스킬이었다.
“<무작위 미술>은 오늘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진화했다. 바로 <고대 무작위 미술>로!”
“!”
“고… 고대?”
뭐든 간에 앞에 <고대>를 붙이면 그럴듯해 보이는 게 사람 마음!
꼭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언제나 고대는 좋아 보였다.
“보아라! 이것이 바로 <고대 무작위 미술>의 힘이다.”
NPC들은 지나가는 사람 한 명 붙잡더니 강제로 그림을 그려주기 시작했다.
플레이어는 저항했지만 NPC들은 도망칠 틈도 없이 그림을 완성해 갔다.
언제나 그렇듯 그리는 속도 하나는 참 빠른 스킬!
촥촥촥!
물감 대충 뿌리고 위에서 붓질 좀 하자 갑자기 그림의 형태가 나타났다.
<무작위 미술>과는 다른, 명확하게 형태가 잡힌 그림에 플레이어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뭐지?
“나왔다! 이것은… <에랑스 왕국군 전사>군!”
[<고대 무작위 미술>이 앞날을 예언합니다!]
[<에랑스 왕국군 전사> 그림이 당신의 앞날을 예언합니다!]
[예언은 틀릴 수도 있…]
[……]
[……]
에랑스 왕국군에 들어가서 크게 보상을 얻는 자신의 그림!
플레이어는 깜짝 놀랐다.
“이게 예언이라고요?”
“그렇다! 이게 바로 <고대 무작위 미술>의 진정한 힘. 예지력이다!”
“그… 그렇군요. 바로 에랑스 왕국 군대에 참여해서 퀘스트 진행하겠습니다!”
“물론 예언은 틀릴 수도 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자! 다음 사람!”
화가 NPC들은 탄력을 받아 스킬을 시전해댔다.
“잠깐. 가기 전에 돈은 내야지.”
“…아니 강제로 시켜놓고….”
플레이어들은 투덜거렸지만 돈을 내밀었다.
안 내놨다가는 얼마나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 좋은 그림 그려주면서 앞길에 저주 걸지도 몰라!
“야, 예지면 쓸 만하지 않냐? 무작위 미술 저것들 뭐 어따 쓰는지 몰랐는데….”
“화염 미술 말고 저거 배워볼까?”
한 번 묻혀 있던 스킬이 재평가를 받으면 바로 유행을 타게 마련.
화가들은 술렁이며 스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 * *
드넓은 사막과 황무지를 영토로 삼고 있는 나라, 아스비안 제국!
이데르고 교단은 그런 아스비안 제국에도 마수를 뻗었다.
그러나 아스비안 제국은 막아내기 한결 더 수월했다.
일단 주민의 대부분이 언데드!
이데르고 교단이 자랑하는 역병은 언데드에게는 대부분이 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땅도 넓어서 이데르고 교단이 뭘 하려고 모이면 사방에서 준비된 이들이 역습을 해왔다.
게다가 이데르고 교단의 주력은 중앙 대륙에 쏠려 있는 상황.
아스비안 제국을 깔짝대는 이데르고 교단은 적절한 사냥감만 될 뿐이었다.
[아스비안 제국의 치안이 올라갑니다!]
[아스비안 제국의 주민들이 만족합니다.]
[몬스터들이…]
[……]
[……]
이세연은 대형 길드는 없었지만 영리하게 대응했다.
친한 중소 길드들을 불러서 제국에서 사냥시키고 제국에 온 플레이어들에게 각종 후한 퀘스트를 내주며 지원한 것이다.
게다가 본인이 직접 언데드 군단을 이끌고 이데르고 교단부터 몬스터들을 상대하기까지.
-어, 그런데 이거 김태현 방법 따라 한 거 아닌가요?
-뒤지고 싶지 않으면 길마님 앞에서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신입.
어쨌든 결과는 훌륭했다.
아스비안 제국은 중앙 대륙과 달리 무사히 피해를 수습한 것이다.
덕분에 플레이어들도 꽤 많이 몰려왔고, 이것저것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이제 좀 살 만하네.”
이세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대 거인 잡으려고 할 때 가장 성가셨던 게 바로 제국이었다.
‘주민들의 불만이 위험합니다!’, ‘반 황제 부족들이 당신을 싫어합니다!’, ‘반란 터지기 1분 전!’, ‘정말 제국으로 안 돌아올 겁니까? 반란 두 배로 터집니다!’ 같은 메시지창이 계속 날아오니 사람으로서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간신히 잡고 돌아와서 망정이었지 아니었으면 제국이 아작 날 뻔했다.
-중요한 도시들은 대충 다 수습했습니다. 세금 멀쩡하게 들어올 겁니다.
-불만 가지는 부족들도 다 달랬습니다. 연계 퀘스트 10개 넘게 깬 거 같네요.
길드원들의 보고에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한테 그렇게 말하면 화냈지만, 이세연은 태현이 썼던 전략과 비슷한 전략을 쓰고 있었다.
수도와 중요한 도시 몇 개만 우선적으로 챙기는 전략!
대형 길드가 아닌 이상 사실 이게 정답이었다. 다들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그렇지.
나머지는 반란만 안 일으키게 다독이고 시간을 들여서 하나씩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네크로노미콘의 후계자> 직업 퀘스트를…]
[<위대한 어둠의 마법> 직업 퀘스트…]
[……]
게다가 제국의 주인이 되자 장점이 확실했다.
제국 내에서 직업 퀘스트를 하기 매우 쉬워진 것이다.
사실 대륙 곳곳과 다른 차원의 세계까지 가서 권능 찾아와야 하는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난이도가 괴랄한 거였지, 보통 한곳에서 계속 직업 퀘스트 나오는 직업도 많았다.
<네크로노미콘의 길-네크로노미콘의 후계자 직업 퀘스트>
최고급 흑마법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서 <네크로노미콘의 후계자>는 멈춰 서면 안 된다.
아스비안 제국에는 느부캇네살을 추종하는 흑마법사들이 있다.
그들에게서 더욱더 높은 흑마법의 길을….
보상: ?, ????, ???
<불길한 징조-아스비안 제국 황제 퀘스트>
당신이 갈고닦은 흑마법과, 아스비안 제국의 황제로서 가진 힘이 불길한 미래를 감지했다!
저 멀리 사막 동쪽에서 난폭하고 강력한 이들이 닥칠 것이니, 대륙의 명성 높은 영웅들을 <아키서스의 철벽 요새>에 모아 대비하라.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단장.
-데메르 교단 대주교.
-프로즈란드의 검은갈기부족의 위대한 대전사.
…….
…….
-아탈리 왕국 국왕.
퀘스트 등급:전설.
“????”
레벨 400을 향해 달리려던 이세연의 발목을 붙잡는 퀘스트 창!
대륙의 수많은 NPC들을 설득해서 한 자리로 데리고 오는, 미친 난이도의 퀘스트였다.
<아키서스의 철벽 요새>는 저번 느부캇네살 레이드 때 태현이 만들어 놓고 간 제국 사막의 대요새.
강력한 신성력 덕분에 주변 언데드들을 쓸어버리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갖고 있었고, 덕분에 이세연은 거기 들어가면 페널티를 받았다.
원래라면 이런 퀘스트는 그냥 무시했겠지만….
‘아… 왜 하필이면 전설이….’
전설 등급 퀘스트는 그냥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사막 동쪽이면 아스비안 제국이 가장 먼저 맞는 것 아닌가!
무시하고 내버려 두면 피해를 입는 건 그녀였다.
“으으으… 으으으으으으…!”
“언니 왜 그러세요?!”
* * *
“감사합니다. 여러분.”
사베트는 쏟아지는 환영에 감동했다.
<베이징 파이터즈>의 선수들은 제각각 파벌이 갈려 있는 데다가 1군, 2군, 후보 등으로 나뉘어 있어 보통 살벌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팀 KL은 아니었다.
소규모에서만 볼 수 있는 훈훈한 분위기!
사베트는 갖고 온 자료를 꺼내며 말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스킬들과 분석, 전투법에 대해 조언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오오…!”
“앗. 그런데 감독님. 한 시간 후에 시작하면 안 됩니까?”
케인이 손을 들고 물었다. 사베트는 그 질문에 표정을 굳혔다.
올 것이 왔구나!
-선수들을 대할 때는….
-예의를 갖춰서 존중하면서 대하겠습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케인은 그냥 좀 구박해도 됩니다.
-하지만 김태현 선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구시대적인….
-…뭐 그거야 그렇긴 한데 말 안 들으면 좀 닦달은 하셔야 할 겁니다.
-…!
태현의 말에 사베트는 깨달았다.
팀 KL이 멀쩡해 보였지만 사실 안에는 문제 선수가 있다는 것을!
그 선수가 케인이 분명했다.
이런 선수를 잘 달래서 완벽한 시너지를 만드는 것도 감독의 역할!
“케인 선수.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정해진 일정을 늦출 수는 없습니다.”
“앗. 그래요?”
“왜 늦춰달라고 하신 겁니까?”
“베이징 파이터즈 승강전이 이제 곧 시작해서….”
“…!!”
사베트가 눈을 크게 떴다.
1부 리그의 하위권 팀들이 2부 리그 상위권 팀들과 맞붙어, 리그 잔류 자격을 따내는 피튀기는 단두대 매치!
승강전!
베이징 파이터즈 팬들은 물론이고 다른 팀 팬들도 전부 다 이 경기를 주목하고 있었다.
정규 시즌 인기를 뛰어넘을 정도!
-한국인이라면 제발 <토론토 메이플베어즈> 응원합시다!
-어? LK 갤럭시 응원해야 하는 거 아님?
-걔네는 지금 안 하잖아. 토론토 응원하자!
-힘내라 단풍곰!
이상하게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토론토 메이플베어즈>!
상대도 상대인지라 온갖 뜨거운 응원은 다 받고 있었다.
사베트는 갈등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승강전은 솔직히 실시간으로 보고 싶긴 했다.
하지만….
하지만…!
“…보고하시죠?”
보다 못한 태현이 말했다. 그거 하나 보는 거 가지고 뭐 그리 고민을….
“앗, 그, 그래도 됩니까?”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뭐 이거 보고 한다고 달라지겠어요?”
결국 첫 연습 시간은 꼴찌 팀들끼리의 치열한 경기를 보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케인은 새로 온 감독과 친해지고 싶어 입을 열었다.
“감독님. <베이징 파이터즈>가 완전히 망했으니 기분 좋으시죠?”
“어… 아닙니다. 제가 맡았던 팀이 저렇게 되어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
케인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아, 아니 그러시면 제가 뭐가 됩니까…!
옆에서 정수혁과 최상윤이 케인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뭔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넌 인마 눈치가 없냐!’
‘아… 아니… 난 좋아할 줄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