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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180화 (1,179/1,826)

§ 나는 될놈이다 1180화

사실 성능이 좋은 건 당연했다. 베스고 백작은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으니까.

차원에서 꺼낸 보석들은 기본이고 색이 안 나온다고 황금을 녹여서 그림 위에 퍼발랐다.

케인이었으니까 망정이었지 이다비였으면 쓰러져서 실려 갔을 것이다.

[<아키서스의 권능:저주>를 갖고 있습니다.]

[……]

[그림에 걸린 저주를 알아차립니다!]

[영웅 등급 그림, <분노의 광란에 빠진 아키서스의 천사들>에는 <아키서스의 광란> 저주가 걸려 있습니다.]

[이 그림을 계속해서 보다 보면 일정 확률로 <아키서스의 광란>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

와 뭐 이런 미친!

태현은 그림 스펙에 경악했다.

일단 그림 자체는 성공했다. 전설 바로 밑의 등급을 찍은 데다가, 베스고 백작도 눈물을 흘릴 정도로 퀄리티가 좋았으니까.

태현과 베스고 백작 둘이서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퀄리티!

‘정말 베스고 백작 흉악한 부분에 재능이 있나?’

[카르바노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동의합니다!]

하필이면 아키서스의 천사를 그리면서 스스로의 재능을 깨닫게 되다니 좀 미묘하긴 하지만….

[베스고 백작의 친밀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미리반 시 공적치 포인트가 크게…]

“고맙네! 고마워!”

베스고 백작은 왈칵 감동해서 태현을 껴안으려고 들었다. 태현은 재빨리 피하며 케인을 앞으로 밀었다.

우드득!

[베스고 백작의 힘 스탯이 매우 높습니다!]

[데미지를 받습니다!]

“으어억! 으억!”

“아니 왜 자네가 있나?”

베스고 백작은 케인을 옆으로 밀어버린 다음, 그림을 들어 태현한테 내밀었다.

“?”

“이 그림을 받아주게.”

“아니… 이런(저주 받은) 그림을 저한테?”

“그래. 이런(귀한) 그림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건 자네지. 그러고 보니 자네의 이름도 몰랐군. 자네의 이름이 어떻게 되나?”

“어….”

태현의 머리가 순간 빠르게 회전했다.

여기는 에랑스 왕국이고.

김태현의 신분인 거 들켜서 좋을 거 없고.

하지만 아무 가명을 쓰는 것보다는 위장 가능한 가명이 좋을 텐데….

그 순간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덩샤오핑입니다.”

“…….”

케인은 입을 떡 벌리고 태현을 쳐다보았다.

야…!

예전에 썼던 그 미친 가명을 또 쓰자고…?

“그래? 자네의 이름은?”

“…마, 마오쩌둥….”

예전 길드 동맹과 한창 치고받을 때, 위장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가명!

그걸 지금 다시 꺼내다니…!

‘이런 미친 자식아!’

“그래. 자네 두 명의 이름을 기억해두지! 내게 그림의 기쁨을 알려줘서 정말로 고맙네.”

“그냥 계속 모르고 사시는 게 나았을 것 같….”

“뭐라고 했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 * *

보상 받고 떠날 수 있게 되자, 태현은 백작을 보며 물었다.

“백작님. 제가 아키서스 교단 신자라 그런데, 도시에 아키서스 신전이 있습니까?”

“신전이야 있지.”

아키서스 교단은 이제 중앙 대륙에서는 꽤 신전을 찾아보기 쉬웠다.

태현이 그렇게 고생고생하면서 신전을 짓고 사제 NPC들을 만들어서 뿌린 것이다.

피와 눈물과 땀으로 만들어진 교단!

“혹시 좀 특별한 신전 같은 건 없습니까?”

“특별한 신전?”

“옛날에서부터 내려오는 신전 같은 거 말입니다. 아키서스 님께 제대로 된 기도를 하고 싶은데….”

“역시 자네가 신실한 영웅이라고 생각했네. 아키서스 교단에 이것저것 소문이 많아서 수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다 헛소문인 모양이군.”

“…물론이지요! 그게 다 사악한 악신 교단이 낸 헛소문입니다. 백작님. 명심해두십시오. 사디크 교단, 살라비안 교단, 이데르고 교단, 파이토스 교단… 수많은 악신 교단들이 아키서스 교단을 음해하고 있습니다.”

“방금 이상한 게 하나 끼어 있던 것 같…?”

“게다가 악마들까지! 악마 공작이 직접 당했으니 그 원한이 얼마나 깊겠습니까. 대륙에 돌아다니는 헛소문들은 사실이 아니니 믿으시면 안 됩니다.”

“알겠네. 앞으로 그런 소문을 퍼뜨리는 자가 있으면 내가 단호하게 말해주겠네.”

[베스고 백작을 설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앞으로 아키서스 교단 관련 안 좋은 소문이 일정 확률로 차단됩니다.]

‘오오….’

태현은 백작의 힘에 감탄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군!

“아키서스의 옛 신전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네. 하지만 신전이 있기 전부터 아키서스를 믿던 이들이 있긴 하지.”

“!”

[아키서스의 신도들에 대한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퀘스트…]

[……]

[지도에 위치가 표시됩니다!]

“당장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래. 내가 병사들을 붙여줄 테니, 안내를 받으면 되겠군.”

“…….”

태현과 케인은 서로 쳐다보았다.

병사들까지 데리고 가도 괜찮나?

-야. 괜찮은 거 맞냐?!

-아직 안 들켰잖아.

-가명도 그렇고 점점 더 늪에 빠지는 기분인데….

케인은 매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아슬아슬해지고 있어!

그러는 사이 베스고 백작은 알아서 일 처리 끝내고 병사들을 불렀다.

“들어라! 모험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나를 위해 대단한 업적을 세웠다! 도시의 음유시인들을 불러서 둘의 이름을 한동안 칭송하게 해라!”

“…….”

“…….”

도시의 음유시인들에게 퀘스트가 날아왔다.

둘을 칭송하는 노래를 지은 다음 성문과 중앙 광장에서 한 달 동안 주기적으로 노래하라는 퀘스트!

대단한 영광이었고 각종 버프도 들어와서 둘에게는 손해가 없긴 했는데….

-김… 김태현. 진짜 괜찮은 거 맞지?! 괜찮은 거 맞지?!

-…뭐, 안 되면 도망치면 되지.

-!?!?

말이 바뀌었잖아?!

* * *

미리반 시의 플레이어들은 질투심 가득한 표정으로 노래를 들었다.

“크윽…! 마오쩌둥! 덩샤오핑! 이 자식! 뭐하는 놈이길래 굴러온 돌이 백작의 환심을 산 거지?”

“백작이 진짜 어지간해서는 안 넘어가지 않나?”

“얼마나 대단한 작품을 만든 거야?”

플레이어들은 알지 못했다.

작품을 만든 게 아니라, 작품을 도와주는 게 키포인트였다는 것을!

“근데 얘네 닉이 왜 이래?”

“몰라. 중국인인가 보지.”

“어, 나 이거 저번에 들어본 적 있는데.”

미리반 시의 플레이어 중에 길드 동맹 길드원이 있었다.

그는 놀라서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야! 여기 그 마오쩌둥 있어!

-뭐? 그 땅 잘 파던 친구?

-땅 정말 잘 팠지.

-광부 랭커 맞지? 광부 랭커.

-근데 광부 랭커에 이름 없던데….

-분명 이름을 숨긴 랭커일 거야.

덩샤오핑도 덩샤오핑이지만, 마오쩌둥은 특히 길드 동맹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진 실력자!

오죽하면 간부들이 스카우트하려다가 실패했을까.

-야. 찾으면 불러와라! 안 그래도 우리 랭커 필요한데.

-알겠습니다!

* * *

“여기인가?”

[<미술가들의 거리>에 들어왔습니다!]

[일시적으로 미술 스킬에 버프가…]

[……]

[……]

드넓은 거리 곳곳에 얼룩덜룩한 옷을 입은 플레이어들이 홀린 표정으로 붓을 놀리고 있었다.

굳이 게임에서도 그림을 그리겠다고 결심한 이들!

당연히 그 각오와 의지는 보통이 아니었다.

“모델 좀 서주실 분? 인간 종족 안 됨. 너무 많이 그렸음.”

“야. 조그만 폭탄 터뜨려서 물감 퍼뜨리면 그림 나오지 않을까?”

“그거 하다가 너도 뒤지게?”

“오크 피로 그림 그리면 보너스 들어간다고? 진짜?”

“진짜라니까. 믿어봐.”

“…….”

케인은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려 했다.

미친놈들인가 봐!

“여기입니다. 모험가님.”

“고맙군. 남은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아닙니다! 백작님께서 꼭 따라다니면서 도와드리라고 하셨습니다.”

“…….”

방해 없이 조용히 좀 퀘스트 깨려는데 사방에서 찾아오는 방해!

벌써부터 화가들은 수군거리고 있었다.

-뭐야? 랭커인가?

-장비 구려 보이는데.

-장비야 갈아 끼우면 되니까. 병사들하고 같이 왔잖아.

“빨리 지나가는 게 낫겠다.”

“잠깐만요! 모델 좀… 돈은 안 드리지만 즐거울 겁니다!”

“그림 좀 사시죠! 파워 워리어 길드가 보장하는 그림이에요!”

‘절대 사지 말아야지.’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태현을 붙잡으려 했다.

“어허! 저리 비키지 못할까!”

병사들이 재빨리 밀어냈다.

“모험가님. 어서 들어가시죠! <무작위 미술> 길드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무… 무작위 미술?”

“무작위 미술?!”

병사의 말에 플레이어들이 움찔했다. 그리고 나서 슬며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야. 거기 간다는데?”

“굳이 거기 간다는데 우리가 낄 필요는 없을 것 같….”

“…….”

플레이어들이 싹 물러나자 그건 그거대로 찜찜했다.

“무작위 미술 길드 애들이 뭐 문제라도 있나?”

“아뇨 딱히 문제는….”

“문제는 없는데….”

“사람이 좀 괴팍하고 미친놈 같은 거 말고는 없죠?”

-문제 다 나왔어! 문제 다 나왔다고!

-진정해라. 케인. 아키서스 교단 믿고 있다고 했을 때부터 난 짐작하고 있었다.

옛날부터 아키서스 교단을 믿고 있었다면 미쳐도 보통 미친놈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태현은 이미 각오가 된 상태였다.

“가자!”

* * *

“오오! 위대한 아키서스 님이시여!”

“위대한 아키서스 님이시여! 내 그림을 도와주십시오!”

“칼 돌려라!”

빙글빙글-

길드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NPC들이 칼을 빙글빙글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그 위에 묻은 물감이 후두둑 떨어지며 그림을 그렸다.

“어떠냐!”

“별로입니다!”

“이런 제기랄! 다시 그려야겠다. 찢어버려라!”

-김태현. 판온의 팁 중 그런 거 있지 않냐? 어느 세력에 갔는데 플레이어가 하나도 없이 NPC만 보이면 거기는 들어가지 말라고.

-그런 팁이 있지.

NPC만 있는 세력은 일단 좀 수상하다고 봐야 했다.

플레이어들이 왜 안 들어갔을까??

그걸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

그리고 지금 여기 무작위 미술 길드는 플레이어들이 한 명도 없었다.

전부 다 NPC야!!

“엇. 누구지?”

“잘 모르겠지만 이것 또한 운명이겠지. 자, 저 칠칠찮아 보이는 사람을 데리고 와라!”

“아니 뭐 이런…!”

케인은 자기를 지목하기도 전에 발끈했다.

병사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칠칠찮아 보이는 사람이 누군지는 안 가리켰는데?”

“…이런 무례한 놈들 같으니!”

할 말이 없어진 케인은 발끈 화를 냈다. 그러나 화가들이 먼저 스킬을 사용했다.

-행운의 물감 포박술!

[붉은색의 물감이 골라졌습니다! 추가 효과를 얻습니다!]

“어어?!”

케인은 그대로 앞으로 끌려갔다. 저항이고 뭐고 무시하고 끌어당기는, <노예의 쇠사슬>과 비슷한 계열의 스킬이었다.

“걱정 말게! 그림 좀 그리고 돌려보내줄 테니.”

“자. 이 사람 위에 물감을 퍼부은 다음에 굴려보자!”

“왠지 모르게 이 사람, 신성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렇게 말하니 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도와줘! 김태현!

태현은 병사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아까는 데려다줘야 한다고 말한 병사들이었지만, 길드 밖으로는 매우 나가고 싶었는지 즉시 호다닥 나갔다.

-알겠습니다! 모험가님!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다.”

“…!!”

케인 위에 물감을 붓던 화가들이 멈칫했다.

“아니 이런 귀한 곳에 귀한 분이…?”

“그러면 이 사람은 누굽니까?”

“그자는 아키서스의 노예지.”

“오오!”

“대단합니다!”

화가들이 감탄하자 케인은 그들이 곧 그를 풀어줄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한 번만 굴려도 됩니까?”

“흠….”

“저희가 모아온 보석들을 드릴….”

“뭐 HP도 안 닳는데 굴러도 되겠지.”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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