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79화
김태현.
현재 판온에서 가장 인기 좋은 선수이자 가장 몸값 높은 선수.
각 팀들이 뽑은(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 빼고) ‘우리 팀으로 데리고 왔으면 하는 선수’ 1위.
시즌 1에서 최다 킬, 최다 어시스트, 최소 사망, 가장 화려한 킬 등 온갖 타이틀은 다 확보.
선수로서도 완벽했지만 관계자들은 사실 다른 것에 더 감탄했다.
김태현은 선수뿐만이 아니라 감독, 단장으로서도 완벽했던 것이다.
팀 KL 선수들은 사실 그렇게 유명한 선수들이 아니었다.
케인 정도나 조금 유명했지 나머지는 다 태현이 데리고 와서 먹이고 키운 이들이었다.
그런 선수들을 데리고 리그 무패 우승 달성!
솔직히 선수로서 세운 타이틀보다 감독으로서 세운 타이틀이 훨씬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또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수로서도 초일류고 감독으로서도 초일류고, 또 이곳저곳에서 광고 따내고 다큐 나오면서 게임단 홍보하면서 운영하는 거 보니까 단장으로서도 초일류였다.
선수, 감독, 단장으로서 트리플 크라운을 찍고 있는 김태현을 이렇게 보게 되다니.
사베트는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아,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가 네 번이니까 괜찮다는 겁니까?”
“그, 그런 게 아니라…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니, 사베트 감독님께서는 현역 시절에 저보다 더 잘나가지 않으셨습니까?”
사베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솔직히 그도 현역 시절에는 E스포츠 선수긴 했지만 태현과 비교하면 보름달 앞의 반딧불 수준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말해주니 기분은 좋았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이렇게 깍듯하게 대접을 해주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쨌든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정말 영광입니다. 한 번 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베이징 파이터즈 때문에요?”
“으하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선수로서 한 번 보고 싶었습니다.”
태현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만.”
“그런데 왜 옷차림이 그렇…?”
사베트는 의아해했다.
태현이 화가나 입을 법한 장비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변장용인가?
“아. 변장하신 겁니까?”
“뭐 그렇죠.”
사실은 백작한테 시달리느라 장비 변경을 한 거였지만….
“제안을 받으셨을 때 당황하셨을 거 압니다.”
누가 보내는지도 안 알려주고 다짜고짜 판온에서 만나자니.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이 아니었다면 장난인 줄 알았을 것이다.
“조금은 놀랐습니다.”
“음, 이게 사실….”
“?”
“팀 KL 이름 때문인지 접촉 한 번만 해도 언론이 뒤집어지더군요.”
태현이 사베트를 부른 이유는 하나였다.
팀 KL의 감독을 찾기 위해서!
‘솔직히 첫 시즌은 좀 미친 시즌이긴 했어.’
첫 시즌이 끝나고 나서 태현은 반성했다.
스스로한테 너무 과중한 짐을 올렸던 것이다.
경기 안에서도, 경기 밖에서도 혼자 너무 많이 떠맡았다.
운이 좋아서 시즌 도중에 문제가 없었지만 이 운이 계속 유지되리란 법이 없었다.
다음 시즌이 되면 다른 팀들도 태현과 팀 KL의 수많은 약점들을 공격해 올 것이다.
미리 준비해야 했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 내가 몇 경기 쉬더라도 평균 이상을 보여줄.’
그래서 태현이 가장 먼저 고른 건 감독이었다.
태현 대신 적팀을 분석하고 전술, 전략을 짜줄 사람.
솔직히 지금 이것까지 태현이 하고 있는 건….
이다비가 도와줘서 망정이었지 아니면 바빠서 케인 저녁도 못 챙겨줬을 것이다.
브레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태현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감독을 한 번 알아보고 싶은데….
-제가 한 번 접촉해 보겠습니다.
에이전트인 빈센트는 인맥을 이용해서 전 세계 재능 있는 감독들에게 슬쩍슬쩍 이야기를 꺼내며 의중을 떠보려고 했다.
그런데….
-뭐?! 팀 KL 감독?! 그게 정말인가!?
-아니 그러니까 시켜준다는 게 아니라 혹시 생각 있냐….
-자네가 김태현 에이전트 아니었나?! 그냥 꺼냈을 리가 없지. 이건 스카우트가 분명해! 맞지? 맞지?
-아니… 진정….
-날 감독 시켜줘! 연봉은 절반, 아니 절반도 필요 없어! 아냐! 내가 돈을 내지! 자네한테 돈을 내겠어! 팀 KL 감독으로 내가 가장 적합하다고 말하란 말이야! 아니면 죽여 버리겠어!
-경찰! 경찰!
-크아아악!
감독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너무 격렬했다.
현재 자리 없이 쉬고 있는 감독들의 현역 복귀 욕망들은 어마어마했다.
하물며 그 상대가 이번 시즌 1위를 한 팀 KL!
팀 KL로 자신의 명성을 부활시키겠다, 팀 KL의 선수들로 꼭 전술을 펼쳐보고 싶다, 김태현을 내 전술의 핵심으로 전설적인 스쿼드를 완성시켜 보겠다 등 온갖 욕망을 가진 감독들이 몰려왔다.
게다가 이 인간들이 암암리에 소문이 퍼졌는지 다른 팀 감독에 현역으로 뛰고 있는 작자들도 슬쩍 연락을 보내왔다.
-빈센트. 자나?
-빈센트. 작년에 우리 참 즐겁게 식사하지 않았나.
-빈센트. 대답이나 좀….
[차단했습니다.]
“아… 그래서 그때 기사가 한 번 났었군요?”
“네.”
사베트는 놀랐다.
얼마 전에 한 번 기사들이 우르르 뜬 적이 있었다.
-팀 KL, 새 감독 선임하나? 선수 감독 체제의 끝?
-김태현, <선수들은 이제 스스로 밥을 해먹을 줄 알아야 한다>고 밝혀….
-팀 KL 감독 선임설은 루머로….
기자들이 심심하면 KL 기사 꺼내와서 조회수 쪽쪽 빨아먹는 건 사베트도 알고 있었다.
팀 KL은 이름만 넣으면 조회수가 몇십 배로 뛰는 것이다.
예전에는 팀 KL에 안 좋은 기사를 올리면서 어그로 끌려던 기자들도 있었지만 이제 그런 기자들은 왠지 모르게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 팀 KL 팬들한테 욕을 먹고 반성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이제 자주 쓰는 방법은 <팀 KL의 케인, 좋아하는 저녁 메뉴는 돼지고기김치찌개라고 밝혀… 충격>, <팀 KL의 케인, 김태현 요리가 가진 맛의 비밀을 밝히다!> 이딴 아무 내용 없는 기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솔직히 감독도 그런 것 중 하나일 줄 알았다!
<김태현, 감독…>이라고 해서 눌러보면 <…이 꼭 필요할까? 김태현한테는 필요 없을 듯> 같은 기자 생각만 써놓고 끝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디서 이야기가 새어나갈지 몰라서요.”
“이해합니다. 다른 감독들 모두 팀 KL을 맡고 싶겠죠.”
말하던 사베트는 순간 깨달았다.
어?
그러면 지금 나 팀 KL 감독 면접 보는 건가?
“그, 그러면 지금 제가… 면접을 보고 있는 겁니까?”
“예. 여기 조건을….”
“하겠습니다!”
“연봉은 <베이징 파이터즈>에서 받던 것보다 2배….”
“하겠습니다!!”
“아니, 좀 조건은 보고 하세요.”
“시켜주시면 돈을 드리겠습니다!”
태현은 오랜만에 당황했다.
감독들은 다 미친 사람밖에 없나?
“일단 저도 좀 대화하고 결정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앗. 그렇죠. 죄송합니다.”
“사베트 감독님께서는 팀 KL을 맡게 되면 어떤 식으로 팀을 운영하실 것 같습니까?”
“으음!”
사베트는 생각에 잠겼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사실 준비는 되어 있었다.
아니, 다른 감독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솔직히 다들 ‘방금 1위 팀 감독하는 상상함’ 정도는 해봤을 테니까!
팀 KL 선수들로 자기 전술을 펼치다니.
고민하던 사베트는 결론을 내렸다.
“…저는 최대한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다.”
“!”
의외의 대답에 태현은 놀랐다.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만.”
“팀 KL은 이미 완성된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억지로 새로운 전술을 추가하거나 새로운 역할을 맡기려고 하면 삐걱거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안 하신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적팀을 분석하고 전술을 연구하고 약점을 찾아오고, 또 팀 KL의 선수들이 가진 스킬들을 어떻게 써야 하고 장비를 뭐로 골라야 할지… 팀 KL의 감독이 된다면 저는 ‘관리형 감독’을 추구하겠습니다.”
<베이징 파이터즈>에서는 프런트와 싸우고 나왔다지만 그건 <베이징 파이터즈>가 좀 이상했던 거고, 원래 사베트는 이런저런 스타일에 다 맞출 자신이 있었다.
<베이징 파이터즈>야 아무것도 안 잡혔으니 열심히 발로 뛰었지만….
<팀 KL>은 그냥 선수들의 멘탈, 스킬, 기타 등등만 관리해 주면 됐다.
프런트의 의견과 코치…는 없지만 어쨌든 이런저런 의견을 다 받아들여 주며 선수들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해 주는 관리형 감독!
김태현 같은 선수가 있는데 사베트가 나서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으음. 사베트 감독님.”
“?”
사베트는 움찔했다.
역시 너무 날로 먹는 것 같은 대답이었나?
다른 감독들은 ‘나 감독 시켜주면 이세연 데리고 오고 스미스 데리고 온다! 나 좀 믿어봐!’라고 했을 텐데….
‘아니 그래도 거짓말은 좀.’
여기서도 이상한 놈으로 찍히고 쫓겨나고 싶진 않았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계약서나 마저 읽어보세요. 다른 게임단 조건에 맞춰서 대우를 준비했는데 혹시 빼놓은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
사베트는 울 뻔했다. 그것도 한참 나이 차이 나는 동생뻘 선수 앞에서.
* * *
“검토 끝났답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대요?”
“윗선에서 태클 걸었댄다.”
“아니… 회장님께서 허락하신 안건 아니에요?”
“그룹에서 그거 모르는 사람들도 많잖아. 자기 좀 내세워보겠다고 트집 잡은 거지.”
원래 천덕꾸러기였던 유성 게임단이 어마어마한 실적을 올리자 그룹 내에서도 질투하는 시선이 날아왔다.
물론 그 뒤에 회장의 총애가 있다는 걸 모르고 하는 짓이었다.
알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미친 짓!
하지만 그건 몇몇만 아는 일이었다.
덕분에 모기업 쪽 이사 몇 명이 이야기를 듣고 ‘왜 이런 문제 일으킨 인사를 감독으로 데리고 오나?’, ‘우리 게임단 이미지는 생각 안 했나?’ 같은 식으로 트집을 잡았다.
-내가 야구 쪽을 해봐서 아는데 사고 친 감독은~~
“어휴. 원래라면 더 일찍 끝났어야 했는데. 괜히 미안하네요.”
“빨리 연락 드려라. 기다리시겠다.”
“설마 먼저 채간 놈 없겠지요?”
“푸하하. 대형 게임단들이 미쳤냐? 걔네들은 엉덩이도 무겁고 사고방식도 느린 놈들이야. 걔네들이 어떻게 나서겠어?”
유성 게임단 사람들은 자신만만했다. 또 자부심으로 넘쳤다.
새로운 E스포츠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는 자부심!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그들은 망했다가 새로 모인 이들이라 그런지 옛날 전통에 얽매이지 않았고 회장의 빵빵한 지원 덕분에 망설이는 게 없었다.
저 선수가 갖고 싶다?
사라!
어떤 시설이 필요하다?
만들어라!
-김태현 영입도….
-회장님한테 맞고 싶냐?
직원들은 자신만만하게 연락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베트에게 연락이 돌아왔다.
매우 미안해하는 연락이었다.
“!??!?!?!?!?!”
* * *
[<분노의 광란에 빠진 아키서스의 천사들>을 완성했습니다!!]
[이 저주 받은 거친 그림은 베스고 백작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위대한 걸작입니다!]
[이 그림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드높은 행운과 당신의…]
[……]
[……]
[……]
[악명이 오릅니다!]
[미술 스킬이…]
[……]
“오오! 신이시여!!! 이 그림을 제가 만들었단 말입니까!!”
베스고 백작은 흥분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생전 처음으로 걸작을 만들었다는 흥분!
케인이 옆에서 그림을 힐끗 보더니 기겁했다.
으악!
저건 방송에 나올 때는 모자이크 걸어야겠다!
[<분노의 광란에 빠진 아키서스의 천사들>을 보았습니다. 물리 방어력이 일시적으로 크게…]
[……]
[……]
‘하필 성능은 쓸데없이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