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78화
‘흠. 파이토스 천사들은 저렇게 못생겼을 수도 있지 않나?’
[아무리 파이토스가 망해도 천사들이 저렇게 생겼을 거 같지는 않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그럼 뭐 아키서스는?’
[…카르바노그가 시선을 피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지?”
백작은 이번에는 케인에게 물었다.
케인은 바로 대답했다.
“아주 아름답습니다!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예!”
[화술 스킬이 낮습니다!]
[백작을 속이지 못합니다!]
“앗.”
케인은 경악했다.
아차…!
“틀렸어!”
백작은 갑자기 얼굴을 흉악하게 일그러뜨리더니 그리고 있던 그림을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순식간에 박살 나는 그림!
“이건 쓰레기야! 쓰레기!”
“아… 아니….”
케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저 그림처럼 되는 건 아니겠지?
“내 주변의 모든 놈들이 날 속이고 있어! 내 그림이 좋다고 날 속이고 있단 말이야!”
“죄, 죄송합니다!”
‘저런.’
태현은 혀를 찼다.
거기서 인정하면 안 되지!
거짓말하기로 결심했으면 사디크로 개종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거짓말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정말 사디크로 개종하더라도.
[카르바노그가 너무 끔찍한 각오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먼저 꺾이는 놈이 지는 거라고.’
태현이었다면 저기서 끝까지 부정하면서 버텼을 것이다.
“자네도 날 속였지?!”
베스고 백작은 눈을 크게 뜨며 태현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태현은 케인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다.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줄줄 늘어놓을 수 있는 사람!
“전 진실만을 말했습니다. 백작님. 저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 명예로운 사람입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
[……]
[베스고 백작을 설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화술 스킬이…]
베스고 백작을 만나고 나서 화술 스킬을 올릴 기회가 꽤 쏠쏠했다.
이런 걸 노리진 않았지만….
“…정말이야?”
“예. 저는 저런 겉과 속이 다른 거짓말쟁이와는 다릅니다.”
태현은 케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케인은 울컥했다.
야…!
내 편 안 들어주냐?!
“하긴 자네는 명예롭고 신성한 기운을 가졌는데 저런 악당 놈과는 다르겠지.”
“헤헤. 잘 보셨습니다.”
[악당 같이 웃지 말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하지만 내 그림은 객관적으로 형편없네. 그림뿐만이 아니라 노래, 조각, 모든 부분에서 형편없지.”
‘그냥 나가서 사람 패고 다니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태현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마검사 적성을 가진 사람이 왜 화가를 하려고 한단 말인가.
“자네가 보기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나?”
“그냥 그림 때려치우시는 게?”
옆에서 케인이 별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베스고 백작이 손을 휘둘렀다.
맨손으로 휘둘렀는데 파공음과 함께 케인 옆의 벽이 갈라졌다.
[베스고 백작이 <살기의 일격>을 사용했습니다!]
케인은 벌벌 떨며 말했다.
“…그림은 계속 하시는 게 좋을지도…!”
“흠.”
태현은 고민했다.
‘그냥 적성 없다고 하는 게 낫나?’
케인이야 명성도 낮고 화술 스킬도 낮다지만, 태현은 솔직히 NPC 보증 서주고 도망간 다음 돌아와서 사과해도 변명만 잘 하면 화해 가능할 정도의 명성과 화술 스킬을 갖고 있었다.
‘당신 그림 적성에 없다’고 하면 베스고 백작이야 엉엉 울지도 몰랐지만 일단 이 귀찮은 자리는 끝낼 수 있었다.
그러면 태현은 약간의 보상을 받고 도시 안으로 들어가 다시 아키서스 신전을 찾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것도 기회는 기회였다.
태현이 전혀 노린 기회가 아니긴 했지만 일단 귀족 NPC와 상대하는 기회 아닌가!
“관점을… 바꾸시는 건 어떻습니까?”
“?”
“백작님께서는 지금 멋지고 위대한 영웅들만 그리려고 하고 계십니다.”
“그렇지?”
“하지만 그게 백작님의 적성과 맞지 않는 길이었다면?”
“???”
베스고 백작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뭔 소리를 하는 거지 이 모험가는?
“누구는 검술에, 누구는 마법에, 누구는 폭탄이 되는 것에 재능이 있는 법입니다.”
“잠깐. 마지막은 뭔가 이상한….”
“백작님의 적성도 그런 영웅들의 그림이 아니라 좀 더 추잡하고 못난 놈들에게 있을 수도 있습니다!”
“!!”
개소리였지만 베스고 백작은 솔깃했다.
아니….
그럴듯한데?
사람은 원래 믿고 싶은 말을 들으면 믿기 마련.
베스고 백작은 무릎을 치며 외쳤다.
“그래! 그러고 보니 저 악당을 그릴 때 좀 더 잘 그려지는 것 같긴 했어. 이 부분을 보게나. 이게 바로 저 악당을 그린 걸세.”
“정말 사악하고 역겹습니다.”
베스고 백작은 태현의 칭찬에 뿌듯해했다.
그림에 나온 케인의 모습은 마계의 악마사냥개와 악마 공작을 섞은 다음 나눠 놓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세상의 모든 흉악함을 모아 놓은 얼굴!
“허… 정말… 나한테 이런 재능이…?”
“예. 백작님. 백작님에게는 그림을 개같이… 아니, 사악한 이들을 그리는 재주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악한 이들만 그릴 수는 없네. 내 명예가 있단 말이야.”
“사악하지 않지만 흉악하게 생긴 놈들을 그리시죠.”
“그런 게 있나?”
“세상에 그런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제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베스고 백작은 명예롭고 험악하게 생긴 이들이 어디 있는지 의아해했다.
‘흠. 아버지를 소개해드리고 싶긴 한데 당장 내 멱살을 잡으시겠지?’
뜨거운 효자!
하지만 김태산은 지금 우르크에서 이데르고 역병 교단 잔당 사냥하느라 바빴다.
거기에다가 몇몇 길드들이 우르크 지역에 슬금슬금 진출하려고 하고 있기도 하고….
“일단 아키서스 천사들이 있습니다.”
“아키서스 천사들?”
“제가 아까 말씀드린 건 헛소문이 아닙니다. 백작님. 절 믿으십시오. 아키서스 천사들은… 정말 그렇게 생겼습니다!”
“아니…?!”
베스고 백작은 경악했다.
세상에 그따구로 생긴 놈들이 있단 말인가?
“제가 불러드리는 대로 한 번 그려보십시오. 자자.”
“그, 그래. 한 번 해보지.”
“일단 머리가 세 개에.”
“…….”
“팔이 여섯 개에.”
“…….”
“입에서는 불을 뿜고 번개를 던지는데….”
“그거 진짜 천사 맞나????”
[베스고 백작을 돕습니다!]
[베스고 백작의 그림이 완성되는 정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집니다!]
[당신의 미술 스킬이 너무 낮아 페널티를…]
[행운이 매우 높습니다!]
[화술이…]
[전술이…]
[……]
[……]
[카르바노그가 대단하다고 외칩니다!]
그림 안 그려본 놈과 그림 못 그리는 놈이 손을 잡고 만드는 작품!
‘내 초급 미술 스킬. 베스고 백작 중급 미술 스킬. 합쳐서 고급 미술 스킬 효과를 만들어야 해.’
[뭔 미친 계산법이냐고 카르바노그가…]
애초에 베스고 백작이 중급 미술 스킬은 맞긴 한가?
그러나 이미 스킬은 시작되었다.
태현은 최선을 다해 아키서스의 천사를 묘사하고, <신의 예지>를 사용해 베스고 백작을 인도했다.
“백작님! 팔 드십시오! 거기가 아닙니다! 좀 더 위에!”
“여, 여기? 여기?”
“그렇습니다! 여기 색이 좀 부족한 것 같은데 보석 없습니까?”
“여기 있….”
“좀 더 아낌없이 씁시다! 자. 이건 제가 들고 있을 테니까!”
방구석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케인은 감탄했다.
그 와중에 보석을 빼돌리다니!
‘미친놈 같으니!’
에랑스 왕국의 보석들은 질이 좋고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베스고 백작이 갖고 있던 건 특히 그랬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말….
* * *
리그 일정은 끝났다.
리그의 첫 번째 시즌은 수십 가지 기록을 세우며 어마어마한 대흥행을 만들어냈다.
‘잘 될까?’ 싶던 사람들의 의심을 박살 내버린 대성공!
그리고 리그는 수십 명의 스타들을 만들어냈다.
아무리 약팀이어도 강한 선수는 티가 나기 마련.
벌써부터 각 팀 팬들은 ‘단장님 A 데리고 와주세요’, ‘사장님 B 데리고 와주세요’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가장 많은 소리를 듣는 건 역시 태현!
몇몇 팀들은 ‘김태현 영입 모금합니다’ 하며 팬들끼리 캠페인을 진행할 정도였다.
하지만 진지하게 태현을 영입해야 한다고 믿는 팬들은 오히려 적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너무 불가능해 보였으니까!
-그냥 팀 KL을 인수합시다.
-팀 KL은 매번 인수 썰만 뜨는데… 김태현이 팔 생각 없나 봐.
-팀 KL은 진짜 말도 안 되게 소규모인데 어떻게 1부 리그에 있는 건데??
-저번 인터뷰 보니까 그냥 김태현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만들었던데. 숙소부터 시작해서 코칭까지 그냥 다 자기가 하더라.
-뭔 미친 소리야 그게??
-드라마도 이런 내용으로 찍으면 욕먹는다!
전 세계의 쟁쟁한 대형 게임단들이 뛰어드는 1부 리그에서, 그것도 소규모로 모인 팀이 아무 지원 없이 혼자서 1위를 찍다니.
너무 말도 안 되어서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리그 1위 확정할 때도 기사가 몇 만 개가 나왔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믿기 힘들어했다.
-김태현 돈 부족하지 않나? 운영하기 힘들지도….
-미쳤냐? 성적 안 나올 때면 모를까 지금 후원사에 광고비에 중계료에 상금에… 솔직히 팀 KL만큼 흑자 나는 게임단도 없을걸. 지출은 거의 없는데 들어오는 돈만 가득하잖아.
-와. 그거 다 쌓아놓는 건가? 김태현 나중에 게임단 규모 키우는 거 아냐?
-김태현이면 할 만하지.
-아냐. 김태현이 말하는데 수입 같은 건 그냥 선수들한테 다 공평하게 나눠준대.
-…….
-…와 미친….
-뭐 이런….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도, 다시 들으면 놀라운 사실!
-팀 KL 망하길 기대했는데 평생 무리겠다.
-이제는 절대 안 망하지.
-…김태현 씨. 게임에만 집중합시다. 솔직히 힘들잖아요!
-김태현! 게임에만 집중하자! 솔직히 게임단 운영하고 감독하고 숙소 집안일하고 게임하는 건 양심상 아니다.
-판온 주최 측에 과로로 신고 때려야 하는 거 아님??
팀 KL이 망할 일이 없다는 걸 확인한 다른 팀 팬들은 애타게 태현을 걱정했다.
김태현…!
그렇게 고생하지 마!
그냥 편하게 선수로 살자!
제발 인수 당해줘!
* * *
‘나 혹시 속은 거 아니겠지?’
새 일자리를 찾고 있는 감독, 사베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베이징 파이터즈에서 사건 터지고, 프런트와 싸우고, 그 뒤 잘린 감독이 바로 그였다.
그 뒤에 베이징 파이터즈에서 내부고발 터지고 성적 꼬라박아서 좀 재평가를 받긴 했다.
-아앗… 사베트 님… 이런 팀을 데리고 1위 다툼을….
-사베트를 다시 데리고 와야 하지 않나?
-외국인 뭐하러 데리고 오냐? 그냥 새 감독 찾아!
하지만 그건 그거고, 새 일자리는 찾기 쉽지 않았다.
게임단들은 잡음 없는 감독을 원하지 문제 있는 감독을 원하지 않는 것!
그래도 몇몇 게임단들과 면접을 봤고, 유성 게임단 쪽에서는 꽤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베트는 속으로 ‘어? 이거 되는 거 아닌가?’ 하면서도 최대한 참고 있었다.
만약 이러다가 떨어지면 눈물 날 테니까!
‘판온에서 만나자니….’
그런 사베트한테 갑자기 연락이 왔다.
판온 내에서 만나서 이야기 할 생각 있냐는 공손한 제안이었다.
상대가 누군지도 밝히지 않고 날아온 어처구니없는 제안이었지만, 말을 전한 사람이 워낙 이쪽 업계에서도 유명한 사람이라 허튼소리는 아니었다.
‘설마 유성 게임단 쪽에서 불합격 나왔는데 그냥 통보하기는 미안해서 이렇게 불러주나??’
그럴 수 있었다.
유성 게임단 담당자들은 자신 있어 했지만, 윗선에서 설마 결국….
“무례한 제안에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베트는 경악했다.
앞에 나타난 건 김태현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