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76화
“괜찮을 것 같은데.”
“맞아요. 에랑스 왕국하고 쌓은 관계가 얼마인데.”
일행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태현도 동의했다.
태현만큼 에랑스 왕국과 친한 사람도 드물었던 것이다.
태현 본인은 에랑스 국왕과 친분이 있었고, 케인은 4왕자의 호위기사였던 데다가, 에랑스 왕국에 돌았던 정체불명의 독도 해결해 주지 않았던가.
기사들을 만나면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어? 너희 국왕하고 어제도 같이 밥 먹고 마계 갔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태현!
* * *
-죄송합니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
[에랑스 왕국의 병사들이 당신의 출입을 막습니다!]
[출입을 금지당합니다.]
“이것들이 미쳤냐?!”
케인이 울컥해서 무기를 휘두르려고 했다. 그러자 병사들이 깜짝 놀랐다.
-으악! 괴물이다!
-아니야! 아탈리 왕국의 그 호위기사야.
-앗. 그렇군.
“케인. 진정해라.”
태현은 케인을 말렸다.
에랑스 왕국에 들어오자마자 만난 병사들이 출입을 금지하자 태현도 좀 당황스럽긴 했다.
그러나 판온에서 일어난 일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는 법.
“이유를 알고 싶은데.”
-저… 그것이….
병사들은 우물쭈물하며 말을 하지 못했다. 태현은 밀어붙였다.
“아! 슬프군. 내가 에랑스 왕국에서 얼마나 많은 활약을 하고 업적을 세우고 국왕하고도 친하고 마계에 가서 왕자도 구했는데….”
“태현 님! 울지 마세요!”
“울지 마십시오! 선배님!”
태현이 얼굴을 가리며 슬퍼하자 일행들이 위로했다.
그리고 병사들을 노려봤다.
너희 정말 나쁘다!
[최고급 화술…]
[명성…]
[……]
[에랑스 왕국 병사들이 죄책감을 느낍니다!]
[설득에 성공합니다!]
-그, 그것이. 그게….
결국 백인대장이 나서더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왕자님께서….
“뭐? 4왕자?”
케인이 발끈했다.
이 은혜도 모르는…!
-아니요, 1왕자님께서.
“아. 그래? 휴. 다행이군.”
-그리고 2왕자님께서도….
“뭐 두 왕자는 재수 없게 생겼잖아.”
“맞아. 좀 태도부터가 싸가지 없었지.”
마계에서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왕자들한테 치가 떨렸다.
남은 마계에 가서 고생하는데 훼방만 놓던 싸가지 없는 놈들!
-3왕자님께서도 들여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만.
“…….”
“…….”
태현 일행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상 1, 2, 3왕자가 다 손을 잡고 출입금지를 때려 버린 수준!
“…너 뭐 했냐?”
“한 게 너무 많아서 좀….”
태현은 고민했다.
한 게 너무 많아서 뭐가 문제인 건지 알 수가 없다!
역병인가? 독을 숨겨서 그런가? 악마들과 손을 잡아서 그런가? 아니면 또 뭐….
-폐하. 저희는 폐하를 존경합니다! 왕자님들도 언젠가 폐하의 진심을 알아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에랑스 왕국 백인대장이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명성과 화술 스킬이 너무 높은 데다가 업적이 많다 보니, 위에서 금지 명령을 때려도 밑의 NPC들이 알아서 거부를 하는 상황!
다른 플레이어들이 봤다면 ‘와 저게 말이 되냐 개사기네’ 소리가 나왔을 상황이었다.
“진심?”
-예! 지금은 오스턴 왕국의 사악한 모험가 놈들 때문에 무언가 착각하고 계시지만, 왕자님들도 곧….
‘내 진심이면….’
왕자들을 보면 죽여 버리겠다는 진심을 알아버린다는 것인가?
[카르바노그가 절대 그 진심 들키지 말자고 말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태현 님이 한 짓이 많긴 하지만 그게 지금 와서 들키는 것도 좀 이상한데요.”
이다비는 냉정하게 지적했다.
‘보통 거기서는 한 짓이 괜찮은 짓이라고 말해주지 않나?’
최상윤은 속으로 생각했다.
누가 김태현하고 같이 다니는 사람 아니랄까 봐….
“왕자들이 태현 님을 견제하려는 거 아닐까요?”
“음. 명성 스탯이 높으니 그럴 수 있긴 하겠군.”
과도한 명성 스탯의 부작용!
그건 바로 NPC들의 견제였다.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은 NPC한테 무시는 받아도 견제를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태현의 명성은 NPC한테 견제를 받아도 놀랍지 않은 수준!
‘명성 20만 넘긴 게 나밖에 없을 테니 어디 참고하기도 힘들겠군.’
“오랜만에 변장 좀 해야겠는데.”
태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케인은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팔 여섯 개에 기껏 적응됐는데….’
“케인. 키메라 종족 말고 다른 종족 할 기회가 와서 좋겠다?”
“으… 응. 물론이지!”
최상윤의 물음에 케인은 거짓말로 대답했다.
은근히 중독성 있는 키메라 종족!
* * *
“왕자님! 아탈리 왕국의 왕이 저희를 공격했습니다!”
“아주 못된 놈입니다! 혼내주십쇼!”
실베드 같은 플레이어들이 미쳐서 태현한테 덤빈 게 아니었다.
당연히 그들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에랑스 왕국의 쟁쟁한 왕자들이 ‘너희들을 팍팍 밀어주겠다! 다른 왕국 놈들은 건드리지도 못하게!’라고 말했으니,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왕자, 토마스는 벌컥 화를 냈다.
“감히! 아탈리 왕국의 왕이 내 군대를 공격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왕자 전하. 하지만 아탈리 왕국의 왕은 위대한 영웅이고 대륙의 악과 싸우기 위해 온갖 노고를 마다하지 않은 전사인데….”
“오해가 있었던 거 아닙니까?”
토마스 밑에 있는 기사단장들이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플레이어들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김태현이 잡은 플레이어가 몇 명인데 대체 왜 저렇게 인기가 좋은 거지?’
‘김태현도 악명 스탯 꽤 높지 않나? 그걸 좀 봐달라고!’
아무리 악명이 높아봤자 그걸 압도하는 명성 스탯!
그게 있는 한 기사들에게 태현의 욕은 먹히지도 않았다.
물론 다행히 왕자는 플레이어들의 편이었다.
“시끄럽다! 아무리 대단한 영웅이라고 해도 내 군대를 공격했다지 않았느냐!”
“기껏해야 천하고 하찮은 모험가 한 놈 건드렸을 뿐 아닙니까?”
“맞습니다. 귀족도 아닌 자였습니다.”
“…….”
플레이어들은 입을 다물었다.
저런 재수 없는 NPC 놈!
아쉬운 상황이니까 입을 다물고 있었지 아니었다면 바로 욕을 했을 것이다.
“폐하를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아탈리 왕국의 왕을 좋게 봐주셨으니….”
“어허!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폐하께서는 아프시다고!”
“그래도 말씀하실 능력은 남아 있을….”
“말하기 힘드실 정도로 아프시다고 하지 않으셨느냐!”
“그러면 명령은 어떻게 내리신 겁니까?”
“…가끔 기운을 되찾으시고 명령을 내리곤 하신다! 너희 같은 외부인들이 찾아뵈면 더 편찮으시다는 걸 모르느냐!”
이 대화를 듣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수군거렸다.
처음에는 에랑스 국왕이 직접 내린 퀘스트인 줄 알았는데….
옆에서 있다 보니 점점 뭔가 수상쩍다?
“야, 이거 국왕이 직접 내린 거 맞아?”
“왕자 놈들이 내린 거면….”
“밝혀서 좋을 거 없으니까 숨겨야 하겠군.”
“어. 나 지금 방송 중인데.”
“…미친놈아! 뭘 방송하고 있어! 이런 퀘스트는 극비 정보잖아!”
“나만 하냐!? 다른 놈들도 하고 있어!”
원래라면 극비로 지켜졌어야 할 퀘스트 정보들도, 참가한 랭커들이 많다 보니 개인 방송으로 순식간에 새어 나갔다.
누군가 공개하면 자기만 손해니, 차라리 내가 먼저 공개한다!
이런 훌륭한 이기심 덕분에 이다비의 귀에도 정보들이 쏙쏙 들어왔다.
* * *
“태현 님. 국왕이 아니라 왕자들이 주도하고 있나 본데요? 국왕 얼굴이 안 보인데요.”
“죽였나?”
“아, 아니 그건 좀….”
“설마….”
“왜? 가능성 있지 않나?”
바로 죽였나부터 소리 나오는 태현의 모습에 일행은 경악했다.
설마 그랬을까!
“죽이진 않더라도 가두지 않았을까요?”
“그럴듯하군.”
국왕을 가두고 왕자들끼리 알아서 해먹는 그림.
딱 봐도 답이 나왔다.
“국왕이 자리에 없으면 태현 님을 푸대접하는 것도 말이 되죠.”
“국왕 어디에 가둬놨는지 알 수는 없을까?”
“그건 플레이어들도 모를걸요.”
“음.”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국왕을 찾아서 구해줘야 할까?
“일단 국왕은 내버려 두고 아키서스 퀘스트부터 하자.”
“!”
아키서스 교단 퀘스트가 너무 밀린 상태였다.
국왕을 구해주려고 하면 또 연계 퀘스트가 몇 개는 이어질 텐데, 이러다가는 아키서스 퀘스트는 더욱 늦어질 것!
“하지만 계속 왕국 내에서 방해받을 텐데?”
“어차피 변장하고 움직일 테니까 크게 상관없어. 게다가 대부분의 NPC들은 설득 가능하고.”
태현은 화술 스킬에 자신이 있었다.
태현을 발견하고 말을 걸어오더라도 충분히 극복 가능할 것!
“에랑스 국왕은 뭐 알아서 잘 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 그런데 4왕자는 괜찮나?”
케인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물었다.
그러고 보니 4왕자 지금 잘 지내고 있나?
1, 2, 3왕자는 서로 사이좋게 이름 내걸고 있었는데 4왕자는 영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마계에서 돌아온 다음에 노드란체 섬에서 지내지 않나?”
“노드란체 섬이면 안전하겠네.”
북쪽에 똑 떨어져 있는 섬인 덕분에, 비교적 안전한 곳이었다.
대륙에서 무슨 난리가 일어나도 안전한 것!
“노드란체에는 플레이어들도 많고 다른 NPC들도 많으니까.”
“아. 그렇겠네. 다행이다.”
“…네가 4왕자 호위기사고 노드란체 영주인데 왜 네가 모르냐?”
“…….”
케인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태현은 한심하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이 자식 영지 관리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겠지…?’
[에랑스 왕국, 미리반 시에 도착했습니다!]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 미리반 시는 수많은 예술로 꽃피는 도시입니다!]
[<화신의 성장> 퀘스트 1차 단계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을…]
[……]
[……]
[이 지역은 한때 아키서스의 신전이 있던 도시입니다. 친밀도를 올리고 신뢰를 얻어 주민들에게 정보를 얻으십시오.]
[숨겨진 아키서스의 신전을 찾으면 화신의 다음 길이 나올 것입니다!]
“어….”
태현은 멈칫했다.
하필이면 왜 예술 위주 도시냐?
전투 위주여도 태현이 활약할 자신이 있었고, 대장장이 기술이어도 자신이 있었고, 하다못해 화술이나 폭탄, 마법까지도 어떻게 커버가 가능한데….
“음. 예술 자신 있는 사람?”
태현의 말에 일행 모두 시선을 피했다.
“…뭐, 예술 스킬 부족해도 친밀도는 얻을 수 있으니까. 크게 걱정하진 말자.”
“그렇지? 막 호위 퀘스트를 해도 되니까….”
‘그렇게까지 쉽게 시켜줄 것 같지는 않지만.’
일행은 기대와 불안이 섞인 마음으로 성문을 통과하려고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하필이면 안에서 나오던 NPC들과 딱 마주쳤다.
[미리반 시의 후원자이자 위대한 미의 애호가, 베스고 백작의 행렬을 목격했습니다!]
[명성이 오릅…]
[예술 관련 스킬에 보너스를…]
각종 화려한 깃발과 그림, 조각들을 달고 움직이는 백작의 행렬!
백작 뒤에는 화가, 음유시인, 연주자 등등이 따라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나 예술 좋아하는 귀족 NPC야’라는 게 느껴졌다.
-눈 마주치지 말자.
-괜히 부딪히면 귀찮아지겠습니다.
“잠깐!”
“?”
그런데 베스고 백작이 태현을 먼저 불렀다.
‘뭐지? 변장이 이상했나?’
태현이나 일행의 변장 스킬은 완벽에 가까웠다. NPC가 특수한 스킬이라도 갖고 있지 않은 한….
“자네… 영웅의 얼굴을 갖고 있군!”
“…….”
“잠깐 이리 오게! 내 영감을 마구마구 자극하는군!”
“아니….”
-그러게 왜 그렇게 명성을 높였어요!
-내가 일부러 키웠니?!
태현은 억울했다.
명성이 알아서 높아진 거지 내가 일부러 키운 것도 아닌데…!
‘진지하게 명성 낮추는 아이템을 찾아야 하나?’
경매장에 명성 낮추는 아이템들이 있긴 했다.
보통 이런 게 페널티긴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