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175화 (1,174/1,826)

§ 나는 될놈이다 1175화

“경매도 좋긴 한데 지금 당장은 무리지.”

영지 하나 팔 때마다 태현의 왕국에는 건물들 몇 개가 들어선다!

그 정도로 영지 경매는 효과가 좋았다.

판온의 영지 없는 길드들은 영지를 갖고, 태현은 골드를 갖는 서로 행복한 교환이었지만….

지금은 무리였다.

사이그 요새는 전쟁터 한복판에 위치한 곳이었으니까.

폭탄이 잔뜩 깔린 위험매물!

“그래도 공짜로 얻은 게 어딥니까?”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

뭐든 간에 공짜로 받은 건 좋기 마련.

태현 일행은 흐뭇한 표정으로 요새 안에 들어갔다.

전투용으로 지은 요새답게 시설은 대부분 전투 위주 시설이었다.

성벽, 대장간, 마굿간, 공성 병기 제작소 등등….

‘길드 동맹 놈들 열심히도 지어놨네.’

요새 안을 둘러본 태현은 솔직히 감탄했다.

골드를 팍팍 발라서 만들었다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왜 이렇게 만들었지? 미다스 길드 애들이 많이 쳐들어온다지만 이건 좀 과한데?”

“그러게요. 이런 공성 병기까지는 필요 없어 보이는데….”

이다비도 의아하다는 듯이 시설들을 확인했다.

<거대 저주 화살 발리스타>나 <저주 안개 마법탄 대포> 같은 건 아무리 봐도 가성비 안 좋은 시설들!

이런 식으로 저주 마법만 쏴대는 무기들은 써먹기 힘들었다.

저주 마법이 나쁜 마법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공격력이 좀 부족한 것이다.

광역기를 뻥뻥 날려야 할 시간에 저주만 날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이거 김태현 노린 거 아니냐?”

“그런 것 같긴 해.”

케인과 최상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태현 대비책 같아 보인다!

“성벽 수리는 굳이 안 해도 되겠지. 시설들 중에 챙길 수 있는 건 왕국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내버려 둘까? 근처에 던전 있나? 입장 제한 풀고 플레이어들 다 오게 하자.”

길드 동맹만 이용할 수 있었던 던전도 제한 해제!

주변 플레이어들이 기뻐 눈물을 흘릴 조치였다.

“김태현!”

“?”

누군가 밖에서 태현을 부르자, 태현은 의아해하며 남은 성벽 위로 올라갔다.

[에랑스 왕국 37군단이 성벽 앞에 도착했습니다!]

“37…이면… 들어본 적 없는데?”

“새로 생긴 곳 아니에요?”

“처음 들어보는데?”

일행들의 수군거림에, 37군단 앞에 있던 랭커가 발끈해서 외쳤다.

“감히 에랑스 왕국 군대를 무시하다니! 기사들! 저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냐!”

에랑스 왕국의 기사들은 태현의 발언에 뛸 듯이 분노….

하지는 않았다.

-뭐, 아탈리 왕국의 폐하는 명성이 드높은 분이시니 모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저분이 뭐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닐 겁니다.

[화술이 매우 높습니다!]

[명성이…]

[……]

[기사들이 당신의 말을 듣고 화를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태현을 편들어주는 현상까지!

그 모습에 랭커는 기가 막혔다.

이런 미친 기사들이…!

“그래서 넌 누구냐?”

“날… 날 모른다고?”

“길드 동맹 랭커인가? 미안. 길드 동맹 놈들 하도 많이 상대하다 보니 이름을 잘 못 외우겠다.”

부들부들!

랭커쯤 되면 기본적으로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기 마련.

그런 상대한테는 어떤 욕보다 이런 태도가 더 효과적이었다.

물론 태현은 정말 기억 못 하는 것이었다.

이다비가 옆에서 속삭였다.

“태현 님. 저 사람은 실베드에요.”

실베드.

길드 동맹 소속도 아닌 에랑스 왕국 소속 랭커였다.

수많은 길드들과 랭커들이 ‘에랑스 왕국은 너무 느려!’, ‘야 퀘스트로 영지 받으려면 게임 끝나겠다!’며 다른 왕국으로 떠나서 영지를 찾을 때, 에랑스 왕국 플레이어들은 묵묵히 남았다.

-에랑스 왕국은 언젠가… 언젠가 뜬다!

-국왕이 우리한테 영지를 주겠지! …언젠가!

사실 떠날 때를 놓쳐서 남은 것에 가까웠지만, 에랑스 왕국 소속 길드와 랭커들은 믿었다.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고.

그리고 정말 기회가 왔다.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기회였지만….

-에랑스 왕국 전쟁! 에랑스 왕국 전쟁!!

-오스턴 왕국 상대로 무제한 공격 가능! 참가해야 해!

-야! 에랑스 왕국이 뒤에 있는데 길드 동맹 놈들이 이기겠냐?

-공적치 포인트 쓰면 병사들도 빌릴 수 있대! 무조건 다 써!

에랑스 왕국 랭커들은 눈이 뒤집혔다.

갖고 있던 재산들을 다 공적치 포인트로 바꾼 다음, 병사들과 기사들을 고용하는 데에 올인!

덕분에 지금 에랑스 왕국에는 듣도 보도 못한 군단들이 우르르 생겨나고 있었다.

“김태현, 나는 37군단을 이끄는 지휘관이다!”

“그래. 나는 아탈리 왕국의 왕이고, 아키서스 포병대와 은빛 검 기사단, 수도 기사단, 아키서스 성기사단, 아키서스 사제단, 아키서스 화염단, 데스 나이트 기사단, 핏빛 군도 기사단, 마르체티 백작령 기사단, 에르네스토 백작령 기사단, 귀족 전사대, 왕국 함대 등을 이끄는 지휘관이다.”

“…….”

“…….”

순식간에 싸늘해지는 분위기!

실베드가 끌고 온 군대에도 플레이어들은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태현과 실베드의 차이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와. 이력이 장난 아닌데?”

“실베드는 진짜 비교도 안 되겠다.”

“뭔 놈의 경력이 한 줄로 끝나?”

그 소리를 실베드도 들었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실베드는 급히 화제를 돌렸다.

“김태현! 나는 에랑스 왕국의 이름으로 오스턴 왕국 정벌에 참가하고 있다!”

“그래. 들었는데.”

“지금 네가 점령하고 있는 곳은 오스턴 왕국의 땅이자, 에랑스 왕국이 점령해야 할 땅이다! 아탈리 왕국 소속인 너는 비켜나라!”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일행을 쳐다보았다.

일행도 모두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요새 비우고 비키라고?”

“그렇다. 에랑스 왕국의 이름으로 명령하겠다!”

실베드는 최대한 그럴듯한 각도를 잡고서 외쳤다.

‘내 뒤에는 에랑스 왕국이 있다. 김태현도 에랑스 왕국과는 부딪히지 않으려고 하겠지.’

김태현과 직접 1:1로 싸울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지금 판온에서 태현과 1:1로 PVP를 떠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부터가 의문이었으니까.

하지만 싸움은 1:1로만 하는 게 아니었다.

가끔은 말 몇 마디만으로도 날로 먹을 수 있는 것!

에랑스 왕국의 이름을 팔아서 태현을 여기서 쫓아낸다면 실베드는 어마어마한 이득을 보게 됐다.

꿀땅인 사이그 요새를 영지로 갖는 건 물론이고, 태현을 상대한 랭커로 명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싫은데.”

“뭐?”

“싫다고.”

“아니… 내 뒤에 에랑스 왕국… 기사들….”

“자신 있으면 들어와 보던가.”

“아니… 너 지금 요새 성벽도 다 무너져 있고… 지금 데리고 있는 부하들도 없잖아….”

“어. 그러니까 자신 있으면 들어와 보라고.”

훤히 드러난 입구.

성벽의 한쪽이 무너져 내린 요새는 정말로 만만해 보였다.

그리고 김태현 일행은 기껏해야 열댓 명 정도!

당황한 실베드는 저 멀리 떠나고 있던 에랑스 왕국 기사들을 불렀다.

“잠깐, 잠깐! 너희들이 김태현한테 영지를 양보한 것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

-저희는 명령을 따른 거지 영지는 탐내지 않았습….

“지금 그게 중요해?! 덕분에 지금 다른 놈 손에 영지가 들어간 거잖아! 너희들도 도와!”

[화술 스킬이 낮습니다.]

[명성이…]

[설득에 실패합니다.]

[기사들이 분노합니다!]

-어디서 명성도 낮은 하찮은 놈이 감히 우리한테 명령이냐!

-귀족도 아닌 놈이 감히 죽고 싶으냐!

공손하던 기사들이 갑자기 정색하더니 성질을 내기 시작했다.

“잠… 잠깐만. 진정해.”

-말 걸지 마라! 네놈의 말이 귀에 닿으면 더러워진다!

-한 번만 더 말을 걸면 공격하겠다!

에랑스 왕국 기사들은 부하들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남은 건 실베드가 끌고 온 37군단 병사들뿐!

태현 일행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 과정을 구경하고 있었다.

“다 끝났냐?”

“…김태현.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당장 안 꺼지면… 어. 김태현 어디 갔냐?”

“…….”

“김태현 어디 갔냐니까?”

성벽 위에 태현만 보이지 않았다. 다른 일행들만 어깨를 으쓱거리고서 있었다.

케인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했다.

“태현이 잠깐 화장실 갔대.”

“아, 그렇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에서 태현이 튀어나왔다.

“!!!!”

실베드는 기겁해서 방패를 휘둘렀다. 그러나 태현은 그걸 이미 읽고 있었다.

‘딱 봐도 방패 쓰는 탱커 직업이니까 기습해서 공격 걸면 방패로 막겠지.’

태현이 들고 있는 것은 고대의 망치.

활활 타오르는 고대의 망치가 휘둘러졌다.

깡!!!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

[……]

[……]

[<고대의 흑철 방패>가 파괴되었습니다!]

“미, 미, 미, 미친놈!”

실베드는 경악했다.

아무리 김태현이 폭딜로 유명한 놈이라지만 일격에 방패를 부수다니!

물론 태현은 각종 버프 스킬을 닥치는 대로 걸고 나와서, 행운의 일격을 최대로 끌어올린 다음 기습을 가한 데다가 <고대의 망치>는 페널티까지 있었지만….

당하는 실베드 입장에서는 머리가 새하얗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김태현 무섭다는 소리가 나오는구나!

쉭-

태현은 무기를 바꿔 끼었다. 태현이 유일하게 빈틈을 드러내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실베드는 당황해서 그 시간을 그냥 날려 버렸다.

“다시 말해봐라. 뭐? 안 물러나면 어쩌겠다고?”

“나, 날 공격하면 에랑스 왕국하고….”

“그건 내가 에랑스 국왕하고 잘 말해서 해결할 테니 넌 네 목숨부터 걱정해라!”

말과 함께 태현은 달려들어 검을 쑤셔 박기 시작했다. 실베드는 어떻게든 떨쳐내려고 했지만….

[공격이 빗나갔…]

[공격이 빗나갔…]

[……]

“야! 도와줘! 뭐하고 있냐!”

“…….”

“…….”

실베드를 따라온 수많은 플레이어들은 1:1에 끼어들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괜히 끼었다가 자기만 아작날 것 같다!

가까이에 수십 명이 넘게 있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온다는 사실에 실베드는 기가 막혔다.

“컥! 크악! 이, 자식들, 끝나면, 두고, 크악!”

* * *

“어떻게든 막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이겠지?”

“예. 마계에 있던 놈들 싹 불러 모아서 배치했습니다. 총동원했으니 아무리 에랑스 왕국이 강하다 하더라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공격보다는 수비 쪽이 언제나 유리하기 마련.

게다가 길드 동맹은 태현한테 호되게 당한 것 때문에 수비 시설이 장난이 아니었다.

“미다스 놈들은?”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싸가지 없는 놈들이지만 멍청하게 굴지는 않을 겁니다.”

“김태현 놈은?”

한 명을 이렇게 체크한다는 게 웃긴 일이었지만 길드 동맹은 진지하게 김태현을 체크하는 담당이 따로 있었다.

그만큼 위험한 놈!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에랑스 왕국 플레이어들하고 싸우고 있다던데요.”

쑤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쉬기에는 너무 일렀다.

충격적인 소식이 곧이어 들이닥친 것이다.

-길… 길마님! <화이트 나이트> 놈들이 총공격을 선언했습니다!

스미스가 이끄는, 하늘섬으로 간 길드들의 총연합 <화이트 나이트>.

이데르고 교단이 날뛰는 동안 신경을 쓸 정신이 없어 내버려 두고 있었는데….

그동안 하늘섬을 대충 정리한 <화이트 나이트>가 이때다 싶어 총공격을 가해온 것이다.

쑤닝은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걸 느꼈다.

* * *

“너희들도 덤빌 거냐?”

“아닙니다!”

“저희는 순수하게 오스턴 왕국과 사악한 길드 동맹 놈들을 공격하려고 온 겁니다! 영지에 아무 욕심도 없습니다!”

태현이 실베드를 처리하고 고개를 돌리자 다른 플레이어들은 다급히 외쳤다.

눈 마주치지 말자!

“음. 그런데 괜히 팼다는 생각이 좀 드네.”

‘다 패고서…?’

케인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말하진 않았다.

“왜 그러세요?”

“새로 뜬 아키서스 퀘스트, 지역 확인해 보니까 에랑스 왕국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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