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74화
“고기 먹으려고?”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에랑스 왕국 기사들이 여기 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 뱀의 고기가 탐나서 아니겠는가.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이다비의 말에도 태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기사라면 이런 보양식에 관심 없을 리가 없다!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폐하?
-역시 폐하께서는 명예로우신 분답게 저희가 원하는 걸 아셨군요!
[에랑스 왕국 기사들이 당신의 말에 감동합니다!]
<기사들에게 참 좋은 음식-에랑스 왕국 퀘스트>
에랑스 왕국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힘들고 고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귀족들이 시키면 성 두 채를 점령하고 나서 거스름돈까지 받아와야 하는 것이 그들!
그런 그들의 노고를 요리로 따뜻하게 위로해 주자.
보상: ?, ???
“진짜 요리 먹으러 왔다고요?!”
유지수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앞에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정말 요리 달라고 온 거야!?
-앗. 아닙니다. 요리도 먹고 싶은 거였지, 요리 때문에 온 건 아닙니다.
-맞습니다.
“그래?”
태현은 아쉬워했다.
요리 테스트 좀 해보려고 했는데….
“태현 님. 괴식 요리는 위험하지 않을까요? 차라리 파워 워리어 요리사 불러서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는 게….”
“하지만 괴식 요리는 성능 하나는 확실해. 기사들도 만족할 수 있다고.”
“왜 굳이 그런 도박을…?!”
“그야 실패해도 별로 손해가 없으니까?”
그건 그래!
이다비는 무심코 납득했다.
태현은 아탈리 왕국의 왕.
에랑스 왕국 기사들의 친밀도가 좀 떨어진다고 해도 별 상관이 없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에랑스 왕국 눈치를 엄청나게 봤지만 태현은 본인이 왕!
-폐하! 저 요새 공략을 도와주십시오!
<사이그 요새 공략-에랑스 왕국 퀘스트>
에랑스 왕국은 대륙에 일어난 모든 일들이, 자격 없는 찬탈자들이 왕국을 차지해서라고 결론을 내렸다.
왕국을 도와 사악한 찬탈자들을 몰아내고 옛 왕국의 후손들에게 왕국을 돌려주자!
보상: ?, ???
“어. 지금 설마 아무 대가 없이 도와달라는 건가?”
태현은 당황했다.
기사들이 뭘 잘못 먹었나?
양심 없는 교단 NPC들도 저런 식으로 퀘스트를 내놓지는 않았다.
다행히 기사들은 그렇게 양심 없지 않았다.
-폐하께서 요새를 점령해 주시는 걸 도와주신다면, 폐하에게 이 요새를 바치겠습니다!
[친밀도가 매우 높습니다!]
[에랑스 왕국 내 공적치 포인트가…]
[에랑스 왕국 내 평가가…]
[명성이 매우 높…]
[에랑스 왕국 기사들이 보상으로 사이그 요새를 내놓습니다!]
[퀘스트를 성공할 시 사이그 요새를…]
“!”
태현은 놀랐다.
진짜 요새를 준다고?
그 말에 일행도 깜짝 놀랐다.
“요새를 준다는데요!?”
“이건 받자!”
“받아야 합니다, 선배님!”
순식간에 달라지는 반응!
영지라면 할 이유가 충분했던 것이다.
“애들아. 이거 받으면 길드 동맹한테 진짜 선전포고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근데 별 상관없지 않냐?”
“맞아. 한두 번 싸운 것도 아니고.”
그건 그래!
태현은 반박할 수 없었다.
솔직히 길드 동맹 상대로 그렇게 겁을 먹지는 않았다.
퀘스트에 필요하면 언제든지 길드 동맹 뺨을 때려왔던 게 태현이었으니까.
하지만 요새를 점령하는 건 그 의미가 달랐다.
길드 동맹과 미다스 길드가 모두 탐내는 요새에 공격을 거는 순간, 서로 물러설 수가 없는 것이다.
두 길드도 체면이 있으니 바로 전면전이 될 터.
“요새는 고민 좀 해보고, 일단 요리부터 깨자.”
“요리 퀘스트는 깨기 쉽죠.”
* * *
“공격이 멈췄다!”
[에랑스 왕국의 공격이 일시적으로 멈춥니다!]
[수비 측의 사기가 오릅니다!]
[버프…]
[……]
길드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막긴 했다!
물론 성벽 밖에는 아직 쌩쌩한 병사들이 눈빛을 빛내고 있었지만….
“…….”
“…….”
여유가 생기자 갑자기 찾아오는 어색한 침묵.
맥필과 리우쑹은 서로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 자식 믿어도 되나?’
‘지금 공격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맥필이야 길드 동맹 데리고 요새를 지켜야 하지만, 리우쑹은 미다스 길드원들 데리고 이 요새를 몇 번이고 점령하려던 사람.
매우 어색하고 미묘할 수밖에 없었다.
“리우쑹. 잘 들어봐라. 에랑스 왕국이 오스턴 왕국 전역에 전쟁을 걸었다고. 너희 미다스 길드도 포함이야.”
“너 직업이 야만전사면서 말을 왜 그렇게 잘 하ㄴ….”
“좀 들어, 이 자식아!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근데 왜 거리를 벌리고 있냐?”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면서 공간을 만들고 있는 리우쑹과 길드원들!
미다스 길드는 마법사들이 가장 많은 길드였다. 리우쑹 본인도 마법사 랭커에, 길드원들도 대부분 마법사.
그리고 마법사한테 가장 필요한 건 거리!
“너희들이 우리 공격할까 봐 그런 거지.”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밖에 적들이 있는데 우리가 너희를 왜 공격해!”
“길드동맹이야 예전부터 상황판단 못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걸로 유명했으니까….”
“뭐? 그러는 너희는?”
“우리는 너희보다 낫지. 솔직히 나한테 길드 동맹 줬으면 판온 1위 찍었다. 그걸 못 운영해서 말아먹고 길드 쪼개지게 만드는 게 말이 되냐?”
리우쑹은 과연 길드 동맹에 있던 랭커답게 길드 동맹의 아픈 곳을 정확하게 찌를 줄 알았다.
쑤닝 욕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
“플레이어 하나 못 잡고 길드 말아먹은 주제에 뻔뻔하게 길마 자리는 하고 있고… 나 같으면 접었지. 암.”
“입조심하지 못해, 이 자식?!”
맥필은 분노했다.
할 말이 없어서 더 화난다!
쑤닝이 물론 판온 1위도 노릴 수 있는 길드를 제대로 못 다스리고 말아먹긴 했지만, 길드 쪼개고 나간 놈이 저딴 소리를 하니 매우 화가 났다.
다른 놈은 몰라도 너한테 듣기 싫다!
“기껏 요새 안에 들여보내 줬더니 감히…!”
“같이 싸워줬더니 뭐라고? 어이가 없어서… 하여간 길드 동맹 놈들은 진짜 양심이 없다니까.”
길드 동맹과 미다스 길드는 같은 처지였다.
에랑스 왕국이 둘을 구분하면서 공격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성적이라면 둘은 손을 잡고 힘을 합쳐서 공격을 방어해야 했다.
그렇지만….
사람은 원래 이성적으로만 행동하지 않는 법!
“그래, 이 자식아! 어디 한번 해보자 이거지! 덤벼!”
맥필은 무기를 뽑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리우쑹은 바로 마법을 날렸다.
콰콰쾅! 콰직!
성벽 위에서 얼음이 날아들고 스킬이 난사됐다.
안 그래도 뱀이 날아든 덕분에 박살 난 요새 성벽이 더 부서지기 시작했다.
[성벽 파손도가 심해집니다!]
[성벽의 내구도가 50% 이하로 줄어듭니다!]
[디버프가…]
[페널티…]
[……]
[……]
“???”
태현은 요리하다 말고 요새를 쳐다보았다.
공격 멈췄는데 왜 안에서 싸움 소리가 들리지?
“어이, 기사들. 지금 공격하고 있나? 혹시 몰래 기습했어?”
-아닙니다, 폐하. 저희는 정정당당한 에랑스 왕국의 기사들, 그런 비겁한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카르바노그가 저 기사들이 머리통을 헬멧걸이로 쓰고 있다고 비웃습니다.]
기사들이 들었다면 눈물 흘렸을 정도의 소리!
그러나 카르바노그의 말은 태현만 들을 수 있었다.
“기습 안 했으면 저건 뭐하는 상황이지?”
“…설마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 거 아닐까요?”
“에이. 이다비. 아무리 그래도 지금 여기 이렇게 쌩쌩하게 NPC들이 있는데 자기들끼리 싸우는 미친놈들이 있을… 아니!?”
태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몇몇 플레이어들이 요새 성벽 위에서 뛰어내렸다.
포위되기 전에 빠져나오기 시작한 것!
“미친놈들이 진짜 싸우잖아?!”
“돈 거 아닙니까?”
“선배! 공격하죠!”
유지수는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활을 뽑아 들고 외쳤다.
안 그래도 근질근질했는데, 저 정도면 아예 요새를 가져다달라고 말하는 수준 아닌가!
“아니. 요리하던 건 다 마저 하고. 이거 도중에 멈추면 실패 뜬다고.”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를 사용해 <기사들에게 좋은 고깃국>을 완성시켰습니다!]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
[……]
“…국물 색이 왜 녹색이지?”
케인이 오싹한 감정을 참으며 물었다.
“몸에 좋으니까 그런 거겠지. 녹즙이라고 생각하면 돼.”
“아니 뭔 개….”
“마셔라. 케인.”
“크흡흡흙!”
그 모습을 기사들은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정말 저 기사는 운이 좋습니다.
-저런 영광을 처음으로 받을 수 있다니 참….
저렇게 왕이 직접 요리해서 챙겨주는 기사가 어디 있어!
기사들은 케인을 매우 부러워했다.
꿀꺽꿀꺽-
“맛… 맛있다?”
“!”
“지금 저거 우리도 먹게 하려고 사기치는 거 아냐?”
최상윤이 예리하게 의심했다.
“아냐! 진짜 맛있다고!”
“하긴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 스킬은 랜덤이 강하니 맛있게 나올 때도 있긴 하겠지….”
이제까지 하도 특이한 재료들만 강제로 요리하다 보니 잊게 됐었지만, 태현의 요리 스킬도 낮은 편이 아니었다.
가끔 맛있는 요리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법!
-커. 정말 맛있습니다. 폐하!
-폐하께서는 이런 재주까지 있으셨군요!
[기사들이 대만족합니다!]
[<기사들에게 참 좋은 음식> 퀘스트를 대성공했습니다!]
[에랑스 왕국 내 평가가…]
-이런 요리를 만들어주시는데 불평만 하다니, 저 케인이란 기사는 정말이지….
-왕자님의 호위기사라고 해서 좋게 봐줬는데 역시나 좀….
[에랑스 왕국 내 평가가 내려갑니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평가 내려간 케인!
“아니…! 저도 맛있게 먹습니다! 평소에!”
-그게 정말입니까?
-못 믿겠습니다. 증명해 보십시오. 자기가 받은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진정한 기사입니다.
<충성심을 증명해라-에랑스 왕국 퀘스트>
진정한 기사는 어떤 쓰레기가 나와도 강철 같은 위장으로 소화시켜야….
살다 보니 괴식 요리 맛있게 먹는 것까지 퀘스트가 나오는구나!
“김태현! 괴식 요리 좀 만들어줘! 먹는다 내가!”
-저, 저런 싸가지…!
-저게 기사야 깡패야?
“…김태현 님! 괴식 요리 좀 만들어주십시오…!”
그러나 케인에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요새 성벽이 완전히 무너져내린 것이다.
“…?”
“크아악! 두고 보자, 리우쑹 이 놈!”
길드 동맹이 패배하고 요새 밖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미다스 길드는 좋다고 환호했지만 그 환호는 오래가지 않았다.
요새 벽이 완전히 무너졌는데 방어는 불가능!
-…….
-…총공격! 병사들이여! 돌격해라! 신께서 돌봐주시고 계신다!
-이런 아키서스의 행운이 있나!
미다스 길드도 눈물을 흘리며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퀘스트에 참가하겠다! 요새 점령을 도와줘야지!”
-아니, 폐하. 다 끝나가는데….
“그래서 지금 했던 말을 어긴단 건가? 설마 내가 상황을 보고 간을 봤다는 건 아니겠지?”
[최고급 화술 스킬을…]
[매우 높은 명성을…]
[아탈리 왕국의 왕…]
[권위…]
태현은 치사하게 명성과 업적, 작위로 깔아뭉갰다.
기사들이 상대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
기사들은 결국 설득되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참… 참가를 인정하겠습니다.
[퀘스트에 참가했습니다!]
[요새 점령에 성공했습니다!]
[……]
[……]
[……]
날로 먹었다!
싸움은 한 번도 안 하고 뱀고기만 끓이다가 요새를 날로 먹게 되다니.
[카르바노그가 이것이 바로 아키서스의 힘이라고…]
‘아무데나 다 갖다 붙이지는 말자.’
* * *
“요새 근처에서 나오는 건 구리하고 단풍나무하고 말인데, 구리, 단풍나무는 상급이고 말은 중급 수준이네요.”
타다다다닥-
이다비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견적을 매기고 있었다.
이런 돈 계산할 때가 가장 좋더라!
“돈 좀 나올 것 같아?”
“네! 또 경매 붙이실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