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73화
갑작스러운 소식에 모두가 술렁거렸다.
에랑스 왕국이 전쟁을 걸었다니?
태현이 어떻게 역병 요새를 공략했을지 떠들던 사람들이 일제히 관심을 돌렸다.
역병 요새도 역병 요새지만 에랑스 왕국 전쟁이 더 흥미진진하다!
-그냥 귀족이랑 싸움 붙은 게 아니라 에랑스 왕국 전체랑 붙었다고?
-아, 이 자식 소식 진짜 어둡네. 접속해 봐! 퀘스트 떴을걸? 에랑스 왕국에 있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다 떴어.
-이데르고 교단 아직 안 끝났잖아? 너무 성급한 거 아냐?
-뭐 이데르고 교단으로 힘든 건 길드 동맹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와, 이거 고민되네. 에랑스 왕국에 참가해야 하나?
-이건 참가할 만하지 않나? 진짜 에랑스 왕국이면 보증수표지.
판온 최강 왕국 중 하나!
에랑스 왕국의 이름은 많은 플레이어들을 솔깃하게 만들었다.
오스턴 왕국이나 아탈리 왕국이 아무리 빠르게 성장했다지만 에랑스 왕국만큼 강할까?
에랑스 왕국에는 수십 명이 넘는 대마법사와 기사들이 있었다.
이들이 이끄는 기사단까지!
레벨 500, 600은 가볍게 넘는 기사단이 돌격하면 영지전에서는 막을 수 없는 망치나 마찬가지였다.
이제까지 있었던 수많은 싸움에도 끼지 않았던 플레이어들도 고민하게 만드는 이름, 에랑스 왕국!
게시판에 순식간에 수십 개 넘는 글이 올라오고, 참가할 경우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지 질문이 올라왔다.
그리고 오스턴 왕국에 있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비상이 걸렸다.
-에랑스 왕국이 쳐들어온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왜 갑자기 에랑스 왕국이 쳐들어와!
-몰라! 미쳤나 봐! 왕자 놈들이 기사들과 같이 온대!
-길드원들 다 불러 모아! 요새로 배치해!
-지금도 한계에요!
-마계고 하늘섬이고 다 빼서 모아! 본진 박살 나면 뭔 의미가 있어!
-미다스 놈들하고는 어떻게 하죠?
-…….
-…….
-휴전 신청해! 놈들도 아쉬우면 우리 손을 잡을 거 아냐!
-우, 우리가 먼저 해야 합니까?
-놈들이 먼저 하면….
그리고 비슷한 대화가 미다스 길드에서도 한 번 반복됐다.
에랑스 왕국은 오스턴 왕국에 있는 놈들이면 누구든 간에 싹 쓸어버릴 작정이었다.
누구든 손을 잡아야 했다.
하물며 김태현이라도!
* * *
<팀 KL, 전승 우승 확정! 리그 우승!>
<영광스러운 대기록을 세우다…>
<팀 KL은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플레이오프 우승 확률도 90% 이상…>
<단독 인터뷰…>
<……>
<……>
판온 내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게 흘러갔지만, 판온 밖의 일정은 차례대로 흘러갔다.
팀 KL은 마지막 남은 경기를 확실하게 이겼다.
‘이데르고 교단 관련 퀘스트를 깨느라 정신없고 연습도 하기 힘들었을 거다’ 같은 기대는 태현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평소대로 덤비는 팀 KL의 전력에, 상대 팀은 그대로 박살이 났다.
“아오! 이 밥만 축내는 놈들!”
쑤닝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가 화를 내는 이유는 태현이 우승해서가 아니었다. 우승은 이미 예전에 확정된 상태였다.
전승우승도 아니었다. 솔직히 전승우승은 할 것 같았던 것이다.
쑤닝이 화를 내는 이유는….
바로 베이징 파이터즈가 결국 꼴찌로 시즌을 마감했다는 것!
“진짜 사장부터 시작해서 프론트, 선수진 확 갈아버려야 한다니까! 이런 무능한 새끼들! 이런 놈들이 무슨 프로야!”
누구나 방구석에서 경기를 보다 보면 전문가가 되기 마련.
쑤닝이 바로 그랬다.
시즌 초반 1위 찍다가 시즌 후반에 꼴찌 찍은 것도 나름 대기록이라면 대기록!
<베이징 파이터즈는 어떻게 약팀이 되었나?>
<명예로운 기록의 붕괴…>
<……>
<……>
덕분에 베이징 파이터즈 관련 기사는 온통 굴욕적인 기사들이었다.
이제 베이징 파이터즈는 시즌이 아니라 리그 이후를 걱정해야 했다.
2부 리그로 내려가느냐, 1부에서 버티느냐를 결정할 승강전!!
그 승강전을 설마 베이징 파이터즈가 치르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아오… 안 그래도 빡치는데….”
-플레이오프보다 솔직히 승강전이 더 궁금하지 않냐?
-플레이오프는 그냥 팀 KL이 이겼다고 하고 넘기고, 승강전 중계 좀 더 해줘라.
-아! 베이징 파이터즈 팬들이 1위한다고 말했던 게 2부 리그 이야기였구나!
-그런 깊은 뜻이…!
-(2부에서)1위하겠다.
-(2부의)제왕이 되겠다.
“죽어!!”
쑤닝은 분노해서 화면을 꺼버렸다. 베이징 파이터즈 말고 다른 팀 팬들이 모두 베이징 파이터즈를 놀리고 있었던 것이다.
“왜 난리냐?”
“앗. 형님.”
쑤닝은 뒤에서 들리는 엄격하고 근엄한 목소리에 퍼뜩 일어섰다.
나이 차이 많은 쑤닝의 형은 언제나 대하기 어렵고 까다로운 존재였다.
-넌 그 나이 먹고 아직도 게임이냐?
지금도 이런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나마 길드 동맹으로 대박을 쳐서 망정이지….
하지만 쑤닝은 안심하지 못했다. 찔리는 게 있었던 것이다.
‘조카가 이르진 않았겠지?’
쑤닝의 조카가 형에게 ‘길드 동맹 나쁜 새끼들이 저 버리고 갔어요 엉엉’ 하면 이제 쑤닝은 창밖으로 던져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아니었다.
조카는 쑤닝과 달리 착했던 것이다.
“네 조카를 잘 돌봐줘서 고맙구나. 애가 너무 즐거웠다고 하던데.”
즐겁기는 했을 것이다.
하늘섬에서부터 시작된 미친 모험 풀코스!
판온 누구도 체험시켜 줄 수 없는 즐거움과 재미였을 것이다.
솔직히 쑤닝도 영상 보고서 ‘아니… 아니…??’ 소리가 절로 나왔으니까!
“…예! 별일 아니었습니다!”
“고생했다. 자.”
형이 내민 봉투에 쑤닝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형제의 우애가 샘솟게 만드는 두꺼운 봉투!
“형님. 안 그래도 제가 투자를 더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인맥 좀….”
“뭐? 그 게임에?”
“…….”
“흠. 그래.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나.”
“!”
평소에는 잘 모르는 게임에 관심도 안 갖고 있던 형님이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쑤닝은 정말 놀랐다.
‘조카야, 고맙다!’
분명 조카가 좋게 말해준 탓이 클 것이다.
“하도 신나게 이야기를 해서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김태현이란 선수가 그렇게 굉장하다며?”
“아… 예.”
하필 기사도 지금 리그 우승 확정으로 도배된 상태.
중국 쪽 기사도 김태현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이고 왜 중국에는 이런 선수가 없고 베이징 파이터즈는 2부 갈지 말지 떠들고만 있는 상태였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와 김태현이란 선수가 이렇게 대단한가?’ 싶을 정도!
“내가 투자를 할 인맥을 더 소개해 줄 수는 있다.”
쑤닝의 형은 굵직한 회장, 사장들과 인맥이 있었다.
말만 하면 바로 소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쑤닝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게임에 대해 잘 모른단 말이다.”
“게임을 시켜보세요! 재밌습….”
“동생아. 바쁘게 뛰어다니는 기업 사장이 한가하게 어떻게 게임을 하겠냐?”
‘할 사람은 할 것 같은데….’
쑤닝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맞는 말은 맞는 말이니까!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을 설득하려면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도 알 수 있는 걸 보여줘야지. 그래. 저 김태현이란 선수를 포함시켜서 대회를 여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대회 같은 거 열어서 친목을 다져라. 네가 이끄는 회사… 아니, 길드 이름으로 주최해라. 그런 게 다 명성이 되는 거지.”
“예?! 아니, 저놈이 뭐가 예뻐서요?! 대회 열 거면 중국인 선수들만 참가할 수 있게….”
김태현을 뭐가 예뻐서 대회에 부른단 말인가.
설사 부른다 하더라도 중국 선수들은 다 탈락시키고 자기 혼자 상금 받아갈 얄미운 놈인데!
“쯧쯧. 그런 식으로 참가 제한을 걸었으면 이창호나 이세돌의 명국을 우리가 어떻게 볼 수 있었겠느냐? 생각을 좀 더 넓게 가져야지.”
‘아오 저 늙은이….’
뭔 바둑 이야기야!
나이 든 바둑 팬답게 쑤닝 형은 한국 선수가 활약하는 것에 별 놀라움이 없었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을 수준!
“그나저나 한국 선수들은 예전부터 참 게임을 잘 하는군. 숫자도 적을 텐데. 너는 왜 김태현을 못 이기는 거냐? 너희 길드가 판온 최강 길드라면서?”
“아, 아니. 형님. 그게… 꼭 그렇게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라서….”
“그래? 어쨌든 대회는 생각해 봐라. 내가 이름을 알 정도면 내가 소개해 줄 사람들도 김태현 이름은 알 가능성이 높다. 두꺼운 보고서 주는 것보다 얼굴 한 번 보여주는 게 더 설득하기 쉬울 거다. 그리고 네 조카도 실제로 만나면 기뻐하겠지.”
“…….”
왠지 마지막 줄이 본심 같….
하지만 형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제 리그 일정도 끝났겠다, 김태현도 시간이 좀 남을 것이다. 대회에 초대하면 나올 가능성이 컸다.
김태현이 참가한다면 얄미움과 별개로 그 대회는 확실히 흥행이 보장될 것이다.
흥행이 보장되면 그걸 주최한 쑤닝의 길드도 더욱더 명성과 신뢰를 얻을 수 있으리라.
결국 투자란 건 손익과 기대를 떠나 투자자의 마음만 잡을 수 있다면 가능한 법!
‘젠장. 생각해 보니 투자자 쪽에서 보낸 놈도 그딴 소리를 했었지….’
김태현하고 친목질하란 소리를 해서, 그때는 ‘뭔 개소리야?’라고 반응했지만….
이제는 진짜 그걸 고민해야 하게 생겼다!
무엇보다 지금 투자가 절실했다. 에랑스 왕국의 공격이 매우 오싹했던 것이다.
* * *
[<역병의 흰 뱀>의 가죽을 벗겨내는 데 성공합니다!]
[아이템을…]
[아이템을…]
[아이템을…]
“와, 이거 진짜 양 많은데.”
안 그래도 덩치가 큰 놈인데, 태현의 행운 때문에 아이템이 여럿 들어왔다.
어디다 써야 할지 곤란할 정도!
“장비로 만들 수는 없나?”
“가죽 장비 만들기도 애매한데다가 얘가 지금 손상이 심해서….”
폭탄 사냥법의 단점!
가죽이고 뭐고 간에 손상이 극심하다는 점이었다.
“일단 챙겨놓고 나중에 쓸 곳을 고민해 봐야겠군.”
사실 태현은 가죽보다 더 탐나는 게 있었다.
바로 고기와 피!
“괴식 요리에 쓰기 아주 좋은 재료가 될 거야.”
게다가 태현은 괴식 요리 스킬에 몬스터 정수를 만드는 스킬이 있었다.
몬스터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요리를 만드는 아주 강력한 스킬!
‘이 정도 양이면 아주 굉장하겠군!’
이다비가 딱하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눈빛을 보냈다.
저걸 누가 가장 먼저 먹을지 짐작이 갔던 것이다.
“김… 김태현. 저 뱀은 과연 먹어도 되는 것일까?”
“뭐 독 잘 빼고 먹으면 되겠지. 그리고 너 어차피 HP 높아서 독 좀 걸린다고 안 죽잖아?”
태현은 고기를 큼지막하게 자르고 포개서 토왕이한테 먹였다.
토왕이는 매우 싫어하면서도 안에 차곡차곡 보관해 줬다.
치이익-
“헉!”
뱀의 피가 땅바닥에 몇 방울 떨어지자 살벌한 소리를 내며 흙을 태웠다.
“야! 저거 봐! 독이야! 맹독!”
“아. 괜찮다니까. 그리고 독도 약이야. 많이 먹으면서 버티면 또 스탯이 올라요.”
태현은 진심으로 하는 소리였지만, 듣는 케인 입장에서는 미친 소리처럼 들렸다.
독으로 스탯 작업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어!
“애들아. 근데 너희 저기 요새는 관심 안 가지냐?”
최상윤이 요새를 가리키며 물었다.
* * *
요새의 싸움은 다른 방향으로 치열해지고 있었다.
에랑스 왕국 병사들이 도착하자, 길드 동맹과 미다스 길드원들은 당황해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떡하냐?
-계속 싸워야 하나??
에랑스 왕국 병사들은 그 고민을 덜어줬다.
그냥 쿨하게 둘 다 공격!
-찬탈자 놈들이다! 공격! 공격!
화끈하게 마법 날리고 우르르 몰아치는 에랑스 왕국 병사들!
정신 없이 싸우던 길드원들은 화들짝 놀라 요새 안으로 도망쳤다.
…자기들끼리 싸우면서!
덕분에 지금 상황은 매우 미묘해졌다.
길드 동맹과 미다스 길드는 서로 싸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눈치를 보고 있고….
에랑스 왕국은 밖에서 신나게 두드려 패고 있고….
태현 일행은 밖에서 신나게 전리품을 챙기고 있었다.
-명예로우신 폐하!
“응?”
태현은 고기를 자르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에랑스 왕국 기사 NPC가 앞에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