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67화
“아, 이걸 어디다 쓰지? 어렵네. 김태현한테 물어봐야 하나? 아니. 그래도 내가 알아서 생각해내야 할 것 같은데….”
요즘 태현은 점점 더 엄격해지고 있었다.
첫 시즌이야 태현의 힘으로 돌파한다 하더라도, 다음 시즌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팀원들이 싸울 능력이 되어야 한다!
이런 것도 자기가 못 떠올리고 물어본다면 한 소리를 들을 게 분명했다.
“으으음… 도망… 어그로 끌고 도망? 도망친 다음 사슬? 아. 어려운데 끙….”
케인이 중얼거리며 고민하는 사이 뒤에서는 피 튀기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으아악! 크아악! 케인 이 자식! 안 돌아와!?”
“너 진짜 두고 보자!”
여유롭게 스킬 보면서 고민하는 케인과 달리 죽어 나가는 길드원들!
여기 있는 길드원들도 고렙 이상 랭커 이하의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런데도 싸움은 힘겨웠다.
<이데르고의 역병 지대>의 효과 때문!
몬스터들은 버프를 받고 플레이어들은 디버프를 받으니, 싸움이 보통 치열한 게 아니었다.
[<이데르고의 날아다니는 거대 역병 박쥐>가 <독가스 분출>을 사용합니다!]
[역병 지대의 효과로 인해 독가스의 힘이 더욱 강해집니다!]
[저항에 실패합니다!]
[치유 마법이 듣지 않습니다!]
[HP가 빠르게 깎입니다!]
[장비 내구도가 내려갑니다!]
[혼란 상태에…]
[스턴 상태에…]
“와. 장난 아니군.”
태현은 멀리서 체크하고 있었다.
태현 정도 되면 상대방이 펄쩍펄쩍 뛰는 모습에서 어떤 디버프를 받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방향 못 잡고 허둥거리면 혼란 상태고, 갑자기 멈추면 스턴 상태고….
‘장비가 녹슨 것 같은데 내구도도 깎나? 무섭군.’
“돌아왔다! 헉헉.”
짝짝짝짝-
태현 일행은 모두 케인에게 박수를 쳐줬다.
이번 일은 정말 훌륭했어!
“케인! 잘했다!”
“맞아요!”
“저는 아키서스의 노예가 왜 탱커인지 몰랐는데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어그로를 정말 잘 끕니다!”
사디크 사제들도 감탄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듯이, 아키서스의 노예도 남 빡치게 하는 재주 하나는 확실했다.
역시 아키서스의 노예다!
그러는 사이 길드원들의 전투는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안 되겠다! 이러다 죽겠다. 스킬 아끼지 말고 퍼부어! 쿨타임 길다고 아끼지 마!”
“영웅 등급 아이템도 써도 됩니까?!”
“써! 희귀 등급 말고 영웅 등급도 써도 돼!”
태현처럼 극단적이진 않았지만, 고렙 이상 플레이어들은 비장의 스킬 몇 개는 갖고 있었다.
거기에 길드에서 주는 스크롤이나 각종 포션 아이템까지.
평소에는 쓰면 안 됐지만 지금은 진짜 위험할 정도였다.
[<이데르고의 날아다니는 거대 역병 박쥐>를 쓰러뜨렸습니다!]
[이데르고의 괴수가 역병을 뿜어냅니다!]
[역병 지수가 올라갑니다!]
[역병 지수가 올라갈수록 역병 지대의 몬스터들은 강해지고, 모험가들은 약해집니다!]
[이동 속도 약화의 역병이…]
[……]
[……]
“젠장!!”
잡았는데도 하나도 안 기쁜 상황!
잡을수록 상대는 강해지고 잡은 놈은 페널티를 받는 것이다.
다 같이 사이좋게 싸운 덕분에 페널티도 사이좋게 나눠 받았다!
“이야. 다들 잘 싸우네.”
“…….”
“…….”
오랜만에 쏟아지는 살기 섞인 눈빛!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갔다.
‘한동안 저런 시선을 안 받긴 했군.’
최근에는 태현이 너무 잘나간 탓에 감히 저렇게 노려보는 놈들이 없었다.
노려봤다가는 죽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방금 죽을 뻔한 길드원들은 그런 거 신경 쓰지 않고 으르렁거리며 태현을 노려보았다.
“김태현 이 자식… 뭐하는 짓이야?”
“우리 엿 먹이려고 그랬지?! 케인이 멋대로 한 짓이라고 변명할 생각 하지 마라!”
길드원들은 태현이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틀렸다.
태현은 변명 자체를 안 했다.
“선택해라.”
“…?”
“나하고 같이 역병 지대를 공략할지, 아니면 또 알아서 싸워볼지.”
“뭐 이런 개…?”
“이 자식 본성 나오는 거 봐!?”
세상에 이런 놈이…!?
판온 1 때 보여주던 모습이 나오자 길드원들은 경악했다.
“너 이 자식, 너 보는 팬들 생각 안 하냐! 팬들이 보고 있어!”
“내 팬들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희들은 너희 걱정만 해라.”
태현의 팬들은 이런 걸로 흔들리지 않았다.
판온 1에서 했던 플레이 다 봤는데 이제 와서 뭘 흔들리겠는가.
오히려 ‘역시 김태현이다!’, ‘와 역시 김태현 주장님 완전히 길드 동맹을 뒤집어 놓으셨다’ 같은 반응을 보여주면 보여줬지!
태현은 더 뻔뻔하게 재촉했다.
“빨리 선택해라. 기다릴 시간 없으니까.”
“당연히 거ㅈ….”
두두두두두-
“…….”
“…….”
멀리서 들려오는 괴수 소리.
그러고 보니 또 케인이 사라져 있었다.
길드원들은 태현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아니지? 김태현? 그사이에 설마 또 몬스터를….”
“빨리 선택해. 5, 4, 3, 2….”
“한다고! 하면 되잖아!”
“이런 개자식!”
* * *
“김태현. 이건 하나 알아둬야 한다. 우리는 사이가 좋지 않아.”
“흥. 내가 할 소리다. 김태현. 저놈하고 같이 파티 플레이를 할 바에는 그냥 죽겠다.”
“그래?”
태현은 바로 검을 뽑아 들었다. 당장이라도 내려칠 것 같은 모습에, 리우쑹은 기겁해서 외쳤다.
“뭐하는 거냐?!”
“죽여 달라는 거 아니었어?”
“아니! 싫다는 거지! 말을 왜 이상하게 알아듣는 거냐!”
“미안. 그냥 죽여 달라는 건 줄 알았지.”
리우쑹은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분에 헉헉댔다.
이런 미친놈…!
“우리 둘을 좀 따로 움직이게 해달라는 거다! 파티 플레이시키지 말고!”
“맞아!”
‘얘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길드원들은 오해하고 있었다.
김태현이라는 뛰어난 지휘관 아래에서 서로 호흡을 맞춰가며 이상적인 파티 플레이를 하게 될 거라고!
-맥필! 어그로 끌어모아! 그래! 그렇게! 아주 잘 했다! 네가 케인보다 낫다! 팀 KL 선수로 뛰어도 되겠다!
-리우쑹! 몬스터 얼려! 잘했다! 마법사 중에 네가 최고다!
자기네들 실력도 있고 길드원들도 있으니 그런 꿈을 꾸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안 할 텐데.’
태현이 원하는 건 미끼였다.
애초에 지금 역병 지대에서는 몬스터를 많이 잡아서 좋을 게 없는 것이다.
사디크 교단과 함께 괴수 하나 붙잡아서 설득하는 동안 버텨줄 미끼!
그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화내겠지.’
[카르바노그도 그럴 것 같다고 말합니다.]
“좋아. 너희들이 따로 움직이고 싶다고 하니 그 말을 들어주겠다.”
“역시. 김태현이야. 이해해 줄 알았다.”
“당연히 그래야지!”
* * *
태현은 적당한 괴수 하나를 찾았다.
<역병 날개의 와이번>이라는 괴수였다. 불행히도 사디크 교단이나 다른 교단 출신 괴수는 아니었지만….
‘뭐 어때. 남의 거 아니니 더 훔치기 좋겠네.’
[카르바노그가 동의합니다!]
“그러니까 저놈을 붙잡은 다음 사디크의 화염으로 최선을 다해 설득하면 된다 이건가?”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교황님.”
“?”
태현은 사디크 사제들의 말에 의아해했다.
아까는 다 되는 것처럼 이야기해놓고 이제 와서 한 가지 문제가?
“그… 원래 사디크 교단 출신 괴수의 경우에는, 사디크 님을 마음 깊숙이 따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사디크의 화염으로 정화되면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처음 듣는 소리입니다만??
흑흑이가 뭔 개소리냐는 듯이 쳐다봤다.
나 딱히 그런 거 없는데?
사디크의 신수가 그렇게 말했지만 사디크 사제들은 못 들은 척했다.
저놈은 아키서스 잘못 먹은 놈이니까!
“하지만 사디크 님이 직접 돌본 괴수가 아니라 다른 괴수라면 저희가 역병에서 정화를 시켜줘도 음….”
“…그냥 괴수가 된다?”
“예!”
“…….”
역병에서는 풀려나더라도 괴수는 일단 몬스터!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앗 먹이구나!’ 하고 날름 덤벼들 것이다.
“그걸 왜 지금 말하냐?”
“그게… 가능하면 평생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어….”
[카르바노그가 사디크 사제들이 참 대단하다고 감탄합니다!]
“…그러면 괴수가 정신 차리면 조련술 스킬로 놈을 길들여야 한다는 건데.”
“…….”
“…….”
태현 일행은 단체로 침묵 상태에 빠졌다.
조련술 스킬을 전문적으로 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난 스킬 자체가 없는데.”
“나도….”
“저는 중급 6이긴 해요.”
“저는 중급 2….”
“으음. 무리겠군.”
괴수 레벨이 있는데 중급 조련술 스킬로 뭘 한다는 게 무리였다.
몬스터를 길들여서 펫으로 파는 사람들은 아예 그쪽 직업을 전문적으로 갖고 있었다.
그리고 단지 스킬만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몬스터를 설득하고 꼬드기고 유혹하고 아이템 쓰고 기타 등등의 짓들을 해서 상황을 만드는 것!
“괴수 최대한 공격해서 HP 깎고 공포 상태 올린 다음 이것저것 다 조건 합쳐서 조련술 시도해 보면 어때요?”
“그걸로 될지 모르겠는데. 행운으로 버프 받는다고 쳐도… 그래. 일단 해보자. 안 돼도 다른 괴수들도 많으니까.”
결정을 내린 태현은 길드원들을 불렀다.
그리고 명령을 내렸다.
“어… 어?”
“아니… 김태현?”
“왜? 따로 움직이고 싶다며.”
“아니… 그게….”
길드원들은 당황스러웠다.
멋지게 차례대로 싸우란 명령이 아니라….
‘사디크 교단하고 내가 쟤한테 불 질러서 정화시키는 동안 주변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 좀 끌어봐라, 싸우지는 말고’였던 것이다.
이건 그냥….
미끼 아냐??
-미끼 아닙니까?
-쉿. 파티장님 들으면 화내실라. 그렇게 생각돼도 조용히 참아.
“따로 움직이게 해줬는데 불만 있나?”
태현은 검을 들고 물었다.
몬스터도 없지만 먼저 뽑은 검!
뒤에 있는 다른 일행들도 왠지 모르게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 기세에 길드원들은 밀려서 움찔했다.
“아… 아니. 그냥 잘 이해했나 확인하려고 물어본 거야. 딱히 불만 없어.”
“그렇지? 난 또 너희들이 이상한 불만이라도 갖고 있나 했네. 자. 들어가. 너희들이 시선 끄는 동안 접근할 테니까.”
“응….”
길드원들은 ‘어, 어’ 하는 사이 그대로 앞으로 밀려 나가게 됐다.
길드에 있을 때는 한 번도 안 해본 미끼 역할!
그들은 평생 저렙 길드원들이 몰아와 주는 것만 편하게 먹던 이들이었던 것이다.
막상 자기들이 하게 되자 매우 기분이 씁쓸했다.
‘뭐 이런 미끼 역할을….’
‘앞으로는 남 시키지 말아야지.’
“달려!”
“잠깐 마음의 준비를….”
물론 그런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태현은 눈짓했다. 그러자 케인이 길드원들을 앞으로 집어 던졌다.
“으아아악! 이런 미친놈이! 준비한다니까! 준비!”
“어그로 끌어!”
[<역병 날개의 와이번>이 일행을 눈치채고 접근합니다!]
[<역병 강습>을 사용합니다!]
쐐애액!
와이번은 날아다니다가 휙 급강하를 하는 방식으로 먹잇감을 노렸다.
내려갔을 때 잡히면 그대로 끌려가는 것!
길드원들은 울상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조심해! 너 노린다!”
“으아악! <단거리 순간이동>!”
“파티장님 노립니다!”
“이 자식이! <땅 파고 들어가기>!”
그래도 레벨이 레벨인지라 길드원들은 제법 잘 피했다.
그걸 보고 태현과 사디크 사제들이 나섰다.
“가자. 케인! 쇠사슬 날려라!”
-노예의 쇠사슬!
촤르륵!
내려왔던 와이번이 갑작스러운 공격에 그대로 끌려왔다.
“힘으로 눌러! 사디크 스킬 쓸 때까지 버텨야 한다!”
-꿰에에엑! 꿰에에에엑!
일행이 전부 달려들어 와이번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힘 스탯 싸움!!
태현은 이 때를 대비해 <아키서스의 주사위>도 맞춰서 뽑아 놓은 상태였다.
[9! <강력한 힘의 가호>가 파티 전체에 걸립니다!]
[힘 관련에 크게 보너스가 들어갑니다!]
[<역병 날개의 와이번>이 힘에서 밀려 붙잡힙니다!]
“교황님! 불을 질러주십시오!”
“뭐? 내가?”
태현은 멈칫했다. 카르바노그도 당황했다.
[그러면 그냥 태워 죽이는 거 아니냐고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