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61화
“이런 눈치 없는 놈….”
태현이 중얼거리는 걸 또 푸르네우스가 들었다.
악마 공작은 기본적으로 귀도 좋은 법!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이 눈치 갖고 핀잔을 주자 푸르네우스는 극도로 분노했다.
차갑고 섬뜩하기에 얻었던 빙결공이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
[카르바노그가 빙결공을 저렇게 감정적으로 만드는 건 처음 봤다고 신기해합니다!]
천 년 동안 감정 표현 없이 차갑게 살아온 악마 공작도 뜨겁게 만드는 아키서스의 치료!
[빙결공 푸르네우스를 도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화술 스킬을 올리려는 플레이어들이 매번 하는 푸념이 있었다.
-화술 스킬은 너무 올리기 어려워요!
-화술 스킬은 어떤 상황에서 오르는 거야? 다른 스킬이랑 달리 너무 헷갈려!
비교적 알기 쉬운 다른 스킬들과 달리, 화술 스킬은 올라가는 조건이 매우 다양하고 특이했다.
요령이 없는 사람은 잘 올리지도 못하는 스킬!
그런 부분에서 태현은 화술 스킬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중얼거려도 화술이 오르는 사람!
“감히 이 악마 놈이!!!!”
“?”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처음에는 태현 쪽 일행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데르고 교단 성기사들이 분노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히 이 악마 놈이! 이데르고 님의 신수를 쫓아내???”
“아니 그냥 배불러서 간….”
-하찮은 필멸자 놈들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푸르네우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아키서스는 솔직히 인정해 줄 수 있었다.
재수 없고 이가 갈렸지만 아키서스는 악마 공작에게 어울리는 맞수였으니까.
하지만 이데르고 교단은?
냄새나고 더럽고 구질구질한 신을 모시는 추잡한 필멸자 놈들에 불과했다.
그런 놈들이 자기한테 ‘신수 내놔! 신수!’이러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계의 짐승을 신수라고 모시는 걸 보니 너희 필멸자들의 수준을 알겠다. 너희들의 신이 그렇게 멍청하니 너희도 그렇게 된 거겠지?
“…!”
[카르바노그가 저거 너무 말 심한 거 아니냐고 말합니다!]
교단 NPC에게 신 관련 욕은 ‘혹시 아키서스 교단이세요?’ 다음으로 심한 욕!
푸르네우스의 말에 성기사들은 극도로 분노했다.
“감히 하찮은 악마 새끼가?!”
“이데르고 님의 분노가 네놈을….”
-시끄럽다. 죽어라.
귀찮아진 푸르네우스는 손을 휘둘렀다.
파지직, 파직!
그러자 허공에서 수십 개의 얼음창이 생겨났다.
-빙결공의 얼음창!
악마 공작만이 쓸 수 있는 강력한 대마법!
[카르바노그가 저 악마 공작의 냉기가 한층 더 강해졌다고 말합니다! 아키서스의 행운도 묶어버릴 냉기라고 말합니다!]
악마 공작이 뿜어내는 특유의 냉기는 닿는 순간 바로 데미지를 입혔다.
회피 불가 저주로 들어가는 데미지와 비슷했지만, 데미지보다 더 위험한 게 빙결 페널티였다.
빙결 페널티가 계속해서 쌓이면 점점 둔해지고 느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악마 공작 상대로 느려진다는 건 죽음이나 마찬가지!
‘악마 공작이 왜 더 강해졌지?’
[아키서스한테 당한 충격 때문에 열심히 수련한 거 아니냐고 카르바노그가 추측합니다.]
‘…악마 공작이 안 어울리게 왜 그런 수련을 해?’
수련은 플레이어의 몫이지 보스 몬스터가 하면 안 되지!
그러거나 말거나, 푸르네우스는 얼음창을 날렸다.
쐐애애애액!
얼음창에는 태현도 움찔할 정도의 위력이 담겨 있었다.
저걸 이데르고 교단이 막아낼 수 있을까?
-역병의 방패!!
쿠오오오오오-
“!!!!!”
짙은 녹색 구름이 피어오르더니 거대한 장벽이 만들어졌다.
[대륙이 혼란스러울수록 이데르고 교단의 힘은 강해집니다!]
[대륙에 역병이 퍼질수록 이데르고 교단의 힘은 강해집니다!]
[이데르고 교단의 모든 스킬에 <혼란의 가호>가 깃듭니다!]
‘…!’
꽈꽈꽈꽈꽈꽝!
태현은 놀랐다.
이데르고 교단이 막아낸 것이다!
녹색 구름으로 만들어진 역병 장벽은 완전히 박살이 났지만, 그래도 공격을 막아냈다는 게 대단했다.
푸르네우스도 예상치 못했는지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아… 아니…!
“이 타락한 악마 놈아! 어디 이데르고 님의 이름을 모욕하느냐! 네놈의 하찮은 공격이 이데르고 님의 방어막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데르고 교단은 패기가 넘쳤다.
태현은 그걸 보고 좀 부러워졌다.
‘아키서스 교단 놈들도 저 정도면 좋을 텐데.’
아키서스 교단은 패기는 넘쳤는데 능력은 저것만큼 안 되는 것 같아!
[카르바노그가 부러워할 거 없어서 저 광신도들을 부러워하냐고 질책합니다!]
‘아 좀 부러워 할 수도 있지.’
푸르네우스는 부들부들 떨었다.
아키서스 놈한테 당한 것도 모자라서 웬 더럽고 추잡스러운 교단 놈들 하나 못 쓰러뜨리다니!
‘내가 이 정도로 추락했단 말인가?’
악마 공작으로서의 자존심이 흔들리는 상황!
-아키서스 놈을 잡기 전에 네놈들부터 먼저 죽여 버리겠다!
“해볼 테면 해봐라! 이데르고 님의 신수를 내놓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악마!”
콰아아아아아!
거대한 바닷물이 해일처럼 솟구치더니 그대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빙결공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얼려 버리겠다!
“감히! 이데르고 님의 이름으로 외치노니 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썩고 병들게 만들겠다!”
이데르고 교단 성기사들 사이에 있던 주교들이 나섰다.
아무리 숫자가 많고 강하다 하더라도 악마 공작을 상대하기에는 무리일까 싶었는데, 주교들은 괴력을 발휘했다.
‘성물이다!’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바로 알아차렸다.
주교들이 들고 있는 건 거무튀튀하게 녹슨 검이었다. 아무런 공격력도 없어 보이는 검에서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느껴진 것이다.
이데르고 교단의 성물!
-오라, 역병이여! 이데르고 님의 이름으로 오라!
순식간에 이데르고 교단의 괴수들이 소환되더니 얼어붙은 바다를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온갖 맹독을 품고 있는 역병 괴수들!
그에 맞서 푸르네우스의 군대도 덤벼들기 시작했다.
푸르네우스의 군대는 정령 군대였다.
온순하고 상냥한 정령이 아닌, 이성을 잃고 폭주한 정령 군대!
역병과 냉기가 바다 위에서 충돌하면서 어마어마한 전투를 만들어냈다.
“…….”
“태현 님. 그런데 저희는 빠져도 되지 않을까요?”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아까부터 태현도 하고 있던 생각!
둘이 저렇게 열심히 싸우고 있으면 우리는 일단 물러서도 되지 않나?
“후퇴한다! 일단 우리 도시부터 지키자!”
저들 중 누가 이기든 간에 그 때 도시로 다가오면 싸우면 된다!
태현의 명령에 자리에 모인 모두가 대만족했다.
“현명한 생각이다! 김태현!”
“도시에서 싸우는 게 훨씬 더 안전할 테니…!”
-아니 저놈들을 다 사냥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닥쳐. 날개 달린 모기들아.
-?!?!
태현의 판단은 정확했다.
이데르고 교단은 여기에서만 들고 일어선 게 아니었다.
중앙 대륙 곳곳에서 이데르고 교단의 깃발과 함께 역병 군대가 등장했다.
-대륙 진짜 망하는 거 아냐? 예전에 보니까 고대 제국도 망할 때 이랬다던데….
-아. 나도 하늘섬으로 튈 걸 그랬나? 하늘섬 진짜 좋다던데.
-튀실 거면 건물 좀 싸게 팔고 가시면… 헤헤.
-망하긴 뭘 망해. 여기 왕국들이 몇 개인데. 절대 그럴 일 없다.
그러나 이런 말이 진지하게 나올 정도로 현재 왕국 상태들이 다 안 좋은 건 사실이었다.
그 잘나가던 에랑스 왕국도 몬스터를 처리하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악신 교단은 확실히 상대하기 곤란한 상대였다.
* * *
[이데르고 교단의 8군단이 도시로 진군합니다!]
[역병이 퍼져 나갑니다!]
[모든 농사 스킬에 페널티…]
[모든 회복 스킬에 페널티…]
[……]
“으아악! 괴물들이다!”
다리는 여덟 개에 머리는 세 개 달린 본 적도 없는 흉악한 거대 괴수들이 도시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온몸에서는 독과 역병을 쏘아대면서 주변을 오염시키는 것이, 언데드 군대보다 더 질이 나빴다.
“젠장! 케인은 덜 징그러운 수준이었어!”
“지금 나오는 게 적당한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동감이다!”
“에스파 왕국 기사단은 뭐해?! 안 도와주고!”
“몰라! 자기네들도 공격받고 있나 봐!”
에랑스 왕국, 에스파 왕국, 오스턴 왕국 등 중앙 대륙의 각 왕국에서 닥치는 대로 일어나서 진군하기 시작한 역병 군대!
이제까지 잠잠했던 게 신기할 정도로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덕분에 왕국뿐만 아니라 대륙에 있던 길드들한테도 비상이 걸렸다.
-하늘섬 공격대 전부 취소해! 마계에 나가 있던 놈들도 다 돌려! 이건 몬스터 웨이브보다 더 위험하다!
-몬스터 웨이브에 남아 있던 몬스터들이 역병 군대에 들어가고 있어!
그리고 그건 태현도 마찬가지였다.
태현은 재빨리 부하들을 소집해 방어 태세에 들어갔다.
“푸르네우스는?”
“이데르고 성기사들은 쓰러뜨렸는데, 피해가 컸는지 후퇴했어요.”
“쫓아야 하지 않을까? 나중에 회복해서 돌아오면 위험할 텐데….”
“지금 걔 쫓을 시간은 없어 보인다. 이데르고 교단이 먼저야.”
만약 푸르네우스가 만전의 상태로 덤빈다 하더라도 태현도 몇 가지 준비한 게 있었다.
어디 한번 해보자!
<이데르고 교단을 몰아내라-아탈리 왕국 퀘스트>
멸망한 악신 교단, 이데르고 교단은 왕국들을 점령하고 이데르고의 이름을 올리려고 한다!
이들을 막지 못한다면 왕국은 몰락하리라.
역병이 늘어나고 그들의 군대가 성을 점령하기 전에 토벌하라.
보상: ?, ???
<이데르고 교단의 역병 연못-사디크 교단 퀘스트>
이데르고 교단은 예전부터 역병을 퍼뜨리는 더러운 놈들로서, 신성하고 위대한 화염을 다루는 사디크와는 상극인 존재들이었다.
이들은 역병 연못에서 수많은 괴수들과 오염된 군대들을 만들어내니, 이들의 역병 연못을 파괴해야 한다!
보상: ?, ???, ???
“…?!”
왕국 퀘스트로 이데르고 교단 막으라는 건 별로 놀라울 게 없었다.
그런데 사디크 교단 퀘스트로 이데르고 교단을 막으라는 건 또 의외였다.
[카르바노그가 원래 악신 교단들은 사이 안 좋지 않냐고 말합니다.]
‘그건 그렇지만 이렇게 대놓고 약점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사디크 교단에 내려오는 이데르고 교단의 약점!
이런 약점은 한두 번 싸워서 알려지는 게 아니었다. 예전부터 서로 치고받고 해서 기록된 게 분명했다.
[나중에 아키서스 교단 기록에는 사디크 교단이나 마계 악마 상대법이 기록되어 있을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그건 좀 뿌듯… 한가?’
* * *
“성냥 사세요! 성냥! 단돈 1쿠퍼!”
“앗? 진짜 1쿠퍼에요? 너무 싼 거 아닌가?”
“성능이 안 좋은 거 아냐?”
“아닙니다! 보세요!”
화르륵!
로브로 몸을 감싼 NPC는 성냥을 휘둘렀다. 바로 불이 붙었다.
“이 불은 그냥 불이 아닙니다. 무려 신성 속성이 붙은 신성한 불입니다.”
“오…!”
“진짜 그런 걸 1쿠퍼에??”
“예! 대신 사디크 님을 믿으시면….”
“…….”
“…….”
플레이어들이 정색했다.
아니 이 인간…?!
“사디크 NPC였잖아?!”
“어쩐지 싸게 판다더니!”
골짜기에서 <성냥팔이 사디크 사제>는 이미 유명했다.
성냥 팔면서 은근슬쩍 사디크 믿게 하려는 얄팍한 수작!
“아키서스 교단입니다! 아키서스 교단이라고요!”
“아키서스 교단에서 사디크를 뭐하러 믿어! 아키서스를 믿지!”
“아키서스도 좋지만 사디크도 장점이 있어요!”
“어떤 장점인데? 사디크도 믿으면 뭐 뽑기 잘 나오나?”
“…화염을 다룰 수 있….”
“뭐래.”
“화염 마법을 배우면 되지.”
“공적치 포인트 써서 아키서스 관련 스킬 배우기도 부족한데 사디크를 왜 배워?”
“으흑흑흑!”
사디크 교단 NPC들은 울었다.
어쩌다가 그들이 이런 취급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