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57화
매우 음산한 소리와 함께 바닷물이 한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눈치 빠른 플레이어들은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재빨리 뱃머리를 돌렸다.
“빠져! 빠져!”
“뭔가 터지나 보다!”
그러나 싸우고 있던 길드원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그러니까 왜 파워 워리어한테 숙이냐고! 넌 자존심도 없냐!”
“네가 게임 접었다가 와서 현실감각이 없는 거겠지! 파워 워리어랑 싸워서 좋은 꼴 볼 거 같냐?”
“그냥 밟아버리면 되지! 보라고! 저… 도망가잖아! 봐!”
길드원은 파워 워리어 길드원을 가리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고 있는 중!
“우리한테 쫄아서 저러는 놈한테 왜 쪼냐고!”
“아니…? 파워 워리어 놈들이 도망갈 놈들이 아닌데? 개또라이들인데?”
친구가 이상한 소리만 해대자 길드원은 분통이 터졌다.
이 자식이 정말 겁 낼 게 없어서 파워 워리어한테 겁을 내냐!
“아, 됐어! 비켜봐. 내가 잡….”
콰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수면에서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마계 심해의 괴물, 레비아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계 심해의 괴물, 레비아탄은 악마 대공도 두려워하는 흉폭한 괴물입니다! 놈을 두려워하십시오!]
<바다의 대괴물-레비아탄 사냥 퀘스트>
마계의 가장 깊은 바다에서 잠들어 있는 괴물, 레비아탄이 대륙으로 흘러나왔다!
어떤 사악한 악마가 이 레비아탄을 불러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시라도 빨리 레비아탄을 처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재해가 바다에 닥칠지 모르리라!
보상: ?, ???, ?????
“미… 미친!”
“저거 잡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비켜봐. 내가 쏜다.”
“야 너 진짜 미쳤….”
쐐애애액!
궁수 플레이어인 길드원이 겁도 없이 화살을 쏘아 날렸다.
퉁!
[공격력이 너무 낮아 데미지를 주지 못합니다.]
[공격력이 너무 낮아 데미지를 주지 못합니다.]
-뿌오오오오….
거대하고 흉폭한 고래처럼 생긴 괴물, 레비아탄이 고개를 돌려 플레이어들을 쳐다보았다.
방금 화살을 쏜 길드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뿌오오….
[레비아탄이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
“뭐, 뭐냐?”
“뭐긴 뭐야! 입 닥치고 도망쳐야지!”
레비아탄이 관심을 가지지 않자, 친구는 길드원을 끌고 허겁지겁 벗어나려고 했다.
보스 몬스터를 때렸을 때 보통 반격 안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정말 행운이니 입 다물고 튀어야 해!
콰아아아아아아아!
[레비아탄이 <바다 삼키기> 스킬을 사용합니다!]
[모두 피하십시오!]
“어, 어, 어, 어….”
“으어어어어어???”
그러나 레비아탄 정도 되는 보스 몬스터쯤 되면 관심을 갖든, 가지지 않든 별 의미가 없었다.
한 번 한 번 하는 공격이 광역기!
주변의 바닷물이 전부 다 레비아탄 쪽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눈치를 채고 먼저 튄 사람들은 재빨리 항구 위로 올라갔지만, 늦게 깨달은 사람들은 그대로 끌려 들어갔다.
커다란 배든, 작은 배든 상관없이 그대로 레비아탄의 거대한 입속으로 후르륵!
[다른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던전 <레비아탄의 지옥>에 입장하셨습니다!]
[……]
[……]
[출구를 찾기 전에는 나갈 수 없습니다!]
“…!!!”
아예 배 속에 다른 차원을 달고 다니는 레비아탄!
이다비가 데리고 다니는 토왕이만큼이나 거대한 배를 가진 레비아탄이었다.
항구나 근처 섬으로 도망친 플레이어들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레비아탄을 쳐다보았다.
저걸 대체 어떻게 잡냐?
* * *
-아탈리 왕국 앞바다에 마계에서 온 괴물 나왔습니다! 도와주셔야 합니다!
-이거 플레이어들끼리 못 잡아요!
“?!?”
가루다 전사들 중 어느 놈들을 데리고 갈지 보고 있던 태현은 깜짝 놀랐다.
마계에서 한 푼 두 푼 차곡차곡 보내서 애써 만든 악마 군세.
그 군세가 개박살이 났기에 한동안은 잠잠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마계에서 나온 괴물이라니?
‘뭐지? 누가 주도한 거지? 길드 동맹인가?’
일단 가장 가까이 있는 놈부터 의심하고 보는 태현!
아탈리 왕국 바로 위쪽이 오스턴 왕국인 데다가, 거기에는 악마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길드 동맹은 정확히 몰랐지만).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런 수작을 부릴 수 있을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레비아탄 같은 괴물은 아무나 소환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악마 공작이 엮인 게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
일반 악마들은 아무리 숫자가 많고 강하다 하더라도, 레비아탄 같은 마계의 괴물과 접촉할 수가 없었다.
레비아탄은 같은 악마들도 두려워하는 마계 심해의 괴물.
그런 괴물을 끌고 나오려면 악마 공작 정도는 되어야 했다.
‘아니 그 놈들은 지치지도 않네. 군세가 개박살 났으면 좀 쉬어야 하지 않나?’
[카르바노그가 열심히 모아 만든 군대가 박살 났는데 그 원한과 분노와 슬픔을 어디다 풀겠냐고 말합니다.]
사람이든 악마든 무조건 다 이성적인 판단만 내리는 건 아니었다.
한 푼 두 푼 차곡차곡 대륙으로 소환시킨 악마들이 싹 쓸려 나갔는데 참고 있을 악마 공작은 많지 않았다.
안 그래도 쌓인 게 많은 악마 공작 입장에서는 눈이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은 일!
‘공작쯤 되면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판단을 해야지. 계속 꼬라박기만 하면 안 되는 법이야.’
[카르바노그가 공작한테 그런 소리는 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합니다.]
들었다가는 원한이 열 배로 늘어날 소리!
‘길드 동맹이 좀 수상하긴 하니, 의심을 풀지 말고 이동해야겠군.’
지금 하늘섬 관련해서 으르렁대고 있는 길드 동맹 입장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의심!
-야! 왕국 가깝다고 우리가 한 일이면 우르크 지역에 있는 길드나 오크들 의심부터 해야지!
“가루다 전사들이여, 들어라!”
-?
-??
태현의 외침에 주변을 돌아다니던 가루다 전사들은 고개를 돌렸다.
-저자가 누구지?
-새로 들어온,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라는군.
-아, 그 사납고 비열하고 더러운?
-그래. 그 사납고 비열하고 더러운.
“나는 내 능력을 보여 줄 상대를 골랐다. 바로… 마계의 괴물이다!”
-!
가루다 전사들이 그 말을 듣고 웅성거렸다.
-마계의 괴물이면….
-뭐 지옥사냥개 같은?
-그 정도면 우리도 잡지 않나?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놈들인데.
가끔 마계에서 튀어나온 사냥개나 와이번들이 이쪽에 흘러올 때가 있었다.
레벨 높은 가루다 전사들에게 그 정도면 쉬운 상대!
“그냥 평범한 괴물이 아니다. 마계 심해에 있는 괴물, 레비아탄이다!”
-!!!!!
[가루다 전사들이 당신의 목표에 충격을 받습니다!]
[가루다 전사들이 존경을 표합니다!]
[실패할 경우, 가루다 전사들의 친밀도가…]
[평판이 내려갈 수…]
[……]
-아키서스! 아키서스!
-사악하고 비열한 아키서스!!
-아키서스!! 아키서스!!!
[가루다 전사들이 매우 만족해합니다!]
[카르바노그가 이랬다가 실패하면 어쩔 거냐고 당황해합니다!]
카르바노그가 당황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레비아탄 정도 되면 아무리 태현이라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악마 공작만큼 강한 상대인 것이다.
만약 실패하면 가루다 전사들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불만이 나올 터!
‘괜찮아. 생각한 게 있지.’
[레비아탄을 상대할 비책이 있는 거냐고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
‘아니. 실패해도 어차피 가루다 놈들은 별로 안 아쉬워. 가루다 왕국이랑 연을 끊으면 그만이지.’
[…!!]
생각해 보니 가루다 왕국에 그렇게 매달릴 이유가 없었다.
강력한 놈들이긴 한데 어차피 하늘섬 근처에서 돌아다니는 놈들이고….
태현은 저 먼 밑의 왕국이 있었는데 굳이?
‘하늘섬에 있는 아키서스 교단 관련 유물을 찾긴 해야 하는데, 꼭 가루다 놈들 도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태현은 하늘섬에서 내려가 바다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일단 잡든, 못 잡든 저놈을 앞바다에서 치우자!
-어, 교황님. 저희도 내려가야 합니까?
“당연하지.”
<고대 제국 이탈자>들은 졸지에 아래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 * *
“저 바다에 저런 놈이 나와서 휩쓸고 있다는데, 이게 좋은 일이냐, 안 좋은 일이냐?”
“일단 김태현 쪽 영지가 피해를 입을 테니 좋은 일 아닙니까? 게다가 우르크에 있는 그 짜증 나는 오크 놈들이나, 다른 길드 놈들도….”
“아니, 좋은 일이 아닙니다. 저희도 지금 거기 바닷길 많이 쓰는데 완전히 막혀버렸어요.”
“그 정도 피해는 감수해야지!”
“그 소리 길드원들한테 해보십쇼! ‘아 예 열심히 감수하겠습니다’ 소리가 나오나!”
“어쨌든 우리가 직접적으로 피해보는 게 아니잖아! 이 정도면 차라리 낫지. 다른 놈들이 먼저 받는 것에 감사히 여겨!”
“시끄럽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하늘섬에 있는 길드 놈들, 지금 가루다다 뭐다 해서 정신 없어 보이는데… 제대로 공격할 준비는 되어 있냐?”
“예. 미다스 길드 놈들도 하늘섬에서 두들겨 맞은 덕분에 휴전하는데 별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 전력을 빼서 돌리면 됩니다.”
“김태현도 싫지만, 하늘섬에 있는 길드 놈들이 우선이다. 그놈들 먼저 쓸어버려야 해. 한동안 안 밟아줬더니 자기네들이 뭐라도 된 줄 아는 놈들!”
쑤닝은 사납게 말했다.
길드 간부들도 음흉하게 웃었다.
매번 태현에게 두들겨 맞기만 했더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사실 강했다는 것을!
어지간한 길드는 길드 동맹과 덩치부터 승부가 되지 않았다. 그대로 짓눌려 압사당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쑤닝 님. 조카는 찾으셨습니까?”
“…김태현이 데리고 있댄다.”
“…….”
“…….”
싸늘한 침묵이 맴돌았다.
“왜… 왜요?”
쑤닝이 매우 살벌하게 대답했다.
“내가 습격에서 탈출할 때 아무도 내 조카를 안 챙겨서?”
“…….”
“죄, 죄송합니다.”
“됐다. 조카도 무사하고… 돌아오기 싫어할 정도로 좋아하고….”
쑤닝 조카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김태현 따라다니면서 직접 플레이를 구경하다니!
모든 꼬마 팬들이 꿈꾸는 호사였다.
물론 뒷감당은 다 쑤닝이 해야 했다.
-동생아. 조카가 김태현하고 같이 다닌다는데 괜찮은 거냐? 내가 알아보니, 김태현이라는 선수는 엄청 레벨이 높은 지역만 다니는 선수라는데.
-괜… 괜찮습니다. 걱정이 되시면 말해서 떼놓는 걸….
-아니. 애가 엄청나게 좋아하잖아. 어떻게 떼놓니? 그래. 괜찮다면 됐다.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난 널 믿는다.
-…예….
‘믿는다’=‘일 잘못되면 너 죽인다’로 들렸다.
“후… 랭커 놈들은 뭐래?”
“투덜거리고 있지만 일단 하라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쑤닝은 혹시 몰라서 랭커들을 따로 빼놓았다.
지금이야 태현이 나름 덜 위험한 곳에 있었지만, 미쳐가지고 판온의 위험한 오지로 떠나거나 마계로 가려고 하면 랭커들이 뒤를 쫓아다니며 호위할 것이다.
물론 랭커들은 매우 질색하고 있었다.
-김태현 쫓아다니다가 오해 받고 죽은 놈들이 몇인지 알고 시키는 거요?
-김태현이 어지간히 알아서 잘 할까….
-닥쳐! 제대로 돈 받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해!
“그래. 그거면 됐다. 어차피 놈들 투덜거리는 건 예전부터 있었던 일이고, 놈들이 명령을 대놓고 개기지는 못하잖아.”
이제 길드 동맹은 온갖 투자부터 시작해 숨만 쉬어도 돈이 나왔다.
랭커들이 투덜거려도 그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건 막대한 지원 때문이었다.
머슴살이를 하려면 대감집 머슴살이를 해라!
“김태현이 레비아탄 잡으려고 하늘섬에서 내려왔답니다!”
“뭐?! 진짜???”
“하늘섬 항구에 있는 놈들이 다 봤대요! 비행선에 탈것 끌고 바로 내려가고 있답니다!”
“이야, 잘 됐네! 김태현이는 우리 신경 못 쓰고, 게다가 그놈 잡으려면 한참 걸릴 테니…!”
“잘 되긴 뭐가 잘 돼 미친놈들아!”
쑤닝은 벌컥 소리쳤다.
조카를 데리고 그걸 잡으러 간다니 미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