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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155화 (1,154/1,826)

§ 나는 될놈이다 1155화

고렙 이상 판온 플레이어는 보통 다 계획이 있었다.

그 계획이 얼마나 좋든, 나쁘든 간에 계획 없이 움직이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케인 빼고.

유 회장도 이제 왕국이다, 부하들이다 뭐다 해서 다 챙기고 있을 텐데 아무 계획 없이 놀러 오지는 않았을 터!

“…하늘섬에 도시 하나 얻을까 해서 왔다.”

“!”

태현은 깜짝 놀랐다.

“아니 판온은 낚시 때문에 하신다면서?”

“낚시를 위해서는 영주도 해야 하는 거야 이놈아!”

‘설득력 없는 말을 하시는군.’

남들한테 ‘나는 아무런 욕심 없이 쾌적하고 즐거운 낚시를 위해 영지를 얻는다’고 말하면 ‘미친놈이세요?’란 답이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유 회장의 말은 진심이었다.

유 회장이 이 나이 먹고 무슨 판온의 최강자를 노리겠는가.

다른 길드들이 개나 소나 다 하는 외부 투자도 받지 않았다.

본인이 최강의 투자자였는데 무슨 투자가 필요하겠는가.

“…그 표정이 매우 기분 나쁘구나.”

“아뇨. 저도 어르신 말씀에는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그, 그래?”

유 회장은 반색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 소리를 들으면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쇼’, ‘무슨 재벌이 서민 생각해 준다는 거짓말도 아니고’ 같은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유 회장의 마음을 이해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정말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해야 할 때가 있죠.”

사실 판온 1 처음에 태현이 원했던 건 그냥 자유롭게 판온을 하는 거였다.

원하는 광산에 들어가서 원하는 광석 캐서 원하는 아이템 만드는 것.

정말 쉬운 일로 보였지만, 이게 의외로 어려운 일이었다.

광산이란 광산은 길드들이 점령하고 있었고 질 좋은 광석은 또 랭커들이 점령하고 있었고 원하는 아이템 만들려고 하면 다른 대장장이들이 방해하고….

사람이 빡치면 실력 행사에 나서게 마련.

“그렇지?! 역시 최고답게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줄 알았다.”

“최고?”

“…최고에서 두 번째쯤.”

유 회장은 자기의 말실수를 깨닫고 급히 말을 바꿨다.

“도시 없으면 일단 이용료 내야 하고, 길드 소속 낚시꾼 들어오면 비켜줘야 하고, 뭐… 이것저것 힘들긴 할 겁니다.”

“그렇지! 그렇지! 그리고 여기는 아키서스 교단도 없어서….”

유 회장은 불평했다.

중앙 대륙은 그래도 아키서스 신전이 이곳저곳에 있어서, 신도들은 가서 버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하늘섬은 신전이 하나도 없다!

“내가 영주가 되면 신전부터 지을 생각이다.”

“오오….”

태현은 감동했다.

아키서스 교단 소속 플레이어들이 그래도 뭔가 하긴 하는구나!

‘펠마스 같은 놈들보다 더 나은 것 같기도.’

“어르신! 파이팅!”

“…왠지 기분이 나쁜데….”

유 회장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니 잊고 있었는데, 유 회장과 낚시꾼들은 지금 대부분 아키서스 교단 가입 상태였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태현의 배를 배부르게 만들어주는 상황!

안 그래도 리그에서 날뛰는 놈을 더 밀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어르신. 말씀만 하시면 저도 가능한 도와드리죠.”

“아니… 됐어….”

“왜 그러십니까. 사실 아무 준비 없이 영지 먹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방어하는 입장이 공격하는 입장보다 유리하다!

영지전의 기본이었다.

대형 길드들이 바보도 아니고, 한 번 먹은 걸 그리 쉽게 줄 리 없었다.

게다가 유 회장 쪽 길드는 그렇게 전투에 능한 길드가 아니었다. 제작 길드에 가까운 길드 아닌가.

“나는 싸우지 않고 하나 얻어 볼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말입니까?”

“돈으로 매수해서.”

“…….”

태현은 순간 거리감을 느꼈다.

와 이 사람 게임이 아니라 현질을 하네!

“그 뭐 재미없는….”

“흥. 사업에 무슨 재미를 따지나.”

“사업이 아니라 게임입니다.”

“사업이 곧 게임이지. 크게 다른 것도 없다.”

유 회장은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정말 도와준다고?”

“대신 영주 되시면 제 일행들은 특별 대접해 주셔야 합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하지만 사실 별로 도움 필요 없을 거다.”

유 회장은 자신만만했다.

여기 주변의 대형 길드들은 서로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길드 하나 정도야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점령만 하면 됐다.

“아, 그리고 아키서스 신전은….”

“?”

“…아닙니다. 하하. 지어주시면 감사하죠.”

설마 아키서스 천사가 여기로 오진 않겠지!

낮은 확률이니까….

* * *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십니까?”

“…?”

태현은 멈칫했다.

아무리 봐도 NPC 같아 보이는 놈이 말을 걸어 온 것이다.

게다가 온몸을 로브로 덮어 가린 게 ‘나 수상한 놈이다’라고 광고하는 수준!

‘뭐지?’

태현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카르바노그가 퀴즈를 냅니다! 1.악신 교단 암살자 2.선신 교단 암살자 3.하늘섬 영주가 보낸 암살자 4.중앙 대륙에서 온 암살자.]

‘…1, 1번?’

아무리 그래도 악신 교단에서 보내지 않았을까?

태현만큼 명성 높은 영웅도 드물었으니까….

파아아앗!

상대는 로브를 벗어 던졌다. 그러자 안에서 거대한 날개를 달고 있는 전사가 나타났다.

가루다 왕국 전사!

“…!”

[카르바노그가 5번 가루다 왕국 암살자를 빼놨다고 아쉬워합니다!]

‘지금 그럴 때냐?’

태현의 손은 이미 검에 닿아 있었다. 상대가 덤비는 순간 뽑아서 칠 준비가 끝난 상태!

“모시러 왔습니다!”

“…….”

[…….]

<가루다 왕국에 어서 오세요-가루다 왕국 퀘스트>

강하고 거친 전사들의 왕국, 가루다 왕국은 언제나 뛰어난 인재를 찾았다.

어떤 이유로 인해, 아키서스 교단을 이끄는 당신은 가루다 왕국의 눈길에 들었다.

이 초대에 응할지 응하지 않을지는 당신의 선택이다.

보상: ?, ???

“…….”

정말 예상치도 못했던 스카우트!

가루다 전사들을 패고 다녔는데 스카우트가 날아오자 태현도, 카르바노그도 당황했다.

“저희 가루다는 늑대나 마찬가지. 교황 같은 사람이 이런 양 떼들과 같이 어울릴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같이 손을 잡고 이 양 떼들을 잡아먹읍시다!”

“아니 난 그런 생각이 딱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아키서스 교단을 이끄시는 사악한 늑대 아니십니까.”

“…….”

[카르바노그가 웃음을 참습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이라면 늑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 이걸 받으십시오.”

[지도가 추가됩니다!]

[가루다 왕국의 전진요새 위치가…]

“지금 오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아키서스 교단은 저희 같은 늑대라는 것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지들 할 말만 하고 가루다 전사는 후다닥 가버렸다.

남은 태현은 또 고민에 빠져야 했다.

가루다 왕국에 찾아가 봐야 하나??

* * *

“실질적으로 지금 우리에게는 승산이 없어.”

이세연은 단적으로 잘라 말했다.

팀 KL vs 유성 게임단!

모두가 기대하는 세기의 대결이었지만, 의외로 예상은 냉정했다.

-팀 KL의 승리가 예상되어….

-8:2로 팀 KL이 이길 것으로 예상.

-유성 게임단도 강한 팀이지만, 팀 KL의 이번 시즌 기세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번 시즌이 끝나도 구성원을 보면 몇 년은 군림할 것.

몇몇 유성 게임단 팬들이 희박한 가능성으로 기대하고 있었지만, 대다수 팬들도 포기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세연까지 저렇게 말하자 선수들의 표정이 낙담으로 물들었다.

“갑옷이 준비되려면 다음 시즌은 되어야 할 것 같고, 김태현은 아직 약점도 안 나왔지. 우리 레벨 올리려면 마찬가지로 시간은 더 필요하고….”

“그러면 안전하게 가는 겁니까?”

“그래. 하지만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긴 해.”

“…?”

선수들은 이세연의 말에 의아해했다.

모두가 다 안 된다고 했는데 기회가 있다니?

“만약 경기 규칙이 호위나 점령이나 보물 탈취로 잡히면, 그때는 깔끔하게 포기해. 하지만 데스매치 관련 규칙으로 경기가 잡힌다면….”

“잡힌다면…? 설마 이길 수 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

“비길 수는 있어.”

“어떻게 말입니까? 설마 5인 탱커를?”

유성 게임단은 5인 탱커를 연습하지 않았다.

그건 약팀이나 하는 전술이었다.

상위권을 노리는 유성 게임단이 굳이 맞지도 않는 5인 탱커 전술을 연습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그걸로는 안 돼.”

“그러면…?”

“일단 1경기 맵 발표되는 것부터 보자. 발표되면 이야기해 줄게.”

* * *

“내 생각엔 딱히 지거나 위험한 요소가 없다.”

태현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리그 초반과 달리 이제 그들도 그들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감!

계속 연승을 이어 온 자신감이 그들에게 붙은 것이다.

“하지만 지면 나는 너무 슬프고 허탈할 것 같다.”

“…….”

“그렇게 되면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나도 모르겠어.”

“…….”

오싹-

태현 일행은 정말 오랜만에 소름 돋는 감각을 느껴야했다.

진짜 무섭다!

이번 경기를 진다고 딱히 리그 우승이 날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1위와 2위의 격차가 이렇게 심하니 몇 번의 패배로 따라잡힐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저 철저함이라니….

“절대 방심하지 마라. 이세연은 레벨 300 넘기고 각종 스킬들도 얻었을 거야. 실수 한 번 하면 날아갈 수 있다. 물론 네크로맨서는 훨씬 불리하긴 하지만….”

“알겠으니까 그냥 뭐 해야 되는지 말해주면 안 되냐?!”

평소와 달리 매우 길게 말하는 태현 때문에 케인까지 긴장했다.

“평소처럼만 해. 알겠지?”

“…….”

“…….”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말이었다.

“1경기는 대장전 룰인가.”

팀원 중 한 명을 대장으로 정하고 이 사람을 잡아야 이기는 규칙.

‘어지간하면 이세연이겠군.’

태현 팀에서는 태현이, 유성 게임단에서는 이세연이. 비틀 수는 있겠지만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잃을 게 더 많았으니까.

[경기장이 결정되었습니다.]

[<고대의 숲>입니다!]

‘정글 형태.’

태현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냈다.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움직인다.

싸움이 시작되면 태현은 가장 먼저 빠르게 돌진해서 이세연을 노릴 거고….

그걸 막지 못하면 유성 게임단은 패배하리라.

과연 그사이 이세연이 태현을 막을 정도의 언데드 군대를 소환하거나, 저주를 준비하거나, 유성 게임단이 발목을 잡게 할 수 있을까?

태현은 아니라고 봤다.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태현은 버프를 쓰며 빠르게 달려나갔다.

고지대에 올라간 태현은 유성 게임단이 어느 쪽에 있는지 확인에 들어갔다.

그리고 경악했다.

“…이런 미친…?!”

눈앞에 깔린 건 수많은 언데드 군단들.

거기에 놀란 게 아니었다.

언데드 군단은 얼마나 강한지가 중요했지 얼마나 많은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 언데드 군단들이….

전부 이세연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신… 아니, 언데드 위장 스킬?!’

자세히 보니 몇몇 놈들은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도록 위장이 허접했고, 몇몇 놈들은 제법 비슷했다.

네크로맨서라면 시간을 끌면서 강한 언데드를 소환해야지 이런 식으로 잔수작을 부릴 이유가 없었다.

딱 하나 빼고는.

‘이세연… 미쳤냐?!’

이세연은 경기 시간 내내 도망 다니면서 무승부로 이끌 생각이 분명했다.

무승부야 그렇다 쳐도, 보고 있는 팬들의 분노는 어떻게 감당하려고?!

‘게다가 경기 하나만 룰 잘못 걸려도 못 쓰는 전략인데… 진짜 지기가 그렇게 싫냐?!’

솔직히 태현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득보다 실이 많은 전략이었다.

그런데도 이걸 고른 건, 호락호락하게 지지 않겠다는 이세연의 의지가 느껴졌다.

좋게 말해서 의지였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땡깡!

“범위 마법 닥치는 대로 날려! 약한 분신은 사라질 거다. 시간 내에 이세연을 찾는다!”

태현만큼은 아니었지만 보고 있던 사람들도 웅성거리고 있었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저거 뭔 생각이 있어서 저러는 거겠지? 저러면서 시간 끌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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