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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151화 (1,150/1,826)

§ 나는 될놈이다 1151화

“이다비는 아직 멀었어.”

“뭐가 멀었다는 겁니까?”

“저 달콤한 제안을 받아들이면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질 테니까.”

케인은 이다비를 안쓰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저 함정을 밟는 순간 넌 끝이야!

“그러면 가볼까요?”

“그래. 간단하게 준비하고 나가자. 메이크업은 그쪽에서 할 테니까.”

“그러면 갔다 오겠습니다.”

“갔다 올 테니까 저번에 하던 칭호 작업 끝내 놔.”

“…????”

둘이 문을 닫고 나가자 케인은 얼이 빠졌다.

…벼락같은 호통은!?

* * *

“그런데 무슨 프로그램이죠?”

“응. 요리 대결.”

“…네??”

이다비는 당황했다.

뭔 대결?

“요리 대결.”

“아니… 왜… 저희가…?”

게임은 게이머가, 요리는 요리사가 해야지!

“심사위원이 요리사고, 판온 하는 선수들이 실제로 나와서 대결하는 거지.”

“아, 그거 설마 주현영 씨가 나와서 만장일치로 이겼던…?”

“응.”

<판온의 셰프들>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판온에서 요리 좀 하는 플레이어들을(가끔은 요리 못 하는 플레이어들도 인기만 많으면) 불러서 실제로 대결시키는 프로그램!

즉석에서 주어진 재료를 갖고 판온 플레이어들이 열심히 만드는 모습은 신선한 재미가 있었다.

잘 만들면 잘 만드는 대로, 못 만들면 못 만드는 대로 재밌는 대결!

‘나 요리 못 하는데…!’

이다비는 매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태현과 같이 만든다지만 태현의 발목을 잡을까 봐 조마조마해진 것이다.

이다비는 딱히 요리를 못하진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뼛속까지 깊게 스며든 절약 습관!

무X마보다는 스X면, 각종 양념은 무조건 적게 등등….

동생들은 이걸 ‘매우 건강한 식단’이라고 표현했다.

“뭐, 못 만들어도 그건 그거대로 재밌으니까 걱정하지 말자.”

“네….”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선 태현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으엑.”

김현아는 남우연과 떠들다가 태현을 보고 질색했다.

저기 판온 리그의 모든 선수들의 공적이 온다!

“왜 그래?”

“아니. 저기 김태현 선수는 유성 게임단과 언니의 원수라서….”

“원수라니. 너무 말이 과한 거 아냐? 선의의 경쟁자잖아.”

“선… 선의?”

김현아는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세연 반응을 봤을 때 생각나는 건 악의밖에 없는데?

“말은 그렇게 해도 정정당당하게 서로를 라이벌로 여기는 거 맞지?”

남우연은 웃으면서 말했다. 김현아는 어이가 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걸 간신히 붙잡아야 했다.

“아니야…! 밖에서 이야기도 별로 안 해!”

“또 쑥스러워서 그런다. 친하면서.”

“…….”

김현아는 말이 안 통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는 사이 태현과 이다비가 다가와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그 인사에 김현아는 예의를 갖춰 대답했다.

“흥! 오늘은 꼭 이기겠습니다!”

건방지게 존대를 하는 재주!

“…….”

“…….”

혼자 활활 의욕이 타오르는 김현아의 모습에,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세연하고 같이 다니더니 옮았나?’

정말 별의별 부분에서 경쟁심을 불태우는 게 이세연이었다.

경쟁심만 놓고 보면 태현을 능가하는 게 바로 그녀!

아무리 봐도 같이 오래 다니더니 옮은 것 같은….

“저, 저기. 이건 승패를 가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니요! 승패는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세연 선수는 어디 가고?”

“언니는 바쁘시거든요. 그쪽보다….”

그쪽보다 바쁘다고 말하려던 김현아는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까 눈앞에 있는 사람은 사장, 단장, 선수, 감독, 주장, 코치, 집안일을 모두 맡고 있는 철인 아닌가!

“…좀 덜 바쁘긴 해도 뭐 어쨌든 바쁘다고요!”

“흠. 그렇습니까. 만나면 안부 전해 주십시오.”

“안부라니… 혼란스럽게 해서 집중 못 하게 하려는 책략…?”

“…그러면 전해주지 말던가.”

“만났는데 아무 말도 안 함으로써 혼란을 주려는 전략…?”

“…….”

태현은 김현아를 빤히 쳐다보았다.

“몰랐는데 그쪽은… 좀 케인을 닮았습니다?”

“?!?!?”

뭔 뜻인지는 모르겠는데 왠지 기분 나빠!

“칭찬인가?”

옆에 있던 남우연이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 * *

“심사위원분들, 오늘의 승부는 어떻게 보십니까?”

“일단 김태현 선수는 판온에서… 괴식으로 악명이 좀 높은 선수 아닙니까?”

“하하하. 괴식은 괴식이죠.”

태현과 골짜기 영지의 괴식은 이미 유명했다.

효과는 좋은데 맛은 더럽게 없는 한약 같은 요리!

“하지만 괴식 말고도 원래 실력은 대단하단 말도 있습니다.”

“맞아요. 게다가 팀 KL의 식사를 담당하는 게 김태현 선수 아닙니까?”

“그 소문이 진짜였나요?”

“예. 제가 들어보니 진짜라고….”

“아니, 그러면 케인 선수는 정말로?”

사람들은 경악했다.

정말 그냥 받아먹기만 해?

사장이 요리하고 선수는 받아먹기만 하는 팀이라니, 뭐 이런 듣도 보도 못한….

“크흠. 어쨌든 김태현 선수의 실력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네! 플레이어들, 냉장고를 확인해 주세요!”

각자 자기 공간에 서자, MC의 지시가 떨어졌다. 태현과 이다비는 같이 냉장고로 갔다.

“뭐가 있을까요?”

“글쎄… 그렇게 다루기 어려운 재료는 없겠지만 그때 그때 차이가 좀 크다고 들어서….”

재료는 완전히 랜덤이었다. 가끔 골탕 먹이기 위해 다루기 어려운 재료도 있었지만, 보통은 플레이어들을 위해 쉬운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오. 무난하네. 달걀에, 양파, 조미료도 있고….”

“삶은 달걀을 먹으라고 할까요?”

“…그건 그거대로 좀 참신한데.”

달걀 삶아서 먹으라고 사람들한테 주면 반응이 재밌긴 하겠다!

“오믈렛이 좋겠다. 안에 재료는 아무것도 없으면 좀 심심하니까 통조림 따서 볶은 다음에 야채랑 같이 채워야겠군.”

태현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달걀을 푼 다음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야채를 구웠다.

그런 다음에 버터를 살짝 둘러 계란을 솜씨 좋게 반숙으로 익혔다.

숙련된 솜씨에 MC와 심사위원들 모두가 감탄했다.

“김태현 선수.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네요?”

“무엇보다 괴식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죠.”

“게다가 김태현 선수의 한 가지 뛰어난 점은, 망설임이 전혀 없었다는 점입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냉철하게 분석을 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다른 사람들은 무슨 메뉴를 만들지 고민하고 시간이 걸리는데, 김태현 선수는 재료를 보자마자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손이 나갔어요. 이게 무슨 뜻이냐, 김태현 선수가 숙소에서 매번 식재료를 관리하고 요리를 한 덕분에 이게 완전히 몸에 익은 겁니다.”

“…….”

“그… 대, 대단한데요?”

대단하면서도 동시에 살짝 태현이 불쌍해지는 그런 미묘한 감정!

분명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은 멋지고 존경스러워야 하는데….

태현이 저러니까 왜 이렇게 살짝 짠하지?

“다음에는 케인 선수를 부르죠.”

“하긴 김태현 선수보다는 케인 선수가 나와야 할 프로그램일지도… 앗. 다른 분들도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좀 늦긴 하네요?”

“제한 시간 있습니다! 다들 시간 봐가면서 하셔야 해요.”

“아니, 김태현 선수 요리를… 더 하네요??”

“게다가 손이 좀 많이 가는 요리 같은데요?”

태현은 생강과 마늘 등 각종 양념을 다져서 즉석 육수를 만들었다.

“이다비. 버섯이랑 고기 좀 같이 볶아줄래?”

“네… 네!”

“양념은 걱정하지 마. 내가 양 맞춰줄 테니까. 그대로만 하면 돼.”

이다비는 요리를 못하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자꾸 절약을 해서 그렇지.

태현은 그걸 알았기에 딱딱 지시를 내렸다.

“이야, 두 사람 호흡이 보통이 아닌데요?”

“제가 아까까지는 김태현 선수가 불쌍해서 눈물이 좀 났었는데, 이제는 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팀 KL에 도와줄 사람이 한 명은 있잖아요?”

“맞습니다. 솔직히 다른 선수들은 양심이 없는 것 아닌가 싶은….”

“지금 보세요. 김태현 선수가 뭐하는지 아시겠어요? 지금 즉석에서 육수 만든 다음 소면 삶아서 국수를 해주는데, 저는 저기서 정말 뭉클했습니다.”

“뭉클이라니요? 어째서죠?”

“저게 딱 봐도 야식 메뉴잖습니까. 분명 팀 KL 선수들이 야식 먹고 싶다고 하니까, 매번 라면 먹이면 건강에도 안 좋으니 직접 육수 내서 국수 끓여준 게 분명합니다. 평소에 저런 경우가 많지 않았으면 저 정도 속도가 안 나와요.”

들려오는 예리한 분석에 태현은 감탄했다.

아니 숙소를 직접 봤었나?!

어떻게 저렇게 잘 알지?

옆에서 자기네 요리를 하던 김현아도 어이가 없어서 물을 정도였다.

“…대체 왜 그런 선수들을 데리고 있는 거죠?”

“평, 평소에는 잘 하는 애들이거든.”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성의 문제 같은데….”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식재료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요리를 딱딱 만들어냈다.

재료 하나 남기지 않고 알뜰살뜰하게 메뉴를 짜내는 그 실력에 심사위원들은 모두 감동했다.

-평소 얼마나 밥을 많이 차려주는지 알 수 있는 완성된 실력. ★★★★☆

-팀 KL 선수들의 비양심만큼 맛있는 요리. ★★★★

-별 네 개 반의 맛이지만 이 요리가 완성되기까지 과정이 사람을 울게 만든다. ★★★★★

태현과 이다비의 압승!

김현아도 반박하지 못하고 인정할 정도였다.

“…솔직히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겠네요.”

물론 따라가고 싶지도 않지만!

김현아는 처음으로 태현이 아주 살짝 불쌍해졌다.

능력도 엄청난 사람이 왜 주변 사람을 잘못 만나서….

‘그러게 언니 제안을 받을 수 있을 때 받았어야지.’

* * *

“남우연 씨.”

“네!”

남우연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홱 돌아섰다.

배장욱 PD한테 이미 말을 들어서 알고 있는 상태였다.

-김태현 선수가 팬이라는데, 혹시 사인 좀 해줄 수 있어요?

-네? 진짜 제 팬이에요?? 정말요???

판온 좋아하는 사람들 중 태현의 팬 아닌 사람은 없… 아니, 있긴 했지만 어쨌든 남우연은 팬이었다.

그런데 태현이 자기 팬이라니!

가슴이 뛸 듯이 기쁠 수밖에 없었다.

“사인을….”

“사인해드릴까요?! 사인? 사인 필요하시죠! 그렇죠?!”

“예? 예. 여기 이다비가 남우연 씨 팬인데, 혹시 사인 좀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

“???”

이다비는 당황해서 태현을 쳐다보았다.

“팬이라뇨?”

“남우연 씨 나오는 방송 계속 챙겨볼 정도로 좋아했잖아?”

“앗. 그걸 보셨어요? 제가 좋아해서가 아니라 동생들이 팬이거든요. 그래서 방송 나올 때 부르려고 챙겨보는 거였어요.”

“뭐야. 그런 거였어? 괜히 방송 나오겠다고 했네. 네가 팬인 줄 알고 만나려고 한 건데….”

“아, 아니요.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요. 정말요!”

이다비는 정말 감동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건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태현이 혼자서 생각해 주고 해줬다는 사실 자체가 몇 배로 더 기뻤다.

태현 같은 사람이 방송에 나올 정도로 이것저것 준비를 해주다니!

“그러면 동생들 사인을 받아갈까?”

“그럴까요?”

둘의 대화를 옆에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남우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둘 다 망했으면 좋겠다….’

이 사람들이 남의 앞에서 염장질을…!!

남우연은 집으로 돌아가면 김태현 팬카페를 탈퇴하고 유성 게임단 팬카페에 가입하기로 결정했다.

어쩐지 김현아가 태현을 그렇게 싫어하더라!

“사인 감사합니다!”

“사인 감사합니다!!”

“아, 네, 뭐, 네.”

남우연은 매우 가식적인 미소로 대답했다.

솔직히 태현 팬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로 참은 거였지 아니었으면 바로 험한 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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