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50화
“김태현 선수를 쓰러뜨리는 비책 같은 건 없습니까?”
“저는 그게 팀 KL을 상대하는 게임단들이 빠지는 함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다섯 명이 같이 싸우는 경기에서 왜 가장 강한 한 명을 노려야 합니까? 김태현 선수도 싸울 때 보면 가장 잡기 쉬운 상대부터 잡습니다.”
모든 게임단들이 팀 KL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태현을 가장 먼저 공략하려고 생각했다.
팀의 핵심이자 기둥!
그러나 사베트가 보기에 그건 비효율적인 짓이었다.
“저는 김태현 선수가 그렇게 날뛰는 게, 역설적으로 팀 KL의 약점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선수들은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은 거죠.”
“팀 KL의 선수들은 다 일류로 취급 받고 있는데….”
“투기장에 들어오면 보정 때문에 능력치는 거의 비슷해집니다. 판온 내에서 임팩트 때문에 착각하기 쉽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그렇게까지 테크니션이 아니죠. 김태현 선수를 제외하면 다들 임기응변이 뛰어나지 않습니다. 충분히 잡을 수 있습니다.”
사베트의 청산유수 같은 말에 면접관들은 감탄했다.
저 자신감!
과연 일류 감독은 뭔가 달라도 달랐다.
“그러면 사베트 님은 유성 게임단 선수들을 주면 팀 KL을 잡을 수 있다는 겁니까?”
“예? 아, 아닙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방법론이고 실제로 했을 때 가능성은 솔직히 좀….”
“…….”
“…….”
잘 나가다 김이 식는 이야기에 면접관들의 얼굴이 굳었다.
‘그래도 상당히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무엇보다 현실적이고 상황을 정확하게 보는 것 같군.’
‘맞습니다. 이전 면접 본 감독은 정말….’
면접관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감독들만 불평하는 게 아니었다. 면접관들도 불평을 했다.
감독도 이상한 놈들이 많은 것이다.
* * *
-저는 판온 이전부터 활동해 온 감독으로서 다회차 우승 경험을 살려, 유성 게임단 감독직을 맡게 되면 유성 게임단을 우승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후후.
-오오…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일단 김태현 선수를 영입해 주십시오.
-…….
-…감독님은 정말 유능한 인재시군요!
면접관이 싸늘하게 말했지만 감독은 눈치 못 채고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제 별명을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승 청부사, 아십니까?
-10년 전쯤 별명이었던 것 같은데….
-한 번 우승 청부사는 영원히 우승 청부사입니다. 후후.
-만약 김태현 선수 영입을 실패할 경우에는?
-실패하면 안 됩니다. 제 계획에는 김태현 선수가 꼭 필요합니다.
‘아니 뭐 이런 새ㄲ….’
‘누가 저 사람 불렀어?’
‘김태현 있고 이세연 있으면 나도 감독하겠다.’
* * *
“사베트 님. 좋은 면접이었습니다. 결과가 결정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후…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베트는 반쯤 포기한 얼굴이었다.
유성 게임단도 솔직히 대기업인데 그를 뽑아줄 것 같지는 않았다.
면접관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
“아, 아닙니다. 다만 제가 트러블을 일으킨 적이 있어서 그게 문제가 될까 봐 걱정을 했을 뿐입니다.”
“무슨 트러블을…?”
“혹시 뒷돈을 받거나 불법도박에?”
면접관들은 몰랐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졸지에 파렴치한으로 몰린 사베트는 펄쩍 뛰었다.
“그런 거 말고! 전 팀에서 있었던 마찰 말입니다!”
“아. 그거 말입니까? 하하.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뭘 그런 걸 가지고. 사베트 님도 은근히 잔걱정이 많으십니다?”
“????”
화기애애하게 웃는 면접관들의 태도에, 사베트는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지금 유성 게임단이 아니라 무성 게임단 같은 유사게임단에 들어왔나?
‘아니. 유성 게임단 면접장 맞는데??’
혹시 이거 낚시인가?
“어… 모기업… 모기업에서 신경을 쓰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기업은 이미지를 신경 쓰는데 저 같은 사람이….”
“사베트 님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베트 님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윗분들은….”
“아, 괜찮습니다.”
‘대체 뭔 자신감이래?’
사베트는 얼떨떨했다.
면접관들도 월급 받는 직원들일 텐데 뭔 배짱으로?
‘저러다가 시말서 쓰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사베트는 자기 일을 떠나서 직원들을 걱정했다.
임원들 눈에 잘못 들면 잘리는 건 일도 아닌데….
* * *
“김태현 선수에게 판온은 무엇입니까… 으음. 그냥 게임 아닌가?”
“좀 더 멋진 대답이 필요하지 않냐?”
“솔직하게 대답하는 게 중요하지 멋진 대답이 꼭 필요해?”
“당연하지! 어제부터 내내 이것만 고민했는데!”
“…경기가 아니라 인터뷰를 고민했다고?”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케인은 말을 더듬었다.
지금 팀 KL 선수들은 모여서 인터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작성하고 있었다.
저번에 했었던 약속!
-엉엉! 하라는 대로 할 테니까 영화 나가게 해줘!
<니팅거스 레이드>와 관련된 감동적인 다큐 영화에 출연하게 해달라는 약속.
케인이 열심히 해준 것도 있었기에 태현은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레이드 장면이야 영상을 그대로 제출하면 된다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은 추가로 해야 했다.
-팀 KL 선수들이 판온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게임하는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하는 거지….
“아니. 좀 멋진 대답! 좀 멋진 대답!”
태현의 대답을 본 케인은 경악했다.
뭐 이렇게 폼 안 나는 대답이 있단 말인가!
“넌 뭐라고 하려고 하는데?”
“내가 판온을 하는 건… 거기에 판온이 있기 때문이다…?”
“구려.”
“진부합니다.”
“심지어 표절 같은데.”
순식간에 난도질당한 케인은 시무룩해졌다.
“괜히 이런 곳에 에너지 쓰지 말고 그냥 솔직하게 대답해라.”
태현은 그렇게 말하며 제작진 쪽에서 보낸 영상을 훑어보았다.
간단하게 기초만 잡은 영상이었지만 그래도 흥미로웠다.
판온이 어떤 게임인지 초반에 설명해 주고, 거기에 유명한 플레이어들이 누구 있는지 나오고, 니팅거스가 어떤 몬스터인지 나오고, 거기에 어떻게 도전하는지 나오고….
원래는 여기서 끝나야 하는데 한 번 더 꺾었다.
-니팅거스 공격대는 전멸했지만 판온에는 다른 공격대가 있었다. 김태현 공격대로 불리는 이 파티는 판온 1 때 랭커인 김태현을 필두로 구성되어 어마어마한 업적을 자랑하는….
‘재밌긴 해.’
새삼스럽게 보니 참 많은 퀘스트들을 깨왔다는 게 느껴졌다.
남들이 괴물 파티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앞으로 팀 KL의 목표가 있습니까?
‘…어떤 퀘스트를 깨든 간에 흔들리지 않고 다 같이 할 수 있기를.’
태현은 그렇게 대답하기로 결심했다.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면 뭉클했을 정도로 감동적인 대답!
-팀 KL에서 가장 속 썩이는 선수가 누구였습니까?
‘이건 케인이라고 해야지.’
매우 솔직한 대답!
* * *
게임 전문 방송사, MBS의 베테랑 PD이자 간판 PD, 배장욱!
수많은 프로그램을 히트시켜 온 노련한 그였지만 지금은 정말 당황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안 됩니까?”
“그럴 리가 있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
“이거 실례… 너무 뜻밖이라 말이 꼬여서 나왔습니다.”
배장욱은 헛기침을 했다.
그가 당황한 이유는 바로 눈앞의 판온 선수, 태현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태현이 먼저 연락을 해 온 것이다.
보통 연락 100번을 해야 한 번의 ‘죄송합니다 시간이….’란 대답이 들어오는 스타가 태현인데!
-음, PD님. 이런 부탁을 드리기 조금 죄송스럽긴 한데… 연예인 한 분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PD님께서는 인맥이 넓으시잖습니까.
-예?!?!
배장욱은 너무 너무 놀랐다.
태현이 먼저 연락한 것도 놀랐고, 연예인을 소개해달라고 한 것도 놀랐고… 아니 그냥 다 놀라웠다.
-보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신 PD님께서 원하시는 프로그램에 나가 성실하게 촬영하겠습니다. 혹시 안 됩니까?
-그럴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태현이 나온다면 없는 프로그램도 즉석 편성해서 만들 각오가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김태현 2시간>이란 방송도 시청률 기록을 찍을 자신이 있다!
이런 극단적인 방송은 물론 하지 않겠지만, 정말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당장 앉혀놓고 대회 이야기만 해도 한 편이 뚝딱!
저번에 인터뷰할 때 베이징 파이터즈 언급 한 번 한 걸로 수백, 수천 개 기사가 나오는 걸 보라.
베이징 파이터즈 팬들은 치욕적인 별명에 분노했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은 행복해했다.
이걸 조금만 더 길고 자세하게 하면….
“허억, 허억….”
배장욱은 자신도 모르게 침이 고이는 걸 느꼈다. 태현은 질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 사람 괜찮나?
“그런데 어느 연예인을 말하시는 겁니까?”
“그러니까 그게… 아이돌 <메이플 민트>의 남우연이라는 사람인데요.”
“아아. 잘 압니다.”
요즘 인기 많은 여자 아이돌 중 한 명으로, 털털한 매력도 매력이지만 판온 폐인으로 화제가 된 아이돌이었다.
사실 이제 연예인들 중에서 판온 안 하는 사람 찾기가 드물었지만, 그래도 그들 중 정말 고렙인 사람은 드물었다.
그 고렙 중 한 명이 바로 남우연!
‘역시 김태현 선수도 젊은 사람답게 연애에 관심이 있긴 했구나!’
배장욱은 새로운 사실에 전율했다. 이 사실을 자신만 알고 있다는 게 더더욱 짜릿했다.
김태현 선수가 날 이렇게 믿어주고 있다니…!
‘연락 100번 해도 대부분 씹긴 했지만 그래도 날 믿어주고 있었구나!’
세계 제일로 꼽히는 선수가, 과거의 인연을 잊지 않고 믿고 있어준다는 게 매우 감동적이었다.
‘이분 술 취했나?’
그러는 사이 태현은 속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더니 말도 헛나오고….
취해서 나온 거 아냐?
하지만 배장욱의 감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태현은 연예부 기자들 사이에서 절망이자 통곡의 벽으로 꼽혔다.
-아니 저 미친 인간은 왜 행동이 변하질 않아?
-집 운동 집 운동 집 운동 집 운동 집 운동이야! 매크로 돌렸나 봐!
-저게 사람이야 기계야??
가장 핫한 태현으로 어떻게든 조회수를 뽑고 싶어서 매복했던 기자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나가떨어졌다.
아무리 기다리고 두드려도 나오는 게 없는 통곡의 벽!
그런 사람이 자기한테만 비밀을 알려주니 감동할 수밖에….
“저만 믿으셔도 됩니다. 김태현 선수.”
“아. 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이 이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다비가 남우연의 팬 같았던 것이다.
‘유난히 남우연의 방송을 자주 챙겨봤었지.’
아무리 생각해도 팬일 수밖에 없다!
태현은 남우연을 만나 이다비를 소개시켜 줄 생각이었다. 분명 이다비가 뛸듯이 기뻐하리라.
* * *
“태현 님이 직접 방송에요??”
“응.”
“…태, 태현 님. 혹시 케인씨 약점을 잡혀서 억지로 방송에 나가시는 거면 저한테도 상담을 해주세요….”
“…….”
“…….”
“그런 거 없어! …그렇지?”
케인은 슬쩍 물었다.
자기도 모르는 실언이 설마 영상으로….
“그런 거 없고. 그냥 좋은 기회라서 나가기로 한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리고 같이 나가자.”
“앗. 그래도 괜찮나요?”
“응. 가벼운 프로그램이야.”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케인은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정수혁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나가겠다고 안 하십니까?”
“멍청하기는.”
“?”
“저건 함정이야. 나가겠다고 하면 바로 고기반찬 1주 압수가 들어온다고.”
“…!”
정수혁은 감탄했다.
이 사람도 성장을 하긴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