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46화
-겸손하군. 하지만 지금은 네 능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어디 한번 근처의 적들을 쓸어버리고 이 성의 임시 성주가 될 자격이 있다는 걸 보여줘라!
<하늘섬의 깡패들-고대 제국 이탈자 퀘스트>
고대 제국 멸망 이후, 고대 제국 이탈자들은 자신들의 성 안에 틀어박힌 채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 성이 하늘섬 위로 추락했으니, 고대 제국 이탈자들과 주민들의 싸움은 필연적이 되었다.
고대 제국 이탈자들을 도와 하늘섬의 주민들을 쫓아내라! 이 땅의 정당한 주인은 고대 제국 이탈자들이다!
“…….”
[…….]
와 정말 이렇게 하기 싫은 퀘스트는 오랜만이다!
<고대 제국 이탈자> 세력이 가진 것도 많고 레벨도 높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인간적으로는 호감이 안 가는 놈들이었다.
이런 재수 없는 놈들을 꼭 도와줘야 할까?
‘어차피 하늘성 안에 숨겨진 비밀이나 스킬들만 다 챙기면 되지 않나?’
[카르바노그가 이 근처 하늘성이 한두 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 뒤지려면 <고대 제국 이탈자> 놈들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
-파괴! 혼돈! 망각!
-약탈! 약탈! 약탈!
-제국의 이름으로!
잘 떠 있던 성이 꼬라박았는데도 이탈자들은 매우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하늘섬의 흙도 좀 밟아보고 땅도 좀 점령해 볼까?
카르바노그가 감탄할 정도의 적응 능력!
“뛰어, 멍청이들아! 뛰어!”
“지원은 어디쯤 왔냐! 빨리 합류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가장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길드 동맹!
태현 옆에서 회복에 집중하던 이들은 하늘성이 섬 위에 추락하고 주변이 소란스럽자 기회라는 걸 직감했다.
이 때 도망쳐야 한다!
잡놈들이 더 몰려들기 전에!
“김태현,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속마음이 튀어나왔습니다! 반대로 말하셔야 합니다!”
“앗. 김태현, 함께해서 고마웠고 다시… 만나… 빌어먹을. 그 말은 차마 못 하겠다! 진짜 만나면 어쩌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이해합니다! 엉엉!”
“…….”
하늘성 밖으로 우르르 도망가는 길드 동맹 길드원들을 보며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아쉬워? 어차피 뒤통수칠 궁리만 하는 놈들이라 별 도움 안 될 놈들이잖아.”
“아니. 한두 놈 정도는 폭탄으로 쓰고 싶었는데….”
태현은 랭커들의 레벨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다른 건 몰라도 저 레벨들은 탐이 난다!
성에서 좀 떨어지자마자 길드원들은 바로 탈것을 불러내고 날아올랐다.
추격이 언제 또 붙을지 몰라서 매우 서두르는 동작이었다.
과연 길드 동맹의 최정예답게, 타고 있는 탈것들도 화려했다.
페가수스에 실버 와이번에….
“김태현 선수님. 삼촌은 어디 갔어요?”
“…?”
“????”
그제야 일행은 쑤닝이 자기 조카를 놓고 도망갔다는 걸 깨달았다.
저….
저런 멍청한 놈!
“야! 쑤닝! 돌아와!”
“길마님, 김태현이 부릅니다! 돌아오라고 합니다!”
“미친놈 같으니. 그걸 누가 돌아가겠냐! 무시해! 못 들은 척해. 들었다는 게 알려지면 괜히 트집을 잡을 놈이다!”
“알겠습니다!”
길드원들은 필사적으로 귀를 막았다. 아예 못 들었다고 우기기 위해서였다.
“이런 미친놈아! 돌아오라니까!”
“흑흑… 삼촌이 저 두고 그냥 간 거예요? 제가 억지를 써서?”
“아니야! 아니야! 네 삼촌이 좀 머리를 모자 장식으로 쓰는 사람이라 그래!”
“맞아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같이 있어줄 테니까요.”
쑤닝 조카가 울먹거리자 태현과 이다비가 다급히 달랬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좋아하는 두 선수가 달래주자 조카는 금세 방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여자아이라 그런지 태현보다 이다비에게 더 바짝 달라붙었다.
“어, 태현 님이 더 좋지 않아요?”
끄덕끄덕-
쑤닝의 조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다비는 당황했다.
태현이 더 좋으면 태현한테 붙어야지 왜 나한테?
“아무래도 네가 더 편한 거 아닐까?”
“그런가요?”
“하긴 이다비 네가 좀 더 선량하게 생기긴 했잖아.”
“태현 님도 충분히 선량하게 생기셨어요.”
“?”
“??”
“????”
뒤에 있던 일행들이 멈칫했다.
그….
그랬나??
“어쨌든 쑤닝 놈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데리고 있자. 어린앤데.”
“좋아. 내가 묘기를 보여주지.”
케인은 자신만만하게 팔 여섯 개를 쫙 폈다.
그의 팔은 이럴 때를 위해서 있었던 걸지도 몰라!
“징….”
“징?”
“징그러…! 벌레 같아!”
“…….”
케인은 시무룩해져서 다시 팔을 접었다.
* * *
사실 길드 동맹의 판단은 옳았다.
정신을 차린 플레이어들이 추락한 하늘성 근처로 우르르 쫓아왔으니까.
조카만 데리고 갔으면 참 좋았을 텐데!
“튀었어! 이 자식들!”
“큭! 잡을 수 있었는데!”
하늘성이 갑자기 날아가 버린 탓에 놓쳐버린 포위망!
잽싸게 탈것을 타고 날아가 버린 길드 동맹 길드원들의 뒷모습에, 플레이어들은 이를 갈았다.
“근데….”
“저 성은 어떻게 해야 하지?”
플레이어들은 수군거렸다.
평화롭던 하늘섬 들판에 갑자기 날아와서 박힌 성!
겉모습은 많이 망가졌어도 저 성 안에 어떤 보물이 들어 있을지 몰랐다.
당장 하늘섬 근처에 떠 있던 저 성들을 공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플레이어들이 들락날락했던가.
“저기는 우리 길드가….”
“무슨 소리야? 평등하게 나눠 가져야지.”
“저기….”
“평등은 무슨. 결투로 해결할까?”
“지금 레벨 높은 놈 있다고 자랑하냐? 클랜전 한 번 해봐?”
“그러니까 저기….”
“이 자식들이 길드 동맹 사라지니까 바로 이기적으로 구는 거 봐. 여기는 우리 땅이니까 우리 편의를 봐줘야지!”
“말 좀 들으라고!!”
“???”
“저기 안에 아직 김태현 있다고!!”
“아….”
그제야 사람들은 깨달았다.
아직 안에 김태현이 있구나!
* * *
“흠. 그래. 시간만 끌면서, 얻어낼 거 다 얻으면 빠져야겠다.”
[카르바노그가 다른 하늘성도 있는데 어쩔 거냐고 묻습니다.]
“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쟤네들 데리고 여기 점령하는 것보다는 훨씬 속 편하겠다.”
태현이 <고대 제국 이탈자>를 이용할 흉계를 꾸미는 사이, 의견 교환을 끝낸 플레이어들이 다가왔다.
각 길드에서 뽑은 제물… 아니, 대표들!
그들은 단단히 각오한 얼굴로 걸어왔다.
‘김태현이 설마 공격하진 않겠지.’
‘이야기했잖아. 김태현도 상황이 상황이라 우리가 강하게 나오면 한발 물러설 거라고.’
아무리 각오해도 무서워!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태현이 아무리 껄끄럽고 두려워도, 이대로 하늘섬에 내버려 두면 그들의 계획이 틀어지는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몰아낸다!
“뭐냐? 길드 동맹은 내려갔어.”
태현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아까부터 길드 동맹을 노리던 것 같았는데, 쑤닝은 이미 사라진 것이다.
“아니. 우리는 길드 동맹이 아니라 너한테 이야기를 하러 왔다. 김태현.”
“?”
“우린 이 하늘섬에 있는 길드들의 연합으로서….”
“어, 길드 동맹?”
길드들이 힘을 합치다니 그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시작인데?
그 말에 사람들은 벌컥 화를 냈다.
“우릴 누구하고 비교하는 거냐!”
“맞아! 길드 동맹하고 우릴 비교해?!”
“미안하게 됐군. 대형 길드들끼리 연합한다는 게 좀 비슷하게 들려서 말이야. 근데 뭐가 다른 거지?”
“우린 중국인이 거의 없다!”
“…그, 그렇군. 정말 많이 다르군.”
판온 1 때 대형 길드들과 싸워왔고 판온 2에서도 싸워왔던 태현에게는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놈이 그놈 아닌가?
물론 하늘섬에 있는 대형 길드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어쨌든 그래서 뭐… 짭드 동맹이 나한테 뭔 이야기를 하려고 온 거지?”
“…방금 짭드 동맹이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조용히 해.”
“크흠. 김태현. 우린 너한테 최후통첩을 하려고 여기 왔다.”
“??”
태현은 최후통첩이란 말에 놀랐다.
최후통첩이라니?
[카르바노그가 벌써 뭔 짓 했냐고 의아해합니다.]
‘성 들어오는 거 막긴 했는데 그거 가지고 최후통첩을 할 리가 없잖아? 지들이 들어오다가 막힌 건데.’
[아니면 화신이 미래에 할 사악한 짓들을 눈치챈 걸지도 모른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윽. 그건 부정하기 힘들군.’
“하늘섬은 우리 길드들이 먼저 발을 디뎠고, 먼저 영지를 얻은 곳이다. 따라서 뒤늦게 들어온 네가 물러나길 강하게 요청하겠다.”
“…???”
태현은 귀를 의심했다.
방금 내가 들은 게 말이냐 케인의 헛소리냐?
“어… 그러니까 지금 너희가 좀 빨리 발 디뎠다고 너희 땅이라 이거냐? 그, 던전 하나 찾아서 점령한 다음 자기 던전이라고 하는 것처럼?”
“그래! 잘 이해했군.”
“아니. 잘 이해한 게 아닌 것 같은데???”
옆에 있던 눈치 빠른 플레이어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깨달았다.
태현의 분위기가 살벌하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 물러나면 여기 있는 길드들이 연합해서 공격하고?”
“그래!”
“그래도 안 물러나면 척살령도 발표하고 응?”
“그래! 아주 잘 아는군!”
태현은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생각해 보니 이런 말을 참 오랜만에 듣는 거라 내가 좀 당황했네. 아마추어처럼 말이야.”
판온 1 때는 밥 먹듯이 들었던 말이었다.
던전 들어가서 광석 캐고 있으면 길드원 하나가 쪼르르 와서 ‘야! 꺼져! 우리 자리야! 안 꺼지면 죽는다!’라고 하면 ‘그래 너희들 묫자리!’ 하면서 죽이고, 또 그러면 더 몰려와서 길드 이름으로 공격한다고 협박하고, 또 길드째로 박살 내면 이제는 그 길드와 친한 길드들이 와서 협박….
판온 2에서는 길드 동맹만 미친 듯이 집요하게 패다 보니, 다른 대형 길드들과 부딪힐 일이 의외로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런 말을 들으니 오랜만에 판온 1 때 추억이 되살아 올랐다.
“저, 저거 저거 성질 나온다!”
뒤에 있던 최상윤은 경악했다.
저놈 눈빛 봐!
“너희들은… 어떻게 된 게 판온 1 때부터 판온 2까지 하는 짓이 똑같냐? 무리 지어 가지고 자기보다 약한 놈 있으면 괴롭히고 몰아내고… 게임할 거면 자기 것만 하면 되지 왜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하냐?”
태현은 검을 들고 한 걸음씩 앞으로 다가왔다. 눈치 빠른 플레이어는 뒷걸음질 쳤지만 나머지는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김태현, 잘 생각해 봐라! 넌 지금 길드 동맹을 적으로 두고 있다. 미다스도 네게 호의적이지 않고, 이세연 같은 선수들도 널 견제하려고 하고 있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우리를 적으로 둘 필요가 있겠냐? 하늘섬에서만 빠지면 된다. 어차피 다른 곳에 갈 곳도 많잖냐!”
플레이어들은 배짱으로 버티면서 외쳤다.
태현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태현은 길드 동맹과도 사이가 안 좋고, 미다스와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고, 게다가 리그 선수들은 태현이 어떻게든 한 번 죽었으면 좋겠다고 기도 중이고….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대형 길드 수십 개를 적으로 돌린다고?
김태현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믿었기에 플레이어들은 배짱을 부릴 수 있었다.
“만약 우리 제안을 받고 물러선다면 우리도 네게 편의를 베풀어주겠다. 길드 동맹 상대로 공동전선을 맺을 수도 있다!”
“말은 다 했냐?”
“?”
“아. 말이 아니라 유언이군.”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현은 돌격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
[……]
퍼퍼퍼퍼퍼퍽!
눈부신 연타가 터져 나오고 가장 앞에 있던 플레이어 한 명이 그대로 로그아웃당했다.
1초 컷!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는 깔끔한 폭딜이었다.
“야. 내가 그렇게 손익 계산해가면서 플레이하는 사람이었으면 예전에 길드 동맹이랑 손을 잡았겠지.”
“…….”
확실히 그건 그래!
“난 그냥 개소리를 하는 놈을 보면 패왔어.”
그 말을 끝으로, 태현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미친놈처럼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