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42화
쿵!
문이 열리는 순간 안에서 훅 바람이 몰아치며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어디 침입자 놈들이 여기에 들어오느냐!
[<고대 제국 이탈자>들을 발견했습니다!]
[중앙 대륙과 하늘섬의 연락이 끊겼을 때, 하늘섬의 사람들은 스스로 살아가기로 결정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제국의 전통을 지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들은 영주를 불태우고 쫓아낸 하늘섬의 사람들을 배반자로 여기고, 그들을 도우러 오지 않은 제국 사람들도 배신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뭘 태워?”
상황을 모르는 길드 동맹 랭커들은 당황했다.
영주를 태웠다고 하지 않았냐 방금?
그러나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원한으로 똘똘 뭉친 고대 제국 이탈자들이 공격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고대 제국의 이탈자 기사>가 고대 제국 검술을 사용합니다!]
[당신의 검술 스킬은 상성상 불리합니다! 검술 스킬에 페널티를 받습니다!]
[추가 데미지를…]
[상대의 검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검술 스킬에…]
[……]
퍽!
평타 한 대 맞았는데 HP가 30% 이상 깎이는 위력!
“뭐, 뭐야 이거?!”
“레벨이 장난 아니다! 조심해!”
하늘섬에서 보통 보이는 몬스터들의 레벨은 100, 높아봤자 200 안팎 정도였다.
플레이어들이 많이 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길드 동맹 랭커들도 무의식적으로 적들의 수준을 낮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고대 제국의 이탈자 기사들은 레벨 500을 가볍게 넘는 매콤한 맛을 보여줬다. 방심하고 있던 랭커들은 기겁해서 진형을 갖췄다.
“힐! 힐 줘! 죽겠다!”
“저 자식 묶어! 스턴 걸어!”
“딜러들 뭐하냐! 딜 안 넣어?!”
“이야. 잘 싸우네.”
랭커들이 열심히 스킬들을 연사하는 동안, 태현 일행은 뒤에서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이야~ 길드 동맹 랭커들은 이렇게 사냥하는구나?
“우리보다 확실히 좀 여유가 있다.”
“그야 숫자가 열 명이 넘으니까 당연히 여유가 있지….”
“쟤네가 보통 파티인 거고 우리가 이상하게 플레이한 거야.”
사냥 효율 극단적으로 올리겠다고 파티원 숫자 줄이는 데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는 사이 길드 동맹 랭커들은 기사들의 공격을 힘겹게 받아내 가며 반격에 나섰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상대의 갑옷을 뚫지 못했습니다. 데미지가 50% 감소합니다.]
[무기의 내구도가 감소합니다.]
[상대가 쓴 <기사의 분노>로 인해 이동 속도가 내려갑니다.]
[물리 방어력이 하락…]
‘더럽게 딴딴하네 진짜!’
보통 성기사가 방어력도 높고 치유 스킬도 많아서 끈질기다고 하지만, 레벨 높은 기사도 끈질긴 건 마찬가지였다.
랭커들의 공격을 버텨내며 받아치는 기사의 전투력에 랭커들은 이를 갈았다.
만만하게 봤던 하늘성이 이런 난이도라니!
퍼퍼퍼퍽! 퍼퍼퍼퍽!
결국 랭커들이 덤벼들어 계속 공격을 퍼부어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고대 제국의 이탈자 기사>를 쓰러뜨렸습니다. <고대 제국의 이탈자>들과의 적대도가 오릅니다.]
[<고대 제국의 이탈자> 내 평판이 떨어집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아니…!”
길드 동맹 랭커들은 질색했다.
<고대 제국의 이탈자>와 바로 적대 관계를 쌓다니.
아직 하늘섬에서 어떻게 할지 계획도 세우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적대 관계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건 잘 계산하고 해야 하는 건데….
‘김태현 때문에!’
‘김태현 저놈이 우리를 케인 취급하듯 앞으로 밀어버린 탓이야!’
“뭐야. 너희 <고대 제국의 이탈자>들이랑 적대 관계 됐냐? 그러게 좀 살살 패지.”
“…….”
태현의 말에 길드 동맹 랭커들은 속에서 분노가 치솟는 걸 느꼈다.
저 저 저…!
-침입자를 막아야 한다. 제국의 이름으로!
-침입자를 막아라!
“환장하겠네 진짜!”
랭커들은 이를 갈았다.
간신히 한 놈 두들겨 패서 잡았더니 다시 세 놈 더!
“안 도와줘도 될까요?”
“흠. 남의 사냥에 멋대로 끼어들었다가 뺏었다는 말 듣고 싶지 않아서.”
태현의 상냥한 배려에 랭커들은 두 배로 감격했다.
네가 그딴 소리를 할 놈이냐?!
아무리 봐도 태현은 적대 관계에 엮이고 싶지 않아서 발 빼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그런 걸 따질 시간도 없이, 랭커들은 다시 한번 싸워야 했다.
* * *
-하늘섬에 있던 폐허성의 문이 열렸다!!
그렇게 많은 플레이어들이 올라왔는데, 눈치 못 챌 리가 없었다.
길드 동맹과 태현, 탐험가 파티가 페허가 된 하늘성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다.
-뭐하는 거야! 안 막고! 또 쟤네들이 강탈하는 꼴을 보고 싶냐!
-길드 동맹 놈들이 너무 호위를 많이 데리고 와서 기회를 노리려고….
-기회는 무슨! 쫄았겠지!
-그러는 너는 왜 안 덤볐냐? 김태현이 옆에 지나갔다는데.
-그, 그건 김태현이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먼저 때리기 좀 뭐해서….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해! 지금 그걸로 떠들 때냐? 내버려 두면 저놈들이 하늘섬을 점령할지도 모른다!
-에이… 너무 나간 거 아냐? 지금 김태현도, 길드 동맹도 딱히 하늘섬에는 별 욕심 없는데.
-멍청하기는. 잘 생각해 봐라! 지금 저 둘이 같이 돌아다니는 게 무슨 뜻인지를. 만약 둘이 손잡고 하늘섬을 점령하기라도 하려면 어떻게 될 거 같냐?
-…….
-…….
-설, 설마. 김태현도 이미지가 있는데 길드 동맹하고 손을 잡겠냐?
-맞아. 김태현이 얼마나 이미지 좋은데 뭐하러 중국인들하고….
-중국인이 뭐가 어때서 이 자식아? 죽고 싶냐?
-아차. 본심이. 길드 동맹. 길드 동맹.
-근데 세상에 절대란 건 없잖아. 돈 되고 필요하면 손잡는 거지.
길마들은 잠깐 상상해 보았다.
길드 동맹+김태현의 조합을.
-…….
-와… 진짜 개끔찍한데.
바로 판온 최강!
어마어마한 인원수와 자금에 그걸 이끌 사악한 우두머리까지….
-지금 쳐야 한다니까!
-김태현 잡을 방법이 있을까? 김태현 전적 보면 무조건 빠져나갈 텐데.
-그래. 그걸 노리는 거다.
-?
-김태현을 꼭 잡을 필요가 없어. 김태현이 하늘섬에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게다가 김태현은 몰라도 길드 동맹 놈들은 여럿 죽겠지. 계속 그렇게 당하다 보면 하늘섬은 꺼리게 될 거라고.
-복수를 하지 않을까?
-복수도 상대가 있어야 하지. 이곳저곳에서 다 섞여서 덤비는데 어쩔 건데? 내가 길드 동맹 상황 아는데, 지금 왕국 관리하고 미다스 길드하고 싸우느라 새로운 적 만들 여유 없어. 길드 수십 개 다 잡겠다고 나서지는 못할걸. 예전의 길드 동맹이 아니야.
지금 길드 동맹은 판온 초창기에 그 살벌하던 길드 동맹의 포스가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단일 길드로서는 손꼽히는 수준이었지만….
-김태현은? 김태현은 그냥 복수하려고 할 수도 있잖아.
-…….
-…….
길마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확실히 덩치 큰 길드 동맹과 달리, 태현은 그냥 날렵하게 혼자서 지옥을 보여줄 수 있는 플레이어!
-…김태현이랑 김태현 일행을 안 때리면 어때? 그러면 길드 동맹을 노린 공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너 천재냐!?
* * *
랭커들이 열심히 싸우는 동안 태현 일행은 주변을 확인했다.
이 하늘성에는 대체 뭐가 숨겨져 있나?
[고대 제국 관련 지식이…]
[고대 제국 관련 칭호가…]
[기계공학 스킬이 높습니다!]
[숨겨진 통로를 찾아냅니다.]
[버려진 하늘성의 정보를 얻습니다.]
‘오오.’
랭커들이 앞에서 열심히 피 튀기게 싸우면서 길을 확보해 준 덕분!
덕분에 느긋하고 편안하게 확인 작업이 가능했다.
<폐허가 된 하늘성의 부활-고대 제국 이탈자 퀘스트>
하늘섬의 주민들과 결별한 고대 제국 이탈자들은 망가진 하늘성을 점령한 채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
망가진 하늘성을 다시 부활시켜 원래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만약 이 하늘성을 부활시키는 것을 돕는다면, 고대 제국 이탈자들은 당신에게 매우 감사해하리라.
보상: ?, ???, ???
<하늘성의 제물-고대 제국 하늘성 퀘스트>
고대 제국 관련 지식과 뛰어난 기계공학 스킬을 가진 당신은 버려진 하늘성을 어떻게 부활시킬 수 있을지 파악했다.
하늘성 같은 거대한 요새를 하늘에 띄우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힘이 필요한 법.
고대 제국은 수많은 생명들의 희생으로 하늘성을 굴렸다.
하늘성 안에서 제물을 바친다면 그 생명력이 하늘성을 깨울 것이다!
-현재 바쳐진 생명력 (0/10,000)
[레벨 높은 플레이어를 바칠수록 더 많은 생명력이 바쳐집니다!]
“…….”
태현은 갑자기 뜬 두 개의 퀘스트창 때문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뜻??
[카르바노그가 지금 저 재수 없는 모험가들을 죽이라는 아키서스의 계시일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아키서스가 피와 살육의 신이었나?’
[솔직히 이제 그 분야도 담당해도 될 거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으음. 애들 보는 앞에서 피와 배신의 축제를 벌여도 되나?’
태현은 아주 살짝 고민했다.
쑤닝 조카만 없었어도 좀 더 쉽게 죽였을 것 같은데….
태현이 그런 고민을 하는 것도 모르는 채, 길드 동맹 랭커들은 치열하게 싸웠다.
“헉… 허억… 허억. 오랜만에 목숨 걸고 싸웠다.”
“무슨 최고 난이도 던전 보스 깨는 것도 아니고 뭐 이렇게…!”
“이렇게 난이도 높을 줄 알았겠냐!”
투덜거리는 랭커들의 모습에 케인은 쯧쯧 혀를 찼다.
“쯧쯧. 너희들은 힘든 훈련 없이 순탄하게 판온 해서 그래. 난 힘든 일 많이 겪고 나니까 저 정도 싸움은 이제 달달한 휴식 같다.”
“…나 저거 한 대만 때리면 안 되냐?”
“쉿. 뒤에 김태현 있잖아.”
랭커들은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태현에게 말했다.
“김태현. 지금 일단 정리하기는 했는데, 계속 들어가는 건 좀 힘들어 보인다. 이 던전, 난이도도 높아 보이는 데다가 정보도 없단 말야. 우리가 헤딩팟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
판온의 던전은 위치가 알려지면 대충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
처음 본 플레이어들이 깨면→아무나 들어가는 일반 던전.
실패하면→던전 공략 전문으로 하는 플레이어들이 조금씩 정보 모아가면서 공략 시도하는 미공략 던전.
하늘성은 후자!
게다가 초입부터 이런 적들이 나오는데 괜히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랭커 파티라고 해도 아작 나는 수가 있었다.
이런 성 안에서는 잘못 포위당하면 그대로 두들겨 맞는 것이다.
“조금만 더 싸워보지? 아직 괜찮아 보이는데.”
태현은 고대 제국 이탈자들과 손을 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길드 동맹 애들이 좀 더 들어가면 저쪽에서도 대화 가능한 NPC가 나오지 않을까?
…물론 그건 태현 관점에서의 이야기였고, 길드 동맹 랭커들에게는 죽으라는 소리였다.
“넌 양심 없냐! 네 파티는 진짜 손 하나도 까딱 안 했잖냐!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다고!”
“여기 나오는 기사 놈들 수준이 얼마나 높은데! 더 강해지면 네가 책임질 거냐?”
쿵!
그 순간 뒤의 하늘성 입구가 열리더니 새로운 플레이어들 파티가 들어왔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살벌하게 외쳤다.
“죽여 버려!”
“!!!!!”
태현 일행, 길드 동맹 파티 모두 깜짝 놀랐다.
물론 입구가 열리긴 했다지만, 그들이 먼저 들어왔는데 쫓아와서 공격할 정도라니!
‘보통 놈들이 아니다!’
태현은 직감했다. 알고 덤볐다면 상대 수준도 만만치 않으리라. 게다가 한 번 훑어보니 장비들도 PK 위주 장비 같았다.
“길드 동맹 놈들을 조져라!”
“쑤닝 놈을 밟아버려!”
‘앗. 우리를 노리는 게 아닌가?’
긴장한 것과 달리 습격자들은 태현 일행을 훌쩍 뛰어넘더니 그냥 길드 동맹한테 덤벼들었다.
태현 일행은 당황한 표정으로 시선 교환했다.
-끼어들까?
-아니, 우리랑 별로 원한 없는 것 같은데 구경하자.
-사실 나도 그러고 싶었어!
“악! 악! 이 자식들! 어디 길드 출신이냐! 여기 김태현이 있다는 거 알고 있냐!”
랭커들은 이를 갈며 외쳤다. 참 슬픈 외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