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36화
태현 일행은 하늘섬과 주교들을 무시하고 남는 여유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했다.
몬스터 웨이브로 나온 남은 몬스터들을 마저 처리하고, 태현이 보낸 기사단이 처리하지 못하는 곳에 찾아가서 도와주고….
동시에 칭호 작업들과 스킬 레벨 작업을 했다.
가장 바쁜 건 역시 태현이었다.
기계공학 스킬도 올릴 겸 비행선들도 만들어서 팔아치우고, 도중에 검술, 화술 등 각종 쓸 수 있는 스킬은 닥치는 대로 훈련에 들어갔다.
그 와중에 리그 경기는 리그 경기대로 뛰고!
이제까지 바쁘게 달려 온 팀 KL의 재정비 기간이었다.
물론 일행들은 재정비 기간이라고 하면 ‘뭔 재정비야 쉬질 못했는데 미친놈아!’라고 말했지만 재정비는 재정비였다.
* * *
-진다는 건 무슨 느낌일까?
-그러게. 진다는 게 무슨 느낌일까??
온갖 팀 팬들이 떠드는 1부 리그 게시판.
팀 KL 팬들은 다른 모든 팬들의 공적이었다.
-아오 저것들…!
-얄미워 죽을 거 같아!
-제발 한 번만 져봤으면 좋겠어… 김태현이 한 번만 졌으면… 엉엉….
1부 리그 팀은 둘로 나뉘었다.
팀 KL한테 두들겨 맞은 팀과 두들겨 맞을 팀으로!
오죽하면 이런 말이 있을까.
-팀 KL한테 두 판으로 지면 당연히 예상된 결과고, 세 판으로 지면 실력 있는 팀이고, 네 판으로 지면 리그 최정상급 팀이다.
어떻게든 무승부로 비벼서 다음 판으로 끌고 갔다는 것 자체가 그 팀의 실력을 증명하는 수준!
덕분에 다른 팀 팬들의 원한은 하늘을 찔렀다.
-쟤네 제발 0부 리그로 보내면 안 되냐??
-왜 우리한테 그러시죠? 실력으로 이기시면 되잖아요?
-아오, 미친 한국 놈들…! 밥 먹고 게임만 하냐? 이번에는 어떻게든 한국 팀들 상위권에 없는 꼴 좀 보나 했더니….
-지금 피지컬 보면 한 십 년은 리그 씹어 먹을 거 같은데. 그냥 김태현 데리고 오는 게 더 빠르겠다.
-우리 게임단 돈 많은데 김태현 못 사 오나?
-그냥 게임단째로 인수해버려! 어차피 중소 게임단인데!
1부 리그의 확고한 1, 2위 팀들이 정해지자 그 밑의 경쟁만 피가 튀고 있었다.
상위권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
그리고 그 경쟁은 꼭 상위권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하위권의 경쟁도 나름 치열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더 치열했다.
…하위권 몇 팀은 시즌 이후 2부 리그로 내려가는 것이다!
-야… 이러다가 진짜 <베이징 파이터즈> 2부 리그 가는 거 아냐?
-설, 설마. 명가의 자존심이 있는데.
-진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기억 안 난다는 건 우리 <베이징 파이터즈>에 어울리는 말인데….
└님들 기억력 너무 안 좋은 거 아님?
태현 팀이 지금 리그 연승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면, 베이징 파이터즈는 지금 리그 연패 신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리그 초반에 1위를 노리던 그 기세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저 밑으로 한없이 추락하고 있는 중!
무엇보다 더 절망적인 건 팀 상황이었다.
선수들은 완전히 합이 안 맞지, 코치진들은 분열했지, 팬들은 욕하고 있지, 운영진들은 자기들 탓 아니라고 전 감독하고 싸우고 있지….
아무리 봐도 이번 시즌은 망한 팀의 모습이었다.
답이 없다!
-맞다. 요즘 2부 리그에서 LK 갤럭시 갑자기 잘하더라? 뭐 잘못 먹었냐?
-원래 잠재력은 있는 팀이었잖아. 선수들도 나름 괜찮고.
-잠재력 없는 팀이 어딨냐? 그놈의 잠재력.
-맨날 잠재력만 갖고 있다가 망하지. 선수들이 터질 때 한 번에 쫙 터져야 성적이 나오지, 한 명씩 반짝반짝하면 그게 되겠냐?
-근데 LK 갤럭시 요즘 성적 진짜 괜찮은데?? 1부 리그 올라오겠는데?
-김태현이 LK 갤럭시 도와줬다는데. 가서 빡세게 코칭해 줬다는 말이 있더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셈. 너 게시판에서 사람들이 정리한 김태현 스케줄 못 봤냐? 잠자는 시간도 없더라. 어떻게 도와줘?
-토론토 메이플베어즈도 한 번 도와준 적 있으니까 LK 갤럭시 도와준 것도 이상하진 않은데.
-맞아. 김태현 의외로 그런 거 자주 하더라?
-야. 그러면 혹시 우리 <파리 라이트닝>도 와서 코칭해 주면 안 되냐? 요즘 성적이 좀 아슬아슬한데.
-우리 <상하이 팬더즈>도!
-미친놈들아 1부 경쟁 팀에 어떻게 코치로 가!!
궁지에 몰린 팬들은 이성을 잃고 헛소리를 했다.
상대 팀 선수도 코치로 받아들이는 넓은 그릇!
…은 당연히 될 리 없었다.
태현이 아무리 아량 넘치고 시간 넘쳐도 1부 리그 경쟁팀 성적을 도와줄 리는 없지 않은가!
-LK 갤럭시, 토론토 메이플베어즈가 1부 리그 승격하나?
-승강전 해야지.
1부 리그의 하위권 몇 팀과, 2부 리그의 상위권 몇 팀이 맞붙는 승강전!
패배한 팀은 2부로 내려가는 지옥의 단두대 매치였다. 이 경기만큼 중요한 경기도 없었다.
-우… 우리 팀은 그래도 내려가진 않을 듯.
-우, 우리 팀도.
팬들은 애써 믿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불안한 감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솔직히 2부 리그 상위권 팀들은 1부 리그 팀들과 별 차이가 없었던 것!
선수들도 어차피 다 랭커고, 판온에서 만나면 서로 신나게 치고받는데….
-이게 다인가? LK 갤럭시가 어떻게 김태현 선수를 데리고 갔는지 이유를 진지하게 이야기해 봐야 하지 않겠나?
-?
-??
-아저씨… 혹시 연세가…?
혼자 연령대가 다른 글에 게시판에 있던 사람들은 당황했다.
글 분위기가 혼자 달라!
-아니 그걸 우리가 왜 이야기해요.
-맞아. LK 갤럭시 사장이 돈 줬나 보죠.
-거기가 그렇게 돈 많은 곳이 아니야!
-LK가 그래도 대기업인데 돈이 없다니. 그게 말이 돼요?
-하하. 이상한 아저씨네.
정체불명의 나이 많은 아저씨가 열심히 항의했지만 사람들은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LK 갤럭시니까 뭐 돈이든 이것저것 해서 데리고 왔겠지!
그러나 사정을 아는 나이 많은 아저씨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진짜 인질 잡은 거 아냐?
* * *
“후….”
태현은 고뇌에 찬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에 케인과 최상윤, 정수혁은 당황했다.
왜 저러지?
“야. 쟤 왜 저러냐?”
“케인 네가 스킬 작업을 소홀히 해서가 분명해. 그러니까 좀 열심히 하랬잖아. 왜 자꾸 팔이 노냐?”
“네가 팔 여섯 개 달아봤냐?! 내가 놀려고 노는 게 아니거든?!”
“하늘섬 때문 아니겠습니까? 지금 고민이 많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수혁은 그럴듯한 의견을 내놓았다.
태현 팀이 재정비를 하는 동안 하늘섬 열기는 점점 더 타오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얼마나 가겠어’ 하던 길드들도 ‘어? 어? 야, 이거 위험한데? 길드원들 가지 말라고 해봐’ 하다가 ‘말을 안 듣는다고? …우리도 가서 뭐라고 해놔야겠다. 마계에 갔던 놈들 불러와. 뭐? 퀘스트 중이라고? 당장 안 오면 죽여버린다고 그래!’ 하는 식으로 반응이 바뀌었다.
생각보다 하늘섬이 너무 괜찮았던 것이다.
마계처럼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는 지옥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프리카 대륙처럼 시설 하나 없는 곳도 아니었다.
곳곳에 텅 빈 도시와 성, 마을들이 널려 있었다.
거기에 들어가서 쉬거나 제작을 하면 되니 다른 곳보다 훨씬 수월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텅텅 빈 성들과 도시에는 주인이 없었다.
그걸 본 플레이어들의 눈은 그대로 뒤집혔다.
-저건… 저건 우리 거야!
-아니야! 우리 길드 거야!
먼저 간 사람들이 깃발을 꽂고 그 뒤에 도착한 놈들은 칼을 뽑아 덤비는 추악한 싸움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물론 이미 국왕인 태현에게는 의미 없는 싸움이었다.
-사람들은 왜 저렇게 싸울까? 그냥 대륙에 있는 왕국을 가지면 되는데 말이야.
-…….
-…….
-농담한 거다. 애들아.
-하… 하하하! 그치? 농담이었지?
-진심인 줄 알았잖아!
눈앞에 공짜 영지가 보이니 달려드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영지 좀 굴려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영지는 어느 정도 궤도 올라가기 전까지는 돈 먹는 괴물이라는 것을!
‘게다가 하늘성은 세금 낼 NPC들도 없으니까 플레이어들한테서 받아내야 할 텐데?’
처음으로 영지를 얻은 길드들은 체감하게 되리라.
태현이 얼마나 골드 모으려고 고생고생을 했는지!
“하늘섬 때문에 고민이 된다고? 태현이 별 관심 없다고 했잖아. 지금 왕국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지만 다른 길드들이 거기서 힘을 키우고 영지를 잘 굴린다면 결국 선배님의 위협이 될 겁니다. 길드들이 다 선배님처럼 선량하신 분은 아니잖습니까.”
“…선량? 뭔량?”
“하긴 태현이야 자기 퀘스트만 한다지만 길드는 보통 확장을 하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거기 가서 끼어들 수도 없잖아. 영지 얻어봤자 소화도 하기 힘든데.”
“그렇다면 역시 하늘섬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 역시 이세연의 레벨 300 돌파겠지. 저 녀석이 이상해지는 경우는 보통 이세연이었거든.”
“확실히 그럴듯합니다. 지금 이세연 선수가 무시무시합니다. 고대 거인까지 잡았으니 언데드 군단이 더 강력해졌을 겁니다.”
“게다가 고대 거인이 갖고 있던 보물들을 얻었다는 소문이 파다해. 안 그래도 지금 길드들이 아다만티움 구해서 만들어보려고 한다는데, 이세연이 얻었다면….”
“정말 커다란 문제입니다! 이걸 고민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크윽… 친구가 이런 걸로 고민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있었으니….”
“저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케인은 멀뚱멀뚱 대화를 지켜보았다.
“넌 반성 안 하냐?”
“어? 뭐?”
“…됐다. 어쨌든 태현이한테 가자! 응원해 주는 거야!”
“맞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드려야 합니다!”
셋은 우르르 태현에게 다가갔다.
태현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든 간에 큰 힘이 되어주리라!
“후….”
“선배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도 강해졌습니다!”
“맞아. 네가 그렇게 구박하는 케인도 솔직히 랭커 중에서 그렇게 꿀리지 않는다고.”
“…….”
칭찬을 꼭 그렇게 박하게 해야 해?
할 때 좀 팍팍 해줄 것이지….
“뭔 소리냐?”
“?”
“어… 이세연 선수의 급성장과 다른 길드들의 성장에 걱정하고 있으셨던 거 아니었습니까?”
“아니. 곧 있으면 이다비 생일이라서 선물 고민하고 있었는데.”
“…….”
“…….”
“…….”
셋은 침묵했다. 태현은 오히려 그들을 힐난했다.
“너희는 같은 팀 선수 생일도 몰랐냐?”
“아, 아니… 걔가 말 안 한 걸 어떻게 알아…!”
“하긴 부담된다고 말 안 하긴 했지.”
근데 넌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케인은 그렇게 물어보려고 했다가 참았다.
“흠… 축하를 하면서도 동시에 이다비가 부담을 가지지 않고 기쁘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이라… 어렵군.”
“그런데 김태현. 너 내 생일 때는 뭐 해줬냐?”
케인은 갑자기 생각나서 물었다. 그러자 옆의 둘이 경악했다.
“그렇게 받아놓고 선물을 또 받겠다는 심보입니까?”
“저게 사람이냐 케인이냐?”
“아니 그냥 물어본 거야!! 궁금해서 이 자식들아!”
“너희 집에 상품권 보냈어. 네 동생한테도 따로 보내줬고.”
“…??????”
케인은 깜짝 놀랐다.
난 처음 듣는데?!?!?
“상, 상품권? 언제 상품권을 보냈어? 아니, 부모님은 말 안 해주셨는데?!”
“흠….”
“흐으음….”
“으흠.”
“??”
“부모님들께서 혼자 쓰고 싶으셨나본데….”
“…….”
케인은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생일 전후로 ‘우리 아들이 최고야’ 같은 문자가 날아오긴 했었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