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34화
“이세연 씨. 지금 최초로 300을 넘었으면 정말 잘된 거 아닙니까? 팀 KL을 꺾을 수도 있겠어요!”
“맞아! 팀 KL의 독주를 막아주세요!”
이세연 주변에 있던 랭커들은 주변에서 아부를 하며 이세연을 찬양했다.
방금까지 ‘아 고대 거인 못 잡는다니까요 ㅡㅡ’했던 이들이라 더욱더 아부를 해야 한다!
“각종 칭호에 스탯 보너스까지 받으셨으니 김태현 정도는 충분히 해볼 만할 겁니다!”
“해볼 만한 게 뭐냐! 압도하겠지!”
“압도가 뭐냐! 한 방! 한 방!”
그러는 사이 유성 게임단의 선수 중 하나인 류태수는 하나하나 이름을 적어놓고 있었다.
“뭐하십니까?”
“나중에 김태현 선수한테 제보하려고요.”
“…….”
김철수는 안쓰럽다는 듯이 랭커들을 쳐다보았다.
방송 꺼진 줄 알고 떠들고 있는데 여기 첩자가 있을 거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어, 리그에서 김태현한테 이길 자신은 별로 없는데.”
“에이, 무슨 말씀을!”
“겸손하시기까지!”
“이세연! 이세연! 이세….”
“그만해 좀.”
“…옙.”
이세연이 경고하자 랭커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세연 기분이 더러운 것 같다!
조심하자!
‘이것들이 리그 안 나간다고 속편한 말을 하기는….’
이세연은 혀를 찼다.
리그에서 김태현을 이길 자신이 없다는 건 진심이었다.
애초에 투기장은 네크로맨서한테 매우 불리한 전장!
지금 판온 1부 리그에서 네크로맨서로 버티고 있는 게 이세연밖에 없다는 점에서 답이 나왔다.
네크로맨서는 직업 특성상 필드에 있을 때 계속해서 강해지는 직업.
투기장에서 새로 시작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불리한 점을 감안하고 유성 게임단을 2위로 유지하고 있는 게 이세연의 대단한 점이었지만….
하필이면 만만찮게 사기스러운 새ㄲ… 아니, 선수가 위에 있다는 게 문제였다.
-저건 아다만티움 갑옷이잖아?!
이세연은 어느 순간부터 팀 KL의 갑옷이 미쳐 돌아간다는 걸 깨달았다.
그나마 있는 태현의 약점마저 막아버리는 미친 갑옷!
이세연은 그걸 보고 몇 가지 있었던 계획마저 다 포기하게 되었다. 저건 단기전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장기전으로, 필드에서 잡아야 한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이세연은 프로 중의 프로. 바로 전략을 세웠다.
…바로 ‘2등도 잘한 거야’ 전략이었다.
-언, 언니. 1등 안 노리나요?
-네가 김태현 잡을 방법을 생각해내면 나도 진지하게 노려볼게.
-음… 언니가 고백해서 혼내주는 건 어떨까요?
-풉!!
-가짜 고백으로 정신집중 못 하게 흩뜨려 놓으면… 언니 미모라면 충분히….
-아… 아. 그 소리였구나.
-하지만 이 방법은 언니가 너무 아깝죠? 안 되겠네요. 그런 놈한테는 언니가 너무 아까워요.
-그, 그러네.
실질적으로 리그에서 김태현을 잡을 방법이 없다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판온에서 노려야 했다.
유성 게임단은 리그 중반쯤에서 벌써 이야기를 나누고 전략을 짜고 있었다.
괜히 무리수를 두다가 팀 망가지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더 나은 것이다.
-진짜 승부는 판온에서 가려야지. 비겁하게 투기장에서 자기 유리한 상황에서 싸우고 이기면 안 되는 거야. 너희들, 김태현이 뭐라고 놀리면 이렇게 바로 대답해야 해. 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마.
-어, 주장. 그러면 김태현 선수와 싸울 때 정정당당하게 1:1로 싸우실 겁니까?
-아닌데? 언데드 매복시켰다가 바로 기습하고 시작해야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
초일류 선수는 정신승리도 초일류!
* * *
“허….”
태현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기사를 읽고 있었다.
여러 가지로 충격적이었다.
이세연이 고대 거인 잡은 것도 그렇고 레벨 300 넘은 것도 그렇고….
이제 랭커들이 하나둘씩 레벨 300 넘어서 저 멀리 가버릴 걸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부럽다!
난 이제 200 찍는데….
“대체 어떻게 잡은 거지?”
“아마 도트딜로 잡았겠지.”
이세연 정도면 정말 저주 스킬만 백 개 정도 갖고 있을 것이다.
닥치는 대로 저주를 걸고, 언데드들을 닥치는 대로 동원해서 발을 묶고 시간을 끌고, 계속해서 조금씩 데미지를 누적시켜 가면서 HP를 회복 못 하게 방해하면….
‘그야말로 숟가락 살인마군.’
저런 저주 스킬이 부족한 태현은 할 수 없는, 네크로맨서다운 전법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좀 오싹했다.
‘저거 나 노리고 만든 전법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대(對) 김태현 전법 같은데?!
공략 영상을 보니 고대 거인이 쓰러지는 모습만 나오지 자세한 과정은 잘 묘사하지 않았는데, 그게 더 수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훗날을 대비해 더 써먹으려고 하는 것 같았던 것이다.
“우리 당장 리그 위험한 거 아냐?”
“음? 아니. 투기장에서는 솔직히….”
태현은 그렇게까지 겁을 먹지 않았다.
투기장은 솔직히 태현이 너무 유리했던 것이다.
레벨 300 찍고 각종 스탯 버프 받긴 했다지만 이세연은 힘이 줄어들고 태현은 힘이 올라가는 상태.
그나마 이세연이 쓸 수 있는 방법은 태현에게 저주 걸어서 약화시킨 다음 나머지 선수들끼리 부딪혀서 팀 단위로 밀어붙이는 건데….
아다만티움 갑옷을 전원이 입은 지금 상황에서 그 전략은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팀 KL이 녹기 전에 태현이 상대를 녹이는 게 더 빠를 것이다.
“투기장이 아니라 판온에서 만날 때가 문제인데.”
“둘이 서로 동맹 맺었잖아?”
“그게 퍽이나 오래 가겠다. 그리고 동맹 맺어도 서로 겨룰 수는 있는 법이지.”
“…???”
케인은 뭔 개소린가 싶었다.
뭔 소리야?
동맹 맺었는데 왜 싸우는데?
“야. 내가 이상한 거냐, 쟤가 이상한 거냐?”
“원래라면 네가 이상한 건데 이번은 정말 예외적으로 태현이가 이상한 게 맞아.”
최상윤이 인증해 줬다.
확실히 태현이가 좀 이상할 때가 있긴 있어!
“그래도 이세연 선수가 라이벌인데 저렇게 300 넘었으니 속이 쓰리시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래. 옆에서 좀 격려해 줘야 하나?”
“어, 김태현이 응원이 필요한 놈이었나?”
케인은 의아해했다.
보통 응원은 케인이 많이 필요했던 것 같은데….
“사람인 이상 누구나 약해지게 마련이지. 가서 응원해 주자.”
“뭐라고 응원해 줘야 합니까 근데?”
“이세연보다 네가 낫다고?”
“더 빡칠 것 같은데요….”
일행은 태현의 뒤에 다가섰다. 태현은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
“후, 이세연네 애들은 고대 거인도 잡는데 이것들은….”
“…….”
“…….”
“…….”
일행은 급격하게 찔렸다.
아앗…!
치사하게 비교를…!
“어. 너희 왜 뒤에서 그러고 있냐?”
“…우, 우리 열심히 할게!”
“파이팅!!”
“??”
아키서스 교단 NPC들을 떠올리며 투덜거리고 있던 태현은 의아해했다.
왜 이러지?
* * *
태현이 거절했지만 교단 NPC들은 끈질겼다.
그들은 골짜기를 떠나지 않고 버티면서 계속 요청을 날렸다.
[교단의 주교가 회담을….]
[….]
[….]
[….]
물론 이런 메시지창에 태현이 눈 하나 깜박할 사람이 아니었다.
“야. 계속 오면 소금 뿌려라.”
“소금 아까운데 흙 뿌릴까요?”
“그것참 좋은 아이디어군!”
교단과의 관계가 나쁘니 이런 장점이 있었다.
뭔 짓을 해도 이제 더 나빠질 곳이 없어!
“교단 놈들은 무시하고 다음은 어디로 가볼까….”
태현은 지도를 펴놓고 생각에 들어갔다.
판온은 넓고 미개척지는 많았다. 목표는 가장 효율적인 곳으로 신중하게 정해야 했다.
게다가 태현 같은 영주 플레이어는 직업 퀘스트와 동시에 영지도 관리해야 하는 상황.
하나하나 퀘스트를 고를 때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곤란해질 수 있었다.
“마계 다시 가보는 건?”
“미쳤냐?!?!”
케인이 기겁해서 최상윤을 말렸다. 그 고생을?!
“프리카 대륙의 화산지대 남쪽으로 더 내려갈 수도 있어요. 정글지대라고 하더라고요. 산맥보다 더 심한.”
“거기 산맥도 끔찍했는데 더 심한 정글지대면 무슨 식물이 걸어 다니면서 공격하는 거 아냐? 절대 안 돼!”
“흠. 좋은 생각이 났다.”
“?”
“케인 넌 입 다물고 있어. 다른 사람만 말하자.”
“힝….”
케인이 시무룩해져서 입 다물고 있는 사이 의견을 활발하게 나눴다.
아스비안 제국 쪽의 사막으로 가서 더 동쪽으로 가느냐.
아니면 프리카 대륙의 더 남쪽으로 가느냐 등등.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에는 동의했다.
…마계는 한동안 가지 말자!
안 그래도 저번에 악마 군세 때문에 등골이 서늘했는데….
[교단의 주교가 회담을….]
[교단의 주교가 회담을….]
“아. 이것들 진짜 뭔 스팸 메일도 아니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보내서 괴롭힐까요?”
“…아, 아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무서워!
[교단의 주교가 회담을….]
[지하연합 고블린 사절단이 회담을….]
[교단의 주교가 회담을….]
“?”
거절하던 태현은 멈칫했다. 사이에 뭔가 이상한 게 있었던 것이다.
어라?
“지하연합 고블린 애들이 왜 왔지?”
* * *
“저들은 누굽니까?”
“고블린 사신단이랍니다.”
“거참 안 됐군. 쯧쯧.”
주교들은 새로 온 고블린 사신단을 보며 혀를 찼다.
지금 여기 교황은 성격 더러운 놈이라 다 쫓아내고 안 만나주고 있는 상황!
그들도 지금 밖에 세워놓고 괴롭히고 있는데 고블린들이라고 만나주겠는가.
당연히 문전박대당해야….
“들어오시랍니다.”
고블린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슉 들어가 버렸다.
“???????”
“?????????”
주교들은 눈을 크게 떴다.
아, 아니….
바쁘다며?!?
“펠마스 경! 성하께서 바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니, 뭐… 지금은 안 바쁘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를 먼저 만나야지!”
“그쪽 한번 만났으니 고블린 사신단도 한번 만나야 공정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게 뭔 헛소리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성하를 빨리 불러주시오!”
펠마스는 매우 귀찮고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옆에 있던 성기사 NPC를 부르더니 속삭였다.
“이봐. 펠마른 님 좀 모시고 와라.”
“예!”
“…지금 펠마른 주교를 부른 거요?”
“아닙니다만?”
“펠마른이라고 한 것 같은데…?”
“잘못 들으신 겁니다.”
이 치사한 자식이…!
주교들은 이를 갈았다.
‘펠’ 자 들어가는 놈들은 다 짜증 나!
* * *
“폐하. 이 말을 드릴 수 있어서 저희 고블린들은 진심으로 기쁩니다. 마검, <황제 살해자>가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정체불명의 푸른 금속, 아키라늄을 모아 제작하는 마검 <황제 살해자>
…그걸 얻기 위해 아키서스의 돌연변이들과 싸웠던 생각을 하니 새삼 아득해졌다.
케인은 눈물을 훌쩍였다.
그놈의 돌연변이들 때문에…!
“이 마검은 저희 고블린들이 만들어 낸 아이템 중 가장 흉악하고 위험한 물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닿는 순간 적의 살을 녹이고 뼈를 뒤틀리게 만들며….”
고블린들이 침을 튀겨가며 하는 설명에 최상윤이 중얼거렸다.
“케인처럼 만드나?”
“야…!”
그러나 확실히 그럴듯한 말이었다. 푸른 금속으로 만든 검이니 그런 변이 효과도 당연히 있으리라.
태현은 오랜만에 기대감으로 긴장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좋은 기대감!
“폐하! 저희 고블린들이 마검을 바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허락한다.”
스르륵-
고블린들은 영차영차 들고 온 상자를 내려놓았다. 거대한 관처럼 생긴, 밀폐된 납 상자였다.
그 상자를 열자 또 납 상자가 나왔다. 그 상자를 열자 또….
“…….”
긴장했던 일행들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뭐 이렇게 상자가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