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32화
“그러면 다 같이 열심히 해봅시다.”
“예!!”
LK 갤럭시 선수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기세 좋게 외쳤다.
그들은 몰랐다.
지금 그들이 지옥의 구렁텅이에 발을 디딘 상태라는 것을!
한 걸음 더 디디면 죽는다!
이다비는 마지막으로 그들을 도와주려고 했다.
“그렇지만 LK 갤럭시도 코치진들이 있고 감독님도 있는데 저희와 훈련하면 스케줄이 섞이지 않을까요?”
“앗. 그건 그렇군.”
태현은 이다비의 지적을 듣고 멈칫했다. 확실히 팀의 계획이 있는데 그걸 망치는 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김태현 선수와 같이 훈련할 수 있는데 팀 훈련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취소할 수 있습니다. 마음껏 하시죠.”
“감독님도 대환영이라고 하십니다. 잘 부탁드린다고 전해달라고 하시네요.”
“…….”
이다비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난 이제 몰라!
* * *
“하하하.”
“깔깔깔.”
태현 없는 태현 일행들은 행복하고 느긋하고 푸근한 마음으로 언덕 위에 앉아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따스한 햇볕이 그들 위로 비춰지자 온몸이 충만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밑으로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우르르 지나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못 본 척했다.
“휴식이 이렇게 즐거웠을 줄이야.”
“우리는… 빨리빨리에 익숙해져서 판온의 진정한 즐거움을 놓치고 있었던 거 아닐까?”
“맞습니다. 하하.”
“…….”
유지수만 제정신을 붙잡고 일행들을 미친놈 보듯이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거 찍어놨다가 나중에 선배 드려야지.’
감히 사냥을 쉬다니 이런 못된 사람들!
물론 유지수도 태현의 뒤통수를 겨누려고 했지만 그건 심신미약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케인, 최상윤, 정수혁과 소환수들은 <파워 워리워>표 최상급 팝콘을 먹으며 행복한 휴식을 즐겼다.
“케인. 너 팔 많다고 여러 번 먹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아, 치사하게 그러지 말자.”
“아니 이 자식 팔 여러 개 있는 걸 여기에 쓰네…?”
그러던 사이, 갑자기 태현한테서 귓속말이 날아왔다.
-애들아. 나 판온 접속한다. 사냥 잘 하고 있지?
“…….”
“…….”
툭-
팝콘 상자가 떨어지더니 데굴데굴 굴러갔다. 일행들은 기겁해서 일어섰다.
“뭐야?! 뭐야?! 코치하러 나갔잖아! 왜 들어와! 아직 집에 안 왔는데!”
“지금 그거 따질 때가 아닙니다! 빨리 사냥 들어가야 합니다!”
“맞, 맞아! 빨리 준비해야 해! 준비!”
“이미 들킨 거 아냐?!”
파앗!
“…….”
“…….”
일행들은 일시정지했다. 태현은 이다비와 함께 접속해서 의아해했다.
“너희 뭐하고 있냐?”
“휴… 휴식?”
“흠. 그렇군. 쉬었으니 잘됐네. 바로 시작하면 되니까.”
태현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그러자 남은 일행들과 소환수들은 케인을 물어뜯었다.
“야 휴식하고 있었다고 말하면 어떡해!!”
“저 자식 그거 기준으로 더 달릴 거 아냐!”
“그, 그러면 뭐라고 말해야 했는데!”
“사냥하고 있다가 잠시 이쪽으로 올라왔다고 하든가 잘 했어야지!”
“아니. 그런데 지금 왜 들어온 겁니까? 벌써 일이 끝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접속한 LK 갤럭시 선수들이 날아왔다.
그들은 기대감 가득한 싱싱한 표정으로 외쳤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2부 리그의 선수들인 그들에게, 1부 탑 팀인 팀 KL의 선수들은 눈부시게 빛나는 존재였다.
본받고 싶다!
따라가고 싶다!
그러나 태현 일행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선수들을 쳐다보았다.
“어… 인질 붙잡혀서 끌려왔나?”
“안 오면 방출한다고 협박한 거 아냐?”
“대체 여기에 왜 온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이유!
“훈련하고 싶어서 끼워주려고.”
“…….”
“…….”
태현 일행은 매우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LK 갤럭시 선수들은 당황했다.
왜… 왜 저러시지?
“저, 저희와 함께 훈련하시는 게 싫으신 건가요?”
소문에 케인은 사람이 못되고 이기적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게 설마 진짜….
“아, 아닙니다. 환영이에요. 환영.”
“맞아. 맞아. 같이 하면 우리는 좋죠… 님들은 좋됐….”
“어허. 쉿.”
태현 일행은 재빨리 입단속했다. 케인은 여섯 개의 팔로 환영했다.
“다 같이 열심히 합시다!”
“대신 도중 포기는 없습니다. 포기 안 하실 거죠?”
최상윤의 말에 선수들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저희가 실력은 좀 부족하더라도 의지는 확실합니다.”
“그건 믿으셔도 됩니다!”
“…….”
태현 일행은 미소 지었다. 이다비는 그걸 보고 생각했다.
‘저건 태현 님이 자주 짓는 미소 같은데…?’
* * *
1시간 경과.
-정말 대단합니다, 김태현 선수!
-1부에서 뛴다는 게 이런 플레이를 한다는 거군요!
-저희가 했던 파티 플레이는 뭐가 문제였는지 알겠습니다!
-팀 KL 선수들도 대단합니다!
2시간 경과.
-헉헉, 김태현 선수, 이렇게 힘들 때도 쉬지 않고 뛰는 게, 훈련의 비결인가요?
-HP가 10% 밑인데, 헉헉, 회복 안 해도 되나요? 헉헉.
-헉헉, 이 상태에서 회복 안 하고 공격 흘려내면서 버티는 게 실력이라고요? 헉헉. 아니 그건 좀.
3시간 경과.
-헉헉헉헉….
-헉헉헉헉….
4시간 경과.
-…….
-…….
“쟤네 왜 말이 없어졌지? 무서운데?”
“저러다가 우리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거 아냐?”
태현 일행은 수군거렸다.
처음에는 그래도 이것저것 말하며 해맑게 말을 걸어오던 선수들이 갑자기 조용해진 것이다.
무서워!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정신 나간 놈처럼 몬스터만 미친 듯이 몰아대서 잡고 있었다.
“포위해!”
“우리 인원이 20명이 안 되는데 뭘 어떻게 포위해?!”
“실력으로 커버해. 가라, 케인! 반대쪽을 가서 막아! 뚫리면 안 된다!”
“*!*^&!”
케인은 울며불며 달려 나갔다.
대충 몬스터가 수백 마리 정도 달려오는 것 같은데 혼자서 포위하란 게 말이야 개소리야?!
그러나 언제나 하라면 하는 게 케인이었다. 케인은 최대한 몸의 면적을 늘린 다음 닥치는 대로 스킬을 사용해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노예의 도발, 시선 흡수, 증오 적립!
“야! 이 못생긴 놈들아! 그냥 가지 말고 덤벼라!”
다른 건 몰라도 케인은 확실히 남을 빡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숙련된 스킬 사용과 함께하자 몬스터들의 어그로가 한몸에 모였다.
“흐으읍!”
케인은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전력으로 방패를 내세웠다.
아무리 스탯, 레벨이 높다고 하더라도 수백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면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대, 대단하다!”
반쯤 혼이 나가 있던 LK 갤럭시 선수들도 그 모습에 눈이 번쩍 떠졌다.
컨트롤도 컨트롤이지만 그 자신감이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다.
저것이 초일류 선수의 자신감인가?
저 사이에 달려가도 죽지 않을 거란….
“으헉… 김태현… 살려… 푸억, 크억!”
* * *
“정말많은걸배웠습니다스킬과다음스킬을연계시킬때망설이던버릇을고칠수있었습니다.”
“오늘배운교훈은절대잊지않겠습니다.”
LK 갤럭시 선수들은 숨도 쉬지 않고 재빠르게 말했다.
마치 천천히 말하면 다시 태현한테 붙잡힐 것 같은 두려움!
태현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저런. 그렇게 많이 봐주지도 못했는데. 좀 더 같이 하시죠? 안 좋은 습관을 없애고 깔끔하게 플레이하려면….”
“김태현 선수 파이팅! 팀 KL 파이팅!”
후다닥!
선수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다. 그중 넘어진 선수는 일어서지도 않은 채 네 발로 기어서 달려갔다.
남은 태현 일행들은 그 뒷모습을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너희는 좋겠다! 캡슐 밖으로 나가면 김태현 안 만나도 되니까!
우리는 캡슐 밖으로 나가도 김태현 만나는데!
[<몬스터 웨이브>의 1차 습격이 종료되었습니다!]
[대륙을 위해 싸운 모험가들에게 <영광의 증표> 버프가 추가됩니다!]
[칭호, <몬스터 웨이브의 영웅>…]
[……]
[……]
[……]
[<몬스터 웨이브> 퀘스트에 참가한 공적치 포인트에 따라 경험치가 주어집니다!]
정신없이 몬스터들을 잡던 도중 갑작스럽게 뜬 메시지창!
정말 미친놈들처럼 몬스터를 잡던 태현 일행에게 어마어마한 경험치가 들어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바로 나오는 레벨 업에 모두가 기쁨의 탄성을 터뜨렸다.
…태현 빼고!
“레벨 업 했다! 와, 진짜 미친ㄴ… 아니, 열심히 사냥한 보람이 있어! 김태현, 너는 레벨 몇 올랐냐?”
“0.”
“…….”
“…….”
갑자기 어색해지는 분위기!
태현은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레벨 업하려고 사냥한 게 아니라 스킬 경험치 올리고 합 맞추려고 사냥한 거니까. 왕국도 관리해야 했고.”
“헉. 나 레벨 또 올랐다. 단독으로 뛰었다고 보너스로 경험치….”
“조용히 해 이 눈치 없는 놈아!”
최상윤은 케인의 뒤통수를 빠르게 후려갈겼다.
이 자식이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태현이 ‘그래 나 레벨업할 때까지 사냥하자’라고 말하면 일행 중 누구 한 명 정말 죽을 때까지 못 빠져나갈 수 있었다.
“걱정 마라. 애들아. 나도 퀘스트가 있는데 이 몬스터 사냥에만 몰두할 생각 없으니까. 몬스터 웨이브가 끝났으면 왕국 상황도 좀 괜찮아질 거고, 우리도 우리 퀘스트를 깰 수 있겠지.”
“휴….”
“드디어 선배님이 정신을 차린 것 같습니다.”
“진짜 뒤에서 공격해야 하나 고민했잖아.”
[<몬스터 웨이브>가 더욱더 강해집니다!]
[몬스터들 사이에서 몬스터들의 우두머리들이 나타납니다!]
“…….”
“…….”
일행들은 정색했다.
야…!
장난해 지금?!?!
여기서 보스 몬스터들까지 추가된다니. 안 그래도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
[몬스터들이 많은 곳에서는 우두머리들이 더 강하게, 더 많이 나타납니다!]
[아탈리 왕국은 현재 몬스터들의 숫자가 적습니다. 몬스터들이 버프를 받지 못합니다.]
“…!!”
“살, 살았다!”
일행은 무심코 그렇게 외쳤다.
정말 열심히 일한 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솔직히 레벨 업한 것보다 더 기뻤다.
“으흑흑… 으흑흑….”
“케인 너 우냐?”
“안, 안 울어! 눈에 먼지가 들어갔을 뿐이야!”
[카르바노그가 감탄합니다! 더 강해질 몬스터들을 대비해 열심히 싸운 화신에 감탄합니다!]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뭐….’
몬스터들 중에 몇몇 놈들이 보스 몬스터로 진화한다는 건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사냥이 안 되어 있어서 많이 몰려 있는 곳은 더더욱 위험하리라.
초기 대응에 나선 아탈리 왕국은 멋모르는 사이 완벽한 대응을 한 셈이 됐다.
“흠. 다행이긴 한데 좀 아쉽기도 하군. 스킬 경험치 작업하기에는 참 좋았는데….”
태현의 말에 케인이 괴성을 터뜨렸다. 태현은 순간 자기가 아키서스의 키메라들을 데리고 온 줄 알았다.
와 진짜 똑같이 울부짖는데?
“한다는 게 아니잖아 케인. 진정해.”
[<아키서스의 대신전>에 파이토스 교단의 사신이 도착했습니다!]
[<아키서스의 대신전>에 타이란 교단의 사신이…]
[<아키서스의 대신전>에 야타 교단의…]
[……]
[……]
“???”
갑자기 날아오는 추가 메시지창들!
별로 사이좋은 편이 아니라서 한동안 연락도 안 하고 지냈던 교단들에서 사신이 왔다는 소식에,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원래 사이 안 좋은 놈이 찾아오면 괜히 찜찜하게 마련.
[카르바노그가 하늘성에 있는 교단 영웅들 괜찮냐고 묻습니다.]
“…!!!”
태현은 눈을 크게 떴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