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31화
태현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선을 넘으면 화를 내게 마련.
<베이징 파이터즈>는 선을 넘었다.
분위기가 개판이고 희생양이 필요하다지만, 감독도 사람인데 계속 욕을 먹으면 가만히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아무리 <베이징 파이터즈>가 대기업이고, 사베트는 일개 개인이라지만 사베트도 예전부터 커리어가 있는 감독이었다.
-<베이징 파이터즈> 전 감독 사베트 발표, “나는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대부분의 권한이 몰수되어 있던 상황”….
-사베트 “나를 희생양으로 모는 건 알겠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전 감독 사베트, <베이징 파이터즈> 내의 파벌싸움과 알력다툼에 대해 고발….
“이야… 저쪽도 장난 아니겠군.”
“저기 팬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맞아. 부모님이 저기 팬 아니라서 다행이야.”
“? 팀 KL 팬 아니세요?”
“우리 팀 너무 압도적으로 이긴다고 2부 리그 경기 보시더라….”
“…….”
태현과 이다비의 느긋한 반응과 달리, <베이징 파이터즈> 팬과 중국 쪽 반응은 그야말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감독이 잘했느니 못했느니, <베이징 파이터즈>가 잘했느니 못했느니….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에 저런 싸움까지 터지면 더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베이징 파이터즈>가 중위권은 버티고 있지? 설마 리그 끝나고 2부로 내려가진 않겠지.”
“에이. 설마요. 그나저나 이 싸움은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서로에게 손해만 남는 싸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감독이 이렇게 까발리면 <베이징 파이터즈>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지. 보아하니 신빙성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전술을 썼었나?”
위에서 자잘하게 간섭한 것부터 시작해서, 윗선이 지시하는 선수를 1군으로 보내는 것, 자신이 데리고 온 코치를 자른 것, 경기 전술을 멋대로 바꾼 것….
전부 다 터뜨리고 나자 <베이징 파이터즈> 팬들은 분노로 2차 폭발을 하고 있었다.
-단장 새끼 나와!
-저런 외국인 놈 말 믿는 거냐?
-외국인 놈이고 뭐고 지금 그게 중요해? 단장 새끼 때문에 안 질 경기 졌잖아!
-에이.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자. 솔직히 김태현한테는 졌을 텐데.
-너 이 자식 어느 나라 사람이야?!
“베이징 파이터즈 쪽이 타격을 입으면 사베트 감독한테는 좋은 일 아닌가요?”
“아니. 아무래도 감독한테도 피해가 갈 수밖에 없지. 저런 식으로 게임단하고 마찰 크게 일으키고 나온 감독은 꺼리게 마련이니까. 실력도 실력이지만 저런 잡음 생기는 순간 힘들어진다고.”
태현의 말에 이다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당사자한테 잘못이 없더라도, 대기업의 윗선에서는 실력 좋고 잡음 없는 인재를 원하지 굳이 저런 흠집 있는 인재를 찾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도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실력 있는 사람이니까 대형 게임단은 못 가더라도 부르는 곳이 없지는 않겠지.”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 * *
“???”
LK 갤럭시 사옥에 도착한 태현은 당황했다. 저번에 자선대회에서 본 얼굴이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이군. 김태현 선수.”
‘딱히 오랜만은 아닌 것 같은데…?’
태현은 의아했지만 일단 내민 손을 잡고 악수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하하하. 그래. 저번 경기는 잘 봤네. 오늘 이렇게 LK 갤럭시 코치를 위해 와줘서 참 고마워요. 음. 한국 E스포츠를 책임지느라 바쁠 텐데 말이야.”
“아. 예.”
“그러고 보니 유 회장님과도 각별한 사이라는데, 맞나?”
“친분이 있습니다.”
“오오… 나도 유 회장님과는 예전부터 친하게 형님, 동생 하던 사이지.”
유 회장이 들었다면 ‘????’ 했을 소리였다.
우리가 그렇게 친했었나?
유성 그룹에게 언제나 밀리는 LK 그룹이었기에, LK 전자의 사장인 윤 사장은 유 회장을 볼 때마다 내심 질투했던 것이다.
“그러셨습니까?”
“유 회장님과 친하다고 하니 더욱더 남 같지 않군. 편하게 김 군이라고 불러도 되겠나?”
“아… 예. 뭐 그러시죠.”
유 회장은 이놈저놈 하는데 김 군 정도면 매우 무난한 호칭이었다.
‘그런데 이름 한 번도 못 들어본 거 같은데?’
태현은 의아해했다.
이제 판온에 미친 골수 판온 유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유 회장은, 친구가 있으면 어떻게든 물귀신처럼 친구까지 끌어들여서 판온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윤 사장은 딱히 유 회장 파티에서 본 기억이 없었던 것이다.
‘하긴, 판온 싫어하는 친구도 있을 수 있겠지.’
“하하하. 김 군. 후후후….”
“???”
이 사람 눈빛이 왜 이렇게 수상쩍지?
구체적으로 비교하자면 무언가 꿍꿍이를 품고 있는 케인 같은 눈빛이었다.
* * *
“요즘 별일 없나?”
“예. 회장님께서 관심 가지실 만한 일은… 아. 이건 정말 사소한 일입니다만.”
“그런 거라면 굳이 말하지 말게.”
“판온 관련 일이라서….”
“그러면 말해야지 뭐가 사소하단 거야?”
유 회장이 노려보자 비서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LK 갤럭시 일입니다만, 갑자기 모기업에서 투자를 좀 하는 모양입니다.”
“그래? 무슨 생각이지? 그놈들, E스포츠에는 아무 관심도 없지 않았었나?”
유 회장은 의아해했다.
몇 년 전이었다면 유 회장도 ‘E스포츠에 왜 돈을 쓰지?’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E스포츠에 돈을 안 쓸 거면 대체 어디에 쓰지??’로 바뀐 상태!
“유성 게임단의 흥행을 보고 생각이 바뀐 거 아닐까요?”
“그럴 수는… 있겠군.”
처음에는 그룹 내에서도 ‘왜 갑자기 게임단을 부활시키지?’, ‘뭐 잘못 드셨나?’라고 말이 나왔던 유성 게임단이었지만, 그런 말들은 싹 사라진 상태였다.
가장 성공적인 홍보 사례 1위!
E스포츠 디지털 마케팅 1위!
해외 기업 이미지 홍보 사례 1위!
이 모든 게 유성 게임단이 얻어낸 성적이었다.
북미나 유럽 쪽에서 유성 그룹을 팍팍 홍보하고 있는 유성 게임단은 그룹 내의 효자였다.
-역시 회장님이시다. 회장님께서는 선견지명이 있으시다.
-어떤 건방진 놈이 감히 회장님이 판온에 취미들이신 탓에 유성 게임단을 만들었다고 루머를 퍼뜨렸는데, 그럴 리가 없지! 회장님이 어떤 분이신데, 암!
오죽하면 예전에 E스포츠에서 손 빼고 물러섰던 대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고 2부 리그를 기웃거리고 있을까!
그러나 유 회장은 코웃음을 쳤다.
“LK 갤럭시는 2부 리그 아닌가? 1부나 올라오고 그런 소리를 할 것이지.”
거 만!
하지만 유 회장은 거만할 자격이 충분했다.
유성 게임단은 일인지상 만인지하, 확실하게 2위를 굳히고 있는 팀이었던 것이다.
1부 리그에서 2위 확정이면 거만해도 된다 솔직히!
“이번 리그가 끝나고 다음 리그에서 1부 승격을 노리는 모양입니다.”
“열심히 해보라고 전해주게. 하지만 그 친구는 한 가지를 놓치고 있어.”
“?”
“E스포츠 사업은 돈만 보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 진심 어린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 해! 돈만 보고 하면 또 저번처럼 밑바닥을 찍게 될 거야.”
유 회장은 윤 사장을 비웃었다.
관심도 없으면서 돈만 보고 뛰어들었다가는 또 쓴맛을 보게 되리라!
‘유성 게임단이 그 밑에 있었습니다 회장님….’
비서는 옛날 일을 떠올렸지만 굳이 말로 꺼내진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투자를 한다고 하지? 별로 기대는 안 되지만 궁금하긴 하군.”
“김태현 선수를 코치로….”
“콜록, 콜록, 콜록!”
유 회장은 그 말에 듣고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아니 대체 무슨 방법으로?!
‘인질극이라도 한 건가?!’
* * *
“사, 사장님이 대체 여기 왜 계신 겁니까?”
“우리가 욕한 거 들킨 거 아냐? 이 자식… 네가 보고했지?”
“선배, 제가 미쳤습니까?! 제가 그걸 보고하게? 다 같이 잘리거든요?”
LK 갤럭시 운영팀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태현이 코칭하러 온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1시간 전에 윤 사장이 오더니 친한 척을 하고서는 ‘김태현 선수 언제 오나?’, ‘곧 온다고?’, ‘허허 그냥 가기도 뭐하고 얼굴 좀 보고 가야겠네 ㅎㅎ 부담 가지지 말게’이러고 자리를 잡고 앉아버린 것이다.
물론 모기업 실세이자 그룹 후계자인 사장이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데 ‘아 예 저희는 저희 일 하겠습니다 ㅎㅎ’ 할 만큼 간 큰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장님. 이번 분기 광고 실적입니다.”
“나중에 주게.”
“사장님. 게임단 개선안….”
“나중에 주게.”
“사장님. 저번 경기 비공개 하이라이트 영상인데 혹시 보시겠습니까?”
“야, 인마. 넌 그걸 왜 드려? 그런 걸 관심 가지시겠냐?”
“죄, 죄송….”
“그건 못 봤는데 지금 보도록 하지.”
“!??!”
뒤에서 게임단 사람들과 사장 측 사람들이 시트콤 찍고 있는 동안, 태현은 선수들을 불러서 하나씩 지적해 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쪽의 문제점은 이 스킬과 다음 스킬을 연계시킬 때 자꾸 망설이느라 한 타임 늦는 건데, 이건 연습이 부족해서 자신이 없어서인 것 같습니다. 실전에서는 잘 안 쓰는 연계라지만 이렇게 늦어서는 의미가 없지요. 꾸준히 연습량을 늘리십시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쪽은 보면… 음, 장비 스탯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장비 스탯이 PVP랑 안 맞는 것 같은데, 아무리 힘든 퀘스트 깨고 얻은 귀한 장비라지만 안 맞는 장비를 입을 필요는 없습니다. PVP용 장비를 따로 맞춰서 입으세요. 그쪽은 지금 물리방어력 위주로 맞춰 입는 게 낫겠군요. 마법방어력은 크게 따질 필요 없습니다. 2부 리그 경기 보니까 마법방어력보다는 물리방어력이 더 필요할 테니까.”
태현의 물 흐르듯 유려하게 흐르는 말솜씨는 듣고 있는 사람들을 홀리는 능력이 있었다.
별 것 없는 사람이 말했어도 흔들렸을 텐데 하물며 말하는 사람이 태현이라니!
태현의 이름값은 어마어마한 권위가 있었다. 태현이 ‘여러분 대회에서 우승하려면 집안일 아무것도 안 해도 다 해주는 단장 있는 팀에 들어가십시오’라고 농담해도 ‘헉 진짜요?’라고 진지하게 받을 정도로!
옆에 있던 전력분석팀 코치들도 와서 하나씩 다 받아 적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보다 몇 배는 날카롭고 정확한 분석!
-그런데 김태현 선수가 이렇게 와서 말하고 가면 우리 욕먹는 거 아닙니까? 돈 받고 뭐하냐고?
-에이. 단장님도 양심이 있지, 우리 월급에 그럴 능력까지 바라시냐. 우리는 딱 우리 월급만큼만 일하고 있는 건데.
그나마 김태현 선수라서 다행이야!
양심이 있다면 비교하진 않으시겠지!
태현은 한 명 한 명 다 짚어주고 긴 설명을 끝냈다.
“질문 있으십니까?”
“어, 김태현 선수.”
“예. 뭡니까?”
“저희는 그… 지옥 훈련 같은 거 안 합니까?”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거 한 적 없습니다만?”
“어, 팀 KL 영상 보니까… 그래서 그런 걸 하나 싶어서 각오하고 있었는데요.”
“아.”
태현은 이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깨달았다.
케인 데리고 한 몰이사냥 영상을 본 모양이구나!
“그건 음… 남의 팀 선수들한테 시킬 게 아니라서.”
“아닙니다! 저희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희 모두 실력만 좋아질 수 있다면 얼마나 힘든 훈련이든 각오하고 있습니다!”
LK 갤럭시 선수들은 기세 좋게 외쳤다.
그들은 진지하게 좋은 성적을 내고 싶어 했고 팬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 했다.
1부 리그로 가고야 말겠다!
물론 그건 그거였고, 훈련의 사정을 모르는 건 모르는 거였다. 이다비가 당황해서 말리려고 했다.
“여러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
“아니야. 이다비. 저렇게 하고 싶다는데 나도 도와줘야겠지. 도와주러 왔는데.”
“아니 태현 님…!”
게시판에 ‘팀 KL의 끔찍한 훈련 상황을 고발합니다’ 같은 글 올라오면 어쩌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