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30화
어쨌든 사냥에 참가하게 된 플레이어들은 매우 행복해했다.
그 김태현과 팀 KL 선수들이 있는 자리에서 같이 싸우게 되다니!
이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우아아아아! 우어어어어!”
“쓸어버리고 돌진해! 멈추지 마! 그거 두들겨 맞는다고 멈추면 케인 넌 쌀이 아까운 놈이다! 달려! 뚫어! 진형을 무너뜨려! 그래야 딜이 더 들어가지!”
“…….”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모습이 좀 많이 달랐지만….
원래 콩깍지란 게 한 번 쓰이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
플레이어들 눈에 팀 KL의 사냥은 매우 열정적이고 격렬한 사냥으로 보였다.
아, 저게 프로구나!
프로는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열정으로 사냥을 하나 봐!
“공격 준비! 버프 걸어줘! 마법 준비됐지? 가자!”
“와! 너무 신나!”
“에잇! 죽어라!”
플레이어들은 내려와서 무리에 떨어진 몬스터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팀 KL이 중앙을 관통하면서 개박살을 낸 덕분에 사기와 HP가 대폭 내려간 몬스터들이었다. 사냥은 매우 쉬웠다.
모인 플레이어들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며 까르르 웃었다.
“게맛살 님 정말 잘 쏘시는데요? 이렇게 잘 쏘실 줄은 몰랐어요.”
“어휴. 뭘요. 잘펴진바지 님이 더 활약하셨죠. 여기 있는 분들에게 다 버프를 걸어주셨는데요.”
“잭슨 님도 정말 대단했습니다.”
짝짝짝!
박수를 치며 서로 축하해 주는 플레이어들!
레벨은 100도 안 되는 그들이었지만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아, 이것이 판온의 즐거움인가?
“비켜! 비켜! 비켜! 안 비키면 같이 치워버린다!”
“케인, 무작정 달리지 말고 앞에 뭐 있는지 다 확인하면서 달려야지! 탱커가 아군 공격하면 탱커 실격이다! 아군 확인하면서 달려!”
“으아아아! 으아아아악!”
그리고 그 옆에서는 지옥도가 벌어지고 있었다.
팀 KL의 지옥!
이, 이것이 판온의 무서움…?
플레이어들은 살벌한 팀 KL의 사냥에 경악했다.
“저 정도는 해야 프로를 할 수 있는 건가 봐!”
“지금 ‘살려줘!’라고 하지 않았나요?”
“에이. 잘못 들은 거겠지. 프로가 그런 소리를 하겠어?”
“아니, 분명히 ‘우릴 구해줘!’라고 했던 거 같은데….”
* * *
-지금 팀 KL 자갈 산맥에 있음! 끼고 싶은 사람들 오세요!
-근데 진짜 아무도 안 데리고 감? 그게 말이 되나? 몬스터들이 얼마나 많은데….
-진짜 딱 팀 KL에 궁수 한 명만 더 데리고 파티하더라.
-열 명도 안 된다고?! 너무 적은 거 아냐? 남들은 지금 수십 명은 기본에 병사들 고용하면 백 명은 그냥 넘기던데.
-그 인원으로 사냥이 되냐?
-영상 한 번 봐봐. 진짜 무시무시하게 하더라.
-지금 김태현은 갖고 있는 부하들 다 왕국 뺑뺑이 돌리고 있음. 게시판 가면 현황 지도 정리되어 있다.
-난 포병대 쪽에서 퀘스트 깨는 중.
-젠장. 다른 길드 놈들은 편하게 길막하고 몰이사냥이나 하고 있는데… 나도 아탈리 왕국에서 시작할걸. 아오.
-그것도 물 좋은 곳에서만 하고 있지 다른 곳은 하지도 않음. 완전히 개판이야.
-레벨 낮은 플레이어들은 뭐하는데?
-수십 명이 뭉쳐서 나가든가 아니면 도시 안에 있어야지. 제작 직업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안 되겠다. 쌓아놓은 거 날리더라도 아탈리 왕국 가야겠다.
-뭐? 진짜 가게?
-지금 이게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데 언제까지 여기 있으려고? 차라리 새 도시에서 새 시작함.
-나도 간다. 여긴 답이 없네.
게시판 곳곳에서 불만을 터뜨리던 플레이어들은 하나둘씩 이주를 시작했다.
에랑스 왕국이나 오스턴 왕국뿐만 아니라 다른 대륙의 플레이어들도 이주!
한 번 도시에 자리 잡은 플레이어들이 도시를 바꾸는 건 정말 커다란 일이었다.
보통 어지간해서는 바꾸지 않는 것이다.
도시에서 쌓은 친밀도, NPC 관계, 각종 보너스 등을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일!
그렇기에 길드들도 ‘에이 설마 이거 가지고 이주를 하겠어?’라고 생각하고 여유를 부리고 있었지만….
원래 한 번 유행이 불면 그 여파는 매서웠다.
[현재 도시를 거점으로 삼은 플레이어의 숫자가 10% 감소했습니다!]
[영지에 <쇠락하는 영지> 디버프가…]
[……]
[……]
-뭐야?!?!
-대, 대체 무슨 일이…?!
* * *
“잘 갔다 와!”
“잘 갔다 와!!!”
“흠….”
태현은 빤히 쳐다보았다.
팀원들의 반응이 영 꺼림칙했던 것이다.
“너희들 한창 기초 실력이 다져지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떠나려고 하니 또 마음이….”
“아니야! 우리끼리 열심히 할 수 있어!”
“맞아! 없는 동안 열심히 할게!”
이러다가는 기초 실력이 다져지기 전에 그냥 다져지겠다!
케인과 최상윤은 두 손을 들고 태현을 배웅했다.
제발 좀 쉬어라 좀!
태현이 나가는 건 하늘이 무너지거나, 불치병에 걸려서가 아니었다.
저번에 말한 LK 갤럭시의 일일 코칭을 맡기 위해서였다.
-아니, 김태현이 제안을 받아들였는데요?!
-뭐?! 진짜 받아들였다고?! 안 받을 줄 알았는데?!
-…자네들 이리 와보게.
-아, 아니. 단장님. 제가 꼭 그런 뜻으로 한 소리가 아니라… 아니… 솔직히 단장님도 올 거라고 생각 안 하셨잖습니까!
-난 믿었네! 믿음이 기적을 만드는 거야!
-믿음만으로 되는 거면 저희는 벌써 1부 갔….
-뭐라고 했나!
-자. 자. 진정하세요. 단장님. 다 좋은 일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요즘 좋은 일만 겹치네요. 본사에서도 갑자기 지원을 해주고.
-그러게 말이야. 뭘 잘못 먹었나?
-사장님께서 관심 가지신 거 아닐까?
-관심은 무슨… 우리 실적 낸 거 보고 생색내려고 그러는 거겠지. 야. 기대하지 마라. 여기 E스포츠 쪽 지원 안 해준 게 몇 년이다. 이제 와서 달라지겠냐.
-에이, 팀장님 왜 그러십니까. 좋은 날인데. 어쨌든 다른 건 몰라도 김태현이 오는 건 맞잖습니까.
-그… 그건 그래.
게임단에서 가장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사람도 ‘뭐? 김태현이 온다고?’ 하고 솔깃해했다.
태현의 이름에는 그만한 값이 있었던 것이다.
-다 같이 으쌰으쌰 해보죠! 팀장님. 저번처럼 분위기 깨시면 안 됩니다.
-으쌰고 나발이고 게임단 망한 것 같다고 한 거?
-아. 좀 하지 말라니깐요. 김태현 선수가 그런 말 들으면 얼마나 기분 상하겠어요. 귀한 시간 쪼개서 들으러 온 건데.
-크흠. 알겠어. 입조심할게.
* * *
“그런데 태현 님. 저까지 같이 갈 필요가 있었나요?”
“두 가지 이유가 있지.”
“?”
“일단 첫 번째로, 나 혼자 설명하는 것보다는 나하고 합이 잘 맞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게 설명하기 편하거든. LK 갤럭시 선수들은 내가 뭘 하려고 해도 모를 테니까… 그리고 이다비 너도 보는 눈 좋잖아.”
“과, 과찬이세요.”
“아니… 너 보는 눈 좋은 거 맞아.”
선수를 보는 순간 그 선수의 직업, 스킬, 연봉까지 말하는 능력은 아무나 갖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으면 네가 말해줄 수 있겠지.”
“저번 <토론토 메이플베어즈>는 혼자서 잘 하셨잖아요?”
“아… 걔네는 솔직히….”
“?”
“그렇게까지 활약할 줄 모르고 그냥 편한 마음으로 했지. 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망하면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어.”
“…….”
이다비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절대 밖에 알려지면 안 되겠다!
“근데 걔네 어떻게 잘 나가는 거지? 원래 리그에서 잘 나가는 팀은 균형이 잘 잡힌 팀 아닌가?”
“그걸 저한테 물으시면….”
가르친 태현이 모르면 누가 알아!
<토론토 메이플베어즈>의 질주는 무서웠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건 <토론토 메이플베어즈>의 팀 컬러였다.
닥공!
유리할 때도 공격, 불리할 때도 공격, 무조건 공격만 하는 화끈한 팀 컬러!
태현 이전에는 미완성 느낌이 강해서 자주 무너졌지만, 태현 이후에는 뭘 잘못 먹었는지 끝까지 집요하게 공격해 이기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게 질주의 원인이 된 것이다.
성적도 좋은 데다가 팀 컬러까지 확실하니 인기가 나쁠 수가 없다!
“거 참. 세상일은 신기하단 말이야….”
“제가 더 신기한데요. 아. 그리고 태현 님. 상대가 필요하면 케인 씨가 더 낫지 않나요?”
“별로? 케인하고 합이야 잘 맞는데 그건 게임 내에서 싸울 때 이야기고… 설명할 때는 별로 도움 안 될걸. 거기에 케인 같은 선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보는 눈이….”
“이다비.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어. 케인은… 보는 눈이 없어!”
“!”
100% 단호하게 하는 말!
“너 저번에 내가 새로운 전술 생각해 보라고 했을 때 걔가 뭐 냈는지 알지?”
“…알죠….”
팀의 전략을 위해 새 전술을 생각해 보라고 하자, 케인은 기가 막힌 전술을 생각해냈다.
-탱커 다섯 명에 딜러 한 명을 넣는 거야! 딜러는 딜만 넣으면 되는 거지!
-…케인. 인원을 합해봐라.
-다섯 명에 한 명이면… 앗.
-…한 명은 어떻게 넣으려고?
“걔는 그냥 그 시간에 칭호 작업하고 스킬 레벨 올리는 게 나아. 남 코칭할 때 굳이 있을 필요 없어.”
“…넵.”
이다비도 반박할 수가 없었다.
“어. 두 번째 이유는요?”
“내가 두 가지라고 했었나? 착각했네. 한 가지였어.”
“???”
이다비는 의아했지만 태현이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했다.
‘기운이 나는 것 같아서 다행이군.’
저번에 퀴즈에서 어처구니없는 케인 오답을 내고 나서, 이다비는 유난히 기운 없어 하는 것 같았다.
판온에서 몰이사냥 할 때도 피로해하고(물론 이건 다들 미친 듯이 피곤해했지만!)….
‘이런 걸 하면 기분전환 좀 되겠지?’
태현은 예리한 눈길로 이다비를 훑어보았다.
확실히 이다비는 들떠 보였다. 기분이 좋은 게 분명했다.
태현이야 일 년 내내 캡슐 안에서 버티라고 해도 ‘까짓거 해보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밖에 나와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역시 이다비도 그랬어!
“<토론토 메이플베어즈> 때처럼 막 나가는 조언은 하지 말아야지. 안전하고 견실한 조언을 할 거야.”
“어떻게요?”
“영상 보면서 분석해놨어. 약점 알려주고, 갖고 있는 스킬 분석해서 조합이랑 콤보 맞춰주고, 아이템 조합 조언해 주고… 뭐 이 정도가 기본 아니겠어?”
“그건 기본이라고 하지 않는데요.”
보통 감독하고 코치들이 그거 하려고 돈 받지 않나요?
태현의 기본은 너무 허들이 높은 것 같았지만, 이다비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이게 태현이었으니까!
“헉. 태현 님. 기사 보셨어요?”
“뭐? 케인이 사고 쳤어?”
“…아니요….”
이다비는 황당해하며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속보가 달린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베이징 파이터즈> 감독 사베트, 전격 사임 발표!
-후임 감독은 현 수석코치….
-리그 시즌 중 첫 경질된 감독, 연이은 패배로 인해 책임을….
-사베트 감독 “내가 받는 급여에 따른 책임을 지겠다”고 밝혀….
“저런.”
말이 사임이지 잘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저런 상황에서 누가 스스로 그만뒀다고 믿겠는가.
태현의 표정이 무거워 보이자 이다비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표정이 안 좋으신데 괜찮으세요?”
“아. 안 좋아 보였어? 안 좋다기보다는, 성적이 안 나오면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단 생각을 하고 있었어.”
지금이야 리그를 씹어 먹고 있으니 온갖 기업들이 후원과 광고를 제시하고 있었지만, 이 모든 건 성적이 있어서였다.
팀 KL 같은 대기업 없는 소규모 게임단은 성적이 없으면 그대로 망한다!
‘더욱더 최선을 다해 상대를 조져야겠군.’
태현은 살벌하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순간, 저 멀리 떨어진 전 세계의 판온 선수들은 이유 모를 오싹함을 느꼈다.
-<베이징 파이터즈> 단장, 전 감독 사베트 작심 비판… ‘그는 팀의 분위기를 헤쳤다’
“아니.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나간 사람을.”
태현은 의아해했다.
아무리 희생양이 필요하다지만 이렇게까지 하면 상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