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27화
랭커들은 ‘야 이건 너만 알고 있어라. 비밀인데…’ 하면서 한 명에게만 말했지만, 이런 비밀이 지켜질 리 없었다.
알음알음 퍼진 소문은 곧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서, 관심이 없던 랭커들도 ‘뭐? 케인 때리는 기회가 있다고? 진짜? 골드 좀 내는 걸로?? 지금 간다!’ 하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솔직히 누구나 솔깃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케인을 때리는 일!
케인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딜러든 탱커든, 전투 직업이든 제작 직업이든….
누구든 들으면 ‘헉… 진짜 때리게 해주나요? 진짜??’ 하는 것!
“안 돼! 꺼져! 돌아가!”
케인이 매몰차게 거절하자 새로 온 랭커들은 시무룩해졌다.
소식 듣고 기대하며 달려왔는데….
“하하. 어서 들어오십시오.”
“케인 녀석 말은 무시해도 됩니다.”
그러나 태현 일행은 냉정했다.
케인이 거절하든 말든 일단 안으로 들여보내는 그들!
다양한 랭커들의 공격을 받을수록 각종 칭호를 따낼 수 있었다.
“간다, 케인! 방패 들어!”
“안 들 거야! 안 들 거라고!”
“혹시 돈 더 내면 먼저 때릴 수 있나요?”
* * *
“좋은 대회였어.”
“앗. 네.”
“이다비. 왜 자꾸 시선을 피하는 거지?”
“아니, 그게. 네.”
이다비는 태현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쩔쩔맸다.
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거저 먹는 문제를 틀렸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태현이 이다비를 가장 아낀다고 말해서!
“이다비. 그거 문제 틀릴 수도 있다고 했잖아. 어차피 우승도 했고.”
덕분에 자선대회의 상금은 태현과 이다비의 이름으로 기부가 되었다.
좋은 일 하고 돌아오는 길!
“신, 신경 안 쓰고 있어요.”
“그런데 고개가 왜 반대쪽으로 돌아가 있어?”
태현의 방향과 정반대로 돌아가 있는 이다비의 고개!
“잠을 잘못 자서….”
“아까까지는 멀쩡했잖아.”
“갑자기 담이 와서요?”
“왜 의문문? 됐다. 내가 풀어줄게.”
“아뇨! 아뇨! 괜찮아요!”
이다비는 결국 항복하고 고개를 원상복귀시켰다. 역시 담 같은 건 없었다.
“실수 한 번 했다고 그렇게 자책하지 말라니까… 실수 수십 번 하고도 당당하게 지내는 놈도 있는데.”
“앗. 네.”
“…….”
태현은 그 모습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이다비는 한 번 실수한 걸 꽤나 마음에 담아 놓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이다비는 좀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있지.’
이다비가 들었다면 ‘태현 님이 할 소리예요!?’라고 했겠지만, 태현은 케인처럼 속마음을 읽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책하지 말라고 해도 자책 안 할 사람도 아니고… 좀 덜 성실해도 될 텐데. 기운 내게 뭐라도 해줘야겠군.’
카르바노그가 있었다면 뒤통수를 한 대 때렸겠지만 카르바노그도 없었다.
있는 건 두 판온 광인뿐!
태현은 이다비가 신경 쓰지 못하도록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거기 사장님께서 신기할 정도로 관심을 가지시더라.”
“아. 네. 좀 신기했어요. 인사치레치고는 너무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서요.”
“자선대회를 연 이상 온 사람들에게 성의를 다해 대접하는 게 어른인 거겠지. 살짝 감동했어.”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윤 사장을 칭찬했다.
판온에 조금도 관심이 없는 양반이 자선대회를 연 책임감으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 오다니.
살짝 존경심이 든다!
“농담도 잘 하시더라고요.”
“아. 그거?”
-허허허. 김태현 선수. 나중에 판온 한 번 같이 해보고 싶군.
-하하하. 사장님께서 농담도 참….
-허허허. 농담이 아닌데.
-하하하. 정말 재밌네요. 말씀은 감사드립니다.
-아니 농담 아니라니ㄲ…
-사장님. 선수들에게 덕담은 이 정도만 해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일정도 바쁘시잖습니까.
-허허허. 김 비서. 일정이 바쁜데 이렇게 와서 말해주니 정말 고맙네. 자네밖에 없어.
-감사합니다. 사장님. 악. 아악. 왜 힘을… 사장님! 사장님!
“저번에 온 LK 갤럭시 일일 코칭 제안 받아볼까?”
“괜찮으시겠어요? 리그 때문에 바쁘셔서 일정 타이트하게 잡고 있잖아요.”
“그렇지만 일일 코칭 하나 못 할 정도로 바쁘진 않아. 이렇게 좋은 대회 열었는데 그냥 거절하기도 좀 미안하고.”
LK 전자 홍보팀의 기묘한 전략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지만, 우연찮게 빙빙 돌아 먹히게 되었다.
“그렇죠! 정말 좋은 대회였어요.”
“좋은 뜻으로 하는 행사니까… 음? 이다비. 기부 말하는 거 맞지?”
“물, 물론이에요.”
* * *
“케인!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고 나무 호미로 밭을 갈아놓는 일은 제대로 해놨냐!”
“태현 님. 그건 콩쥐팥쥐에요.”
“아. 미안. 습관적으로. 케인! 내가 말한 칭호는 다 따놨겠지?”
“…….”
태현과 이다비는 케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아니? 케인의 상태가…?”
“마치 진화하기 전의 포X몬 같은 모습인데요…!”
평소에는 절대 볼 수 없는, 진지한 오오라가 풍겨 나오는 모습!
지옥훈련으로 인해 사람이 바뀐 건가?
쿵, 쿵, 쿵-
케인은 한 발짝 한 발짝 무시무시한 기세로 걸어왔다.
그리고 넙죽 엎드렸다.
“…….”
“…….”
“잘못했습니다!”
손이 여섯 개라는 건 3배로 빌 수 있다는 것!
세 쌍의 손으로 싹싹 비는 모습에 이다비는 감탄했다.
‘상인을 해도 잘 했을 것 같….’
“뭘 얼마나 못했는데?”
“1/3 정도는 못 땄….”
케인은 열심히 했다.
랭커들이 화염, 냉기, 번개, 독, 흑마법, 신성마법, 단검 공격, 둔기 공격, 도검 공격 등 다양한 방향으로 때리는 것도 참고 참았지만….
애초에 칭호를 따는 것도 요령이 있어야 했다.
요령 있는 놈은 올바른 방식으로 딱딱딱 맞춰 해내지만, 요령 없는 놈은 몇백, 몇천 번을 헤매야 하는 것!
“2/3은 땄다고? 그 정도면 잘했는데?”
“뭐? 진짜? 잘한 거 맞아?”
“잘한 거 맞다. 거기까지 기대 안 했거든.”
“역시…! 역시 내가 잘한 거 맞구나!”
‘자기 욕하고 있는 건데….’
이다비는 측은하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거기까지 기대 안 하고 있었다는 건 욕이잖아요!
“그러면 영화 출연하는 거지?!”
“아니. 이건 1단계일 뿐이지. 기초를 살짝 다졌다고 해야 하나?”
“…….”
케인은 정색했다.
뭐 이런 새ㄲ…!
* * *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지만(주로 길드 동맹이), <화산의 저주>와 니팅거스 퀘스트는 일단락되었다.
<화산의 저주>가 끝나자, 판온의 모든 사람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끝났다…! 드디어!”
“한국의 여름보다 더 끔찍한 날씨였어!”
“헉. 나 내년에 한국 여행 가려고 했는데 그 정도야?”
“아니 왜 저주가 풀리는데! 냉기 아이템 잔뜩 샀는데!!”
몇몇 불만 가진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평범하게 기뻐했다.
그만큼 <화산의 저주>가 끔찍했던 것이다.
“남쪽 도시가 통째로 사라졌다면서? 나 거기서 퀘스트 깨려고 했는데….”
“아냐. 지금 새로 건설되고 있다더라. 오히려 퀘스트 할 기회 많아졌다고 봐야지. 게다가 니팅거스 영지래.”
“니, 니팅거스 영지? 진짜?”
“어. 니팅거스가 보낸 NPC들이 도시 곳곳에 있다더라.”
몇몇 눈치 빠른 플레이어들은 니팅거스의 영지라는 소식에 솔깃해했다.
드래곤(이 보낸 NPC)와 인맥을 쌓을 기회!
판온에서 그럴 기회가 얼마나 오겠는가.
이런 기회는 무조건 잡고 봐야 했다.
“같이 가자!”
“하하. 그럴 줄 알고 다 준비해놨지.”
플레이어들은 행복한 꿈에 빠진 채 도시로 향했다.
[소도시, <니팅거스의 발톱>에 도착했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현재 <니팅거스의 발톱>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번영> 버프를 받습니다.]
[현재 <니팅거스의 발톱>의 주민들은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
[……]
[……]
[도시를 지키고 있는 니팅거스의 하수인들은 소란을 용서치 않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오오…!”
“진짜야! 소문이 진짜였어!”
발전하고 있는 도시에서만 나올 수 있는 버프들이 쫙쫙 들어오자 플레이어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벌써 구슬땀을 흘리며 공사를 하고 있지 않은가!
딱 봐도 활발한 도시의 분위기가 풍겼다.
“저기요. 이 공사 퀘스트는 어디서 받아요?”
“뭐?”
“지금 하시는 퀘스트 깨서 마을 내에서 평판 올리고 싶은데….”
“꺼져.”
“예?”
“꺼지라고! 확 패버릴까 보다!”
“히, 히익! 이 사람 왜 이래?”
“몰라. 이상한 사람인가 보다.”
살벌한 반응에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라서 물러섰다.
그러고 보니 공사 퀘스트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왠지 모르게 세상에 불만이 가득한 표정!
“김태현… 개자식아….”
“팀 KL 망해라….”
“쑤닝 이 XX… 길마란 놈이 그런 걸 냉큼 받아와서 이딴 걸 시켜…?”
저주와 분노가 가득한 공사장!
바로 길드 동맹에서 온 길드원들이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위에서 내려온 명령 때문에 자기 시간 쪼개서 이런 잡퀘스트에 투자하게 된 것이다.
열이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도시는 잘 굴러갔다.
경비는 니팅거스가 보낸 하수인들이 서고, 건설은 길드 동맹이 하고, 도시 수입은 소식 듣고 찾아온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만들어주고, 돈은 태현이 받고….
모두가 행복한 <니팅거스의 발톱>!
“생각보다 엄청 빨리 건설되고 있습니다.”
“으음. 이건 예상 못 했는데.”
그리고 도시 한가운데에 미다스 길드원들이 와 있었다.
니팅거스가 오스턴 왕국 도시 하나 날려 버렸을 때 가장 기뻐했던 건 바로 미다스 길드원들이었다.
너의 불행은 나의 기쁨!
도시가 박살 난 틈을 타 거기에 뭐라도 새로 세우려고 했는데, 태현이 니팅거스를 제압해 버리더니 니팅거스의 도시를 세워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빨을 들이밀어 볼 수 없을까 고민 중이었는데 영 견적이 안 나왔다.
김태현도 찜찜한데 드래곤 니팅거스도 찜찜하고….
“김태현한테 구매를 시도해 볼까요?”
“니팅거스가 주인이라는데 팔 수 있을까?”
“혹시 모르잖습니까.”
“하긴. 해서 손해 볼 건 없긴 해.”
지금 오스턴 왕국의 서부는 미다스 길드, 중앙과 동부는 길드 동맹이 점령하고 있었다.
남부는….
역병 지대부터 시작해서 솔직히 손을 댈 엄두가 안 나는 복잡 미묘한 땅이었고!
미다스 길드와 길드 동맹이 서로 싸우면서 이득을 보고 있었지만, 두 길드의 목표는 하나였다.
한 쪽을 몰아내고 완전히 왕국을 얻는 것!
왕국을 통일할 경우 기대되는 수익은 상상을 초월했다. 길드 동맹만큼 미다스 길드도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었고, 투자자들은 연신 싸우라고 재촉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길드 동맹의 그 숫자와 저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미다스 길드도 그걸 알았기에 힘을 꾸준히 비축하고 있었던 건데….
“여기 도시만 얻으면 길드 동맹을 양쪽에서 칠 수 있겠지?”
“한 번 제안해 볼까요?”
“그래. 길마들한테 말해보자. 다들 동의할 거야.”
김태현이 싫든 좋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길드 동맹 상대할 때는 김태현이 최고야!
솔직히 말해서 길드 동맹 상대하는 사령관으로 영입하고 싶은 인재였다.
그러나 길드원들이 흉계를 꾸미기도 전에 새로운 대형 퀘스트가 도착했다.
[<화산의 저주>가 완전히 대륙에서 사그라들었습니다.]
[뜨거운 열기는 대륙에 많은 흔적을 남겼지만 여러분들은 살아남았습니다! 이 행복을 기뻐합시다!]
[열기로 인해 깨어난 수많은 몬스터들이 번식을 시작합니다.]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모든 모험가들은 도시와 성 안으로 대피하십시오! 밖은 위험합니다!]
“…!??!?!”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