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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125화 (1,124/1,826)

§ 나는 될놈이다 1125화

윤 사장이 자아성찰하고 반성하는 사이 태현은 이다비와 같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태현이 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소란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많이 몰려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흩어지더니 각자 자리를 찾아간 것이다.

관계자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수습이 된 건 다행인데 이렇게 쉽고 빠르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잘, 잘 된 건가?”

“일단은요…?”

“사장님은 어디 계셔? 어디 가신 거야?”

“차라리 다행 아닙니까? 이 꼴을 못 보셨으니….”

“무슨 꼴을 못 봤다는 건가?”

“헉! 사장님!”

직원은 펄쩍 뛰었다. 윤 사장이 어느새 와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모르게 심기 불편해 보이는 표정.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 꼴을 봤구나!

“죄, 죄송합니다! 좀 더 빠르게 수습했어야 했는데!”

“…….”

윤 사장의 표정이 더욱 못마땅한 표정으로 변했다.

‘이런 눈치 없는….’

그 표정에 직원은 더욱 겁을 먹었다.

안 그래도 윤 사장은 게임이나 E스포츠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투자할 거면 야구도 있는데 뭐하러 게임에 돈을 쓰냐’라고 말하는 사람!

그런데 하필 이 자선대회는 판온 플레이어들을 모아 놓은 자선 대회였으니….

“어, 어떡하죠?”

“뭘 어떡해. 최대한 수습해야지! 같이 잘리고 싶냐? 지금 늦어진 시간 따라잡으려면 행사 몇 개는 자르자.”

“그, 그래도 될까요? 팬들이 화를 낼 텐데요.”

“팬들은 화를 내겠지. 그렇지만 우리 목을 자르지는 않을 거 아냐. 지금 저기 있는 사람은 우리 목을 자를 거고. 자. 뭘 자를래?”

“…행사 자르겠습니다! 야! 야! 지금 자를 수 있는 게 뭐 있지?”

“어, 일단 플레이어들하고 팬의 만남….”

“그건 넘어가자! 그거 넘어가고 바로 다음으로….”

바로 이 시점에서 윤 사장의 분노가 폭발했다.

안 듣는 척하면서 듣고 있던 윤 사장은 매섭게 일갈했다.

“자네는 팬들을 뭘로 생각하는 건가!”

“예?”

“이런 자선대회가 열릴 수 있는 것도, LK 갤럭시가 유지될 수 있는 것도, 다 팬들 덕분이지. 그런데 팬들을 기만하다니! 그게 책임자로서 할 소리인가!”

“죄, 죄송합니다!”

“…???”

옆에 있던 다른 직원들은 당황해서 윤 사장을 쳐다보았다.

맨날 입만 열면 ‘뭐 이런 게임에 돈을 쓰지?’, ‘요즘 젊은 놈들 취향은 이해할 수가 없다’, ‘야구에나 돈을 써야지’ 같은 소리를 하시던 분이 뭘 잘못 먹었나?

“왜 저러시지?”

“오기 전에 한 잔 꺾으신 거 아닐까요?”

“아냐. 술 냄새 안 나는데.”

“일단 비위를 맞추자고.”

재빨리 대화를 끝낸 직원들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그러면 예정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아니. 시간이 늦춰지면 안 되니 개회 연설을 빼지.”

“어, 사장님께서 맡으신 연설이신데요.”

“그러니까 빼도 되겠지.”

“????”

진짜 술 마셨나?

평소에 윤 사장은 이런 자리에서 연설하면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걸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즐거움을 포기하다니?

“그러면 시간이 좀 남을 것 같은데. 플레이어들이 나와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것도 괜찮겠군.”

“아. 그거 좋은 것 같습니다. 사장님. 팬들도 좋아하겠네요.”

“내가 옆에서 직접 소개해 주고 박수를 쳐줘야겠군.”

“사장님. 굳이 그러실 건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아니. 내가 책임을 져야지.”

윤 사장의 말에 직원들은 당황했다. 게임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이 왜 이런단 말인가?

‘더 말려야겠지?’

‘더 말려야죠. 안 말렸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이런 대회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시는 그 마음, 저는 정말 탄복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귀찮은 일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사장님께서는 굳이….”

“…내가 한다니까!!”

“?!?!”

* * *

“두 분이서만 오신 건가요? 다른 분들은요?”

“2인 1조로 오는 대회여서요?”

“그렇지만 다른 팀원분들 두 명 데리고 왔으면 됐잖아요.”

“아. 그러네요.”

태현은 주변 플레이어들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다.

“걔네 그럴 시간 없어서요.”

“…….”

“…….”

농담의 기운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100% 진담!

플레이어들은 급히 말을 돌렸다.

“김태현 선수, 혹시 나중에 기회가 되시면 제 개인 방송에 나오실 생각 있으신가요?”

“퀘스트 때문에 바빠서 무리일 것 같은데요.”

“무조건 김태현 선수 시간에 맞출 수 있어요! 연락만 주시면 뭘 하고 있든 간에 접고 달려가겠습니다!”

“흠. 그러면 생각해 볼….”

“!”

“!!!”

옆에서 이야기하던 플레이어들이 눈빛을 반짝거렸다.

태현은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본다니!

“김태현 선수! 저도 달려갈 수 있습니다!”

“저도요!”

나름 다 유명 플레이어라고 불린 사람들이었지만 태현과 비교하면 보름달 앞의 반딧불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그들이 방송을 시작하면 국내 팬들만 보지만, 태현이 방송을 시작하면 전 세계 팬들이 오는 것이다.

“너는 <판온 NPC랑 연애하기> 같은 방송하잖아! 그런 거에 김태현 선수가 나가고 싶겠어?!”

“그게 뭐 어때서! 팬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어! 그리고 김태현 선수도 재밌겠지만 케인 선수가 나오면 얼마나 재밌겠어. 모두 기대할걸?”

“크윽… 반박할 수가 없군.”

“김태현 선수. 저는 판온의 난이도 높은 던전을 타임어택하는 방송을 하고 있어요. 김태현 선수가 나오신다면 차원이 다른 클래스를 팬들에게….”

옆에서 난리를 치는 동안 태현은 아는 얼굴들과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김철수 선수. 오랜만입니다.”

“김태현 선수도 오랜만입니다.”

태현과 대회에서 같은 팀을 한 것으로 시작해, 지금은 유성 게임단에서 뛰고 있는 사제 랭커!

실력도 실력이지만 가장 대단한 능력은 그 빛나는 인성이었다.

이세연과 태현이 서로 으르렁거리고 도동수까지 깝치는 상황에서도 무한한 인내심으로 팀을 묶은 빛나는 인성!

태현은 절대 따라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이세연은 뭐하고 있어요?”

“김태현 선수한테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해서요. 죄송합니다.”

“…….”

태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뭐, 보아하니 아직도 고대 거인 잡고 있겠죠.”

“…….”

‘맞군.’

태현은 이세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태현도 고대 거인을 잡지 못했다면 순순히 물러서지 않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을 테니까.

초일류 랭커로서의 자존심!

“그렇지만 이세연이 거기서 헤매고 있다는 걸 들으니까 기분이 좋아지네요.”

“…….”

김철수는 입을 다물었다. 이세연도 태현의 퀘스트 이야기하면서 잘 될 때마다 배 아파했던 것이다.

‘…이건 말해주지 말아야지.’

“그나저나 LK 사장님이 좀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악수할 때 이상하게 오래 잡으시던데요.”

“흠. 확실히….”

태현은 아까 소개 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확실히 좀 특이했던 것이다.

-모두들 이 자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보통 자선대회 같은 거 하면 길게 연설을 하게 마련인데, 딱 두 마디로 시작!

자리에 모인 플레이어들도 당황해서 서로 쳐다볼 정도였다.

사장님이 많이 바빴던 걸까?

그런데 그 다음은 더 이상했다. 사장이 플레이어 한 명 한 명을 불러가며 소개해 주고 박수를 쳐주기 시작한 것이다.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솔직히 감동적이었다.

이렇게 세심한 배려라니.

심지어 대기업의 사장님께서!

그리고 특히 태현을 소개할 때 유난히 길게 설명했다.

-김태현! 사실 이 친구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지요!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을 테니까! 판온 1 때부터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은 친구 아닙니까? 판온 1하니까 생각난 건데, 그때 성기사와 붙었던 골짜기의 혈투는 정말 대단했었죠. 내가 꼭 어제 봐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닌데 김태현 선수는 정말 대단했었죠. 안 그렇습니까? 자네. 왜 대답이 없지?

-앗. 네. 사장님. 정말 대단했었던 경기였죠.

졸지에 옆에 있다가 질문받은 직원은 당황했다.

-자네 설마 그 경기를 안 봤나? 아니. 초대를 해놓고 그런 기초 준비도 안 했어?

-아니 그게 딱히 기초 준비는….

-지금 틀어서 보여주도록 하지. 기다려보게. 어디 있더라.

-저, 사장님. 지금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만….

“음.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 확실히 이상했어.”

자선대회였는지 김태현 팬미팅이었는지 구분이 안 되는 헷갈림!

“사장님이 김태현 선수의 팬 아닐까요?”

“아닐걸요. 제가 아는 사람한테 들었는데 저 사장님, 판온 안 좋아한다고 들었거든요.”

유 회장한테서 흘러온 정보!

“하지만 아까 소개는 판온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하기 힘든 소개였잖습니까.”

“그게 프로인 거 아니겠습니까. E스포츠 자선대회를 연 이상, 자기가 좋아하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관심을 보이는 거겠죠.”

“오….”

김철수는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시간 되면 따로 이야기하자고 하시던데, 예의상 하신 말이겠죠.”

“그렇게 말하시니 그런 것 같습니다. 자선대회 열어주신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인데, 더 귀찮게 해드리면 안 되겠네요.”

윤 사장이 옆에서 들었으면 뒷목을 잡았을 대화를 둘이 하고 있었다.

* * *

이다비는 긴장된다는 표정으로 주먹을 꼭 쥐었다.

태현이야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 중 절반 이상을 몰랐지만, 이다비는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의 전원을 꿰고 있었다.

‘저 플레이어는 최근에 방송 순위 10위 안으로 들어온 유명 음유시인 플레이어, 저 플레이어는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는 화가 플레이어, 저 플레이어는 최근에 골짜기에서 전 재산 꼬라박는 방송으로 인기를 얻은 플레이어….’

“이다비 선수 맞으시죠? 와, 게임하고 똑같으시네요!”

“앗. 안녕하세요.”

잘생기고 예쁜 걸로 인기 높은 플레이어들이 말을 걸어오자 이다비는 살짝 긴장했다.

“팬이에요! 혹시 괜찮으시면 유니폼에 사인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태현 님을 지금….”

“아뇨. 이다비 선수 사인이요!”

“??? 왜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에게 이 사인으로 사칭을 하려는 것일까?

…라고 생각했지만 이다비는 진정했다. 생각해 보니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사인 가지고 넘어갈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길마 얼굴 직접 보기 전에는 끝까지 의심하는 게 그들!

“어… 팬이니까요?”

“앗. 알겠어요. 팔려는 거죠? 하지만 제 사인이 담긴 유니폼은 그다지 비싸지 않을 거예요. 아무래도 태현 님 유니폼이 가장 비싸고, 그 다음은 케인 씨 유니폼 정도가….”

이다비의 말에 당황하며 듣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이다비 선수는 농담도 잘하시네요.”

“하하하! 맞아요. 케인 선수 유니폼이 비싸다니.”

“이다비 선수 유니폼이 더 비싸죠. 농담도 참.”

“어, 케인 씨 유니폼이 그렇게 안 비싼가요? 인기가….”

케인은 이러쿵저러쿵해도 인기 많은 편이었다.

대부분의 팬들은 정확한 내부 사정까지는 잘 모르는 법. 케인은 일단 성실하고 헌신적인 탱커였다. 집안일 때문에 욕을 좀 먹긴 했지만….

“아니요. 인기 문제가 아니라 케인 선수는 워낙 사인을 많이 해주고 다녀서 유니폼 가격이 별로 비싸지가 않….”

“맞아. 심지어 자기 팬 아닌 사람들한테도 보이면 사인해 주고 다닌다잖아.”

자기 팬 아닌 사람한테도 강제로 팬서비스를 해주는 팬서비스의 왕!

“…그, 그렇군요.”

“그리고 팔려는 게 아니라, 저는 언니 팬이에요. 언니는 저를 모르시겠지만 제 롤모델이….”

“아. 알아요. 닉시아 씨. 레벨 198에 직업은 <타오르는 춤의 무희>시고 최근에 <저주 받은 발레복> 퀘스트 깨고 8,300골드 얻으셨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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