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23화
“그리고 화살은 지수가 타이럼 레인저 NPC들 불러서 같이 쏴줄 거다.”
“최선을 다해서 세게 쏠게요!”
유지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그 눈빛에 살기가 번뜩여서 케인은 무심코 물었다.
“별, 별다른 감정은 없는 거지?”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참. 언니. 혹시 파워 워리어 길드 창고 중에 키메라에게 추가 데미지 주는 화살 있나요?”
“감정 있는 거 맞잖아!”
케인은 울먹이며 외쳤다.
예전에는 태현하고 너무 친하게 군다고 미움을 샀었는데, 숙소 공개하고 나서부터는 ‘집안일 하나도 안 하면서 선배를 시켜먹는 쓰레기!’로 미움이 바뀐 상태였다.
가끔 파티 플레이하다가 뒤통수가 서늘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착각이 아닌 것 같았다.
태현은 진지하게 말했다.
“케인. 우리가 그렇게 시간이 널널한 편이 아니다. 퀘스트 사이 남는 시간이 되게 드물다고.”
“그건 네가 숨쉴 틈도 없이 연속으로 대형, 전설 퀘스트를 받아서잖….”
남들은 보통 퀘스트 하나 깨면 잠깐 쉬면서 재정비 들어간다고!
케인이 항의했지만 태현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처럼 잠깐 남는 시간에, 이렇게 딸 수 있는 칭호들을 따놓지 않으면 앞으로도 딸 시간이 없을 거다. 게다가 이렇게 랭커들이 도와주는 기회가 또 언제 오겠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새 손님들이 도착했다.
앨콧의 친구인, 화염술사 랭커 크로포드!
크로포드는 오자마자 물었다.
“진짜 케인한테 불 질러도 되는 거냐? 와. 나 예전부터 질러보고 싶었어.”
“…….”
케인의 얼굴은 창백함을 넘어 납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물론이다. 크로포드. 불 질러도 된다.”
“이야… 김태현. 너무 친절한 거 아니야? 어떻게 이렇게 친절할 수가?”
“내가 원래 배려심 빼면 시체지.”
크로포드와 태현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크로포드와 같이 온 다른 마법사 랭커 친구들도 조심스럽게 태현에게 인사했다.
“안, 안녕하세요. 김태현 선수. 저희도 정말 케인을 공격해도 될까요?”
“제 냉기로 케인을 얼려도….”
“하하. 물론입니다. 마음껏 패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꼭 한 번 때려보고 싶었습니다!”
“야! 이 자식들아! 나하고 무슨 원한이 있다고 그러는 거야!”
케인은 울컥해서 외쳤다.
크로포드는 이해나 갔다. 그런데 저 마법사 랭커들은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영상에서 너무 얄미워서 꼭 한 번 마법을 쏴보고 싶었….”
“세계 최고 탱커에게 마법을 직빵으로 날려보고 싶었습니다.”
“키메라 종족한테 마법이 얼마나 들어갈지 궁금해서….”
“나는 그저 조회수 나올 것 같아서 왔는데.”
가지각색의 이유로 케인을 패기 위해 모인 랭커들!
“아. 맞다. 참가비.”
크로포드는 이다비에게 골드 주머니를 건넸다. 다른 마법사 랭커들도 마찬가지로 골드 주머니를 냈다.
“…???!”
앨콧은 경악했다.
아니, 랭커들을 불러서 부려먹는데 돈을 주는 게 아니라 받아?!
“아, 아니. 크로포드. 너 골드 내고 하는 거였냐?”
“야. 너 같으면 이런 기회를 공짜로 해주겠냐? 이 정도면 싸게 먹히는 거지. 이런 기회를 누가 쉽게 가지겠어.”
“맞는 말이지. 길드 동맹 쪽에 기회 팔면 경매 붙을걸.”
“넌 공짜로 케인 때린다고 했지? 김태현한테 감사해라. 그거 정말 대단한 기회야. 우리는 다들 하겠다고 나서서 제비뽑기해야 했다고.”
앨콧은 순간 자신이 미쳐가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세상이….
세상이 이상해지고 있어!
어쨌든 간에, 호화로운 훈련진이 완성되었다.
랭커 수십 명으로 구성된 훈련진!
최상윤이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케인. 넌 정말 복 받은 놈이다. 널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냐.”
“…그러면 같이 할래?”
“하하하. 난 이미 칭호 작업 알아서 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태현이가 구박할 때 알아서 좀 따놨어야지.”
“저도 열심히 작업하고 있었으니 따로 알아서 하겠습니다.”
“힘내라, 케인!”
“파이팅, 케인!”
팀원들의 살가운 응원이 끝나자, 태현이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케인. 나 나갔다 오는 동안 칭호 5개 정도는 따 놔라. 못 따면 외출 금지다.”
“…….”
그 말에 주변에 있던 랭커들이 수군거렸다.
“헉. 나 저 상황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래. 어렸을 때 콩쥐팥쥐에서 본 것 같….”
“그러면 우리는 콩쥐를 도와주는 동물들인가? 후후. 우리가 좀 착하긴 하지.”
“닥쳐! 나 패려고 신난 놈들아!”
“와. 도와주려는데 저 인성 봐.”
“콩쥐는 무슨. 저놈은 팥쥐 같은 놈이야.”
“그런데 김태현은 어디 간대?”
“한국 쪽 자선행사. 한국 유명 플레이어들은 다 부른 모양이던데.”
“오. 친구. 나 보고 싶어. 방송하나?”
“어. 중계할걸. 케인 패면서 같이 보자고.”
“자선행사면 판온 하나?”
“아니. 판온은 아니고 다른 게임들 하겠지.”
“그래도 김태현이 한다니까 좀 보고 싶다.”
“그치? 나도 그래.”
“김태현이 게임 못하는 것도 좀 보고 싶은데 그럴 만한 게임 없나?”
“그런 건 없을 듯.”
솔직히 김태현은 무슨 게임을 시켜도 잘할 것 같았던 것이다.
* * *
“이 옷은 어때?”
“음… 평생 비싼 옷 한 번 안 사본 사람이 어떻게든 옷장에서 억지로 옷 꺼내서 차려 입은 것 같아….”
“…….”
“야!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하, 하지만 제대로 말해야 하는 일이란 말야. 언니가 저대로 나가면 어떡해. 앞으로도 저렇게 입으면 안 돼. 언니는 옷을 좀 사야 해.”
이다비의 동생들은 냉정한 평가를 위해 모여 있었다.
이다비가 태현과 같이 자선행사를 나가는데 그냥 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차라리 정장이 낫지 않을까? 정장은 있잖아.”
“안 돼. 남들 다 캐주얼하게 입고 오는데 언니만 정장 입고 오면 너무 눈에 띌 거야.”
“으으. 우리 옷 사올 때 어떻게든 옷을 사게 했어야 했는데…!”
“내 잘못이야…!”
동생 둘이 서로 자학을 하기 시작하자 이다비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잘못한 거니까 그럴 필요 없어.”
판온 유명 플레이어들을 모아 놓은, 격식 없는 자선행사 자리다 보니 복장도 캐주얼하게 입고 오라고 연락이 왔다.
하지만 이다비는 차라리 정장이 나았다. 정장은 있었으니까.
“옷장 좀 뒤져봐. 다른 옷이 있을지도 몰라.”
“청바지, 청바지, 청바지, 청바지, 청자켓이 있어.”
“티셔츠, 티셔츠, 티셔츠, 티셔츠가 있네. 아니. 이 티셔츠는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디자인도 후진데…!”
“…판촉용으로 나눠주길래 많이 받아서….”
“…….”
“…언니! 우리가 미안해! 으아앙!”
동생들이 울려고 하자 이다비는 급히 말렸다.
“아니야! 그냥 내가 옷을 새로 안 산 거야! 진정해, 애들아!”
수입은 몇십, 몇백 배로 늘고 빚도 하나도 없었지만 사람의 습관은 그리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동생들한테는 무X마를 끓여줘도 자기는 스X면을 먹는 게 이다비!
그런 사람이 멀쩡한 옷 내버려 두고 새 옷을 많이 살 리 없었다.
“그리고 이 옷들도 계속 보니까 멀쩡해 보여.”
“언니.”
“응?”
“난 언니를 정말 존경하고, 언니가 우리를 위해 해준 일에 고마워하고 있어. 근데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야. 이 옷은 아니야.”
궁서체로 말하는 동생들의 목소리에 이다비는 풀이 죽었다.
이 청바지랑 청자켓 괜찮은 것 같은데….
똑똑똑-
“?”
“앗. 오빠 왔다.”
“?!?!?”
이다비는 기겁했다. 아직 약속 시간 안 됐는데?!
“누가 불렀어?!”
“글, 글쎄?”
“잘 모르겠어. 언니. 그냥 찾아오신 거 아닐까?”
“…….”
둘이 불렀구나!
태현과 동생 둘이 친하게 지낸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얘네들이 진짜…!
“어. 이다비. 옷 잘 어울리네.”
“…….”
“…….”
동생들은 정색했다.
아니 김태현 씨 여기서 이러시면….
‘오빠 불러오면 언니가 알아서 포기하고 옷 갈아입을 줄 알았는데…!’
‘우리가 너무 안일했어!’
“음. 입을 옷 갖고 왔는데 별로려나?”
태현은 주섬주섬 옷을 꺼냈다. 협찬 받고 있는 프로스다스 쪽에서 보낸 옷이었다.
이미 팀 KL 유니폼을 맡아서 제작한 프로스다스였지만, 태현이 자선행사 나간다는 말을 듣자 황급히 연락을 보내왔다.
-새 옷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예? 아니. 기존 유니폼도 있는데 뭘…?
-세상에 옷 하나만 입는 사람은 없지요. 유니폼도 매해마다 디자인이 바뀌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아직 해가 안 지났….
-제발! 새로운 옷을 입어주시지요!
프로스다스 쪽 팀장은 맹렬하게 부탁했다.
프로스다스는 최근에 가장 크게 성장한 기업 중 하나였다.
그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팀 KL!
팀 KL과 프로스다스의 계약은 이제 업계의 전설 수준이었다.
대박 전설!
아직 팀 KL이 별 볼일 없을 때, 태현의 이름값만 믿고 프로스다스는 전폭적인 지원을 해왔다. 그때 태현의 팬이었던 부장이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팀 KL은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리그가 열리고 나서 1위를 질주했다.
팀 KL의 유니폼은 미친듯이 팔려나가고 있었고, 프로스다스는 거기에서 천문학적인 홍보효과를 내고 있었다.
망설이거나 얕보고서 참가하지 않은 다른 스포츠 기업들은 배가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고….
팀 KL 스폰서십을 퇴짜 놓은 책임자들은 옷을 벗어야 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덕분에 프로스다스 내에서 팀 KL은 각별한 위치일 수밖에 없었다.
팀 KL을 담당하는 이들은 회사 내에서도 최우수 인재들!
-아니, 옷 입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은데… 지금 준비된 게 있습니까? 딱히 준비할 기간이 아닌 것 같은데 굳이 억지로 새 옷을….
-걱정 마십시오. 밤을 새워서 준비하면 됩니다.
전화 너머로 ‘미쳤습니까??’ ‘팀장님 정신 나갔어요??’ 같은 소리가 들려왔지만 팀장은 꿋꿋했다.
이번 자선행사는 새로운 디자인의 유니폼을 홍보할 기회!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김태현에게 매일매일 다른 유니폼을 입히고 싶었지만 실질적으로 그건 무리였다. 이런 기회를 잘 살려야 했다.
-제게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무리할 필요 없는데… 예전 유니폼도 있으니 힘드실 것 같으면 포기하셔도 됩니다.
대답 대신 전화 너머로 ‘여러분! 야근합시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욕설과 고함과 물건 던지는 소리도.
-…그러면 이만 끊겠습니다?
* * *
걱정과 달리 프로스다스는 일정을 완벽하게 지켜, 새로운 겨울옷을 만들어 보냈다.
태현은 다른 팀원들한테 말해주려다가 말았다.
‘새 유니폼 나온 거 알면 그거 입고 뽐내겠다고 난리치겠지.’
케인이 유니폼 입고 일부러 사람 많은 거리룰 기웃거리면서 ‘크흠! 크흠!’ 하는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이거 언제 나왔어요?”
“자선행사 나간다고 하니까 기간에 맞춰서 새로 겨울용 유니폼 만들어서 보내주겠다고 하더라고. 케인은 괜히 들으면 귀찮게 굴 것 같아서 말 안 했지. 어쨌든, 이거 같이 입고 나가면 괜찮을 것 같아서 갖고 왔는데… 별로려나?”
태현은 이다비의 옷차림을 보고 생각했다. 보아하니 이다비가 옷들 중에서 고른 것 같은데, 저대로 나가고 싶다면 굳이….
“아니요!!!”
“입어야 해요!!!!”
“아. 깜짝이야.”
태현은 당황해서 동생들을 쳐다보았다. 평소 안 내던 목소리를 내서 그런지 동생들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언니가 그 옷을 입고 싶어 해요! 입게 해주세요!”
“이다비가 아직 말 안 했는데.”
“저는 동생이에요! 눈빛만 봐도 알아요!”
“너희 현실에서도 귓속말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