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122화 (1,121/1,826)

§ 나는 될놈이다 1122화

한 경기 더 남긴 했지만 이런 역대급 졸전을 본 팬들이 기대를 할 리 없었다.

실제로 첫 번째 경기에서 멘탈이 나간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은 그대로 무너져서 두 번째 경기도 내줘야 했다.

-대단하다, 베이징 파이터즈!

-우 승 후 보

-웃 음 후 보

-고개를 들어라, 베이징 파이터즈. 강팀한테 진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저렇게 진 건 좀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냐? 진짜 역대급 경기였다.

-리그 끝나고 MVP 경기 틀어줄 때 이 경기 나왔으면 좋겠다. 인기투표 할 때 여기 몰표하자.

전 세계의 판온 팬들은 단단히 결심했다.

리그 결산할 때 꼭 이 경기를 최고의 명경기로 뽑겠다고!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이 보여준 모습은 정말 강렬했다.

시작하자마자 각종 방어마법 치고 단단히 버틸 준비 하길래 ‘어? 자기네 진영에서 버티려고 저러나?’ 싶었는데….

그 다음에 주문서 찢어서 화려하게 자폭!

그래도 맵 전체가 뒤집어지는 동안 나름 어떻게든 버티긴 했다.

…즉석에서 대응한 팀 KL이 더 오래 버텨서 그렇지.

전원이 아다만티움 갑옷으로 무장한 데다가 아키서스의 권능 스킬들은 이런 종류의 광역기에 매우 강했다.

아무리 운석 데미지가 강하다 하더라도 회피하면 의미가 없는 것!

-야. 사베트가 진짜 갈 데까지 갔구나. 어쩌다가 저런 전술을 쓰게 됐냐?

-나름 대단한 감독이었는데….

-김태현이 너무 막강해서 미친짓 한 거 아냐? 저번에도 김태현 앞에 두고 미친짓 하더니만.

-그냥 평범하게 지면 되지 왜 굳이 저렇게 짐?

-사베트 잘리겠네. 안 그래도 경질 기사 계속 뜨던데.

-사베트가 게임단 내에서 손발 잘리고 압박 받고 있다는 썰 있던데 그거 진짠가?

-가능성 있지 않을까. 베이징 파이터즈 파벌싸움 심하다던데.

-그러면 이거 다른 사람이 지시한 전술일 수도 있는 거야?

-에이. 설마. 감독이 했겠지.

-야. 지금 중국 쪽 사이트 들어가 봐라. 베이징 파이터즈 팬들 폭발했다.

다른 팀 팬들이 신나서 떠드는 동안, 베이징 파이터즈 팬들은 불을 지르고 있었다.

사이트에서….

-감독 경질합시다! 아! 좀 짜르라고요!

-비싼 감독 써서 이 성적 내려고 했냐?? 잘라 좀!

그리고 현실에서!

-감독 나와 이 새끼야!!

-너 팀 KL하고 짜고 쳤지!!

-나와! 나오라고!

<분노한 베이징 파이터즈 팬들, 게임단 건물 습격…>

<감독 나와! 베이징 파이터즈 팬들, 건물 습격…>

“와. 장난 아니군.”

태현은 기사를 보며 경악했다.

이길 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지고 나니까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누가 보면 게임단 망하는 줄 알겠다!

“이렇게 보니까 좀 죄책감이 드는데….”

케인이 중얼거렸다.

“앗. 그래. SNS 계정으로 사베트 감독은 잘못한 거 없다고 글을 써줘야겠다.”

“내버려 둘까?”

“말려.”

태현의 말에 최상윤과 정수혁은 재빨리 케인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었다.

불타는 팬들의 분노가 케인한테 쏟아질라!

“감독 경질설이 엄청 도는데, 잘리는 걸까?”

“잘릴 것 같은데. 일이 저렇게 되면 누구든 간에 책임져야 할 사람이 필요한 법이니까.”

<베이징 파이터즈>는 팀 KL처럼 소규모 게임단이 아니었다.

모기업을 끼고 온갖 투자를 받는, 역사 있는 대형 게임단이었다.

성적을 못 내면 단장부터 시작해서 물갈이되는 게 당연한 일!

게다가 리그 초반에는 잘나가다가 이렇게 됐으니 더더욱….

“불쌍하다. 사베트 예전에 대단했었는데.”

“맞아. 예전에 성적 낼 때는 진짜 명감독 대접 받으면서 국대도 이끌었었잖아. 역시 판온은 게임이 달라서 힘들었던 걸까?”

“우리도 저렇게 욕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무서워지는데. 우리가 못하는 바람에 괜히 김태현이 욕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케인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케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어… 아니. 그건 아닌듯.”

“성적 안 나오면 우리를 욕하지 태현이를 욕하지는 않지 않을까. 사람들도 눈깔이 있는데….”

“혼자서 4인분쯤 하면 아무리 말아먹어도 욕은 못 할 것 같습니다.”

최상윤이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지면 욕 가장 많이 먹을 건 너지.”

“…왜?”

“어. 너무 당연한 말이라 왜냐고 물어볼 줄은 몰랐는데.”

“…….”

“굳이 이유를 들자면 우리는 얌전히 입 다물고 있을 때 네가 입을 열어서 아닐까?”

“그리고 집안일 안 하고 선배님한테 맡기고 있다는 걸 말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앞으로도 열심히 하자!”

케인은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러는 사이 태현은 곰곰이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베이징 파이터즈>가 저렇게 난리난 게 딱히 태현 님 때문은 아니잖아요.”

“응? 아. <베이징 파이터즈> 생각은 조금도 안 하고 있었는데.”

“…….”

“…….”

경기 끝난 뒤 태현은 <베이징 파이터즈> 생각은 조금도 안 하고 있었다.

그보다 보는 건 다른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다들 우리 갑옷이 아다만티움 갑옷이라는 걸 의심하는 것 같아서.”

<베이징 파이터즈>의 발악은 웃음거리로 끝났지만, 의외의 효과가 있었다.

팀 KL 선수들이 너무 단단하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태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선수들도 너무 잘 버티는 모습에 다들 이런저런 분석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석에는 당연히 새로 맞춘 장비가 올라오고 있었다.

-지금 제일 자주 쓰는 조합이 루비하고 적마철 섞은 다음 마법 부여해서 보석 추가로 박는 거 아닌가? 그거 같은데.

-아냐. 색이 아무리 봐도 달라. 그리고 그걸로는 저렇게 방어가 안 나와. 아예 열기가 튕겨 나가잖아.

-저거 아다만티움 아냐?

-어휴. 뉴비님. 아다만티움 조금 섞는다고 저런 효과 안 나오거든요.

-이래서 뉴비들은… 만져본 적이 없으니까 그게 무슨 만능열쇠인 줄 알아. 잘 다루지도 못하는 아다만티움 조금 섞어봤자 효과 별로 안 커. 차라리 잘 다루는 고급 보석들이나 광석들로 만드는 게 낫지.

-근데 지금 나온 조합들로는 아무리 해도 저런 게 안 나오잖아. 아다만티움 양 늘려서 통짜로 만든 거 아냐?

-…아니. 설마 그래도….

-저번에 해머맨이 칭호 뺏기지 않았냐? 김태현이 통짜 아다만티움 갑옷으로 만들어서 뺏긴 거라면 말 되잖아.

-맞네. 김태현 영지에 대장장이들도 많잖아. 드워프 NPC들도 보이던데.

-아니라니까! 그건 말도 안 돼!

대장장이 랭커들은 현실부정했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의외로 빠르게 받아들였다.

물론 전투 직업이 그 어려운 통짜 아다만티움 갑옷을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솔직히 태현이 말도 안 되는 업적을 해낸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던 것이다.

김태현이라면 대장장이 기술로 아다만티움 갑옷 만들었어도 놀랍지 않다!

“음. 이 정도면 다른 게임단에서도 분석을 끝냈겠군.”

인터넷에서 돌 정도면 게임단 분석팀들이 모를 리 없었다.

지금쯤 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들어갔겠지!

“그러면 앞으로 문제가 될까?”

“아니. 딱히?”

“!?”

“아다만티움 갑옷은 알고 있어도 딱히 공략 방법이 없어. 너 같으면 어떻게 할 것 같은데?”

태현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아다만티움 갑옷의 무서운 점은 약점이 딱히 없다는 점이었다. 무슨 특정 속성에 약한 것도, 특정 스킬에 약한 것도 없었다.

완전무결한 광석!

아다만티움 갑옷을 상대하고 싶으면 자기들도 입고 오거나, 더 강력한 무기를 들고 오거나, 아니면 레벨과 스킬로 찍어 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대회에서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단이 아니었다.

“문제없으면 고민할 필요 없는 거 아냐?”

“음… 아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제 다른 게임단들도 아다만티움 갑옷을 만들려고 하려는 게 문제지.”

선구자는 언제나 위대한 법.

그 전까지도 가능했지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 있게 마련이었다.

선구자 한 명이 이 길을 연다면 다른 사람들 모두가 ‘와, 저런 길이 있었구나!’ 하며 뒤를 따라가게 됐다.

이제까지는 ‘통짜 아다만티움으로 갑옷을 만들 수가 있나? 현재 대장장이 수준으로는 무리지’, ‘아다만티움 구하기도 힘든데 굳이 그렇게 무리하는 것보다는 더 좋은 조합으로 맞춰 입는 게 낫지’라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팀 KL의 갑옷을 보면 저렇게 생각을 바꿀 것이다.

와, 역시 갑옷은 아다만티움으로 만드는 게 최고겠구나!

“하지만 걔네들은 무리 아닐까?”

태현이 아다만티움을 제련할 수 있었던 이유는, <태초의 불>과 드워프 장로 베켈프 등 각종 강력한 도움을 받아서였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이런 게 없다!

“판온에 나만 머리 있냐? 머리 굴리고 시도하다 보면 방법은 나오게 마련이야. 그리고 나처럼 만들지 못하고 페널티 좀 입어도 아다만티움 갑옷 자체가 워낙 사기적이라서….”

판온에서 태현만 머리를 굴리는 게 아니었다.

다른 대장장이 랭커가 의외의 방법으로 아다만티움 갑옷을 제련하는 데 성공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게다가 페널티 좀 붙어도 상관없었다. 기존의 갑옷보다만 뛰어나면 의미가 있었으니까.

…물론 더럽게 비싸긴 하겠지만, 대형 게임단 정도면 현질로 갑옷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럴 경우 가장 커다란 문제가 지금 전략을 못 쓴다는 건데.”

“…!”

다른 일행들은 태현이 뭘 걱정하는지 깨달았다.

현재 팀 KL은 어떤 방식의 경기든 간에 비슷한 전략을 쓰고 있었다.

태현이 압도적인 피지컬로 먼저 돌진해서 진영을 깨뜨리고 휘저어서 한두 명 자르고 나면, 수적 우위로 밀어붙이는 것!

단순하게 들렸지만 이 단순한 전략을 막아낸 팀이 아직 아무도 없었다. 오죽하면 5인 탱커 같은 어처구니없는 전략이 나왔겠는가.

하지만 방어구가 더 좋아진다면 버틸 수 있을지 몰랐다. 아주 조금의 차이도 판온에서는 중요한 법. 게다가 아다만티움 방어구는 조금의 차이 수준이 아니었다.

“그,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

“그렇게 되면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열심히 싸워 이겨야지. 솔직히 이제까지 너무 쉽게 이기긴 했어.”

태현의 말에 모두 찔리는 표정을 지었다.

최고 리그의 경기에서 거의 날로 먹기만 해온 건 사실이었으니까!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 때문에 겁먹고 떨라는 게 아니라, 미리 생각해 두라는 거야. 다른 게임단들도 바보가 아닌데 대책을 안 세울 리 없잖아? 대책은 어느 순간에든 나오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더더욱 열심히 해야겠지. 자. 케인. 그래서 널 위해 연습을 준비했다.”

갑자기 화살이 자기한테 날아오자 케인은 기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슨 훈련이든 해내겠다고 한 게 본인이었으니까!

“너 <만일검> 칭호 받았냐?”

“아, 아니.”

한 명만 받을 수 있는 희귀한 칭호도 있었고, 조건만 맞추면 누구든 받을 수 있는 쉬운 칭호도 있었다.

<만일검> 칭호는 후자에 들어갔다. 하지만 결코 얻기 쉬운 칭호는 아니었다.

‘만 일 동안 검을 휘둘러야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검을 휘둘러야 얻을 수 있는 칭호!

물론 만 일까지는 아니었다. 중요한 건 정확한 자세로 똑같이 계속 휘두르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만 일 동안 휘두른 정도로 안정됐다!’고 칭호가 떴다.

“일단 그것부터 따자. 골짜기에 훈련장 있으니까 가서 휘둘러. 그리고 네가 안 딴 칭호가 또 뭐가 있더라… <방패 교환의 달인>, <방패 휘두르기의 전문가>, <걸어다니는 화살받이>….”

태현은 난이도 높은 칭호들 중 케인이 노가다로 딸 수 있는 칭호들을 정리했다.

그중에는 케인도 이름을 들어본 칭호들이 수두룩했다.

-에이, 저런 칭호를 어떻게 따? 저런 건 변태들이나 따는 거지.

…이렇게 말하며 넘겼던 칭호들!

케인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아, 아니. 잠깐만. 저건 혼자서 못 따는….”

“그래서 내가 널 도와줄 사람들을 준비했지. 자. 근접 공격은 앨콧과 앨콧이 불러준 랭커들이 때려줄 거고.”

앨콧과 앨콧이 아는 랭커들이 손을 흔들었다.

“후. 케인. 딱히 널 좋아해서 하는 일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라. 김태현 부탁이니 최선을 다하는 거야.”

“…이 쓸데없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식 같으니…!”

케인은 중얼거렸다.

예전에 태현한테 반항하던 그 모습은 어디 갔단 말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