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20화
주저하며 말하는 파티장들의 모습에, 케인이 분노해서 일갈했다.
“너무한 거 아니냐!”
“!??”
태현을 둘러싸고 울먹이던 파티장들은 고개를 돌려 케인을 보았다.
응? 왜 화를 내는 거지?
“어! 너희가 말없이 준비하다가 실패한 건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김태현한테 책임을 돌려? 제작진 쪽에는 너희가 사과해!”
“…뭔 소리래?”
“몰라. 잘 모르겠는데.”
파티장들은 당황해서 수군거렸다.
케인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감이 안 왔기 때문이었다.
“어, 김태현이 먹튀했으니까 가서 사정 설명하고 대신 사과해달라는 거 아니야?”
“아닌데요.”
“그게 뭔 개소리래?”
“우리를 그런 놈으로 봤단 말야?”
파티장들 중 몇몇은 사나운 눈빛으로 케인을 쳐다보았다.
누굴 쓰레기로 알고!
“아, 아니. 난 그런 건 줄 알았지. 요즘 판온에 너무 양심 없는 사람들 많잖아.”
‘내 얘기는 아니겠지.’
태현은 순간 생각했다.
니팅거스한테 너무 양심 없이 빼먹긴 했던 것이다.
케인이 사과하자 파티장들도 받아들였다. 태현이 목숨을 구해줘서 감사하러 왔는데, 케인에게 너무 뭐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김태현 앞에서 너무 욕하지는 말아야지.’
‘우리를 뭘로 보고… 그래도 김태현 앞이니까 참아야지.’
‘케인 너무 뭐라고 하면 김태현이 화날지도 모르니까 넘어가자.’
‘흠. 얘네 왜 이렇게 케인한테 관대하지? 좀 더 욕해도 되는데.’
태현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파티장들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게 일이 이렇게 되어서, 그쪽에서도 되게 곤란해하더라고요. 아무래도 내용의 흐름이 있다 보니까.”
니팅거스 레이드는 판온을 기반으로 하는 첫 영화가 될 예정이었다.
스트리밍 회사와 투자자들로서는 판온이라는 거대한 콘텐츠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판단할 수 있는 기회!
그런 상황에서 ‘이런 니팅거스 레이드가 실패하다니, 뭐, 어쩔 수 없지요. 그러면 후반에는 패배했다고 하고 끝내죠’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상황이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제작진들이 ‘야 이거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냐?’ 하며 당황해하는 동안 태현이 나타나서 공격대를 이끌고 2차 레이드를 성공시킨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당연히 회사와 투자자들은 ‘잘됐네! 김태현하고 이야기해서 마무리 지으면 되겠군!’ 같은 반응을 보이게 마련.
“그래서 김태현 선수하고 다른 사람들이 좀 나와 줬으면….”
쾅!
“??”
뒤에서 쾅 소리가 들리자 다들 고개를 돌렸다. 케인이 눈을 깜박거리며 서 있었다.
“내, 내가 영화에… 나온다고??”
“아니, 그쪽 말고 김태현 선수인….”
“어쨌든 나도 나오긴 할 거 아니야!”
“그거야 그렇긴 하겠지만 일단 중요한 건 김태현 선수….”
“무, 무조건 해야 해! 무조건 해야 해 이건…!”
케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지만 태현은 단칼에 잘랐다. 케인의 기분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쿨한 태도였다.
“흠. 미안하군. 지금 그나마 남는 시간에는 리그 경기를 준비하고 있거든.”
“!!!”
케인은 팔을 허우적거리며 입을 뻐끔거렸다. 마치 소리 없는 비명을 지리는 것 같았다.
옆에서 저러는데 눈 하나 깜박 안 하는 태현의 태도에, 파티장들은 다들 감탄했다.
이야, 역시 게임단 하나를 직접 만들어서 꾸리는 사람은 다르구나!
그릇이 달라!
“김, 김태현…! 열심히 할게! 정말 열심히 할게!”
“열심히 하는 놈은 보통 그렇게 말하기 전에 행동으로 보여주게 마련인데 넌 아니잖아.”
팀 KL의 스케줄은 간단하지만 철저했다.
기본적으로 판온에 시간을 투자하고, 캡슐 밖으로 나와서 쉴 때에는 다른 팀들의 영상을 보면서 이런저런 전술 토론을 나눴다.
사실 말이 전술 토론이지, 태현이 다른 팀원들을 가르치는 시간에 가까웠다.
-케인. <베이징 파이터즈>가 상대라고 가정했을 때 딜러 두 명이 안으로 파고들었고 한 놈은 버프 최대로 올린 상태다. 그때 네가 해야 할 행동은?
-어, 어… 잠깐. 네가 있는데 어떻게 두 놈이 파고들지? 죽지 않았을까?
-…케인 놈 예리한걸?
-하지만 저 대답은 한 대 맞을 대답인 것 같습니다.
실질적으로 팀에서 태현만큼 분석력이 좋은 사람이 없었으니 이런 것도 다 태현의 몫!
팀 KL의 에이전트인 빈센트는 팀 선수들을 해외의 토크쇼나 방송, 광고에 출연시키고 싶어 했지만 이런 부분에서 태현은 철저했다.
광고는 시간 낭비 없이 팀 KL의 기존 영상에서 추출해서 쓰는 정도로만 허락한 것이다.
이 정도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수입이 들어오긴 했지만 빈센트 입장에서는 아까울 뿐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오는 게 이런 방송이고, 나오게 되면 게임을 잠시 멈추고 나오는 법인데….
-하긴, 그러니 팀 KL이 최고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거겠죠. 응원하고 있습니다. 김태현 선수.
-좀 더 아쉬워 할 줄 알았는데요?
-아니요. 선수에게 돈을 벌어다주는 게 제 일이지만, 선수의 커리어를 유지하는 것도 제 일이거든요. 그리고 솔직히, 김태현 선수 정도면 방송을 나오든 안 나오든 상관없습니다. 일류 선수와 달리 초일류 선수는 정말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게 이쪽 업계니까요.
일류 선수가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방송에 나오고 이것저것 할 때, 초일류 선수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됐다.
존재만으로 명성을 만드는 게 바로 초일류!
…는 빈센트 생각이었고 케인 생각은 달랐다.
영화라니!
“뭐든지 하겠다!”
“!”
그 모습에 최상윤과 정수혁은 감탄했다.
“케인의 눈빛을 봐! 저 굳은 다짐을 한 눈빛을!”
“대단하긴 합니다만… 평소에 저 눈빛을 보여줬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 바로 그게 저놈의 대단한 점이지. 평소에 저거 절반만 했어도 태현이가 잔소리를 안 해도 됐을 텐데!”
그러는 사이 케인은 여섯 개의 팔로 태현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엉엉엉! 뭐든지 할게! 게으름 안 부릴게! 쉬는 시간에 유X브로 판온 웃기는 영상 안 찾아볼게!”
“그런 걸 보고 있었냐?”
“내 이름 검색도 안 할게!”
“…….”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시간낭비를 하고 있었던 케인!
옆에서 듣고 있던 파티장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김태현 선수. 저희 상황이 상황인지라 말씀드리는 게 조심스럽긴 한데요, 그렇게 시간을 뺏지는 않을 겁니다. 이게 알다시피 판온 기반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같은 거라, 추가로 찍으실 건 인터뷰 정도일 거예요.”
원래 영화의 내용은 간단했다.
니팅거스 레이드에 참가하는 랭커들과 플레이어들을 소개하고, 니팅거스가 어느 정도 강력한 보스인지 알려주고, 니팅거스를 잡는 준비 과정을 보여주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잡는 것으로 감동적인 마무리!
…이 잡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결말 부분에 태현 공격대가 대신 들어가는 것 정도였다.
<니팅거스를 잡은 공격대 플레이어들>이 아니라 <이렇게 살벌한 니팅거스를 쓰러뜨린 김태현 공격대>로 내용이 확 바뀌는 것이지만 지금 누가 그걸 신경 쓰겠는가. 아무도 불만 없었다.
“인터뷰면….”
“그리 길지도 않을 겁니다. 김태현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김태현 선수가 직접 말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관련 영상들이 수두룩해서 그중 뭘 골라야 할지 고민될 정도!
“김태현 선수께서 하실 건 판온에 대한 생각이나,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고, 니팅거스를 잡기 위해 나섰을 때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정도 말씀해 주시는 게 다일 겁니다.”
말하면서 파티장은 머릿속으로 인터뷰를 그려보았다.
-1차 공격이 실패했을 때, 근처에 있던 모든 플레이어들은 도망쳤습니다. 랭커들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김태현 선수는 나섰죠. 왜 그러셨습니까?
-그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판온의 많은 플레이어들이 피해를 봤을 테니까요. 그런 사람들을 돕는 게 제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런 도전은 언제나 제 삶의 목표였으니까요. 남들은 모두 다 말렸지만, 저는 제가 니팅거스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이거지!
고결하고 자신감 넘치는 영웅!
파티장은 자기가 상상하고도 너무 그럴듯해 뿌듯했다.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되나?”
“예? 예. 그거면 됩니다.”
‘음. 니팅거스 못 잡으면 오스턴 왕국으로 던질 생각이었다고 하는 건 영화 분위기랑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어, 우리는?”
듣고 있던 케인은 당황해서 물었다. 파티장들은 케인을 보며 말했다.
“옆에서 김태현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받았는지 말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만?”
“…그런 거 말고! 다른 거! 좀 폼나는 역할은 없어?”
“이미 판온에서 활약을 했는데 뭘 새로 찍을 게 있다고요?”
니팅거스 레이드 자체로 이미 폼나는 활약은 충분했다.
어마어마한 액션과 화려한 마법, 스킬들의 향연!
필요한 건 다 있었다. 이제 여기에 김태현의 이야기만 조금 들어가면 완벽해지는 것이다.
“흠. 그러면 이번 기회에 해명이나 하시는 건? 맨날 집안일 안 하고 얻어먹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해명하거나….”
“내 친구는 한국에서는 그렇게 게으름뱅이처럼 살아도 안 쫓겨나나며 놀라워하던데.”
파티장들은 냉정하게 말을 던졌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처럼 날아가 박히는 수준!
케인이 대답 못하고 눈물만 글썽거리자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 고민해 보기는 하지. 하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않는 게 좋을 거야. 리그 일정도 이제 곧 후반으로 넘어가는 상황이라 더 집중할 생각이거든.”
‘이미 압도적으로 1위인데 뭘 더 집중을 하려고….’
‘충분한 수준 아닌가?’
‘그냥 좀 더 쉬어도 될 것 같은데.’
‘솔직히 지금부터 계속 져도 플레이오프는 나갈 것 같다.’
파티장들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들이 신세 진 입장이니까!
그들은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역시 김태현 선수는 철저하군요.”
“맞는 말씀이에요. 리그는 길고 지금 잘나간다고 방심하면 안 되죠.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그 말에 옆에 있던 다른 파티장들이 속삭였다.
“야. 적당히 해. 난 <알래스카 폴라베어즈> 팬이라고. 김태현이 여기서 더 최선을 다하면 다음에 만날 때 큰일이란 말야.”
“맞아. 난 <런던 파이레츠> 팬인데….”
이야기를 마친 파티장들은 다시 말했다.
“김태현 선수! 최선을 다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휴식도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응원하겠습니다! 파이팅!”
“그리고 영화도 진지하게 고민해 주세요!”
“그래그래. 제안 고맙고, 나도 욕심이 있어서 니팅거스 상대한 거니까 너무 부담가지지 말라고.”
태현은 파티장들을 배웅했다. 파티장들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고 떠나갔다.
마지막으로 공격대장이었던 린즈펑이 남았다. 린즈펑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말했다.
“김태현 선수.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괜찮다니까. 농담이 아니라 나도 내 욕심 때문에 한 거라고. 그쪽도 판온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닐 텐데 뭘 이런 걸로 부담을 가지고 그래?”
“물론 압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제가 정말 크게 도움을 받았다는 건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른 파티장들과 달리 이 모든 걸 이끌고 주도했던 린즈펑의 부담감과 책임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태현이 자기 욕심 때문에 레이드에 뛰어들었다 하더라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였다.
특히 그 레이드가 모든 랭커들이 도망칠 정도의 극악 난이도 레이드일 경우에는 더더욱!
“이번 일은 반드시 기억하고 그 은혜를 갚겠습니다. 나중에, 저나 다른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만 주십시오.”
“오….”
말하고 난 린즈펑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태현 앞에서 이런 말을 하다니.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꼴 아닌가.
니팅거스를 상대하는 태현은 그야말로 모두의 예상과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물론 김태현 선수 같은 분에게 저희의 도움은 별로 필요 없으시겠지만….”
“아니. 필요한데. 난 언제나 도움을 기쁘게 받는 사람이라고. 너희 정도면 충분히….”
“하하. 그렇게 배려해 주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이 자식 말하고 나니까 귀찮을 것 같아서 이러는 건 아니겠지?’
[카르바노그가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