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17화
갑자기 싸늘해지는 분위기!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석판을 꺼냈다.
“…이 석판을 되찾아서 돌려주려고 온 거였는데….”
용용이, 흑흑이, 아키서스의 전투천사들 모두 차가운 눈길로 니팅거스를 쳐다보았다.
무례한 것에도 정도가 있지 이 레드 드래곤이 감히?
심지어 밑에 묶여 있던 악마들도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와, 악마도 저런 무례는 안 저지른다.
방금 서로 명예를 걸고 협상해놓고 의심하다니!
악마도 안 하는 짓!
태현은 슬픈 눈으로 니팅거스를 쳐다보았다.
“그래… 뭐 그럴 수 있겠지… 석판 돌려주려고 왔는데 그걸 씹고 미쳐 날뛰면서 도시 몇 개를 날려 버린 너라면야….”
-아,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아키서스 님! 오해! 오해!
“됐다. 오해는 무슨. 네 진심을 아주 잘 알았다.”
-주인님. 레드 드래곤과는 역시 상종을 하지 말아야….
음험하고 교활한 블랙 드래곤, 그것도 자기보다 새까맣게 어린 드래곤한테 저딴 소리를 듣자 니팅거스는 매우 분노했지만….
지금은 따질 수가 없었다.
‘크윽!’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키서스 님. 제가 소문 때문에 그릇된 편견을 가져 아키서스 님을 오해했습니다!
[딱히 오해는 아닌…]
“뭐… 그럴 수 있지… 내가 저 프로즈란드까지 쫓아가서 온갖 이상한 잡놈들하고 엮여가면서 이 석판을 찾아서 돌려주려고 오긴 했는데, 오자마자 공격받고 내(가 점령하려고 했던) 도시는 불타고 했지만 뭐 그럴 수 있지….”
-…….
레드 드래곤도 양심이 있었다. 드래곤 하트 옆 어딘가쯤에 있는 양심!
태현은 그 양심을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갔다.
“난 레드 드래곤이 호쾌하고 믿을 수 있는 그런 드래곤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런 드래곤 맞습니다!
“아냐. 내가 오해한 것 같아….”
-…주문서! 주문서를 드리겠습니다.
[레드 드래곤, 니팅거스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당신에게 보상을 제안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추가로 뜯기는 레드 드래곤!
그 모습에 잡혀 있던 악마는 감탄했다.
역시 아키서스다!
상대의 약점을 한 번 물어뜯으면 지옥견처럼 끝까지 물어뜯는구나!
“무슨 주문서?”
-제, 제가 직접 만든, 브레스를 새겨 넣은 주문서입니다.
“음….”
레드 드래곤 브레스!
강력한 화염을 일격에 뿜어내는 브레스의 파괴력을 따라갈 수 있는 건 몇 개 되지 않았다.
물론 주문서는 아무래도 직접 쏘는 것보다는 약하겠지만, 니팅거스 정도 되는 드래곤이 만든 주문서면 플레이어들이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어. 다른 건 없나?”
-?????
물론 다른 주문서도 있긴 했지만, 니팅거스가 만든 마법 주문서 중 브레스보다 더 강한 게 어디 있겠는가.
니팅거스는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브레스 주문서가 있는데 다른 걸 왜…?
“아니. 음… 그게 내가 사디크의 권능을 갖고 있어서 레드 드래곤 브레스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화염 용오름 소환>이라는 권능 스킬까지 있는 와중에 굳이?
태현의 말에 흑흑이가 괜히 어깨를 으쓱거렸다.
후후!
물론 니팅거스 입장에서는 드래곤의 수염을 잡아 뜯는 수준의 도발이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잡신 새끼… 아니.
-…….
무심코 튀어나온 본심에 흑흑이가 정색했다.
사디크도 좋은 신이거든…!
-크흠. 크흠. 사디크도 대단한 신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레드 드래곤의 화염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 아무리 그래도 사디크가 화염으로 먹고사는 신인데….”
태현이 보기에 사디크는 정말 화염 하나로 먹고사는 신이었다.
화염 아니면 예전에 굶어 죽었을 신!
[카르바노그가 아키서스의 눈이 참으로 정확하다고 칭찬합니다.]
‘내가 사디크 하나는 확실하게 견적을 냈지.’
물론 레드 드래곤이 강하고 마법의 달인이지만, 사디크보다 더 강한 화염을 갖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사디크의 화염 특성은 나름 쓸 만한 것이다.
잘 타고, 오래 타고, 신성 효과도 있고….
‘흠. 생각해 보니 무슨 건전지 같군.’
“레드 드래곤의 화염에는 어떤 장점이 있지?”
-강하고 화끈합니다.
“…그건 화염이 다 그렇지 않나?”
미지근한 화염은 화염이 아니잖아!
태현의 지적에 니팅거스가 당황했다.
물론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 따지면 할 말이 없는데…!
-아니 그게 정말로 강한데… 제, 제가 권능을 부여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화를 푸시지요.
[니팅거스가 레드 드래곤의 권능 스킬 중 하나, <레드 드래곤의 화염>을 제안합니다!]
이 무슨 사기적인 보상…?
“으음!”
…이긴 한데 진짜 레드 드래곤인 게 아쉽다!
드래곤의 권능 스킬은 정말 어디서 얻을 수 없는 사기적인 보상이긴 한데, 태현 입장에서는….
‘아. 니팅거스가 다른 드래곤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화염이 겹치는 것!
그리고 그 태현의 속마음은 니팅거스도 눈치채고 있었다.
굴욕 중의 굴욕!
-사디크보다 더 강하다고 했잖습니까! 왜 못 믿으시는 겁니까! 받으십시오! 좀!
“아니. 잠깐만. 생각 좀 해보고.”
-받으십시오! 에잇! 받으란 말입니다!
이제는 자존심 문제!
[니팅거스가 강제로 레드 드래곤의 권능 스킬, <레드 드래곤의 화염>을 건네줍니다!]
[니팅거스가 강제로 레드 드래곤의 주문서, <레드 드래곤 브레스 주문서>를 건네줍니다!]
레드 드래곤 브레스 주문서:
레드 드래곤의 숨결, <레드 드래곤 브레스>가 담겨 있는 주문서입니다. 한 번 사용하면 파괴됩니다!
(니팅거스의 허락을 받은 사람만이 쓸 수 있음)
<레드 드래곤의 화염>
사용하는 화염 관련 스킬에 레드 드래곤의 화염 속성을 추가합니다.
“아니! 생각 좀 해보겠다는데 왜 억지로 주나!”
-받으란 말입니다!
[<레드 드래곤의 화염> 권능 스킬을 얻었습니다!]
[레드 드래곤의 힘으로, 영지에 설치된 불완전한 <태초의 불>이 더욱더 강화됩니다!]
[완전한 화염의 길에 한 발짝 더 발을 디뎠습니다.]
[완전한 화염의 길로 나아가십시오!]
<완전한 화염의 길-화염 마법 스킬 퀘스트>
태초에 완전한 불이 있었다.
그 불은 뿔뿔이 흩어져 나뉘었지만, 화염을 다루는 모든 이들은 아직도 완전한 불의 힘을 찾아 헤매고 있다.
당신도 그중 한 사람!
“???”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난 딱히 화염 마법 스킬 전문이 아닌데…?
그냥 어쩌다가 얻은 거지!
그러나 태현의 말을 무시하고 퀘스트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당신은 <사디크의 화염>을 얻었고, <태초의 불>을 지폈으며, <레드 드래곤의 화염>을 얻었다.
이는 진정한 화염의 추구자만이 할 수 있는 위업이다!
세계에 흩어진 화염의 비밀을 더욱더 모아라. 그리하여 완전한 화염의 길을 걸어라!
보상: <완전한 태초의 화염> 스킬.
퀘스트 등급: 전설
‘전설 퀘스트 홍수군.’
화산의 저주 퀘스트 깨면서 전설 퀘스트가 몇 개가 나오는 건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 화염술사 쪽 퀘스트 같은데….’
화염 마법을 전문으로 뛰는 플레이어들은 내버려 두고 왜 태현한테 뜨는 건지!
태현은 저런 화염 권능 찾을 시간에 아키서스의 권능을 하나라도 더 찾아야 했다.
깰 수 있을까?
‘받아서 손해 보는 건 없다지만 아무리 봐도 가능성이 좀 희박해 보이는….’
-어떻습니까? 아키서스 님?
“응? 뭐가?”
-…레드 드래곤의 화염 말입니다.
“아. 음. 좋은데? 정말 좋군. 어떤 점이 좋냐면… 하여간 정말 좋아.”
[카르바노그가 장난하냐고 말합니다.]
어린아이도 속지 않을,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은 칭찬!
그러나 니팅거스는 매우 만족한 것 같았다.
-그렇습니다. 사디크의 화염보다 레드 드래곤의 화염이 한 수 위인 건 당연한 일이지요.
“그, 그래. 어쨌든 주문서 고맙고. 석판이나 받아라.”
뜯어낼 거 대충 다 뜯어낸 태현은 슬슬 끝내고 튈 준비를 했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니팅거스가 소중히 여기는 레드 드래곤의 유물을 되찾아 돌려주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니팅거스의 친밀도가 크게 오릅니다!]
[니팅거스의 공적치 포인트가 크게 오릅니다!]
[레드 드래곤 종족이 종족의 유물을 되찾은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레드 드래곤 휘하의 종족들을 상대할 때 추가 보너스를…]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니팅거스가 분노를 풉니다. 대륙에 퍼진 <화산의 저주>가 이제 곧 끝납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
레벨 200까지 앞으로 4!
태현은 이 사실에 기뻐하기 전…에, 더 중요한 사실을 먼저 처리하기로 했다.
“잠깐. 그럼 지금 <화산의 저주>가 끝나는 건가?”
-예. 바로 풀어 드리겠….
“그거 혹시 좀 더 있다가 풀 수도 있나?”
-…….
니팅거스도 당황!
-아, 아니. 좀 더 있다가 푸는 게 의미가 있습니까?
“원래 뭐든지 급하게 처리하면 뒤끝이 좋지 않은 법이잖아. 좀 천천히 풀어야지.”
<화산의 저주>는 풀긴 풀어야 했다. 태현의 골짜기 말고 다른 곳들도 지금 타들어 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풀기 전에 팔 수 있는 건 다 팔고 푸는 게 낫겠지.’
지금 <화산의 저주> 때문에, 냉기 관련 아이템들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냉기 보호 주문서> 팝니다! 한 번 쓰면 하루 내내 시원해요!
-<차가운 서리의 목걸이> 팝니다! 이 목걸이 하나면 어디든 쾌적한 판온 가능!
-<빙결의 생수>….
-…….
매일매일 가격이 오르고 있는 아이템들!
오죽하면 상인들이 안 팔고 ‘더 오르겠지?’ 하면서 버틸 정도였다.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러면 풀라고 할 때 풀겠습니다.
인간들이 더위에 죽든 말든 니팅거스가 알 바 아니었다.
아키서스가 원한다면 뭐 그렇게 해주자!
-그러면 이만….
<용의 파멸>과 <용의 추락> 때문에 날지는 못하지만, 니팅거스는 헤엄쳐서라도 돌아갈 생각이었다.
한동안 아키서스랑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
“아. 잠깐만.”
-??
“가기 전에 나 좀 태우고 걸어 다녀줄 수 있나?”
-????
니팅거스는 의아해했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유가 궁금했다.
아키서스의 화신한테는 이미 두 마리의 드래곤이 있을 텐데?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어째서…?
“아무래도 드래곤하면 레드 드래곤이 최고니까, 한 번 그 등에 타는 영광을 누려보고 싶어서지.”
-…하핫! 역시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니팅거스의 친밀도가 크게 오릅니다!]
[니팅거스가 매우…]
[용용이가 슬퍼합니다.]
[흑흑이가 슬퍼합니다.]
-애들아. 진심 아닌 거 알지?
-믿, 믿고 있었습니다!
-난 의심 안 했다. 주인이여!
니팅거스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는지, 칭찬 한 번 해줬다고 참 좋아했다.
보는 카르바노그가 고개를 저을 정도!
[니팅거스가 당신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줍니다.]
[공적치 포인트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태현은 공짜로 니팅거스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소리를 막고 있던 언령 마법이 해제됩니다!]
“!!!”
“뭐, 뭐야. 대화 끝났어?!”
“어떻게 된 거죠? 발표 났나요?”
“나도 잘….”
“김태현이 니팅거스 위에 있어!! 김태현이 니팅거스 위에 탄 거야!!!”
“내가 뭐라고 그랬냐! 김태현이 니팅거스한테 목줄 채우고 펫으로 만들었다고 했잖아!”
“아, 아니. 진짜 그게 사실이었어…?”
반신반의하던 플레이어들도 충격에 빠져 중얼거렸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드래곤을 어떻게 펫으로….’ 하던 사람들도 의심을 거두게 만드는 모습!
대체 저게 무슨…!?
“자. 니팅거스. 저쪽으로 좀 걸어가 줄래?”
-무슨 의도인지 좀 궁금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