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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116화 (1,115/1,826)

§ 나는 될놈이다 1116화

랭커들이 강하게 나오자 간부들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다른 선택이 없었던 것이다.

-쑤닝 님. 앨콧에게 연락하는 게….

-크윽! 하지만 내가 어떻게 앨콧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나도 양심이 있는데!

‘쑤닝 대체 왜 저러냐?’

‘몰라. 뭐 잘못 먹었나 봐.’

쑤닝이 혼자 인간극장을 찍자 다른 랭커들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모르는 사이 쑤닝과 앨콧이 부쩍 친해진 것이다.

몇 번의 헌신적인 퀘스트뿐만 아니라 영지 수입도 꼬박꼬박 바친(사실은 김태현과 내통하는 게 들킬까 봐 찔려서지만) 앨콧!

이미지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쑤닝은 눈시울을 붉힌 채 말했다.

-앨콧한테 내가 직접 말하겠다. 적어도 그게 예의겠지!

-역시 쑤닝 님이십니다!

* * *

-다섯 번… 다섯 번이라면 좀….

니팅거스가 결국 다섯 번까지 올라왔다.

태현이 대륙 어디에 있든 부르기만 하면 언제든 바로 달려오는 소환권 다섯 번!

‘다섯 번 정도면….’

[괜찮은 것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주인이시여.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다른 일행들도 동의!

드래곤을 다섯 번 부려먹을 수 있는 거라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니팅거스는 내심 찜찜했는지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한 번 불렀을 때에는 쓰러뜨려야 하는 적이나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불러놓고 일부러 시간을 끈다거나 애매한 목표를 말하면 안 되는 겁니다. 아키서스 님.

골드 드래곤 덕분에 드래곤 업계 사이에 퍼진 피해사례!

니팅거스는 자기가 속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날 뭘로 보고. 적을 상대할 때 아니면 부르지도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왕국을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게 만들어달라거나, 세계의 모든 왕국을 다 멸망시켜달라거나, 그런 막연한 목표는….

“안 해. 안 해.”

[카르바노그가 그런 소원이 있었다며 감탄합니다!]

‘흠. 나는 사실 소원 하나를 두 개로 늘려달라는 걸 생각했는데….’

[카르바노그가 다시 한번 감탄합니다. 역시 아키서스는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런 건 안 되겠지.’

니팅거스도 예상했는지 안 된다고 단단히 말했다.

사실 다섯 번이면 충분했다.

드래곤을 부를 적과 다섯 번이나 싸워야 하는데, 그럴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악마 대공 다 죽여도 세 번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카르바노그가 싸울 일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앞으로도 적은 많을…]

‘재수 없으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말자.’

문득 생각이 난 태현은 니팅거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내가 목표를 이상하게 제시한 경우랑 별개로, 네가 해내지 못할 경우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니팅거스는 태현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내가 적 하나와 싸우다가 이기기 힘들어서 너를 불렀다고 치자고. 그런데 네가 이기지 못하고 질 수도 있잖아.”

-……으하하하하하하핫!

니팅거스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말도 안 되는 농담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 웃음에 밖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니팅거스가 웃었다!”

“김태현을 인정한 게 분명해!”

“김태현을 자기 주인으로 인정했기에 저런 웃음을 터뜨리는 거지.”

“여러분. 저는 <에랑스 왕국의 영웅 조련사> 직업을 가지고 있는 랭커 고정욱입니다! 펫만 100마리 넘게 길들여 본 제 눈으로 봤을 때, 레드 드래곤이 펫으로 된 게 거의 99% 확실하다고 봅니다!”

“오오오…! 그게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쳐 날뛰던 니팅거스가 왜 그렇게 얌전해졌겠습니까! 제 생각에, 김태현 선수가 쓴 그 스킬은 강력한 테이밍 스킬이 분명합니다!”

지평선 끝에서 끝까지 관통하는 빛줄기!

그건 바로 레드 드래곤도 길들이는 강력한 펫 스킬이 분명했다.

“김태현 선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드래곤 계열의 희귀한 펫을 두 마리나 데리고 다니잖습니까!”

“확실히 그건 그래.”

“아키서스가 사실 펫이나 테이밍의 신인가? 기록이 지워졌으니 그랬을지도….”

펫이나 테이밍이 아닌 사기계약이었지만 플레이어들이 알 리 없었다.

그러는 사이 니팅거스는 웃음을 멈췄다.

-…아, 아니. 진심으로 하신 소리십니까?

“진심으로 한 소리인데…?”

-아무리 아키서스 님이라지만 저를 뭘로 보시는 겁니까?! 저, 레드 드래곤 니팅거스입니다!

니팅거스는 당혹과 황당이 섞인 눈동자로 태현을 보며 외쳤다.

아무리 그가 태현한테 숙이고 들어갔다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제가 지금 힘을 내지 못하는 건 대마법 <용의 파멸>과 <용의 추락>을 맞아서지, 절대 제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이 마법만 없다면….

듣고 있던 전투천사들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이 마법만 없다면 뭐? 아키서스 님을 공격하겠다 이거냐?

-드래곤 놈답게 속이 아주 시꺼멓구나!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아키서스 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니팅거스는 급히 웃었다. 그러자 전투천사들이 목줄 채워서 끌고 다니는 악마들이 으르렁거렸다.

-저 드래곤의 웃음에서는 사악한 기운이….

‘아오.’

니팅거스는 천사와 악마들을 저주했다.

천계나 마계에 있을 것이지 왜 대륙에 와서 깝죽댄단 말인가.

정말 싫다 싫어!

-제가 질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정말?”

-예! 아키서스 님. 대륙에 어떤 적이든 간에 이 니팅거스를 이길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설령 같은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니팅거스는 생각했다.

물론 같은 드래곤 정도 되면 니팅거스도 지지는 않겠지만 이기기 힘들 수 있었다.

그러나 니팅거스 쪽에는 아키서스의 화신이 있었다.

아키서스의 화신+니팅거스 vs 다른 드래곤이라면?

니팅거스는 태현의 전투력을 아직도 오해하고 있었다.

나이 많은 레드 드래곤급 전투력은 되는 걸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흠. 카르바노그. 니팅거스가 저렇게 말할 정도인가? 너무 자신감이 과한 것 같은데.’

[카르바노그도 미심쩍어합니다. 물론 니팅거스가 적수를 찾기 힘든 드래곤이긴 하지만 다른 강한 드래곤들도 대륙에 적게 남아 있을 겁니다. 또, 악마 대공 정도가 되면 니팅거스도 쉽게 이길 수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악마 대공? 다른 드래곤이야 그렇더라도 악마 대공은 대륙으로 나와 봤자 레벨 1000 못 넘기지 않나? 못 넘길 거 같은데.’

니팅거스의 추정 레벨은 1000 이상.

<용의 파멸>과 <용의 추락>이 다 풀리면 그 레벨의 무시무시한 힘이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

그에 비해 악마 대공이 대륙으로 나오면 마계의 힘을 엄청나게 깎고 나와야 하는 상황.

아무리 봐도 레벨 1000은 못 넘길 것 같았다.

[물론 순수한 레벨로 따지면 니팅거스를 압도하기는 힘들지만, 악마 대공에게는 노련한 전투 경험이 있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악마 대공들은 신과 싸울 때부터 존재하던 유구한 강자들이었다.

당연히 드래곤들과 싸운 경험도 풍부했다.

[<용의 파멸>이나 <용의 추락>처럼 드래곤을 상대할 마법이나 아이템을 분명 여럿 가지고 있을 테니, 싸우게 되면 니팅거스가 불리할 것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설명 고마워. 카르바노그.’

[카르바노그가 엣헴합니다!]

결국 니팅거스는 악마 대공과 붙어도 불리하고, 같은 드래곤과 싸워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데….

‘그런데 뭐 저리 자신감이 넘치지? 레드 드래곤 종특인가? 아니면 나나 카르바노그가 잘못 파악한 건가?’

태현의 고민을 다른 뜻으로 이해했는지 니팅거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 제 영혼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아키서스 님이 말한 적이 누구든 간에 반드시 쓰러뜨리겠다고! 만약 제가 잡지 못한다면 저는 골드 드래곤의 전례를 따르겠습니다.

“?”

[?]

-?

듣고 있던 태현, 카르바노그, 용용이 모두 당황했다.

뭘 따르겠다고??

[니팅거스가 협상에 자신의 영혼을 걸고 맹세합니다.]

[만약 니팅거스가 맹세를 지키지 못할 경우, 니팅거스는 레드 드래곤 종족 중 하나를 아키서스에게 신수로 바치게 됩니다.]

먼 옛날, 골드 드래곤의 장로가 아키서스와 계약 한 번 잘못 해서 어린 골드 드래곤 용용이를 신수로 건네줬던 것처럼….

니팅거스가 지금 똑같은 짓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카르바노그가 드래곤은 모두 다 대가리가 없…]

‘어허. 카르바노그. 조용히 해. 들을라.’

태현은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카르바노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못 지키면 니팅거스가 레드 드래곤 하나를 신수로 내준단 말이지?

“그러니까 내 적을 못 잡는다면 적적이를 신수로 바친다는 건가?”

벌써 이름까지 지은 태현!

-적적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겠지요.

니팅거스는 자신만만했다.

‘보아하니 아키서스가 트집을 잡으려는 모양인데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니팅거스는 태현이 그의 힘을 깎아내려서 좀 더 횟수를 늘리려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 트집에 넘어갈 니팅거스가 아니었다.

대륙에 그의 적수는 없다!

…아키서스까지 함께 한다면 더더욱!

“좋다! 니팅거스. 네 자신감을 믿어보겠다.”

태현은 흡족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니팅거스가 잘 싸워준다면 좋고, 못 싸워준다면 그것도 좋았다.

완벽하군!

[협상이 완료되었습니다!]

[아이템, 니팅거스의 나팔 다섯 개를 얻었습니다.]

[니팅거스를 부를 수 있는 이 나팔은, 신성한 영혼의 맹세가 담겨 있는 강력한 나팔입니다. 강력한 레드 드래곤은 그의 분노를 당신의 적에게 쏟아부을 것입니다!]

[……]

[……]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오.’

최고급 화술 4 스킬이 벌써 94%!

화술 스킬이 최고급을 찍고 나서 정말 지지리도 안 오르게 된 걸 생각해보면, 협상 한 번으로 94%를 찍었다는 게 대단한 것이었다.

드래곤과의 협상 덕분!

‘드래곤과의 협상이 흔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긴 하지.’

[칭호, 새로운 드래곤의 계약자를 얻었습니다.]

새로운 드래곤의 계약자: 먼 옛날, 드래곤과 계약을 맺은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런 영웅들은 역사 뒤로 사라졌지만, 오늘 당신은 새로운 전설의 장을 열었습니다!

스킬 <드래곤의 형상> 사용 가능, 드래곤 관련 장비 착용 시 추가 보너스.

<드래곤의 형상>

일시적으로 드래곤의 힘을 불러냅니다. 전투 능력이 크게 향상됩니다!

<드래곤의 형상>은 예전에 얻었던 <알렉세오스의 축복>와 비슷한 스킬이었다.

물론 그것처럼 강력하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인 스킬 쿨타임과 MP 소비를 줄여준다는 점에서는 강력한 스킬이었다.

쿨타임이나 MP 소비를 줄여주는 스킬은 언제나 강력한 스킬!

[레벨 업 하셨습니다!]

‘195!’

이번 <화산의 저주> 연계 퀘스트는 정말 대박 퀘스트였다.

이 퀘스트에서 태현은 어마어마한 레벨 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남들 기준에서 어마어마한 레벨업은 20, 30 정도가 한 번에 오르는 거였지만 어쨌든….

예전에는 정말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레벨 200이 이제 슬슬 가까워지자 태현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게임 끝나기 전까지 못 찍는 줄 알았더니…!

-그러면 아키서스 님. 우리 서로 행복하게 헤어지….

니팅거스는 한시라도 빨리 이 불편한 자리를 뜨고 싶었는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그러나 태현은 아직 볼일이 하나 더 남은 상태였다.

“아니. 니팅거스. 사실 남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원래 이거 때문에 널 찾은 거였는데….”

태현은 주섬주섬 석판 아이템을 꺼내려고 했다. 그러자 니팅거스가 기겁해서 외쳤다.

-니팅거스 님! 서로 명예를 걸고 협상한 거 아니었습니까! 신으로서 명예를 지키셔야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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