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15화
그러나 니팅거스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니팅거스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그래도 열 번은 너무 많습니다. 아키서스 님. 제가 열 번처럼 느껴질 정도로 열심히 싸울 테니, 세 번으로….
“세 번이라니. 그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드래곤을 동원할 정도의 싸움이면 세 번도 많지 않나!’
니팅거스는 속으로 욕했다.
뭔 싸움 못해서 걸신이 들렸는지 세 번이 적다고 하고 있었다.
드래곤이 동원될 정도의 싸움이 그리 많을 리가 없지 않은가.
‘천계와 마계의 전면전이 벌어질 때도 아니고….’
까마득히 먼 옛날!
신과 악마가 서로 전면전을 벌이고 아키서스가 사이에서 협잡질을 벌이던 그 시절!
그 시절이라면 뭐 드래곤이 동원될 정도의 싸움이 많을 법했다.
드래곤이 대륙에서나 세다고 으쓱대지 신과 악마 대공들하고 비교하면 아무래도 한 수 아래였으니까.
그 시절 드래곤이 하는 건 얌전히 고개 숙이고 있거나, 신과 악마의 말에 따라 이리 불리고 저리 불리는 정도!
그러나 지금은 매우 평화로운 시대였다.
신들도 악마들도 대륙을 떠났는데 뭐 그리 싸울 일이 많겠는가.
아무리 아키서스의 화신이라고 해도 인간이고 필멸자였다.
마계에 가서 악마 대공을 모욕하고 온 게 아니라면 악마들이 이제 와서 새삼 아키서스의 화신을 노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니팅거스는 아직 몰랐다.
지금 태현이 악마 대공 여럿한테 벌써 원수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평화로운 시대여도 아키서스는 아키서스였다.
“좋다. 여덟 번!”
-아, 아니… 네 번? 네 번 어떻습니까.
“어허. 네 번이라니. 그걸 어디에 쓴다고.”
태현과 니팅거스는 치열하게 협상을 계속해 나갔다.
겉모습은 진지했지만 안의 내용은 정말 별거 없었다.
물론 밖에서 보는 플레이어들에게는 그런 상상이 가지 않았다.
* * *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일단 니팅거스가 멈춘 건 확실한데….”
안전하다는 게 확인되자 플레이어들의 숫자는 순식간에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대형 길드에서 온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긴장과 초조함이 섞인 얼굴로 열심히 협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청각 강화!
[<청각 강화> 스킬이 실패합니다. 드래곤의 언령이…]
“크윽… <음파 증폭>!”
[<음파 증폭> 스킬이 실패…]
[……]
어떻게든 엿들어보고 싶었지만 니팅거스의 마법은 미친 듯한 난이도를 갖고 있었다.
플레이어들로는 절대 뚫을 수 없는 수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 없나? 방송은?”
“김태현이 방송 꺼서….”
“켜달라고 후원 보내봤어?”
“김태현은 후원금에 몇십억 쌓여도 자기가 안 열고 싶으면 안 열잖습니까.”
“어떻게든 설득해서 열어봐!”
“그게 될 거면 김태현이 아니라 케인일 듯….”
“크윽!”
이렇게 정보가 막힌 상황에서는 헛소문이 돌게 마련.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슬슬 협상에 관한 헛소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니팅거스가 한 대 맞고 김태현한테 굴복해서 김태현이 <아키서스의 용기사>로 전직했다는데?”
“뭐? 그게 정말이야?”
“그렇대. 니팅거스가 자신과 함께 손을 잡고 대륙을 정벌하자고 설득하고 있나 봐.”
“그, 그러면 에랑스 왕국이나 오스턴 왕국은? 또 근처에 영지 얻은 길드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그냥 망한 거지.”
“김태현이 누구부터 칠까?”
“역시 길드 동맹 아닐까?”
역사적인 악연!
판온 2 시작 때부터 초대형 길드로 판온에 군림하려던 길드 동맹과, 대형 길드가 뭐라고 하든 ‘난 나만의 길을 간다’ 하고 다니는 태현은 싸울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
이제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싸웠던가!
너무 많이 싸워서 아예 이것만 전문적으로 다루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김태현 vs 길드 동맹 1차전, 악연의 시작.
-김태현 vs 길드 동맹 2차전, 길드 동맹은 왜 판온의 최강자가 되지 못했나?
-김태현 vs 길드 동맹 3차전, 또 당했냐 길드 동맹아!
└이 영상에 틀린 점이 있습니다. 내려주십시오.
└혹시 길드 동맹 길드원이신가요?
└아닙니다. 어쨌든 내려주십시오.
└맞는 거 같은데?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이걸 써먹었는지, 이제 <김태현의 가장 빛났던 순간 TOP 3!> 같은 영상이 올라오면 바로 리플에 ‘날로 먹으려고 하지 마셈 몇 번을 우려먹는 거임’이 달렸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우려먹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태현은 이름만 들어가면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흥행보장수표였던 것이다.
오죽하면 단순 개인 방송을 넘어 방송사나 영화 제작사에서까지 이름을 고려할까!
“역시 길드 동맹이지?”
“역시 길드 동맹이지.”
“역시 길드 동맹이….”
덕분에 여기 있는 사람들 100명한테 ‘김태현이 누굴 패게 되면 누구부터 팰까요?’ 하고 물어보면 99명이 ‘길드 동맹!’ 하고 대답하게 됐다.
그러자 길드 동맹 길드원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큰일 났습니다!
-비상! 비상! 김태현이 니팅거스를 포섭!
-김태현이 니팅거스를 사로잡은 다음 목줄을 채웠습니다! 펫으로 잡은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오는 보고에 간부들이 당황해서 외쳤다.
-뭔 개소리야! 영상에 그런 거 없는데!
그들도 현장을 중계하는 개인 방송은 보고 있었다.
김태현과 니팅거스가 마주 보고 앉긴 했지만 목줄 같은 건 없었던 것이다.
-제가 들었습니다! 제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단 말입니다!
-김태현이 그 포병대에 악마들 가둬서 데리고 다니는 거 있잖습니까! 그것처럼 하려고 한다고 한답니다!
-골짜기 확인해 보십시오! 지금 우리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혼란에 빠진 길드원들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헛소문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김태현이 영지에서 드래곤 우리를 만든 다음 거기에 넣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쓰는 무시무시한 군대를 만들려고 한다!!!’
현장에 나가 있는 길드원들이 하도 강하게 말하자 간부들도 슬슬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이 아무 이유 없이 이러는 게 아닐 텐데, 정말 그런 게 이뤄지고 있는 건가?’
‘김태현이 레드 드래곤을 길들여서 써먹는다면….’
오싹!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했다. 이제까지 혼자서도 날뛰고 다니던 태현이 레드 드래곤을 손에 넣는다면 대체 무슨 일까지 할 수 있겠는가.
-야. 골짜기 확인해 봐. 정말 우리 만들고 있어?
-뭔가 커다란 걸 만들고 있긴 한데….
-만들고 있다잖아!
-아니. 거기 골짜기는 매일 대형 공사 퀘스트가 있는데 우리인지 확인은 해야….
-우리겠지! 드래곤을 가둘 수 있는 우리가 분명해!
-아니 그러니까 확인을….
-아,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대책을 세워야죠!
위험한 상황이 닥쳐오면 냉정한 사람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설치게 마련.
김태현한테 당한 기억이 아직 뼛속 깊이 남아 있는 간부들은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우, 우리는 망했다…!
-젠장! 미다스 길드로 갈 걸 그랬어…! 아니, 하다못해 쪼개질 때 내 길드만 끌고 나가서 다른 곳으로 갔으면…!
-어떤 새끼가 김태현 영지에 악마 보내라고 했냐?! 어떤 새끼야!
-쑤닝 님이 했잖습니까.
-…….
-…….
갑자기 싸늘해지는 분위기!
눈치 있는 간부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지금 니팅거스를 어떻게 상대할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김태현이 온다는 게 확정은 아니지 않습니까? 안 올 수도 있….
-너 같으면 안 오겠냐?
-…올 것 같습니다.
솔직히 오겠지!
그렇게 싸웠는데….
-잘 된 거 아닙니까? 김태현하고 싸우게 됐다니. 조회수와 관심을 모을 수 있겠군요.
투자자 측에서 나온 직원이 불에 기름을 붓듯이 말했다.
길드 동맹이 망하든 말든 짧고 굵게 수익을 낼 시간에 활짝 핀 얼굴!
물론 다른 간부들의 얼굴은 뭐라도 씹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저 자식이….’
‘약 올리나?’
-안 그래도 요즘 스트리밍 회사들이 판온 영상을 노리고 있던데, 아주 잘 됐습니다.
김태현 vs 길드 동맹 영상을 독점적으로 제공해 준다면 얼마든지 돈을 낼 스트리밍 회사들이 차고 넘쳤다.
서로 경쟁이 심한 지금, 질 좋은 판온 영상은 블루 오션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아예 드라마 시리즈처럼 제작하려는 기획까지 있다고 들었는데….
-…저건 무시하고. 김태현하고 접촉 가능한 수단 전부 동원해 봐.
-아니. 쑤닝 님. 좋은 제안 아닙니까? 왜?
-뭐 방법 없냐? 저번에 골짜기 영지에 폭탄 사러 갔던 놈들, 그놈들은 좀 친하지 않아?
-음. 폭탄 샀다고 친하다고 치기에는 좀….
<미다스> 길드와의 영지전 때문에 폭탄을 구입한 적이 있긴 했다.
그거 갖고 친하다고 하기에는 좀 많이 민망했지만!
-지금 그렇게 점잔 떨 때냐? 김태현하고 조금의 친분이라도 있는 놈이면 무조건 다 데리고 와!
-사실 김태현과 가장 안면 있으신 건 길마님….
-쉿. 길마님 나타나면 김태현이 무조건 선빵칠 걸.
-쑤닝 님. 지금 앨콧이 김태현 공격대에 있다고 합니다.
-뭐?! 앨콧이 왜?!
길드 동맹 랭커들 중 가장 충성심 높고 이타적인 랭커, 앨콧!
남들이 이기적으로 지 퀘스트만 할 때 앨콧만이 언제나 길드를 위해왔었다.
오죽하면 외국인 랭커인데도 간부들이 가장 신뢰하는 랭커에 들어갈까!
-길드 랭커 몇 명을 데리고 참가한 모양입니다. 보아하니 니팅거스가 오스턴 왕국 쪽으로 올 때를 대비해서 막으려고 한 것 같습니다만….
-어허!
-역시 앨콧이다…!
간부들은 진한 감동을 느꼈다.
다른 랭커 놈들이 니팅거스 눈치만 보고 설설 기고 있을 때, 앨콧은 용감하게 랭커들을 데리고 니팅거스를 막으려고 찾아간 것이다.
심지어 김태현 공격대에 들어가서!
김태현 공격대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굴욕적이었겠는가.
-근데 여러분, 앨콧은 <화산의 저주> 깨려고 그 이전부터 김태현하고 같이 다녔다는 제보가 있는데요.
-<화산의 저주>를 깨려고 김태현하고 같이 다니다니… 진짜 앨콧이 사나이다! 사나이야!
-굴욕을 참고 김태현하고 같이 다닌 그 마음! 이게 바로 와신상담 아니겠나!
-앨콧! 앨콧! 앨콧! 앨콧!
간부들은 울컥해서 앨콧의 이름을 연달아 외쳤다.
그러자 길드에 새로 들어온 중국인 랭커 중 하나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자기가 퀘스트 깨고 싶어서 김태현하고 붙어먹은 거 아냐?
-뭐 이 자식아? 앨콧은 네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입조심해! 랭커면 다인 줄 아나!
-네가 아무리 잘나가도 그렇지 앨콧을 건드리는 건 용납 못 한다. 입조심해라.
-쑤닝 님하고 친하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인데, 쑤닝 님도 앨콧은 굳게 믿으신다. 조심해!
순식간에 쏟아지는 구박에 랭커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외국인 랭커 한 명 욕했다고 이렇게 극딜이 들어올 줄이야…!
-그러면 앨콧한테 연락해서 한 번 접촉해 봅시다.
-아니, 그런데 앨콧도 김태현하고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을 겁니다. 앨콧이 판온 1때부터 김태현한테 얼마나 당했습니까? 앨콧한테 너무 못할 짓을 하는 게 아닌지….
-으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쑤닝과 간부들의 말에 다른 랭커들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언제부터 저렇게 마음을 배려해 줬다고….’
‘명령 안 들으면 세상 뒤집어진 것처럼 난리 치던 인간들이…!’
앨콧한테만 상냥한 거 봐라 진짜!
삐뚤어진 랭커들은 질투심에 차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앨콧한테 맡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나마 앨콧이 가능하지 다른 사람들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앨콧이 그렇게 대단한 놈이면 굴욕을 참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큭큭. 앨콧 놈. 어디 한번 죽어봐라.’
‘김태현한테 무릎 꿇는 굴욕…! 그러고 나서 일까지 실패하면 두 배로 굴욕이겠지!’
‘요즘 잘나간다고 까부는데, 한 번 꺾어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