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10화
‘하지만 그럴듯한 제안이다.’
평소라면 개소리처럼 들렸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설득력이 있었다.
지금 랭커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앨콧의 생존력이 올라가지 않겠는가!
“하지만 속이고 불렀다가는 그놈과의 사이는 분명히 원수가 될 텐데….”
“아니, 속이는 게 아니라 숨기는 거지. 이건 김태현이 나 상대로 자주 하는 짓인데….”
“…….”
악의의 연쇄!
태현한테 당한 케인이 그대로 다른 놈들한테 쓰고 있었다.
“네가 뭘 하는지 정확히 말하지 말고, 다급한 목소리로 아주 대단한 퀘스트라고 빨리 오라고 부르는 거야.”
“…….”
“오고 나면 ‘나는 거짓말을 안 했다’고 우기는 거지!”
“…와.”
앨콧은 감탄했다.
이 자식….
김태현한테 이렇게 당하고 살았구나…!
“좋지? 응?”
“그, 그래. 좋은 방법이다.”
앨콧은 동의했다. 그리고 태현에게 물었다.
“혹시 길드 동맹 랭커들 불러도 되냐?”
“음? 변명할 수 있겠냐?”
“변명은 충분히 가능하지.”
니팅거스 때문에 김태현과 협조했다고 핑계를 대면 됐다.
“그래?”
‘그게 먹히나? 수상쩍을 것 같은데.’
태현이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길드 동맹 내 앨콧의 신뢰도!
길드 동맹 간부들 사이에서 앨콧은 놀랍게도 매우 믿음직스러운 랭커였다.
다른 랭커 놈들이 이기적으로 굴 때 혼자 열심히(태현이 시켜서) 길드를 위해 싸운 랭커.
감동한 쑤닝이 앨콧에게 직접 선물을 줄 정도였다.
-여기 아이템 가져가라.
-이게 뭔데?
-암살자가 쓸 만한 장비… 아, 아니. 흥. 착각하지 마라. 딱히 네가 좋아서 주는 건 아니니까.
-…….
“네가 변명할 수 있으면 불러도 상관없다.”
“오케이. 부른다.”
‘흠. 어떻게 불러야 하지?’
-좋은 퀘스트가 있는데 와라.
‘아니. 이건 별로야.’
-긴급 퀘스트! 빨리 와라!
‘이것도 좀 이상하고. 음… 으음….’
앨콧은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다른 일행들에게 상담했다.
그 결과 완성된 건….
-★★☞긴급 대형 퀘스트☜▲무려 등급은 전설*너만 오면 시작▽선착순 셋★★!
“이거면 됐나?”
“완벽하네.”
“완벽한 것 같습니다.”
“완벽 그 자체네요.”
“오케이. 보낸다!”
앨콧은 최면에 빠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봤어야 했는데…!
-????
-앨콧이 보낸 거 맞지? 해킹당했냐? 퀘스트가 맞는 거 같긴 한데… 앨콧이 쓸데없는 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니 가봐야겠군.
-뭔 의미지 이거? 일단 가서 물어봐야겠다.
어쨌든 결과는 성공적!
* * *
“포병대, 위치로. 지금 바로 이동한다. 성기사단도 준비해라! 니팅거스의 위치가 파악되는 대로 바로 움직일 테니까!”
악마 군세 퀘스트를 마치고 신나서 보상 교환하고 정리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갑작스러운 태현의 움직임에 깜짝 놀랐다.
설….
설마??
“태, 태현 님. 설마 니팅거스 잡으러 가십니까?”
“잡을지 안 잡을지는 모르겠고. 가긴 해야지. 니팅거스가 아탈리 왕국으로 들어오는 건 막아야 하니까.”
지금 니팅거스는 바다 쪽 도시 두 개 날리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탈리 왕국으로 오는 건 막아야 한다!
플레이어들은 감탄과 공포가 반반 섞인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김태현이라지만 진짜 니팅거스 잡으러 갈 줄은 몰랐다!
심지어 방금 그 영상을 봤는데!
“그, 그걸 보고서도 간다니….”
“김태현이잖아. 너하고 같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게 말이 되냐!”
“말려야 하는 거 아냐?”
“누가 떠민 거 아님? 어떤 미친놈들이 떠밀었어?”
“김태현! 가지 마! 인터넷에서 떠드는 놈들은 무시해도 된다고!”
골짜기 플레이어들은 기본적으로 태현의 충성스러운 팬들이었다.
인터넷 게시판 뉴스에 태현 관련 기사가 나오면 열정적으로 리플을 다는 이들!
-<팀 KL, 불화설? 김태현의 리더십…>
└불화는 너희 가정이 불화겠지 기자 놈아!
└그렇게 리더십 타령하는 놈이 왜 판매부수는 말아먹죠??
-<김태현-이세연, 불꽃 튀기는 케미…>
└이세연이 판온 1에서 김태현 죽였는데 무슨 케미임. 기자 놈 나하고 케미 만들고 싶냐?
└김태현이 아깝네.
└어디서 이세연을 김태현한테…
-<팀 KL의 일상 대공개! 김태현, 밥 해주는 남자…>
└케인 놈 일 안 하냐?!
└케인 놈 일 안 하냐?!
└케인 놈 일 안 하냐?!?
보통 이런 리플 다는 사람들은 게임에서도 골짜기 소속 플레이어들!
그런 충성심 높은 팬들이니만큼 태현을 말리는 건 당연했다.
“막아! 가지 못하게 길 막아!”
“김태현! 가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케인 놈아 뭐하냐! 막으라고! 팔 여섯 개 뒀다 어따가 써!”
“아, 아니… 이건 내 잘못이 아닌데! 그리고 내가 김태현을 어떻게 막아!”
케인의 항변에 플레이어들은 납득해 버렸다.
과연 설득력 있군!
태현은 플레이어들에게 말했다.
“말려주는 건 고마운데, 이건 이미 결정을 내렸다. 괜찮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
“같이 간다! 내가 같이 가겠어!”
“?!”
아까 태현의 공격대에 참가했던 랭커 중 한 명이 앞으로 뛰쳐나왔다.
“야, 니팅거스 레이드라는데 왜….”
“죽고 싶은 거냐?”
“김태현이 간다잖아, 이 자식들아! 악마 군세 가서 잡은 거 기억도 안 나냐? 죽어도 상관없어! 어차피 잡으면서 레벨업 많이 했어. 한 번 죽어도 이득일 정도야!”
옆에서 듣고 있던 태현이 움찔했다.
다… 다들 그렇게 레벨 업 많이 했냐?
한 번 죽어도 될 정도로…?
[카르바노그가 위로합니다.]
“김태현이 데리고 가주지 않았다면 그런 레벨 업은 하지도 못했을 거다. 다른 길드였다면 나 같이 간신히 랭커에 발 디딘 놈을 파티에 껴주지도 않았겠지. 김태현이니까 데리고 가준 거다! 난 은혜를 갚을 거다!”
“…….”
“…….”
이름 없는 랭커가 외치고 나자 주변이 묘하게 조용해졌다.
감동!
골짜기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그 말을 듣고 진한 감동을 느꼈다.
저 랭커는 잃을 게 그들보다 많은데도 받은 게 있어서 태현의 퀘스트를 따라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태현을 믿지 못하고 말리고나 있었다니!
공격대에 참가한 고렙 플레이어들은 마찬가지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까는 김태현 퀘스트는 무조건 탑승해야 한다고 타놓고, 이제 와서 발을 빼다니.
김태현 퀘스트 참가 왜 하냐고 놈들과 똑같지 않은가!
‘그래. 남들이 안 믿을 때 믿었던 놈들은 언제나 보상을 받았다!’
‘보상을 못 받더라도 김태현한테 받은 게 얼마인데,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여기서 참가 안 하면 난 양심이 케인 수준인 거다.’
“나도… 나도 간다!”
“나도!”
“저도 참가하겠습니다!”
“참가! 참가!”
골짜기에 모인 플레이어들의 함성은 어느새 합창이 되어 한마음 한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참가! 참가! 참가!
“어… 애들아. 미안한데.”
-???
“숫자 많이 데려가봤자 깨지기만 할 텐데 굳이….”
“…….”
“…….”
일행은 감탄했다.
저 뜨거운 감동과 열기를 보고서도 저런 소리를 당당하게 할 수 있다니!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놈 같으니!
-하, 하지만….
-저희도 가서 돕고 싶은….
“음. 그러면 근처에 대기하고 있을래? 가까이 붙지는 말고. 위험하니까.”
-예!!!!!!!!!!!
[카르바노그가 깜짝 놀랐다고 말합니다.]
골짜기가 떠나갈 듯한 함성 소리!
[속이지 않고 진심으로 사람들을 설득해 불러 모았습니다.]
[이 순수함은 진정 아키서스의 힘입니다! 신성이 오릅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아니, 아니지.”
태현은 어이가 없어서 부정했다.
은근슬쩍 감동에 묻혀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아키서스는 그러기에는 이미 늦은 신이었다.
이미 밑천을 보일 대로 보여줘놓고 이제 와서 ‘사실 아키서스의 진정한 힘은 순수와 감동이었단다’ 하면 누가 ‘아 그렇군요’ 하겠는가!
‘어디서 개수작이야’가 나오지!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태현과 카르바노그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아키서스의 힘은 꿋꿋하게 메시지창을 보냈다.
[칭호, <만인을 이끄는 아키서스의 사도>를 얻었습니다!]
[명성이…]
[이 위대한 업적으로 인해 권능 스킬, <아키서스의 결의>를 얻습니다!]
‘!’
아니, 이거 하나 했다고 권능 스킬을 퍼줘?
[카르바노그가 이제까지 얼마나 순수하지 않았으면 이걸 못 받았…]
‘쉿. 조용히 해.’
뭐든 간에 상관없었다.
권능 스킬을 얻었다는 게 중요한 거였지!
<아키서스의 결의>
한 뜻으로 뭉친 플레이어들이 각자 경험치를 내놓습니다. 모인 경험치만큼, 일시적으로 아키서스의 군세가 소환됩니다.
“…….”
[…….]
강….
강력하긴 한데….
이론상 강력한 스킬 아닌가?
‘좀 쓸 만한 놈들이 나오려면 플레이어들이 경험치를 얼마나 내놓아야 하는 거지?’
[카르바노그가 이 스킬 좀 똥스킬 같다고…]
태현과 카르바노그가 친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둘 다 기본적으로 의심이 많아 어떤 상황에도 대비하는 화신과 신!
그런 그들에게 ‘플레이어들이 각자 경험치를 내놓아서 군세를 만들어봐요’ 하는 스킬은….
아무리 봐도 안 될 것 같은 스킬이었다.
‘아키서스의 졸개 하나 나오는 거 아냐?’
[아키서스의 작은 사냥개 하나 나올지도 모른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으윽. 그래. 고민은 그만 하고. 이동하자.’
태현은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아다만티움 갑옷과, 아스비안 제국 황제가 썼던 <황제 살해자 세트>와 <용의 파멸>.
거기에 새로 얻은 <화신의 일격>.
‘<화신의 일격> 두 방으로 잡을 수 있을까? 두 방으로 못 잡으면….’
진짜 개꼬인다!
‘두 방으로 못 잡을 것 같으면, 차라리 한 방을 치고 협박해야 하나. <아키서스의 결의>는 언제 써야 하지? 음….’
“태현 님?”
이다비가 태현을 툭툭 쳤다. 사람들이 새까맣게 모였는데 태현이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태현 님. 너무 고민 안 하셔도 괜찮아요.”
“그래. 수틀리면 무조건 오스턴 왕국으로 도망쳐보자.”
언제나 든든한 오스턴 왕국!
“…그, 그런 뜻이 아니라. 이제까지 잘 하셨던 것만큼, 이번 퀘스트도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뜻이었는데요.”
“으윽. 이다비. 믿어주는 건 정말 고마운데… 난 한 번도 그런 식으로 확신을 가져본 적이 없단 말이지.”
태현은 언제나 조심하고 만일을 대비하는 사람이었다.
남들은 ‘와 김태현은 진짜 겁이 없다’, ‘김태현은 번지점프를 할 때도 밧줄을 안 묶고 한다’ 같은 소리를 했지만, 태현은 언제나 일이 꼬일 때를 준비하고 준비하고 준비해 왔다.
그런 태현에게 다른 사람들이나 이다비가 보여주는 흔들림 없는 신뢰는 이해불가의 영역이었다.
대체 어떻게 저렇게 확신할 수 있지?
태현의 말에 이다비가 웃었다.
“왜?”
“아니요. 태현 님이 그렇게 말하는 게 재밌어서요. 태현 님. 그리고 제가 확신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그래? 그게 뭔데?”
“비밀이에요.”
“…이다비?!”
이다비가 이런 농담을 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태현은 당황했다.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궁금해지잖아. 어쨌든… 고마워. 응원이 됐어.”
이다비가 아무 이유 없이 믿지는 않았을 테니, 무슨 이유든 간에 나름 그럴듯한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더 승산이 있게 느껴졌다.
“니팅거스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방향은… 동쪽! 오스턴 왕국 아니면 아탈리 왕국입니다!”
“모두 움직인다! 가자!”
태현의 외침과 함께, 골짜기에 있던 그 많은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2차 니팅거스 레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