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09화
몇 번을 봐도 똑같았다.
잘 몰아붙이고 있던 공격대가….
1초 지나니 갑자기 박살이 나서 산산이 흩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주인님. 마법입니다. 니팅거스가 언령 마법으로 날려 버린 겁니다.
-주인이여. 니팅거스는 학카리아스보다 더 강한 드래곤이다. 마법도 마찬가지다.
흑흑이와 용용이가 설명을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레드 드래곤은 블랙 드래곤보다 더 강한 편!
블랙 드래곤이 레드 드래곤보다 잘하는 건 음험한 계략 정도였다.
“레드 드래곤은 성질 더러운 놈 아니었어? 근데 왜 마법도 잘 해?”
케인의 질문에 두 드래곤은 아키서스의 노예를 보는 눈빛으로 케인을 쳐다보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기분 나쁜 눈빛!
-드래곤은 마법의 주인인 종족인데 성질 더러운 거하고 무슨 상관인가? 성질 더러우면 성질 더러운 대로 마법 잘 하는 게 드래곤이다.
-니팅거스는 예전보다 몇 배로 더 강해진 것 같습니다. 언령 마법을 저렇게 잘 다룰 줄이야….
마법 중에서도 손꼽히게 어려운 마법, 언령 마법!
이론상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마법이었다. 말하는 대로 모든 걸 구현할 수 있었으니까.
당연히 단점이 있었다.
엄청난 마력 소모와 난이도!
언령 마법으로 <화염 화살> 읊으면 그냥 <화염 화살>보다 몇십, 몇백배의 MP가 소모됐다.
게다가 조금만 더 어려워지면 실패 가능성도 미친듯이 뛰었다.
그야말로 드래곤 정도가 아니라면 보여주기 힘든 마법!
“어. 그런데 너희는 언령 마법 안 쓰지 않아?”
흑흑이는 흑마법, 용용이는 번개 마법 위주로 쓰는 편이었다.
-…….
-…….
케인한테 허를 찔린 두 드래곤은 입을 다물었다.
-언, 언령 마법은 솔직히 비효율적이고… 폼 잡는 놈들이나 쓰는 거….
-맞, 맞습니다. 언령 마법을 못 쓰는 게 아니라 안 쓰는 것….
“그냥 못 쓰는 거네?”
-…….
-…….
그렁그렁!
두 드래곤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
“넌 왜 괜히 드래곤들한테 그런 소리를 해서 울려?”
“맞습니다. 케인 씨. 사과하세요 빨리.”
“아, 아니… 나는 그냥… 그냥 궁금해서… 미안해 내가….”
두 드래곤은 사과를 받고 나서야 눈물을 훔쳤다.
-우리가 약한 게 아니라 니팅거스가 강한 거다.
-맞습니다. 드래곤은 늙을수록 강해지는데 저희는 너무 어려서….
“알겠어. 알겠어. 케인 말은 무시하고. 그래서 니팅거스가 학카리아스보다 더 강하다 이거지?”
-교활하거나 음험한 수작은 부리지 않겠지만, 마법 쓰는 솜씨만 보면 확실하다.
-자면서 마법만 공부했나 봅니다. 레드 드래곤답지 않게.
-레드 드래곤이 뭔 공부를 하나. 어이없는 놈이다.
두 드래곤이 자존심에 상처가 났는지 열심히 욕했지만, 태현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학카리아스 이상이라….’
영상을 몇 번이고 천천히 돌려보니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바다 밑에 추락해서 잠겨 있던 니팅거스가 가만히 두들겨 맞고 있던 건, 마법을 준비하고 있어서였다.
공격대는 니팅거스가 가만히 있었던 이유가 공격이 성공해서라고 성공했지만, 그건 오판이었던 것이다.
‘얘 분노조절 못하는 레드 드래곤 맞냐? 분노조절 잘하는데?’
순간적인 판단력을 보니 10 케인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태현은 소름이 돋았다. 드래곤이 이렇게 머리까지 잘 굴리면 잡는 입장은 어쩌라고…!
“설마 이거, 주변 바다를 전부 다 용암으로 바꿔서 함정을 녹여 버리고 해일을 일으켜서 날려 버린 건가?”
[카르바노그가 맞는 것 같다고 동의합니다.]
“…미쳤군.”
차라리 저주와 브레스를 날리던 학카리아스가 그리울 정도였다.
니팅거스의 스케일은 그야말로 진짜였다.
날아다니는 자연재해!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음 영상을 켰다. 그 영상 말고도 지금 게시판은 온통 니팅거스 공격대 이야기였다.
<니팅거스의 분노… 공격대 전멸!>
<화산의 저주가 더욱 더 심해지나?>
<니팅거스 공격대 새끼들 다 뒤져라 불에 기름을 붓냐>
<그렇습니다 대륙은 망했습니다>
<엌ㅋㅋㅋㅋ 우리 영지는 북쪽이라 괜찮음 ㅋㅋㅋㅋㅋ 노드란체로 오셈 ㅋㅋㅋㅋㅋ>
<김태현 님 제발 화산의 저주 좀…>
<김태현 님 니팅거스 사냥 좀 제발…>
<김태현 님이 다 해주실 거야 제발…>
‘음. 이것들은 무시해야지.’
미친놈들아 너희들이 잡아!
다음 영상을 트니, 박살 나는 니팅거스 공격대의 모습이 생생히 나왔다.
-다시 공격해! 니팅거스는 아직 날지 못하고 있다!
<니팅거스 공격대>는 정말로 잘 싸웠다.
린즈펑은 상황이 틀어졌는데도 끝까지 지휘를 했고, 랭커들도 후퇴하지 않고 계속 공격을 퍼부었다.
실제로 니팅거스는 바다 밑에서 나오지 못하는 상황!
…그런데도 니팅거스는 공격대를 압도했다.
바닷속에서 계속 터지는 미친 대마법!
한 번 터질 때마다 용병 NPC들이 몰살당하고 암초에 설치했던 공성 병기들이 쓸려나갔다.
이쯤 되자 공격대들도 깨달았다.
끝났다!
<용의 파멸>이나 <용의 추락> 같은 마법만 믿었던 게 실수였던 것이다.
좀 더 강력한 수단을 더 준비했어야 했다!
태현의 악마 군세들처럼!
-…후퇴한다!
-어, 어디로?
-일단 흩어져! 뭉치면 무조건 전멸한다!
린즈펑의 외침에 랭커들은 눈물을 삼키며 파티별로 나눠져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니팅거스 공격대>의 실패였다.
그리고 공격대가 흩어진 곳에 니팅거스 혼자 남았다.
극도로 빡친 레드 드래곤!
…대륙을 멸망시킬 수도 있는 존재였다.
“와. 소름 돋는군.”
태현은 닭살이 돋는 걸 느꼈다.
<니팅거스 공격대> 영상의 마지막 장면이 하필이면 바다에 잠겨 눈을 번뜩이는 니팅거스의 눈동자였다.
공포 영화 예고편 같다!
“그래서 이 다음은?”
“니팅거스가 날뛰고 있죠….”
<핏빛 군도>의 뱀파이어들은 다행히 무사했다. 니팅거스는 냄새나는 뱀파이어들보다는 인간 상대로 분풀이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가장 먼저 피해를 본 건 오스턴 왕국의 항구도시였다.
니팅거스는 가서 깔끔하게 도시를 지워버렸다.
그 다음은 좀 더 서쪽에 있는 에랑스 왕국의 항구도시를 찾아갔다.
그리고 또 도시를 지워버렸다.
이쯤 되었을 때부터 게시판은 뒤집어졌다.
사람들이 상황을 깨닫고 순식간에 정보 공유를 끝낸 것이다.
-니팅거스가 미쳤다!!
-누가 니팅거스 잡으려고 했나 봐!!!
-도, 도시가 그냥 사라졌어…!
-니팅거스 방향 어디인지 말해주세요! 제발! 어디로 가고 있어요?
-서쪽인듯?
-아니야. 북쪽임.
-다시 남쪽 바다로 내려가서 건너갈….
-동쪽임! 동쪽!
혼란 그 자체!
이다비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을 보내 최대한 정보를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지금 니팅거스는 잠시 쉬고 있어요. 아마 마력을 회복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날고 있진 않군.”
[카르바노그가 <용의 파멸>과 <용의 추락>을 맞은 탓이라고 말합니다.]
파워 워리어 영상 속 니팅거스는 걸어다니며 도시를 부수고 있었다.
날개는 멀쩡해도 날지 못하고 있는 것!
<용의 추락>이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용의 파멸>도 아직까지 효과가 있을 텐데….’
근데 도시를 그냥 한 번에 부수냐?
“어쩔 수 없군. 가자.”
“야. 야. 야. 진정해!”
아직까지 옆에 있던 앨콧이 깜짝 놀라서 태현을 말리려고 했다.
악마 군세까지는 이해가 갔다.
태현 대신 죽어줄 상대도 많았던 데다가, 태현 실력이라면 혼자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드래곤을 잡으러 가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학카리아스보다 더 강력한 놈 아닌가!
“지금 니팅거스 상대하는 건 미친 짓이야! 어차피 골짜기는 멀잖아. 좀 더 내버려 둬! 아탈리 왕국으로 오더라도 북서쪽은 네가 직접 다스리는 도시가 아니니까… 아. 김태현. 그렇구나. 석판을 갖다 바치려는 거지? 네가 화술 스킬 높은 건 알지만 지금은 참아야 할 때야. 나중에….”
“와. 저놈 저렇게 말 빨리 할 수 있는 놈이었나?”
“나도 처음 보는데.”
태현 일행은 앨콧의 말에 감탄했다.
평소에는 나름 냉정하고 쿨한 이미지였는데 이런 상황이 되니 미친 듯이 빠르게 말을 하고 있었다.
생존본능!
“음. 앨콧. 일단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 물론 석판을 갖다 바치고 화해할 생각이긴 해. 하지만 화해가 불가능하면 공격할 거다.”
“!!!!!”
1차 충격!
“그리고 북서쪽 도시들은 내가 직접 다스리는 도시 아니어도, 나한테 세금 바치는 NPC들 도시라고.”
차라리 남쪽이었으면 냅뒀을 텐데, 북쪽은 이미 태현에게 충성 맹세를 한 귀족 NPC들의 지역이었다.
[그 싸움밖에 모르던 마르체티 백작의 도시가 북서쪽 아니었냐고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
‘그래. 그 동탁 같던… 아니. 그래도 나한테 세금 바치는 놈이니까….’
“그쪽으로 오면 무조건 막을 생각이다. 내버려 둘 생각 없어.”
“하, 하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 억지로 데려갈 생각 없다.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
앨콧은 깜짝 놀랐다.
함정인가?
“안, 안 가면….”
“안 가면?”
“…날 죽일 건가?”
거절하는 순간 옆의 일행들이 일제히 공격하면….
“…….”
“…….”
갑자기 싸늘해지는 분위기!
태현 일행은 머리에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눈빛으로 물었다.
-앨콧 저놈 미친놈이었나?
-원래 좀 피해망상적이긴 했는데….
앨콧은 눈치채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김, 김태현이 판온 1에서는 이랬다고! 이 자식들아!”
그러자 이번에는 시선이 태현한테 쏠렸다. 태현은 뻔뻔하게 부정했다.
“난 안 그랬는데.”
“…저 뻔뻔한 놈…!”
“안 그랬대잖아!”
“맞아, 앨콧! 어디서 뒤집어씌워!”
“우리의 선의를 무시하냐!”
태현은 일행을 조용히 시키고 말했다.
“앨콧. 다시 말하지만, 난 널 높게 평가한다.”
“…!”
두근!
앨콧은 시험 100점 맞고 칭찬 듣는 어린아이처럼 뭉클했다.
“넌 훌륭한 첩자야.”
“…….”
이 새끼가….
능력으로 평가해주는 게 아니었냐?!
모처럼 감동하고 있는데!
“그리고 뛰어난 랭커지. 이번 퀘스트에도 공을 많이 세웠고. 내가 물론 저런 질문으로 함정을 자주 파긴 했지만….”
1 때 하긴 했구나!
“…그건 저지른 죄가 있는 놈들이고. 너한테 그럴 생각은 없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니팅거스는 위험한 놈이고, 나도 계산이 실패하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억지로 데려갈 생각은 없다. 가기 싫으면 정말로 안 가도 돼.”
“…….”
“자. 그러면 움직이자! 니팅거스가 아탈리 왕국으로 오면 무조건 막는다!”
케인이 그 말을 기세 좋게 받았다.
“니팅거스가 이쪽으로 안 오는 게 무조건 좋겠지만!”
“…….”
“케인. 꼭 김을 빼야 해?”
“아, 아니. 너희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잖아! 왜 나한테만 그래!”
앨콧은 새삼스럽게 태현 일행에게 감탄했다.
지금 니팅거스 상대로 위험할 수도 있는데 태현의 선택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어디서 볼 수 없는 진정한 신뢰!
“…나도 따라간다!”
“뭐? 야. 함정 없다니까. 빠져도 돼.”
“흥. 그런 게 아니다. 김태현은 승산 없이 싸우는 사람이 아니니, 계산이 있다고 생각했을 뿐. 그렇다면 같이 남는 게 이익이겠지.”
[계산 있냐고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
‘음… 솔직히 여차하면 어그로 끌고 다른 왕국 방향으로 튈 생각이었는데….’
마침 오스턴 왕국도 가깝겠다….
그러나 앨콧은 태현의 생각은 전혀 예상 못하고 감동에 취해 있었다.
그도 이 신뢰에 끼고 싶었던 것이다.
케인이 앨콧을 보며 물었다.
“야. 따라올 거면 혹시 너하고 친한 다른 랭커들도 부르면 안 되냐?”
“니팅거스 상대하러 가는데 어떤 미친놈이 와?”
방금 그 영상을 보고서 오는 놈이 있다면 미친놈이거나 머리가 없는 놈일 것이다.
“?? 당연히 숨기고 불러야지.”
“…….”
앨콧은 경악했다.
케인 이 자식 사고방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