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07화
-역병 저주는 그렇다 쳐도, 김태현 전투력 진짜 물 오르지 않았냐?
-그건 그래.
-리그도 그렇고 게임에서도 그렇고 이제 적이 없는 수준임. 저걸 일대일로 누가 막나 싶은데.
XX가 최고다! 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보통 말하고 나면 ‘아닌데? 아닌데?’ 하고 반박 들어오기 쉬운 말!
그러나 태현은 그 어려운 말을 설득력 있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김태현이 최고 아니냐?’ 하면 팬 아닌 사람들도 ‘음 김태현이라면 확실히…’ 하는 반응이 돌아오는 것!
-김태현이야 예전부터 탑 랭커였잖아?
-맞아. 원래 그러지 않았나?
-아니. 좀 달랐지. 원래 김태현은 저런 식으로 정면싸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태현의 싸움 방식은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독특하고 변칙적인 방식이었다.
일단 폭탄을 쓰는 것부터 아무나 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닌 것!
그뿐만이 아니었다.
폭탄부터 시작해서 NPC, 자연 환경 등 태현은 이용할 수 있는 건 모조리 이용하면서 싸웠다.
오죽하면 수많은 싸움 중에서 똑같이 싸운 적이 없을까.
랭커들 중에서 태현처럼 변화무쌍하게 싸우는 사람은 드물었다.
랭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안정성인 것이다.
태현처럼 매번 위험하게 싸우다가는 언제든 한 번에 훅 갈 가능성이 있었다. 로그아웃 몇 번 당하면 경쟁에서 밀려나는 게 랭커 자리인데….
그러나 그런 아슬아슬함이 태현이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다른 랭커들이 안전하게 울타리 안에서 싸울 때 혼자 밧줄 위에서 줄타기 하고 있으니 그 긴장감이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리고 사실, 태현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안 하면 레벨업을 못한다고!’
다른 랭커들은 몰이사냥이나 던전반복공략으로 레벨 업이 가능하다지만 태현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
레벨 두세 배는 차이 나는 놈들을 잡아야 그나마 조금씩 따라갈 정도 아닌가.
그런 놈들을 잡아야 하니 안정성은 때려치우고 매번 매번 밑천을 토해내는 게 당연했다.
어쨌든 이런 온갖 상황을 이용하는 변칙적인 싸움이 태현의 스타일이었는데….
-근데 이번에는 진짜 정면에서 힘싸움으로 밀어붙였어. 돌격 봐. 그냥 기사단 돌격이잖아.
-확실히 듣고 보니….
이번에는 달랐던 것!
태현은 영지로 귀환해서, 플레이어들을 모은 다음, 별다른 준비나 세팅 없이 그대로 돌격했다.
스스로의 힘을 믿은 단순한 돌격.
얼핏 심심해 보였지만 원래 이런 정공법이 가장 무서운 법이었다.
게다가 그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한 번 더 뛰어넘었다.
급조된 파티를 이끌고 악마 군세 사이를 파고들어 지휘관 목까지 땄다!
-즉 그만한 자신감이 붙었다는 거 아니겠냐? 말대로 전투력에 물이 단단히 올라서….
-그러네. 그게 아니면 어떻게 저렇게 덤벼?
사람들은 태현의 물 오른 전투력에 감탄했다.
그러나 그렇게 감탄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태현과 경쟁해야 하는 랭커들!
-저 미친놈은 대체 뭘 잘못 먹었는지 볼 때마다 세지는 거야…?
-김태현 님 제발 게임 접고 판온 3에서 만나면 안 됩니까?
-아. 돌겠네. 다음 경기 팀 KL인데. 저것들 진짜 어떻게 상대하냐? 아니, 솔직히 무승부는 노릴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무승부도 못 노린다는 게 말이 되냐?
5인 탱커, 혹은 4탱 1힐은 어느새 약팀의 주류 전술이 되어 있었다.
꿋꿋하게 버티면서 역습을 노리거나 무승부를 노리는 전술!
팬들은 지루한 전술이라고 야유했지만 게임단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였고 이 5인 탱커 전술도 팀 KL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태현은 일반적인 딜러가 아니었다.
김태현이 어떻게든 안으로 헤집고 들어가서 한 명을 개패듯이 패기 시작하면 진형을 유지할 수가 없었던 것!
게다가 이 김태현 놈은 리그 진행하면서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는지 가면 갈수록 진형을 잘 깨고 탱커를 잘 팼다.
한 놈 잡고 녹여 버리면 넷이서는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었고 그러면 그대로 무너지고….
-이세연이 김태현 이긴 적 있다고 하지 않았냐? 이세연은 대체 어떻게 이긴 거야?
-그건 판온 1이었잖아. 김태현이 대장장이였어. 솔직히 네크로맨서로 대장장이 못 이기면 나가 죽어야지.
-…….
-…….
랭커 게시판에 있던 다른 랭커들은 일제히 침묵했다.
그러면 그 대장장이한테 진 우리들은 뭐가 되냐?
‘저 새끼 저거 판온 1 안 해본 새끼가 분명해.’
‘해본 놈이었으면 저렇게 입 못 놀리지.’
-님 지금 김태현한테 진 판온 1 랭커들 전원 도발한 거 알죠?
-아, 아니. 그, 그게. 그런 뜻이 아니라….
-너 밤길 조심해라.
-아… 아니. 죄송합니다. 여러분.
너무 광역 어그로를 끌었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꺼낸 랭커도 급히 사과했다.
-유성 게임단은 팀 KL하고 언제 붙지?
-리그 후반에 두 경기 몰려 있네. 아오. 유성 게임단은 운도 좋지.
-주최 측이 재미를 아는듯? 후반에 몰아넣다니. 순위 결정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하려고….
-미친놈아 뭐가 긴장감이 팽팽해! 지금 팀 KL이 거의 1등 확정인데!
리그 일정을 절반 가까이 마친 상황에서 무패 찍었으면 사실상 1등이라고 봐야 했다.
이제 팀 KL에 관련된 기사는 ‘첫 무패 우승 가능한가?’, ‘명예로운 대기록을 향해 도전하는…’이었지 ‘1등 가능할까?’가 아니었다.
-아. 팀 KL 이야기가 아니라 그 밑의 다른 팀들 ㅎㅎ. 2등도 잘한 거잖아.
-…….
-저 새끼 저거 진짜….
-쟤 아이디 좀 찾아봐라.
-아니 왜?!
리그에서 선수로 뛰는 랭커들은 선수로 안 뛰는 랭커의 무신경한 말에 이를 갈았다.
저 새끼 저거 지가 뛰는 거 아니라고 막말하는 거 봐!
-엇. 팀 KL 경기 시작한다.
-제발 팀 KL 한 번만 지게 해주세요….
-아니. 팀 KL이 이기는 게 차라리 나을듯.
-왜?
-팀 KL은 이미 1등이니까 다른 순위권 놈들이라도 떨어져야지.
-뭐 저런 쓰레기 같은 소리를 당당하게…?
랭커들이 떠드는 사이 리그 경기가 시작되었다.
팀 KL vs 항저우 와이번즈!
중국 쪽 게임단은 막대한 자본을 끼고 있는 만큼 대부분 상위권에 위치해 있었다. 항저우 와이번즈도 그랬다.
1부 리그의 팀이 20개나 되는데 여기서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대단한 일!
…물론 그렇다고 팬들이 화를 안 내는 건 아니었다.
-지금 항저우 와이번즈가 몇 위지?
-6위. 지면 7위로 내려갈걸.
-이야. 아슬아슬한데. 플옵 확정이 6위까진데….
-힘내! 항저우! 제발 팀 KL의 약점을 하나라도 보여줘!
선수로 안 뛰는 랭커들은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봤지만, 게임단 소속 선수인 랭커들은 초조하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경기를 쳐다보았다.
제발….
제발 김태현이 배가 아프거나 감기 걸려서 컨디션이 안 나오기라도 해줬으면!
-김태현! 김태현! 더블 킬! 항저우의 진형을 찢어발깁니다! 항저우, 기껏 소환한 임시 요새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렇게 무기력한 게 말이 되나요! 아니, 공격이라도 해야죠!
-공격 하고 있어요! 공격 하고 있습니다! 김태현 선수가 너무 강한 거에요!
-후퇴합니다! 후퇴! 항저우 와이번즈, 후퇴합니다! 최상윤 선수가 튀어나옵니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어요!!
-아, 너무 무모한 거 아닌가요? 아직 세 명이나 남아 있는데 혼자서 막는 건….
-항저우 선수들, 공격을 퍼붓습니다! 최상윤 선수 그대로… 엇, 버팁니다! 버텨요! 항저우 선수들 발이 묶입니다! 당황했어요! 당황했어요!
-당연히 당황하죠! 뒤에서 김태현 선수가 쫓아오는데! 아! 쫓아오고 있어요! 쫓아오고 있습니다!
-저번에 김태현 선수와 붙은 선수가 이렇게 인터뷰를 했었죠? 공포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고! 아! 잡혔습니다! 잡혔어요! 비명 터져 나옵니다!
-관중석에서도 한숨이 나오고 있어요! 게임 넘어갑니다!
끝났다는 걸 알았는지 팬들도 비명과 탄성을 내뱉고 있었다.
저렇게 붙잡혀서 빠져 나온 적이 없었던 것!
랭커 게시판에서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졌네.
-끝났음.
-저걸 어떻게 뒤집냐. 끝났네.
-야. 근데 김태현이야 원래 그렇다 쳐도, 팀 KL 놈들이 다 저렇게 튼튼했었냐? 방금 저거 최상윤은 어떻게 버틴 거지?
-몰라. 버프 받았나보지.
-버프 없었는데요.
-알 게 뭐야. 난 팀 KL하고 싸울 일도 없는데. 앞으로 싸울 놈들이 알아서 알아내겠지. 다음 상대는 누구지?
-어… <베이징 파이터즈>….
-…….
-이야… 걔네도 참 불쌍하게 됐다… 왜 하필 팀 KL을 지금 또 만나냐?
베이징 파이터즈.
리그 초반에는 승승장구하며 최상위권 순위다툼을 하던 팀이었지만, 팀 KL한테 패배하고 나서는 갑자기 연전연패를 하고 있는 팀이었다.
물론 그 안에는 사장의 무리한 간섭, 감독 흔들기, 팀 내분 등등이 있었지만 그건 밖에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와 김태현한테 세게 맞아서 저렇게 후유증이 남았나 봐’ 하고 추측할 뿐!
리그에서 한 팀하고 총 두 번 싸우는데 그 두 번째가 하필 이럴 때 찾아오다니.
베이징 파이터즈 입장에서는 피눈물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거기 감독은 뭔 죄냐.
-말조심해라. 감독이 지금 팀 말아먹고 있는 건데. 그 형편없는 전술 봤어?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조합을 한 건지….
-맞는 말임. 감독 거품이 다 드러난 거지. 어디서 그런 감독을 데려왔는지.
-지금 말한 놈들 다 중국인이지?
-그런 듯.
랭커들 중 중국 랭커들은 감독을 날카롭게 비판했지만, 다른 랭커들은 아니었다.
무너진 <베이징 파이터즈> 팀을 부활시킨 게 일단 감독이었으니까!
-알지도 못하는 놈들은 끼지 마라.
-감독을 잘라야 해! 베이징 파이터즈가 올라가려면 지금이라도 잘라야 한다고.
-물론 감독의 공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잘라야….
-이번 경기 지면 진짜 자진사퇴해라. 양심 있으면.
팬심이란 가끔 이성을 잃는 것!
그 살벌한 모습에 다른 나라 랭커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봐도 후회할 거 같은데….’
‘냅둬. 우리가 응원하는 팀도 아닌데. 자르라 그래.’
‘하긴 그것도 그래.’
자기네들이 자르겠다는데 뭐 상관 할 거 없지!
* * *
“전리품 확인하고 나눠 가지자. 공적치 포인트는 다 받았겠지?”
“예!!!”
깔끔하게 돌아온 김태현과 추격대는 모든 플레이어들의 눈길을 한몸에 받으며 귀환했다.
위풍당당 그 자체!
골짜기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눈빛으로 갑옷이 뚫릴 것 같았다.
‘아이템 확인하고… 악마 지휘관의 아이템도 좋긴 하겠지만 당장 내가 쓸 만한 아이템은 안 나올 확률이 높긴 하겠지.’
현재 태현이 갖춰 입은 아다만티움 장비는 사기적인 스펙이었다.
게다가 무기 또한 어지간한 장비 스펙으로는 따라올 수 없는 극단적인 능력을 갖고 있었으니, 악마 지휘관 정도로는 힘들어보였다.
그나마 장신구 정도?
‘뭐, <화신의 일격>이 가장 큰 소득이니까 됐다.’
<화신의 일격>은 태현의 든든한 히든카드가 되어 주리라.
치명적인 맹독이 발린 비수 같은 스킬!
‘여차하면 <데메르의 시간 되돌리기> 조합해서 두 번 쓸 수 있긴 하겠군. <데메르의 시간 되돌리기>도 쿨타임이 꽤 긴 편이지만 <화신의 일격>보다는 훨씬 짧은 편이니까.’
<화신의 일격>은 스킬들 중에서도 손꼽히게 긴 쿨타임을 갖고 있었다.
태현이 갖고 있던 <데메르의 시간 되돌리기>나 <부활> 같은 권능 스킬들도 쿨타임이 매우 긴 편이었는데, <화신의 일격>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으니….
[카르바노그가 그래도 <화신의 일격>은 쓸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악마 공작이나 거기에 버금가는 상대가 아니면….’
“태현 님! 태현 님!!”
“???”
“레, 레드 드래곤이… 레드 드래곤이 날뛰고 있어요! 큰일 났어요!”
“…….”
말이 씨가 된다더니!
[카르바노그가 자기 때문 아니라고 변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