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06화
태현이 화술 스킬로 쩌렁쩌렁하게 외치자 근처에 있던 중급 이하의 악마들이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악마 천인장들은 이를 갈면서 수습하려고 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으아악! 아키서스다! 진짜 아키서스야!
-미친 아다드 놈은 지가 왜 안 나서고 우리보고 싸우라는 거야!
이기적인 건 악마들의 종특!
덕분에 주변에 썰물처럼 공간이 생겨났다. 태현과 태현의 공격대는 더욱 편해졌다.
‘흠. 잡을 수 있으려나?’
케인 앞에서는 강한 소리를 했지만 태현은 사실 엄청나게 커다란 각오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공격 좀 해보고 못 잡을 거 같으면 후퇴할 생각!
공격대가 미친 듯이 날뛰어준 덕분에 진형은 흐트러진 상황. 태현의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후퇴할 수 있었다.
이 악마 군세를 이끄는 정도의 지휘관이라면 악마 공작의 심복 정도는 될 테니, 갈그랄이나 랄그갈 정도로 강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공격을 시작해 볼….’
“내가 간다!”
“????”
태현이 스킬 콤보를 고민하는 사이 케인이 우렁차게 외치며 덤벼들었다.
태현은 케인이 미쳤나 싶었지만 이유가 있었다.
공격대 플레이어들이 흥분에 휩싸여 악마 지휘관에게 덤벼들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미친 버프를 받았다지만 악마 지휘관에게 저렇게 덤벼들면 위험하다!
그걸 안 케인이 저렇게 탱킹에 나선 것!
‘아니. 이걸 케인이?’
케인이 좋은 플레이를 하자 태현은 매우 신기해했다. 사람은 변한다지만 저건 좀 신기한데?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하는구나!”
물론 악마 지휘관은 매우 분노했다. 아키서스면 모를까 다른 같잖은 놈들이 덤비다니!
-아다드의 포효!
악마 지휘관은 포효 스킬을 써서 전체 디버프를 걸었다.
“죽어라, 이 건방진 쓰레기들아! 내 앞에서 무릎 꿇어라!”
[아키서스의 제물 버프가…]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 버프…]
[펠마른의 아키서스 대축복이…]
[……]
[……]
[저항에 성공합니다!]
“?”
“뭐야. 막혔잖아…?”
플레이어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악마 지휘관을 쳐다보았다. 악마 지휘관은 미친듯이 민망해졌다.
원래 가장 민망할 때가 스킬 자신 있게 썼는데 막혔을 때!
“죽… 죽어라! 하찮은 쓰레기들아!”
“저놈 저거 쪽팔려서 더 화내는 거 아냐?”
“죽어라!”
악마 지휘관은 무기를 꺼냈다. 아다드가 직접 하사한 도끼로, 살벌한 마계의 마력이 응축된 무기였다.
쉭!
깡!
[아다만티움의 힘이 마계의 마력을 흡수합니다!]
[공격을 막아냅니다!]
“?”
“막, 막아낸 거지 지금?”
“케인이 강한 거냐, 쟤가 약한 거냐?”
“아무리 케인이 강해도 그렇지 플레이어인데… 쟤가 약한 거 아니야?”
자신만만한 공격까지 케인한테 막히자, 악마 지휘관은 매우 당황해했다.
주변 플레이어들도 당황할 정도였으니 본인은 오죽할까!
[악마 지휘관이 혼란에 빠집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졸지에 공짜로 명성 얻어먹은 케인은 눈을 깜박였다.
뭔 상황이야?
그러나 그런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공격해!!!”
공격대 플레이어들 전원이 상황을 깨닫고 맹렬하게 덤벼들기 시작한 것이다.
근접 스킬 수십 개와 원거리 스킬 수십 개가 동시에 날아 들어와 악마 지휘관을 공격했다.
케인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방패로 악마 지휘관을 공격하며 방해했다.
그리고 그 끝은 태현이 장식했다.
-치명타 폭발!!
이제까지 악마들을 썰면서 쌓인 치명타 스택들을 전부 폭발시키는 일격!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너무 강력한 데미지에 악마 지휘관이 스턴 상태에…]
[<아키서스의 주사위> 버프가 끝났습니다.]
버프가 끝나자 태현은 바로 다시 스킬을 사용했다.
-아키서스의 주사위!
[11! <위대한 명중의 가호>가 파티 전체에 걸립니다!]
[명중 관련에 크게 보너스가 들어갑니다!]
‘운이 좋다!’
랜덤 버프 들어가는 아키서스의 주사위 스킬은 상황에 따라 쓰레기도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명중의 가호는 지금 상황에서 쏠쏠한 버프였다.
악마 지휘관의 회피를 씹어버리는 가호!
-아키서스의 세 번째 공격!
[아키서스의 세 번째 공격을 성공적으로 적중시켰습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고급 검술 스킬이 최고급 검술 스킬로 변합니다!]
“!!”
원래는 저번 퀘스트에서 찍으려고 했던 최고급 검술 스킬!
쌓이고 쌓인 스킬 경험치가 드디어 최고급을 찍은 모양이었다.
‘정말 길었다…!’
태현은 검술 직업이 아니라 검술 스킬 관련 보너스가 하나도 없었다.
남들이 3, 4배로 올릴 때 태현은 묵묵하게 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갖고 있는 검술 스킬들이 <아키서스 검법>으로 합쳐집니다.]
[모든 검술 스킬의 데미지가…]
[……]
[……]
[비전 검술 스킬, <화신의 일격>을 얻습니다!]
<화신의 일격>
순간적으로 신을 강림시켜 강력한 일격을 날립니다.
“…!”
[!!]
태현하고 카르바노그가 동시에 놀랐다.
수많은 검술 스킬들을 얻거나 봐온 태현이었지만, 이 스킬은 차원이 달랐다.
말 그대로 신의 일격!
‘그런데 쿨타임이… 1년이군.’
한 번 쓰면 1년 동안 쓰지 못한다는 어마어마한 페널티를 제외하면, 태현이 가지고 있는 스킬 중 가장 위력적인 스킬 같아 보였다.
행운으로 올라간 치명타 데미지? 치명타로 누적된 스택?
이런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
이쯤이면 쿨타임이 1년인 것도 별로 나빠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억, 컥, 큭, 컥, 켁!”
태현이 검술 스킬 보면서 패는 동안 악마 지휘관은 너덜너덜해져 가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두들겨 맞을 거라고 그 누가 예상했겠는가!
악마 지휘관은 이렇게 쓰러질 보스 몬스터가 아니었다. 휘하의 수많은 부하들이 아직 멀쩡히 있는데….
그러나 대부분의 악마들이 아키서스의 이름을 듣고 멀찍이 떨어져서 도망치고, 천인장들이나 만인장들은 공격대의 기세와 버프에 기가 죽어 물러선 지금, 악마 지휘관을 도와줄 수 있는 악마는 아무도 없었다.
공격대 플레이어들도 주변에 우글거리는 악마들 때문에 겁을 먹거나 긴장할 법도 했는데, 오히려 더욱더 기세가 올랐다.
김태현이 여기 있다!
김태현이 우리를 이끌고 있다!
즉석에서 모인 파티였는데 조금도 합이 흔들리지 않고 합이 척척 맞았다. 플레이어들 자신도 신기하다고 느낄 정도로.
일종의 집단최면 상태!
들어가는 공격이 더욱더 정교해지고 살벌해졌다.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공격을 해내고 또 해냈다.
‘어? 잡나?’
태현은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잡을 수 있겠는데?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건 태현이 가진 패를 닥치는 대로 썼을 때의 이야기.
이렇게 순조롭게 잡을 수 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권능 스킬 대여섯 개 가지고 군세의 우두머리를 잡는다면 몇십 배로 남는 장사 아닌가!
‘플레이어들이 생각보다 너무 잘해주고 있어!’
태현은 그 이유를 깨닫고 놀랐다.
급조된 파티고 조금이라도 불리해지거나 흔들리면 도망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플레이어들은 뭐라도 잘못 먹은 것처럼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그 기세에 오히려 악마 지휘관이 두들겨 맞는 상황!
“잘했어! 스킬 연계 들어간다!”
“저주 걸었어! 다시 때려!”
“스킬 캔슬시켜! 놈이 스킬 쓸 틈을 주지 마!”
“역시…! 김태현은 이것까지 예상한 거겠지!”
플레이어들은 들뜬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물론 옆에 있던 태현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내가 너희 스킬들이 뭐가 있는지 어떻게 알아?’
자기들이 알아서 합 맞춰놓고 왜 내 덕분이래?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김태현이 모든 걸 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착각에 빠졌다.
“공격! 공….”
[악마 군세의 우두머리, 아다드가 보낸 전사인 지휘관 자느라그가 쓰러집니다!]
[사악하고 강력한 대악마 자느라그를 쓰러뜨린 것은 실로 위대한 업적입니다!]
[아키서스 교단은 이 악마 사냥을 주도했습니다! 명성이 대륙에 울려 퍼집니다!]
[악마 군세를 막아내고 역으로 우두머리를 잡은 업적은 교단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앞으로 아키서스 교단에 악마 상대 보너스가 들어갑니다.]
[명성이…]
[……]
[……]
[……]
[……]
[레벨 업 하셨습니다!]
남들은 몇십 업 했을 테니 그건 신경 끄고, 태현은 명성과 신성 스탯을 확인했다.
‘명성이 19만… 20만 찍으면 진짜 명성만으로도 퀘스트 하고 다녀도 되겠군.’
그쯤이면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어? 내가 어! 드래곤도 잡고! 악마도 잡고! 다 해봤어!’ 하면서 다녀도 퀘스트 절반은 해결될 수준이었다.
‘신성은 6만을 바라보고 있고….’
“김태현! 명령을 내려줘!”
“김태현!! 명령만 내려라! 지옥이라도 가겠다!”
“그러면 후퇴하자!”
“어?”
“응?”
“????”
“버프 시간 끝날 때 됐다. 나머지는 내버려 두고 후퇴!”
우두머리 잡은 건 태현이 생각지도 않은 대박이었다.
그 대박을 얻었으니 더 이상 욕심부릴 이유가 없었다.
원하던 건 다 얻었다!
“그, 그래. 후퇴하라면 후퇴해야지.”
“응….”
공격대 플레이어들은 태현의 뒤를 쫓아 재빨리 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라니까 한다지만 뭘까, 이 찜찜한 기분은?
* * *
악마 군세들은 후퇴하는 공격대를 쫓아오지도 못했다.
그러기에는 공격대가 보여준 모습이 너무 살벌했던 것이다.
후퇴하는 군대의 뒤를 쫓아와 닥치는 대로 부숴버린 다음 우두머리 목까지 따고 돌아가는 강력함!
공격대 플레이어들은 정신없이 싸우기만 해서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방금 있었던 전투는 수십 개가 넘는 개인 채널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끈질기게 버티면서 치고받는 공성전과는 전혀 다른,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화끈한 전투!
성문이 열리고 돌격해서 악마 군세의 우두머리를 잡는 데까지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야! 너 지금 스타 됐어! 게시판 들어가봐!
-너 언제부터 판온을 그렇게 잘했냐?!
공격대에 참가했던 플레이어들에게는 귓속말이 우르르 날아오고 있었다.
그만큼 강렬했던 싸움!
지금 게시판은 온통 악마 군세와 벌였던 싸움 이야기뿐이었다.
-와. 봤냐? 진짜 무슨… 왕국 기사단인 줄 알았다. 돌격하는데 앞에 있는 악마들이 바로 녹아내리는 거 봄?
-기사단 아니었어?
-기사단 아니었음. 즉석에서 모은 파티야.
-다들 레벨 높았으니까 당연한 거지.
-당연은 무슨… 네가 모아봐라. 그게 되냐? 난 진짜 놀랐다니까. 서로 처음 보는 놈들인데 서로 합이 딱딱 맞는 거야!
보는 눈이 있는 플레이어들은 싸움을 깊이 있게 분석했다.
그 어마어마한 돌격이나 강력한 전투력도 놀라웠지만, 합이 저렇게 잘 맞는 게 더 놀라웠다.
-김태현이 지시한 것 아닌가?
-그러니까 그 상황에서 플레이어들 직업하고 스킬 다 파악해서 지시를 내렸다고? 그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냐?
-김태현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아 진짜! 내가 30분만 일찍 왔으면 저기 돌격에 참가하는 건데!! 김태현이 올 줄 몰랐지!!
-골짜기 퀘스트에 김태현 없으니까 참가할 필요 없다고 한 새끼 누구냐? 나와!
-그런데 김태현이 <화산의 저주> 퀘스트 깨러 갔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게 정말임?
-소문 같던데. 아직 발표 없잖아.
-아니. 보니까 꽤 그럴듯하던데… 게다가 김태현 말고 그걸 누가 깨겠어.
-제발 깨줬으면 좋겠다! 이놈의 저주 때문에 돌겠어! 차라리 예전의 역병 저주가 나았지.
-그건 아님.
-그건 아닌듯.
-미쳤냐? 낫긴 뭐가 나아?
역병 저주를 직접 겪어 본 플레이어들은 단호하게 부정했다.